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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박진주 기자

콜센터 실습생의 죽음

콜센터 실습생의 죽음
입력 2017-03-27 11:01 | 수정 2017-03-2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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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전주의 한 특성화고 3학년 홍 모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한 통신사 하청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홍양은 서비스 해지 고객을 설득하는 '해지방어팀'에서 근무중이던 상황. 고객들의 불만을 집중적으로 대응하는 업무 특성상 스트레스가 심했고, "콜 수를 못 채웠다"며 늦게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고 가족들은 주장합니다.

    이처럼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마구잡이 취업에 내몰린 고등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데... 열악한 근무환경과 노동착취에 내몰리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 무엇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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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통신사 해지 방어팀과 고객의 전화 통화 녹취입니다.

    다짜고자 욕설부터 내뱉습니다.

    [고객]
    "(반갑습니다. 상담원 oo입니다)야, 이 XX들아. (고객님,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확인을 좀 도와드릴 텐데)야, 이 XX아, 확인 안 해도 돼. X 같은 XX아."

    일단 고객이 서비스 해지를 결심하면 마음을 돌리기 쉽지 않습니다.

    [고객]
    "(고객님 제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고객이고 나발이고 XX아 확 XXX."

    화난 고객의 불만을 해결해 주기란 베테랑 상담사에게도 벅찬 일입니다.

    [고객]
    "(고객님 욕설하시면 상담이 불가능합니다) 이 XXX. X 같은 X, 대가리 피도 안 마른 X들이."

    지난 1월 특성화고 3학년이었던 홍수연 양이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열아홉 살 수연 양이 하던 일도 이렇게 서비스를 해지하겠다고 전화를 건 고객의 마음을 어떻게든 되돌려야 하는일이었습니다.

    불만에 가득 찬 고객과의 통화.

    서비스 해지를 하지 말라는 부탁.

    졸업을 앞둔 고 3 학생이 감당하기에 처음 겪은 사회는 너무 힘든 세상이었을지 모릅니다.

    현장실습이라는 이름 아래 열아홉 살 학생들은 어떤 일을 배우고 어떤 처지에 놓여 있을까요?

    전주의 한 특성화고에서 애완동물 관련 기술을 전공한 홍수연 양, 지난해 9월부터 한 통신사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갔습니다.

    현장실습은 본래 졸업을 앞둔 고 3 학생이 직업현장에 가서 교육훈련을 받는 걸 말하지만 현장에선 조기 취업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전옥 故 홍수연 어머니]
    "사원증 나오고 명함 나왔으니까, 정말 우리들도 자랑스러웠죠. 우리 애가 이렇게 좋은 회사를 들어갔다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아니야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던 거야, 얘가..."

    고객들의 계약 해지 요청을 막아야 하는 일명 '해지방어 부서'에서 일했던 수연 양은 10월 중순부터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홍순성 故 홍수연 아버지)]
    "소비자들한테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듣고 욕도 많이 얻어먹고 들어왔다고 몇시간씩 울었다고 그런 소리를 많이 하더라고."

    수연 양이 퇴근 전 아빠와 주고받은 문자.

    콜센터에서 사원에게 할당한 고객 응대 횟수인 이른바 '콜 수'를 못 채우면 정해진 퇴근시간 저녁 6시를 넘기기 일쑤였고 늦게까지 녹취를 들어야 하는 등 과제가 주어졌다는 내용입니다.

    [홍순성 故 홍수연 아버지]
    "남아서 벌인가 교육 녹취도 듣고 과제인가 숙제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수연이 말로는... 열심히 하려고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엔) 짜증나 죽겠다고."

    그런 수연 양이 실습 5개월 째인 지난 1월 말 전주의 한 저수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자살로 보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수연 양의 자살 원인으로 콜센터 내 과도한 업무와 사측의 실적 압박을 의심합니다.

    [이전옥 故 홍수연 어머니]
    "내가 후회스러운 게, 울고 들어왔다고 하더라고 '수연아, 그런 것도 못 하냐. 원래 직장은 그러니까, 참아라' 그렇게 얘기했던 것이 진짜 후회스러워요."

    그러나 회사 측은 실적 강요나 업무 압박을 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임형철 OO 콜센터 운영팀장]
    "주변에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실적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하는 분위기에 같이 편승해서 본인이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그 개인한테 수습 3개월들한테 특히나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한테 부담을 주고 있지는 않다."

    수연 양의 자살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임형철 OO 콜센터 운영팀장]
    "주변인들 얘기 (들어보면)... (자해) 상처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하고요. 학교 다니면서도 여러 번 폭행이 있었다고 하고 저희가 보면 약간 정서적으로도 의심이 되고."

    그러면서 다른 업무에 비해 노동강도가 센 건 아닌 만큼 특별히 문제 될 게 없다고 반박합니다.

    [임형철 OO 콜센터 운영팀장]
    "고등학생분들이 갈 수 있는 업종이 어디가 있을까를 보면 생산직, 3교대 시스템을 가거나 판매 업무를 하거나 아니면 저희 같은 콜센터로 오거나. 판매 업무를 한다면 거기선 악성 고객은 없을까요."

    실제 업무 강도는 어느 정도였을까.

    취재진은 수연 양과 함께 콜센터에서 일했던 학생을 수소문해 물어봤습니다.

    [박수철(가명)OO 콜센터 동기]
    "상담 받다보면 이야기가 점점 해지에서 벗어나고 소리 지르면서 화내는 것도 있고. 그냥 불만사항을 하소연 하는 사람도 있고. '너 같으면 이런 X 같은 제품 쓰겠냐' 아니면 저희 보고 'XX너네 다 똑같다'면서 그런 얘기를 계속 해요."

    수연 양의 사망 이후 함께 일했던 특성화고 학생들 10여 명이 작성한 상담 일지입니다.

    퇴근시간을 훌쩍 넘기는 건 다반사고, 이른바 진상 고객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 불안하다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서비스를 해지하겠다는 고객에게 거꾸로 인터넷이나 IPTV 결합 서비스 가입을 권해야 하는 것도 업무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OO콜센터 전 상담원]
    "OO고객센터가 상담센터가 아니라 고객한테 물건을 파는 판매센터에요. 실적이라든지 압박을 많이 주니까.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이루지 못 했을 경우에 패널티도 굉장히 많이 압박으로 다가오니까."

    [OO콜센터 전 상담원]
    "회사 강압, 말 그대로에요, (집에) 안 보내요. 목표 달성할 때까지 소리 지르고 압박하고."

    지난 2014년에는 이 콜센터에 근무하던 30대 상담 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유서와 일기장에는 고객들의 해지를 막지 못하면 토요일에 강제 출근을 해야 한다며 회사 측의 부당 노동과 임금 미지급에 대해 고발하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이종민]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 참고 다니라고 '차라리 그만둬라. 다른 걸 해라' 했으면 우리 아들 지금 안 죽었어요."

    현장실습생들에 대한 처우는 어떨까.

    수연 양이 매달 받은 월급은 각종 공제 이전에 110에서 130여만 원이었습니다.

    실습을 나가기 전 학생과 학교, 회사 등 3자가 체결한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는 하루 7시간 근무, 월급 160만 오천 원이 명시돼 있었는데 실습 나간 후 회사와 수연 양이 새로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월급 113만 5천 원에 심지어 연장근로와 야근, 휴일근무에 동의한다고 돼있습니다.

    표준협약서에 비해 불리한 내용의 근로계약서.

    두 서류의 내용은 동일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회사가 5백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합니다.

    학교 측은 몰랐다고 합니다.

    [전주 OO 특성화고 교사]
    "다르면 그게 불법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고 근로계약서를 다 저희가 받을 수 있는 권한도 없고 받는 게 아니거든요. 하나하나 확인해볼 수 없지만."

    현장실습을 나간 5개월 동안 담임교사가 2차례 현장지도를 나갔지만 회사 밖에서 수연 양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뿐 일하는 현장을 방문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담임교사의 보고서에는 근로시간과 임금이 표준 협약대로 잘 이행되고 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위반은 물론 근로기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합니다.

    [권두섭 변호사]
    "이면계약을 체결하고 실제로 급여도 그 수준에서 지급이 된 것으로 확인이 된다. 현장실습 계약을 적용해야하기 때문에 명백하게 근로기준법 상 임금체불이라고 볼 수 있고요."

    전북교육청은 이달 초 해당 실습업체와 학교를 상대로 진상조사를 실시하기로 하는 등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박준호/전북 교육청 장학사]
    "체불임금, 산업재해 다발사업장은 (제외하라고) 저희가 학교로 내려 보냈었죠. 정신적인 어떤 스트레스가 심한 유해업소 같은 걸 저희가 리스트를 체계화해서 교육부와 유관기관들과 협력해서 현장실습이 이뤄지지않도록 하겠습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이 회사와 이면계약에 싸인하거나 부당한 노동을 강요당하는 일은 흔하게 일어나지만 학교나 당국의 관리감독은 유명무실한 실정입니다.

    전공이나 장래 희망과 상관없이 마구잡이 현장실습이 이뤄지는 이유는 뭘까요?

    군포의 한 특성화고에서 인터넷 쇼핑을 전공했던 김동균 군은 졸업 후 쇼핑몰 운영이 꿈이었습니다.

    전산, 회계 등을 공부해 보유한 컴퓨터 관련 자격증만 5개,

    그런데 학교에서 추천한 현장실습업체는 한 외식업체였습니다.

    [김용만 故 김동균 아버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그런 회사이고 연봉이 2천만 원이다, 그리고 주 5일 근무다. '아버님, 그래도 나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좋다고 얘기하시는데 학부형으로서 (생각하기에) 설마 나쁜 곳에 보내겠냐."

    하는 일은 죽 끓이기와 설거지, 익숙치 않은 일을 하다 보니 4개월 만에 몸무게가 10kg이 줄어 48kg이 되었습니 다.

    [김용만 故 김동균 아버지]
    "허드렛일, 힘든 일 있잖아요. 셰프(요리사)들 뒤에서 할 수 있게끔 보조해주는 야채도 씻어놔야 하고 설거지도 다 닦아야 하고. 굉장히 힘든 일이고 잠시도 쉴 틈이 없다고 해요. 점심때까지 배고파서."

    김 군은 근무한 지 5개월 만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가족은 아들의 갑작스러운 자살 원인으로 가혹한 초과근무를 지목합니다.

    하루 8시간 근무하기로 협약서를 작성했는데 어느새 11시간짜리 별도의 계약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김용만 故 김동균 아버지]
    "도장도 동균이 도장이 아니에요. 학교장 도장을 찍어줘야 되잖아요. 찍지도 않은 거에요."

    학교 측은 행정적인 실수였을 뿐 이면계약과 김 군의 자살은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군포 OO 특성화고 관계자]
    "도장이 잘못된 것을 확인 안 한 그런 부분의 실수는 인정하지만 나중에 취업해서 자살한 것과 무슨 연관성이 크게 있는가."

    그러면서 학교 밖에서 일어난 일까지 어떻게 관리하겠냐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군포 OO 특성화고 관계자]
    "취업해서 밖에서 자살 사건이나 사고에 의해 죽었다든가 이런 것들을 다 학교에 책임을 지라고 한다면 (어느 학교가) 자유로운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님들이 졸업생들까지 어떻게 학생들 A/S 까지 할 수 있느냐."

    전문가들은 특성화 학교들이 취업률에 따라 교육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기 때문에 취업률을 높이는 데만 치중하지 실제 이뤄지는 현장실습을 관리감독하는 데는 소홀한 편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인호 전 OO 특성화고 교사]
    "교장, 교감 선생님들의 성과급이나 학교 평가, 학교 예산을 배분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학교는 취업률을 신경 쓸 수밖에 없고. 실습이 아니라 취업을 전제로 하다 보니까 학교는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죠."

    교육부는 직업계 고등학교의 취업률이 7년 연속 상승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취업자 중 고용보험 가입자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실습생들은 부당한 노동환경에 처해도 취업연계형 현장실습이다 보니 향후 다른 취업이나 후배들의 취업에 불이익이 갈까 봐 학교로 복귀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백종연 OO 특성화고 졸업생]
    "그만두고 싶다고 얘기하면 선생님들이 이렇게 말하신다고 합니다. '네가 지금 그만두면 내년에 우리학교에 현장실습 갈 수 있는 TO(정원)가 줄어든다. 네 후배들이 취직을 못 하게 된다. 그러니까 버텨라'."

    현행법체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실습생'에 대한 규정이 모호해 실습생의 노동권리를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김지영/국민의당 교육 전문위원]
    "노동자도 학생도 아닌 경계인이 된 학생들이 교육부 보호도 받지 못하고 고용노동부 보호도 못 받은 채 직무교육이 적절하게 제시되지 않고 노동력에 대한 적정한 보상도 받지 못하면서 학습권이 무시되고 노동착취를 받고 있는."

    사회생활은 원래 그런 거라며 미성년자 실습생을 값싼 노동력으로 생각해온 건 아닌지 향후 진로를 간접 체험하며 전문성을 기른다는 현장실습 제도의 본래 취지가 악용되지 않도록 체계적인 관리와 제도의 정비가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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