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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정성기 기자

프리랜서 4천 명... '탈세 스캔들'

프리랜서 4천 명... '탈세 스캔들'
입력 2017-03-20 10:47 | 수정 2017-03-2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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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설계사와 자동차 판매원, 학원 강사 등 개인 자영업자 3천800여 명이 때아닌 세금폭탄에 울분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소득 신고를 대신 해 준 한 세무사가 수입과 경비 지출 내역을 허위로 작성한, 이른바 ‘물 장부’를 만들어 세금을 환급받아 온 사실이 적발되면서 관련 사업자들에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세금 추징이 통보된 것.

    피해자들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는 입장이지만, 세무당국은 납세자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며 세금을 제대로 냈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면 과세를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절세’를 하려다 졸지에 ‘탈세’ 책임을 물게 된 개인 자영업자들, 이들이 초대형 탈세 스캔들에 휘말린 사연을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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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천만 원 정도가 나온 거예요, 그래서 4천만 원이요? 그랬더니 4천만 원이라고."

    "6천만 원이라는 이런 엄청난 큰돈을 내라고 하니까."

    "증빙을 못하면 거의 9천만 원 정도."

    "저희는 2억 정도 됩니다."

    "2억 6천400이라는 거예요."

    그야말로 억 소리 나는 돈, 이 금액은 이들이 당장 내야 할 세금입니다.

    청천벽력을 맞은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보험설계나 학원 강사 등 소위 프리랜서라는 점, 그리고 같은 한 명의 세무사에게 세무 처리를 맡겼다는 점입니다.

    이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세금폭탄을 맞게 된 개인사업자는 지금까지 파악된 것만 4천 명에 육박하고, 추징 금액은 천억 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작년 10월, 이들의 세무업무를 맡아줬던 한 세무사가 탈세 혐의로 구속되면서 모든 일이 시작됐습니다.

    보험설계사 정옥순 씨는 한 달 전 세무서에서 온 안내문을 받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동안 세무사에 맡겨 소득신고 했던 6억 3천만 원의 경비 사용내용을 다시 소명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일이 소명하지 못하면 허위 신고한 걸로 보고 가산세를 포함해 2억 6천만 원의 세금을 추징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옥순/보험설계사]
    "제가 너무 놀라서 밤잠을 못 자고 토요일에 나와서 다 출력했거든요. 입출금 내역 다출력하고 뭐하고 하니까 며칠 전에 (세무서에) 가니까 소명을 하니 (세금이) 8천만 원 정도는 되는데 이것도 조사관님이 받아주면 땡큐라는 거예요."

    세무 지식이 없어 남들처럼 세무사에게 일을 맡긴 것뿐인데 졸지에 탈세자 취급을 받게 된 상황.

    [정옥순/보험설계사]
    "우리들만, 선량한 우리들만 열심히 일해 가지고 당연히 세금 다 내는 줄 알았지. 누가 탈세인 줄 알았겠어요?"

    자동차 영업사원인 현준구 씨도 마찬가지.

    세무사가 뿌린 홍보 전단지를 보고 세무 대리를 맡겼는데, 난데없이 4년치 9천만 원의 세금을 내게 생겼습니다.

    [현준구/자동차 영업사원]
    "보이스피싱 당하고 국세청이라는 거대 집단에 눈 뜨고 코 베인 그런 심정이었어요, 한마디로. 그러니까 9천만 원이라는 돈은 지금 뭐 저희 같은 서민한테는 집을 팔아가지고 갚아야 될 뭐 그런 형편이니까요."

    이제 와서 자신의 소득신고 내역을 확인해보니 허점투성이.

    실제로 경비 항목은 자신이 쓴 것보다 부풀려졌고, 거꾸로 매달 세무사에게 줬던 기부금 내역은 아예 빠져 있기도 했습니다.

    [현준구/자동차 영업사원]
    "억지로 깎아가지고 탈세를 해 달라는 게 아니었거든요. 근데 같은 범법자로 치부한다고 그러면 저희는 정말 억울한 거죠."

    해당 세무사 류 모 씨는 현재 탈세 혐의로 구속돼 있는 상태.

    처음엔 자신의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프리랜서 수천 명의 세무를 대리하면서 탈세한 사실까지 들통난 겁니다.

    류 씨는 주로 보험회사나 학원가를 돌며 자신을 국세청에서 근무했던 사람으로 소개하며 고객을 끌어 모았습니다.

    [정옥숙/보험설계사]
    "국세청 출신이니 자기가 합법적인 세무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겠다."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국세청 관계자]
    "이 분은 대학 졸업 후에 특별히 별다른 이력이 없이 이렇게 생활을 하시다가 세무사 시험에 합격해서 2008년인가 2009년부터 아마 개업해서 세무사로 일을 하셨던 걸로 제가 알고 있어요."

    류 씨가 뿌린 홍보 전단입니다.

    저렴한 수수료로 최대 환급을 보장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신용카드와 휴대전화 사용내역 등 소득 신고에 필요한 기본 증빙 자료는 안 내도 된다고 써놨습니다.

    특히, 총 수입에 따라 일률적인 환급액을 보장한다며 세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미끼 광고'를 했습니다.

    쉽게 말해 개개인의 내역을 계산해서 신고하는 게 아니라 목표 환급액을 정해놓고 관련 자료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이었다는 얘깁니다.

    [문동화/세무사]
    "일단 수수료 문제도 있고 이제 당장 세금 적게 나오게 하는 부분도 있을 텐데 일단 무지에 잘 호소를 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류 씨는 매년 소득신고 철이 되면 30~40명의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해 자신이 만든 매뉴얼대로 허위 서류를 만들었습니다.

    경비를 많이 쓴 것으로 신고해야 세금 공제를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류 씨가 대리 작성한 한 보험설계사의 소득신고 자료를 들여다봤습니다.

    전체 소득 중 사용한 경비를 80% 정도인 1억 1천여만 원으로 잡아놓고 사용 내역을 그에 맞춰 허위로 채워 넣었습니다.

    2580이 다른 세무사에게 의뢰해 봤더니, 이 보험설계사가 쓴 실제 사용 경비는 7천700여만 원, 전체 수입의 55%로 계산됐습니다.

    [문동화/세무사]
    "거의 대부분은 비슷한데 이쪽에 각 항목별로 금액이 더 크다는 거죠. 실제로 많이 지출하는 항목들에서 금액을 부풀린 거죠."

    류 씨가 이런 식으로 세무 대리를 해준 사람은 무려 5천여 명, 국세청이 류 씨의 고객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간 뒤 현재까지 4천 명 가까운 사람이 세금추징 통지서를 받았고, 이런 사람들이 지금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해 세금 4천만 원을 물어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가연/(가명)대학생]
    "엄마가 만약에 지금 투병 중이어서 계시기라도 했으면 '엄마 그때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거야?'라고 물어봐서 제가 그걸 알아볼 수라도 있는데 물어볼 사람도 없고, 엄마도 계시지도 않으니까."

    더구나 그동안 부당하게 세금을 덜 냈다며 최대 40%의 가산세, 여기에 연 11%의 이자까지 붙으면 내야 할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정은경/보험 콜센터 前 직원]
    "이거 너무 과한 거예요. 고리대금업도 아니고 국세청이 아무리 (세금을) 걷으려고 혈안이 됐다고 해도 5년 전 거를 이제 와서 폭탄처럼 우리한테 막말로 날린다는 거는 이거는 말도 안 돼. 거의 이건 완전 세금 폭탄이에요. 폭탄."

    국세청은 탈세가 드러난 이상 원칙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류 씨에 의해 피해를 당했다곤 하지만 이들이 성실한 납세의무를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

    소명 기간과 납부 기한을 연장해줄 수는 있지만 세금 추징은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국세청관계자]
    "신고책임 증빙에 보관의무 이런 것들이 최종적으로 납세자한테 주어져 있습니다. 법상으로."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전문가들은 '터질 게 터졌다.'라는 반응입니다.

    업무 특성상 비용처리가 불투명한 프리랜서들의 소득 신고 과정엔 그동안 암묵적인 편법이 관행으로 이어져 왔다는 얘깁니다.

    여기에 세무당국의 허술한 관리감독, 또 현실에 맞지 않는 세법체계가 사태를 더 키웠다는 지적입니다.

    업계에선 이번 사태가 단지 특정 세무사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분위깁니다.

    [문동화/세무사]
    "상식적으로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비용이 입증 안 된 경우에 어느 정도 반영을 해주긴 합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렇게 무리하게 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이제 얘기가 돌기 시작했는데 그게 한 4~5년이 된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더 세금을 환급받으려는 일부 프리랜서들이 탈법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고 합니다.

    [이 OO/세무사]
    "다른 세무사들은 다 이렇게 해주는데 왜 여기만 이렇게 하냐 이런 식으로는 좀 많이 몰려요. 그러니까 사실 세무사들도 조금 영세한 사람들은 혼자 독야청청해서 뭐하냐 우리도 이렇게 뭐 큰돈 아니겠지만 5월 달에 이렇게 하면 2천만 원 벌 수 있는 건데 그렇게 벌자."

    이런 일이 벌어지는 데엔 프리랜서들의 경우, 경비지출 내역 가운데 증빙하거나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이 적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정옥순/보험설계사]
    "고객한테 갈 때 슈퍼에서 뭐 사거든요. 이거 슈퍼에서 샀으니까 이거 인정 못 한다. 너희 가족을 위해서 쓴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나오더라고요. 그러니 우리는 어디 가서 비용을 인정을 받을 것이며."

    [현준구/자동차 영업사원]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모임도 많이 가입해야 되고 그다음에 모임도 많이 가입하게 되면 거기 경비도 많이 나갑니다. 그런 걸 어떻게 경비 지출, 그 비용으로 처리할 수가 없잖아요."

    특히, 연 수입이 7천500만 원이 넘는 프리랜서는 '복식부기 의무대상자', 쉽게 말해 수입과 지출 내역을 비교, 검증할 수 있는 손익계산 장부를 작성해야 하는데, 일반인이 하기엔 복잡하고 어려워 전문 세무사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개인사업자는 급여 생활자들과 달리 의료비와 교육비 등을 공제받지 못해 경비 내역을 최대한 많이 인정받는 게 관건이다 보니 이렇게 절세와 탈세 사이를 넘나드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겁니다.

    [박민영/학원강사]
    "카드 명세서 같은 것도 거의 인정을 안 해주고 현금 영수증 같은 것도 인정해주는 것도 거의 없거든요. 출근하고 퇴근하고 이런 과정이 일반 직장인들과 똑같은 패턴으로 들어가 있지만 우리나라 분류상 저희는 개인 사업자로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경비처리가 아무것도 안 되는 것도 사실 억울한 부분도 많이 있어요."

    그래서 세법 체계를 현실에 맞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박지혁/변호사]
    "선물을 준다거나 판촉물을 한다거나 이런 게 다 비용으로 인정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비용을 다 증빙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 세금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고요."

    세무당국의 부실한 관리감독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구속된 류 씨의 경우 이미 2015년에 세무대리 탈세 행위가 적발돼 국세청으로부터 650만 원의 과태료를 물었는데, 당시에 더 철저히 조사했더라면 이번 사태의 피해 규모를 상당 부분 줄였을 거란 지적입니다.

    [홍정우 팀장/세무사 사기 피해자 대책위 법무팀]
    "국세청에서 경고도 먹고 본인이 경고를 당하고 나서 이름을 한신 세무법인이라는 걸로 이름을 바꿔 놓고 기존 피해자들을 계속 이어서 기장을 해왔던 거예요. 그런데 국세청에서는 경고했는데 사실 피해자들은 이분이 경고를 당한 세무사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는 거죠."

    [안창남 교수/강남대 세무학과]
    "100명 신고하면 한 명 정도 신고한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는지 세법과 부합하는지 그 정도만 세무조사가 가능해서 지금 이와 같은 보험설계 업종 등 자유직업 소득자의 세무신고가 과연 세법에 정당한지 정당하지 않은지 검증 시스템이 사실은 그렇게 썩 잘 돼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공인 세무사를 믿었고, 국세청은 우리를 절망의 끝으로 몰았습니다."

    피해자들은 집단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세청은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박지혁/변호사]
    "모든 사람이 피해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납세자 입장에서도 피해를 봤고, 과세 관청 같은 경우에도 그동안 성실하게 납부를 못 한 부분에 대해서 추징을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손해를 보는 부분도 있고요."

    소득을 성실하게 신고하고 이에 맞게 세금을 내는 것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하지만, 제도와 현실 사이에 틈이 생기고, 여기서 절세와 탈세의 경계를 오가는 편법이 고개를 든다면, 그 틈을 메우는 것 역시 투명한 세무행정을 위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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