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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노경진 기자

아파트 재건축, 50층을 허가하라?

아파트 재건축, 50층을 허가하라?
입력 2017-03-20 11:12 | 수정 2017-03-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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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 아파트 재건축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은마아파트.

    이 곳이 요즘 ‘50층 아파트’ 문제로 요란합니다.

    재건축을 하려면 50층 정도는 돼야 수익성이 있다는 주민들과 도시 경관과 미래를 위해선 35층 이하로 지어야 한다는 서울시가 충돌하고 있는 것입니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을 욱여넣는 형태인 현재 서울의 2,30층짜리 아파트들이 몇 십 년의 세월이 흘러 재건축을 할 때가 되면 결국 은마아파트처럼 더 높이, 더 높이 지어야 할 판입니다.

    거주의 공간을 넘어 재산 증식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어버린 우리 아파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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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서울시 강남구 은마아파트 재건축 주민설명회.

    500명 규모의 대강당이 가득 찼습니다.

    강남구가 은마아파트 정비계획을 수립해 서울시의 심의를 받기에 앞서 아파트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

    의견 수렴이라곤 하지만, 은마아파트를 49층 초고층으로 재건축하자는 당초의 계획을 그대로 밀고 나가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자리였습니다.

    [이정돈 위원장/은마 재건축 추진 위원회]
    "35층이나 49층 절차법 똑같습니다. 절차법 거쳐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저희는 최대한 더 노력한다는 것이고요."

    신연희 강남구청장도 49층 추진에 힘을 보태겠다고 말해 주민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이끌어냈습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지 않으냐?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여러분들을 모시고 오늘 설명회를 했다라는 걸 말씀드리고요."

    그런데 서울시의 분위기는 주민들의 바람과는 많이 다릅니다.

    서울시 도시기본계획상 주거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35층 밑으로 지어야 한다는 겁니다.

    [최진석 과장/서울시 도시계획과]
    "기준은 2013년도에 만들었고요. 지금까지 70여 개의 단지를 심의를 했습니다. 그 심의결과는 하나도 예외 없이 다 35층 이하로 아파트 계획을 확정을 했죠."

    요즘 강남 재건축 아파트 단지마다 초고층 추진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50층, 45층, 49층 등 경쟁적으로 층수를 높이겠다고들 하고 있는데, 모두 서울시의 35층 층고 제한을 훌쩍 뛰어넘는 겁니다.

    한마디로 초고층 추진을 놓고 지자체와의 마찰도 불사하겠다는 건데, 단순히 조망권 좋고 쾌적한 아파트를 원해서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1980년,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26만 제곱미터 부지에 4천4백여 가구 대단지로 조성된 은마아파트.

    지은 지 30년을 훌쩍 넘기면서 강남 재건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지가 됐습니다.

    재건축추진위원회 사무소를 방문했습니다.

    국제 공모를 통해 채택된 160억 원짜리 설계, 초고층 아파트 조감도가 화려합니다.

    제3종 주거지역인 이 부지에 허용된 용적률은 최고 300%, 지금보다 천5백 세대를 더 늘려 총 5,940세대로 지을 계획입니다.

    그렇게 세대수를 늘려야 재건축 비용도 감당하고 수익성도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같은 부지에 세대수만 30%가 더 증가하는 상황.

    이 때문에 49층 정도의 초고층으로 지어야만 쾌적한 주거환경을 보장할 수 있다고 추진위 측은 주장합니다.

    [이정돈 위원장/은마 재건축 추진 위원회]
    "우리가 50층 했다가 49층 했는데, 49층 중간에 몇 개 동하고 가에는 뭐 한 15층짜리도 있어요. 그래서 산을 이루듯이 그래서 동간 거리도 확보하고, 그만큼 동이 축소되고 그러면 그 밑에는 지상에는 공원화가 넓잖아요."

    강남 일대의 대표적인 초고층 아파트로 랜드마크가 되면 아파트 가치도 크게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정돈 위원장/은마 재건축 추진 위원회]
    "은마가 특혜를 받으려고 그런다. 그건 추호도 없습니다. 그걸로 인해 이익이 얻어지면 너무 좋죠. 솔직하게. 그러나 우선 그거에서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서울시 기준대로라면 전체 동이 모조리 35층으로 지어져 빽빽하고 특색 없는 성냥갑 아파트가 될 거라는 게 주민들의 주장입니다.

    추진위는 서울시에 기준변경을 요구해서라도 49층 안을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정돈 위원장/은마 재건축 추진 위원회]
    "은마라는 데가 무슨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네들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려는 거 아냐 하는데 따지고 보면 서울 수도에 서울 강남권에 대해서 미래 어떤 지향적인 도시를 만드는데 하나의 역할을 하는 것도 있는 거예요."

    또 다른 강남권 대표 단지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도 재건축 초기단계부터 서울시와 충돌을 빚는 모양샙니다.

    역시 35층보다는 훨씬 더 높이 지어야 한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

    [윤광언 위원장/올바른 재건축 추진 위원장]
    "그것(35층)에 한 50% 정도 더 높은 45층 평균의 고층으로 지어야지만 어느 정도 쾌적한 인동 간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서울시가 공원과 도로 등을 재건축 안에 포함시키라고 한 것도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아파트가 한강변을 끼고 있으니 일반 시민들도 한강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자는 건데, 그렇게 되면 아파트 단지에 외부 사람들이 많이 오가게 된다는 겁니다.

    [김태은/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동대표]
    "저희는 그냥 원래 한 단지이고 조그마한 길이 있는 그런 주택가인데 지금 서울시 안은 여기를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거거든요. 아이를 맘 놓고 기를 수 있는 그런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그냥 일반 어떤 상업지역이 돼버리는 거죠."

    서울시가 주거지역에 35층이라는 층고 제한을 두는 이유는 뭘까.

    스카이라인이나 한강 조망 등은 특정 아파트 주민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함께 누려야 할 권리이기 때문에, 이를 보장하기 위해선 어느 곳이든 똑같이 층고제한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최진석 과장/서울시 도시계획과]
    "도시의 경관이라는 것은 시민들의 공공재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다 함께 공유 해야 할 그런 어떤 자산이기 때문에 특정한 단지가 고층으로 건축을 해서 그 경관을 독점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죠."

    한때 우리 사회에서 부 재창출의 공식처럼 여겨졌던 강남 아파트 재건축.

    하지만, 최근엔 주요단지마다 추진이 지지부진합니다.

    이들 아파트의 공통점은 10층에서 15층에 해당하는 '중층' 아파트라는 점.

    기존에 재건축된 아파트들은 5층짜리 저층이었기 때문에, 고층아파트로 재건축해 세대수를 크게 늘려 재건축 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물론 상당한 추가 수익까지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세대수도 많고 층수도 높은 이들 중층 아파트는 같은 방식을 적용하기 힘듭니다.

    세대수를 늘려 수익을 거두려면 은마나 현대아파트처럼 40층, 50층으로 높이, 더 높이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김용태/공인중개사]
    "중층아파트 같은 경우 일반 분양 수가 적기 때문에 추가 분담금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부분 때문에 결국 돈 문제이죠. 추가 분담금이 얼마 되냐. 안되냐. 일반 분양분 수의, 저층하고 중층하고 많이 차이 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좀 아무래도 불리하겠죠. 중층이..."

    여기에 초고층 아파트 건립은 부족한 사업성을 채울 수 있는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울 이촌동의 56층짜리 재건축 아파트.

    이곳은 서울시의 35층 층고제한이 생기기 전에 재건축이 추진돼 높이 지을 수 있었습니다.

    3.3제곱미터당 4,790만 원으로 같은 동네 아파트 평균의 두 배 가까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지난 1월 업무, 상업 중심지에 포함된 일부 동에 대해서 50층 재건축이 허용된 잠실 5단지도 발표 즉시 거래가 늘어나고 실거래가도 5천만 원에서 1억 원 정도까지 크게 올랐습니다.

    건물 밖에 있는 사람에겐 조망권을 침해하는 고층 건물이지만, 안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더 높은 조망권이 생겨 집값이 올라가는 겁니다.

    [박원갑/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
    "50층 정도의 높은 층에서 한강이라든지 남산이라든지 청계산이나 관악산이 보인다면 그 가치는 굉장히 클 거라고 보는 겁니다."

    문제는 앞으로 10년, 20년 내에 재건축 시한이 닥쳐올 수많은 중층 아파트 단지들입니다.

    강남의 핵심 단지들도 사업성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서울의 비강남권, 강북 지역은 물론 분당, 일산 등의 1기 신도시 아파트들이 순조롭게 재건축을 진행할 거란 전망은 하기 힘듭니다.

    사업성을 위해서라면 층수를 올려야 하지만 지자체 입장에선 도시 계획 원칙을 포기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진석 과장/서울시 도시계획과]
    "앞으로 서울의 기존아파트들이 중층, 고층의 아파트들이 많을 텐데 이런 부분들이 재건축이 될 경우에 사업성에 대한 부분들에 대한 논의가 분명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업성의 보전을 위해서 도시관리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아파트도 일반 주택처럼 비용 대부분을 내 돈을 들여 재건축해야 하는 시점이 곧 닥친다는 겁니다.

    [박원갑/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
    "지금이야 뭐 15층이나 이 정도에서 35층 짓는 것은 가능하겠죠. 근데 35층에서도 그러면 20년이나 30년 지나면 재건축을 해야 되는 그런 상황인데 그때 가서는 과연 몇 층으로 올릴 거냐는 거죠. 그러면 주변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그때 가서 50층, 70층으로 지을 수 있을 거냐. 그것은 아마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정부도 곧 닥쳐올 이같은 문제 때문에 앞으로 짓는 아파트에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재건축할 필요 없이 오래 살 수 있는 수명이 긴 주택, 일명 '100년 주택 정책'인데, 도입 2년이 지나도록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한 건도 없는 등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받고 있습니다.

    벽을 앞뒤로 자유롭게 밀거나, 접이식 칸막이처럼 접거나 여차하면 아예 없애버려도 아파트 안전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아파트 외곽에 설치된 기둥이 하중을 모두 지탱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둥식 구조'라고 합니다.

    기둥만 건드리지 않으면 안전엔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내부 수리도 리모델링도 자유롭습니다.

    반면 현행 국내 아파트들은 모두 '벽식구조'입니다.

    각각의 벽이 아파트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라도 부수면 전체 균형이 무너집니다.

    또, 벽 속에 설치돼있는 설비와 배관이 수명을 다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해당 설비만 교체하지 못하고 아파트 전체를 다 허물어야 합니다.

    콘크리트 자체의 수명은 백 년이 넘는데도 3, 40년 된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박지영 박사/토지주택연구원]
    "건물의 뼈대가 되는 구조체는 품질이나 유지 관리를 잘하면 100년까지는 거뜬하게 버틸 수가 있는데 우리가 설비 배관 같은 경우는 수명이 30~40년 됩니다. 그러다 보면 살다가 수리해야 되고 고치고는 싶은데 콘크리트 벽체 안에 묻혀 있거나 그래서 수리가 어렵게 되면 사람들이 재건축을 요구하게 되겠죠."

    그래서 정부는 2년 전부터 기둥식 구조의 장수명 주택, 일명 '백 년 주택' 정책을 도입해 신축 아파트를 기둥식 구조로 짓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단 한 채도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건축비가 15%가량 더 들기 때문입니다.

    수요자 입장에서도 한 집에서 얼마나 오래 살 지도 모르는 상황에 재건축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만으로 15% 더 비싼 집을 사느니, 당장 집값이 조금이라도 싼 벽식구조 아파트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

    [박지영 박사/토지주택연구원]
    "(강남에 엄청 건축비 많이 들이고 그러는데도 다 벽식구조인가요?) 네, 벽식으로. 그게 결국은 이제 사업성하고 관련이 있으니까 돈 더 들어가는 부분에 대해서 초기 사업비에만 관심이 있잖아요. 저거를 30년 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고치기도 힘들텐데... 그런 생각에 많이 안타깝죠."

    대도시 서울에서 아파트 재건축이 일거에 재산의 가치를 높이는 재테크의 수단으로 여겨져 온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노후된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근본적인 목표는 더 안전하고, 더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드는 데 있을 겁니다.

    더 높이 지어야 한다는 요구와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서울시의 정책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파트 높이 논쟁'은집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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