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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조의명 기자

세월호, 1073일 만의 인양

세월호, 1073일 만의 인양
입력 2017-03-27 09:30 | 수정 2017-03-2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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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3일 새벽 3시45분 세월호 선체 일부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지 1073일.

    박근혜 전 대통이 파면된 지 13일 만입니다.

    예상보다 순조롭게 인양이 진행되면서, 그동안 왜 인양이 지연됐는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상하이 샐비지 인양업체 선정과정, 인양방식 변경,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연장 거부...정부는 왜 이제서야 인양에 적극적으로 나선 걸까요?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은 애타게 수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3년 만에 끌어올린 세월호와 그 진상 규명 과정을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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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새벽, 어두운 물살 아래 선체 표면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새하얗던 배 옆면은 개흙과 물때로 뒤덮혀 있고 곳곳에 인양용 구멍과 밧줄이 엉켜 있었습니다.

    뱃머리 부분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세월호의 영문 이름.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참혹한 기억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3년 전 이곳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차마 배를 바라보지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고 다른 어머니는 보고 싶은 딸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이금화/미수습자 조은화 양 어머니]
    "은화야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꼭 찾아줄게. 엄마랑 이제 집에 가자. 그 추운 데 있지 말고. 이제 올 때도 됐잖아. 집에 가자."

    1073일, 긴 기다림의 시간 끝에 마침내 세월호가 다시 물 위로 올라왔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홉 명 희생자가 잠들어 있을 거대한 선체가, 지난 3년의 시간을 말해주듯 처참한 흔적을 새긴 채 물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온 국민이 숨죽인 채 지켜봤습니다

    지난 22일, 세월호 선체를 수심 44미터 바다 밑바닥에서 띄워올리는 시험 인양이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인양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김영석 장관/해양수산부(3월 22일)]
    "좀 전에 잠수사들이 수중으로 내려가서 확인한 결과 1미터 정도 부양을, 인양을 한 것은 확인을 하였습니다."

    8500톤에 육박하는 거대한 세월호 선체를 수면 위 13미터까지 끌어올려 반잠수식 선박에 선적하는 인양 작업, 바람과 물살이 잔잔한 소조기는 24일까지, 사흘 안에 선적까지 끝내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았습니다.

    [김영석 장관/해양수산부(3월 22일)]
    "지금 이번 소조기 만일 본 인양이 시작된다면 이번 24일까지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순조로웠습니다.

    본 인양에 돌입한지 8시간, 쌍둥이 바지선이 밤을 새워가며 시간당 2.5미터의 빠른 속도로 바닷속 세월호 선체를 끌어올렸고 23일 새벽 3시 45분, 마침내 세월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철조 단장/세월호 인양추진단 (3월 23일)]
    "이후 04시경 약 20미터를 들었으며 23일 새벽 4시 47분 22미터를 인양하면서 세월호 선체 전체가 수면 위로 모습을 처음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오전 11시로 예상됐던 수면 위 13미터 인양작업은 세월호와 바지선이 흔들리며 부딪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지체됐고

    오후 5시, 화물과 차량 출입구인 램프가 파손돼 선체로부터 벌어져 나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일시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이철조 단장/세월호 인양추진단 (3월 23일)]
    "높이 10미터 이상의 선미 램프가 열려 있는 상태로는 물리적으로 반 잠수선에 거치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결국 인양팀은 밤을 새워 램프 제거 작업에 돌입했고, 미수습자 가족들도 불안과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학생들을 살리고, 자신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던 양승진 교사의 부인 유백형 씨, 3월 23일 그날은 부부의 33주년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유백형/미수습자 양승진 씨 부인]
    "결혼기념일 날 남편이 이제는 돌아왔구나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어떻게 여기 사고 현장을 들어왔는지, 지금까지 이렇게 세월호 배를 어렵게 어렵게 해서 힘들게 이렇게 올렸는데 또다시 난간이 부딪쳐가지고. 배만 봐도 지금 울컥울컥하고 가슴이 멍멍한데..."

    가까스로 램프 제거엔 성공했지만 원래 계획보다 11시간이나 늦어졌습니다.

    선체를 13미터까지 마저 끌어올리고, 바지선과 묶어 반잠수식 선박에 옮겨싣는 순차적 단계를, 자정까지 남은 12시간 내에 동시에 진행해야만 했습니다.

    [이철조 단장/세월호 인양추진단 (3월 24일)]
    "매 작업 순간순간마다 여유분의 시간을 감안할 상황이 아니며, 3707 또한 단위 작업들이 오차 없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으로."

    원래대로라면 유실물이 생기지 않도록 램프를 제거하면서 생긴 구멍을 막아야 했지만, 다급한 상황 탓에 이마저도 생략했습니다.

    [장기욱 과장/세월호 인양추진단 (3월 24일)]
    "지금 상황이 긴박하다 보니까 인양 작업을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그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현재 유실 방지 망 설치를 계획했던 것을 저희가 안 하기로..."

    다행히 화물칸에 실려있던 컨테이너가 구멍을 틀어막고 있어 유실물이 흘러나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인양팀 측은 밝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재개된 인양의 최종 고비였던 반잠수선 거치 작업.

    예인선에 의지해 사고 해역인 맹골수도를 떠난 세월호는 어제 새벽 반잠수선 위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사실상 성공적으로 인양됐습니다.

    본 인양에 착수한 지 55시간 만이었습니다.

    사흘 동안 마음을 졸이며 현장을 지켜보던 미수습자 가족들도 이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됐습니다.

    사흘 정도 내부의 바닷물을 빼내는 등의 작업을 마치면, 세월호는 87km 떨어진 목포신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사고 그날에 멈춰 있던 세월호의 시계는 이제서야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선체는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과, 여전히 풀어내지 못한 의혹과 비밀은 앞으로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선체 인양은 세월호 사건의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일지도 모릅니다.

    만 3일 만에 끝난 인양 작업, 하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에겐 3년을 기다려온 순간입니다.

    [이금희 미수습자 가족 대표 ·조은화 양 어머니]
    "바다를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거, 아이를 찾아달라고 그 말밖에 할 수 없는 거, 그리고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데 그거를 날마다 보면서 눈물 흘리고 아파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거... 미수습자 엄마로서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는 게 이게 말이 되냐고요."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항해하던 세월호의 침몰.

    백일흔 두 명이 구조됐고, 이백아흔 다섯 명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야 가족 품에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홉 명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어서 돌아오라고 팽목항에 묶어놓은 노란 리본도 시간이 흐르면서 색이 바래 가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난 3년 동안, 침묵하는 바다를 바라보며 진도 팽목항을 지켜 왔습니다.

    [권오복/미수습자 권재근, 권혁규 가족(2016년 9월)]
    "이제는 담담해요 얼른 배가 올라와서 수습해서 내 동생 장례는 치러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유가족들은 인양 현장이 가장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진도 앞바다 동거차도 언덕 위에 천막을 치고, 하루빨리 세월호가 물 위로 올라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지켜보기 위해, 직접 선박 면허를 따고 작은 낚시배를 구입해 매일같이 인양 현장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정성욱/故정동수 군 아버지(2016년 7월]
    "배를 인양 안 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돼서 지금 가족들이 와서 지켜보고 만약에 작업을 한다고 하면 밤이라도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나가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사고 그날 전까지 평범한 회사원, 가게 주인, 주부였던 부모들은 3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들딸을 묻은 바다를 지키는 슬픈 파수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이 무색하게, 인양 작업은 기약 없이 길어졌습니다.

    2014년 11월 정부는 세월호 수색 종료를 선언했지만, 여권 일각에서 제기됐던 이른바 '천문학적인 비용' 문제나 또 다른 사고에 대한 우려 논란 등이 겹치면서 반년이 다 되도록 인양 여부는 결정되지 못했습니다.

    최근 세상에 공개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청와대 내부 회의 메모를 둘러싸고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부담스러워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습니다.

    [김성훈 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어째든 박근혜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 중에 하나였고 그래서 배가 올라오는 것 자체가 어떤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을 하고 있었던 건 분명하기 때문에."

    이듬해인 2015년 4월 세월호 1주기를 전후해 정부의 선체 인양 방침이 발표됐습니다.

    [박근혜/전 대통령(2015년 4월 16일)]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정부는 2016년 7월까지 세월호를 인양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연영진 단장/세월호 선체인양추진단(2015년 8월)]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은 내년 7월경에 세월호 인양을 완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년이면 완료할 거란 인양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예측 불가의 해저 지형 같은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속출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해 왔습니다.

    또 인양업체로 선정된 중국 상하이샐비지가 시도한 공기주입 방식인 플로팅독 공법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인양 시기는 더욱 늦춰졌습니다.

    [진교중/전 해군 해난구조대장]
    "인양이 늦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실패했죠. 작년 연말에 실패한 것은 처음에 상하이샐비지가 제시한 공법으로는 안 됐잖습니까."

    결국 지난해 11월, 입찰에서 떨어진 다른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한 방법이었던 재킹바지선 방식으로 인양 방법 자체를 변경하는 시행착오까지 겪었습니다.

    [진교중/전 해군 해난구조대장]
    "전문가들이 성공률이 떨어진다 이건(플로팅독) 안 된다고 계속 주장을 했는데, 해양수산부에서 선택한 목적은 기술점수는 낮은데 가격이 싸다."

    인양이 진척되지 못하고 표류하는 동안 지난해 9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1년반 만에 해산됐습니다.

    [박종운/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
    "그런 과정에서 계속 특조위가 협력하거나 어떤 지도검검이나 관리감독이나 또는 모니터링 이런 걸 같이 좀 할 수 있게끔 도왔어야 되는데 그렇게 못했던 건 분명히 잘못한 거고요."

    여러 돌발 상황을 헤치고 결국 인양에 성공한 건 인정할만한 성과지만 최대한 원형을 유지해 인양한다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예상보다 선체 훼손이 심했다는 점은 우려할만한 대목입니다.

    [김성훈 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육상에 거치를 하는 과정에서 이미 다 유실되는 것 아니냐 인양 자체를 하려고 했던 원래 목적을 절대 달성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양을 하고 있는 거죠."

    지지부진하던 인양이 공교롭게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 이후 급물살을 타면서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거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지만 정부는 그동안 인양을 미루거나 고의로 늦춘 사실은 절대로 없다고 밝혔습니다.

    빠르면 이달 말, 세월호 선체는 목포 신항으로 옮겨질 예정입니다.

    세월호가 잠겨 있던 주변 해역과, 선체 내부 수색을 통해 아홉 명 미수습자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첫 번째 목표.

    그리고 불법 개조 때문인지, 과적, 조종 미숙 탓인지, 아니면 제3의 요인이 있는 건지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세월호 사고 원인을 재규명할 선체 조사 위원회가 구성돼 모레 국회 의결 절차를 앞두고 있습니다.

    [박주민 의원/세월호 가족대책위 법률대리인]
    "선체를 조사함으로써 정확한 침몰 원인을 밝혀낼 수 있습니다. 항간에 떠도는 외부 충돌설, 내부 폭발설 이런 것들은 선체를 보면 금방 해명이 되거든요."

    세월호 유가족들은 인양 현장을 지키려 마련한 배에 진실 호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금희 미수습자 가족 대표 ·조은화 양 어머니]
    "올라온 배에서 9명을 찾는 작업, 그리고 왜 그랬는지를 밝혀야 하는 작업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세월호같이 참담한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떠오른 세월호가 아홉 명 미수습자를 온전히 가족 품으로 돌려 주기를.

    1천 일이 넘는 시간 동안 아파하고 기다려온 사람들에게 위안과 진실을 전해줄 수 있기를.

    세월호 침몰을 보며 눈물 흘리고, 인양 모습을 보며 마음 졸였던 모든 국민들의 바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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