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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정영훈 기자

"자살 도와드립니다?"

"자살 도와드립니다?"
입력 2017-03-13 10:59 | 수정 2017-03-1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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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SNS를 통해 자살 방법을 알려주고 돈을 받은 '자살 브로커' 2명이 구속됐습니다.

    이들은 '확실하고 고통 없는 자살방법'이라는 광고까지 내고 대상을 모집해 '자살 세트'를 1백만 원에 판매하는가 하면, 자살을 시도하려는 여성을 유인해 저승사자를 자처하며 성추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범죄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악용해 벼랑 끝에 선 타인의 절망을 돈벌이로 삼은 것입니다.

    SNS를 통해 벌어지는 파렴치한 동반 자살 모의 막을 수는 없을까? 정부와 사회단체의 자살 예방 캠페인은 효과가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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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112 종합상황실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112상황실/작년 12월]
    "(네 경찰입니다.) 한 명이 또 자살 시도를 재차 해가지고요. (또 누가 자살 시도한다고요?) 지금 이미 타이머 맞춰놨어요, 질소가스를. 수면제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30대 여성 김 모 씨는 이 신고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한순간에 딸을 잃을 뻔했던 김 씨 어머니.

    당시 딸의 집에 있던 ‘수상한 물건’들을 보고 더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장00/피해자 어머니]
    "질소 통을 보니까 아우, 기절할 정도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너무 가슴이 아픈 거야. 무섭기도 하고. (텐트) 왜 이렇게 쳐 놨냐 하니까 ‘엄마, 추워 갖고 요새 방 안에다 텐트도 많이 친다.’ 그래. 그런 줄 알았지."

    특히 딸에게 교묘히 접근해 자살 시도를 도왔던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몸서리가 쳐졌다고 합니다.

    "눈만 뜨면 그 생각이 나 갖고 이건 어떻게 살아야 되나. 눈 뜨는 게 너무 두려워. 힘들어."

    김 씨가 자살을 시도한 지 두 달 만에 자살을 부추긴 일당 2명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경찰/검거 당시 촬영 영상]
    "질소가스 판매하셨죠? (판 적이 없는데요.) 체포영장이 발부됐어요. 자살 방조혐의로 해서."

    경찰이 급습한 이들의 거처에선 다량의 신경안정제가 발견됐고 범인들의 차량 트렁크에선 자살 도구로 보이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화로하고, 텐트하고 뒤에 가방 보셨어요?"

    경찰이 이들로부터 압수한 물품들은 두 달 전 김 씨 집에서 발견된 것과 똑같았습니다.

    온라인 상에서 소문만 무성하던 이른바 '자살브로커’가 처음 검거된 순간입니다.

    경찰에 구속된 일당들도 과거에는 사업 실패 등의 이유로 자살 시도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SNS를 통해 동반자살 비밀모임을 주도하면서 마음을 바꿨습니다.

    자살 방법을 알려주고 도구까지 알선, 판매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씨처럼 절망과 고통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겁니다.

    경찰에서 태연하게 범행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주범 55살 송 모 씨.

    [송00/피의자]
    "타이머 틀어놓고 잠자면서 편히 간다.(비닐을 왜 씌워 놓은 거예요?) (가스)새지 말라고."

    송 씨는 트위터 등 SNS에 이런 ‘자살 도구’를 하나로 묶어 광고 글을 올렸습니다.

    한 세트에 100만 원하는 이른바 '자살세트'.

    ‘고통이 없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사람들을 현혹했고 거래가 이뤄지면 직접 찾아가 설치까지 해줬습니다.

    [최재호 경감/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
    "피의자들은 본인들은 자살 생각이 없었어요. 근데 마치 함께 자살할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자기들이 자살하려고 했기 때문에 자살 방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연구를 했다 이러면서."

    이들이 범행을 위해 마련한 은신처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8월 충남 태안에 있는 한적한 시골의 펜션과 별장을 몇 달씩 장기 임대해 놓고 범행을 본격적으로 모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580이 직접 찾아가보니 연탄 화로 등 이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 00/A 펜션 주인]
    "이상하긴 이상하다 그랬어요. 우리 할아버지하고 ‘저 사람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간첩인가. 신고를 해볼까?’(왜 이상하게 생각하셨어요?) 맨날 저렇게 (커튼을)꼭 닫아놓고 들어오면 들어앉아 있으니까요."

    범행 대상으로 물색한 여성들을 직접 은신처로 불러 자살 방법과 도구를 재연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이곳에서 '자살세트'를 직접 설치해주고 동반자살을 도왔지만 미수에 그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됐습니다.

    [이 00/A 펜션 주인]
    "아가씨 둘이 하얀 차를 타고 왔더라고요. 누구냐고 물으니까 ‘아, 우리 삼촌 여기 계셔서 왔어요.’ 그렇게 삼촌이라 하면서 들락날락 몇 번 오고."

    이들이 수상하긴 했지만 그저 몸이 아파 요양하러 온 줄만 알았다고 합니다.

    [정00/B 별장 주인]
    "이상한 건 못 느끼고 그 뭐죠. 이만한 산소통이 있어요. 산소통, 산소. 가느다랗고 이만한 거. 그것들 하나씩 가지고 있었어요."

    2580은 이들‘자살브로커’와 접촉했던 사람들을 수소문했습니다.

    그리고 한 30대 여성과 어렵사리 연락이 닿았습니다.

    이 여성은 동반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SNS를 통해 은밀하게 정보를 주고받는 비밀채팅방이 있고, 여러 비밀 채팅방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이곳이 자살브로커 일당의 주 무대였다고 말했습니다.

    [박00/동반자살 비밀모임 회원]
    "태안에다가 펜션을 잡아놨고 자기들이 방에서 다 밀폐시킨 다음에 가스 8통을 사서 틀 거다, 동물들 사다가 자기들이 실험도 해볼 거고 날짜만 잡으면 된다고 그렇게 얘기했어요."

    브로커들은 남성이 아닌 대부분 2~30대 여성들만 접촉했습니다.

    [최재호 경감/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사이버안전과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 이미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게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주범 송 씨와 자주 통화한 여성은 모두 16명, 자살 관련 문자를 주고받은 여성도 예순 명 가까이 됐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SNS에서 중년 여성 행세를 하며 상대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뒤 글을 보고 찾아온 20대 여성을 성추행하기도 했습니다.

    [최재호 경감/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
    "'나는 저승사자고 나에게 죽음의 기운이 있어서 죽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마치 그럴듯한 얘기처럼 들리게."

    그리고 주범 송 씨와 접촉했던 여성 3명은 지난해 10월과 12월, 각각 전남 광양과 경기도 오산에서 실제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화성동부경찰서 관계자]
    "(행적을 조사해보니) 태안을 두 번 내려갔는데 그 (자살)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해서 간 건데 시도는 안 했다는 거예요."

    [박00/동반자살 비밀모임 회원]
    "저희가 원래는 그렇게까지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죽어나가니까 아 이게 실제로 가능한 일이구나, 그런 현실감이 느껴지면서 '아 나도 저렇게 갈 수 있겠다'는 그런 확신들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들이 주고받은 SNS 메시지에는 자살 방법과 도구 등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내용이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송 씨는 다양한 채팅 프로그램으로 이들과 연락했고 연락 후에는 대화내역을 삭제하거나 계정을 아예 없애는 방법으로 철저하게 증거를 인멸했습니다.

    이들의 검거에 결정적 제보를 했던 사람도 비밀채팅방 회원이었습니다.

    처음 채팅방에 가입한 건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정 00/자살브로커 제보자]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들어갔고...(그런데) 하는 행동들을 보니까 트위터에 동반자살 해시 태그에 올라오는 정보, 이걸 계속 습득하고 있더라고요."

    이번에 자살브로커들이 검거되지 않았다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겼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살을 돕겠다는 인터넷 글 상당수는 또 다른 범죄를 노리는 함정이라고 경고합니다.

    성추행이나 장기 밀매의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정00/자살브로커 제보자]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범죄 타깃’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요. 대부분이. 성추행 내지는 장기 매매 있잖아요."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함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9월 경기도 안산에서 4명의 남녀가 함께 목숨을 끊어 큰 파장을 낳았습니다.

    이미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전혀 모르는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경우였습니다.

    [배미남 팀장/인천광역시 자살예방센터]
    "네 명을 상담을 진행했고 네 분 다 자살사고가 매우 높으셨어요. 이전에 자살 관련해서 인터넷으로 해서 다들 모였고 디데이를 정하셨대요."

    자살 수단과 방법 등을 포함한 자살 유해정보는 온라인 상에서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지난해 온라인 상에서 적발한 자살 유해정보는 2만여 건 가운데 동반자살 모집이 2천5백여 건, 자살 방법을 알려주는 글도 4천여 건에 달했습니다.

    [홍창형 센터장/중앙자살예방센터]
    "생명을 포기하는 그 순간에도 뭔가 그 수치심, 죄책감 그것을 덜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위안을 받고 싶다, 서로 공감을 받고 싶다, 하는 본능이 숨어 있는 거죠."

    실제 자살 유해정보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지만 해당 게시물에 대한 삭제율은 뒷걸음질치고 있는 추세여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성주/중앙자살예방센터 연구평가팀]
    "트위터가 익명성이 되게 강하다 보니까 이제 동반자살 모집할 때 자기 정보는 공개하고 싶지 않고 그런데 사람들은 모으고 싶다 보니까 트위터가 자주 이용된 것 같아요."

    자살 유해정보 삭제를 요청해도 불상사를 막을 수 있는‘골든타임’ 안에 처리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홍창형 센터장/중앙자살예방센터]
    "SNS 즉 개인의 어떤 자유나 표현의 자유, 개인 정보 이런 것을 중시 여기는 그런 정책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이제 이걸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2015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한 해 만 3천여 명.

    10만 명당 자살률은 26.5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의 2배가 넘습니다.

    [유현재 교수/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12년째 1위에요. 그것을 방조한 사회분위기, 이런 거라면 이제는 좀 뭔가 굉장히 강력한 어떤 장치를 마련할 때가 되지 않았나."

    전문가들은 자살 관련 글, 특히 동반 자살을 부추기거나 모집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범죄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홍창형 센터장/중앙자살예방센터]
    "적극적인 주동자에 해당되는 분들은 그분이 자살로 사망을 하든 안 하든 빨리 찾아내서 엄밀한 의미로 따진다면 살인죄에 준하는 그런 잘못을 저지른 거거든요. 그런 식의 처벌이 필요합니다."

    현재 자살 방조와 자살방조 미수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 중범죄입니다.

    [최재호 경감/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자살하는 방법을 상세히 하면서 그에 대한 필요한 도구들, 그거까지 실제로 세팅한 모습을 보여주고 결심까지 하게 했다면 그 부분은 자살방조죄가 성립이 됩니다."

    특정 제초제의 판매와 생산을 2012년부터 금지한 뒤 심각한 수준이었던 농약 음독자살률이 이듬해 30% 가까이 뚝 떨어진 바 있습니다.

    동반자살을 부추기는 사람들과 이를 노린 자살브로커가 영역을 넓혀가는 SNS.

    독버섯처럼 퍼지는 자살 유해정보를 보다 강력히 규제하고 처벌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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