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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민병호 기자

바닷모래 전쟁

바닷모래 전쟁
입력 2017-04-03 10:51 | 수정 2017-04-0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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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남해안 어민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어획량이 눈에 띄게 줄어서인데... 어민들은 바닷모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골재업자들이 건설 현장에 필요한 모래를 바다에서 수급하면서 바다 밑바닥을 모두 헤집어 놓아 생태계가 파괴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륙에는 4대강 공사를 하면서 강바닥에서 퍼낸 모래가 팔려나가지 않고 해마다 수십억 원씩 관리비용만 공중에 날리며 그대로 쌓여 있습니다.

    운송비 때문에 강모래를 외면하고 가까운 바다에서 퍼다 쓰는 것. 어민들의 반발 속에 해양수산부는 앞으로 바닷모래 채취를 줄이겠다고 했지만 허가권을 가진 국토교통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참다못한 어민들은 해상시위까지 나섰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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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통영 앞바다.

    어선들이 조업에 한창입니다.

    그런데 고기 잡히는 게 시원치 않습니다.

    [박상열 선장]
    "가면 갈수록 고기가 없습니다. 바닷모래를 전부 파 버렸기 때문에 멸치도 없지. 올해는 조기도 없지. 고기란 고기가 모두 멸종이 되려고 하나..."

    서쪽 바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모래 채취로 바닷속을 헤집어 놓은 탓에 물고기들이 알을 낳거나 서식할 장소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김종준/서해바닷모래채취 대책위원장]
    "아귀나 넙치나 큰 생선들 있지 않습니까? 그 종들의 먹이가 되는 까나리가 산란하고 서식하는 장소인데 그 지역을 훼손시켜버리면 그 종들은 먹이가 없어진 거죠. 먹이가 없어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수산물이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생산량이 44년 만에 처음으로 100만 톤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수산업계는 바닷모래 채취를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어장과 해양 환경이 파괴되고 있어 오래전부터 채취 중단과 금지를 요구했지만 정부가 건설현장의 골재 부족을 이유로 이를 무시하고 강행해 왔다는 겁니다.

    한려수도를 끼고 있는 경남 통영항.

    요즘 바로 눈앞의 남해 어장을 놔두고 멀리 서해로 향하는 어선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30년째 이곳에서 잔뼈가 굵은 강범선씨도 몇 해 전부터, 가는데만 하루가 걸리고 또 중국 배들과 분쟁도 잦은 서해로 조업을 나간다고 했습니다.

    [강범선 선장]
    "여기서 작업하면 거리도 얼마 안 되고 경비도 얼마 안 들고 하는데, 그것을 10배 20배 가야 하는 그 경비, 경비 자체가 두 배 이상 나옵니다. 그렇다고 갔을 때 생선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 역시 바닷모래 채취가 시작된 이후 시작된 일이라는 주장.

    [강범선 선장]
    "원래는 바다가 평평한 데 모래를 파내면 바다 전체가 산처럼 되죠. 바위산처럼 뾰족뾰족하게... 또 모래를 파게 되면 모래를 싣는 과정에서 흙탕물이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그러면 고기가 살기가 힘들겠죠."

    [정영철/근해 장어통발선주 협회장]
    "깨끗한 물에서 잡아도 구정물이 나오게 돼 있는데 흙물 있고 하면은 고기가 산란이 안 되는 거야. 서식을 할 수가 없어요... 고기가 모래밭 같은 좋은 곳에서 서식이 되어야지 펄 밭에서는 서식이 잘 안돼요."

    남해 바닷모래 채취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욕지도.

    주민들은 바닷모래 채취가 시작된 이후 생계에 위협이 될 정도로 바다 생물들이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합니다.

    [최판길/욕지 수협조합장]
    "2008년 앞에는 우리가 고기가 많이 들었어요. 하루에 500상자, 1,000상자 이렇게 들었는데 지금은 100상자가 안 됩니다… 이때쯤 되면 새우를 이 앞에다가 널어놓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새우 한 마리가 안 납니다."

    원래 멸치가 많이 나기로 유명했던 곳인데 몇 해 전부터는 오히려 욕지도에서도 중국 멸치를 수입하는 지경이 됐습니다.

    양식장에서 물고기 먹이로 멸치가 필요한데 이제 인근에서는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영철/어민]
    "(그때 사료는 직접 멸치를 잡아다가 하셨어요?) 한국 멸치 그때는 많이 났어요. 그때 당시에는 한국 멸치하고 한국 사료 사가지고 그렇게 줬지. (지금은 뭘로 주세요?) 지금은 중국산, 한국산은 멸치가 귀하다 보니까."

    사료값이 두배 가까이 늘어나는 바람에 이 일을 계속 해야할지 막막하다고 했습니다.

    [김영철/어민]
    "사룟값이 75kg에 5천 원 내지 6천 원 했는데 지금은 1만 1천 원, 1만1천5백원... (벌이는 어느 정도 줄었어요?) 사룟값이 많이 드니까 벌이는 많이 없어요. 먹고살기 위해서 배운 게 이거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예요."

    헬기를 타고 작업 중인 바닷모래 채취선을 찾아봤습니다.

    주위에 거대한 흙탕물 띠를 만들고 다니는 채취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작업 방식은 간단합니다.

    펌프를 이용해 바닷속 모래를 빨아들이는 겁니다.

    하지만, 모래만 골라서 빨아들일 순 없는 일.

    모래 외에도 물고기나 물고기알, 해초 등 바다 밑바닥에 있는 어업자원들까지 일제히 빨려 들어갔다가 다시 바다로 내뱉어지게 됩니다.

    [김우수 교수/경상대학교 수산경영학과]
    "모래를 팔 때 생겨가는 부유물은 당연히 광합성 활동에 저해될 것이며 또 부유물들이 식물에 천착이 되어지고 하면 식물 생존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다에 어떤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특히 남해의 모래 채취지역은 물고기들이 알을 낳고 서식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는 게 어민들 주장입니다.

    [정연송/남해바닷모래채취 대책위원장]
    "제일 중요한 부분은 멸치, 멸치가 모든 어종의 먹이사슬입니다. 이게 작년에 40% 정도 (줄어들었어요)...우리 어업인들은 시름이 멸치가 없으면 다른 어종 또한 생산이 안 될 것이고."

    바닷모래 채취가 시작된 건 지난 2008년.

    이곳 부산신항 건설 당시 공사에 부족한 모래를 한시적으로 바다에서 가져다 쓰면서부터입니다.

    문제는 부산신항 건설이 완료된 이후에도 바닷모래가 광범위하게 채취돼왔다는 겁니다.

    최근 10년 동안 서해와 남해에서 건설골재용으로 퍼낸 모래는 모두 1억 495만m3.

    63빌딩을 160개나 채우고도 남는 양입니다.

    처음에는 도로나 교량 등 국책용으로만 허가를 내줬지만 이후 4차례나 기간연장을 하면서 조금씩 민수용으로까지 범위가 확대돼 작년에는 남해에서 채취된 바닷모래의 무려 76%가 민간 아파트 건설에 사용됐습니다.

    그래서 국회도 이에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지난 1월 15일, 3차 연장기간이 만료되면서 국회 농림수산해양위원회가 여야 만장일치로 바닷모래 채취 금지 결의안을 채택한 겁니다.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기습적으로 4차 연장 허가를 발표했습니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3.8)]
    "(국회를 무시하는 건 아닌가요?) 국회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생각할 의사는 없습니다. 다만..."

    [김현권 국회의원/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3.8)]
    "상임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나흘 만에 무시하고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게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 뭐가 무시하는 거예요."

    건설 현장에서 쓸 모래가 부족하다는 점과 바닷모래 채취가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게 정부 설명입니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국회 국토위 전체회의(2.23)]
    "피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 또 거기에 따르는 피해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가지고 계속 모래 채취가 이루어져 온 것이지. 어족이 완전히 그것 때문에 고갈이 됐다 이런 것들은 다시 한번 영향평가를 해가지고..."

    수산업계는 강력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4만여 척의 배들이 플래카드를 내걸거나 뱃고동을 울리며 해상시위를 벌였고.

    어민들도 거리로 몰려나왔습니다.

    "정부가 앞장서는 바닷모래 채취 즉각 중단하라."

    하지만, 건설업계는 건설업계대로 또 불만입니다.

    바닷모래 채취허가가 연장되긴 했지만 허용된 채취량은 이전의 절반으로 줄었다며 이는 정부가 수산업계의 일방적인 주장에 흔들렸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
    "뭐 정말 정부가 '민자는 알아서 해 모래에 대해서는 모르겠어' 하면 어떻게든 해결은 되겠죠. 공사 늦어지면서 가격 올라가면서 그게 바람직한 거냐 이거에요...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지 떼만 쓰면 다 그렇게 할 건가요?"

    정부 부처끼리도 입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수산업계의 상황을 고려해 앞으로 바닷모래는 국책용으로만 사용하고 채취량도 줄이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윤학배 해양수산부 차관(3.20)]
    "남해 EEZ 채취단지의 경우엔 내년 3월부터, 서해 EEZ 골재채취단지의 경우에는 2019년 1월부터 국책용으로 한정하는 방안을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정작 허가 권한을 가진 국토 부는 생각이 다릅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
    "연말에 가서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는 게 저희(국토교통부) 입장인데 (해양수산부가) 저희 의견을 받아주지 않고 급하게 (발표를)한 것 같아요."

    경기도 여주 남한강 일대.

    10개 적치장에 모두 2346만 m3의 모래가 쌓여 있습니다.

    4대강 사업 당시 강바닥에서 파낸 모래입니다.

    15톤 트럭 150만대 분량, 지난해 남해에서 채취한 바닷모래의 전체량의 두 배가 넘습니다.

    한 해 관리비로만 60억 원 가까이 들어가지만 이곳 모래는 좀처럼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운반비 때문입니다.

    가까운 곳에서는 지금도 이곳의 모래를 쓰고 있지만, 조금만 거리가 멀어져도 운반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여주시청 관계자]
    "이 정도 물량이면 솔직히 2~3년은 전국적으로 쓸 수 있는데 문제는 운반비가 한 차당 10만 원, 20만 원 나가버리면 배보다 배꼽이 비싸잖아요. 그거 때문에 지금 모래는 필요로 하지만 운반비, 그 문제 때문에 나가질 못하는 거죠."

    특히 현재 심각한 모래 부족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부산, 울산, 경남 등 동남권 지역에서는 경기도까지 와서 모래를 실어나르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바닷모래를 퍼서 쓰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겁니다.

    [동남권 골재업자]
    "덤프트럭 하루 비용을 보통 60만 원 잡는데 10번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면 그럼 한 번에 6만 원밖에 안 드는 거죠. 여주까지 가면 하루에 한 번 밖에 못한단 말이에요."

    그러나 수산업계는 바닷모래채취가 건설업계에겐 수지타산의 문제일지 몰라도 자신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김영춘 위원장 국회 농해수위)]
    "바닷모래를 채취 안 하면 모랫값이 올라가서 건설 파동이 난다 이런 논리죠...망해가는 수산업계 입장에서 보면 아주 배부른 소리입니다... 작년에 레미콘 상위 3개 업체만 해도 영업이익이 5천억 원이 될 거라고 추정하고 있어요.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어요. 그 영업이익 5천억 중에 일부만 다른 모래를 공급하는 데로 돌리면 바닷모래 쓰지 않아도 됩니다."

    동남권이 유독 바닷모래를 많이 쓰는 이유는 주 공급원이었던 낙동강 모래 채취가 4대강 사업이 마무리된 2012년 이후 하천관리상의 문제로 전면 금지됐기 때문입니다.

    [동남권 골재업자]
    "4대강 이전만 하더라도 경남에 낙동강 골재채취를 한 15군데를 했어요. 경북은 한 30군데 했어요. 그런데 지금 아무것도 못하고 있죠."

    낙동강 인근의 몇몇 지자체들은 이제 4대강 사업 자정 기간도 끝난 만큼 하천 모래 채취도 다시 가능하다는 입장.

    [합천군청 관계자]
    "4대강 다 됐는데 그래서 낙동강에 모래가 퇴적이 많이 돼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거를 대안으로 할 수 있을텐데... 키는 부산청, 국토 부가 들고 있으니까 저희 지자체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죠."

    하지만, 낙동강 모래 채취의 허가권을 가진 정부 당국은 아직 이르다는 입장입니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관계자]
    "모니터링을 한 결과들이 퇴적된 부분이 별로 있지도 않고 준설 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이 나온 상황입니다...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에 지금 허가를 못 내주는 입장이고... 2000년대 이전까지 전체 골재공급량의 12%를 바닷모래로 충당하던 일본도 최근 그 비중을 4% 수준까지 줄였습니다."

    수산자원이 줄어들었다는 이유였습니다.

    [김우수 교수 경상대학교 수산경영학과]
    "(일본의 경우)연안바다에 여러 가지 생물자원에 특히 수산 자원에 감소가 분명히 나타난다는 보고가 있은 후부터 각 지자체마다 모래 채취를 중지하고 다른 대체 골재를 찾아서 개발해 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획량이 많고 적고를 떠나, 한 번 훼손된 바다는 복구하기 어렵다는 것.

    많은 전문가들은 이 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동욱 박사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남해지역은 굉장히 원해로 멀리 떨어져 있고 토사공급량이 적어서 그래서 그 지역의 해사를 채취하게 되면 자연적인 복원이 굉장히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건설업이냐, 수산업이냐 당장의 이득을 둘러싼 갈등의 차원을 넘어 다음 세대의 환경과 미래까지 생각하는 정책.

    정부의 고민이 보다 더 신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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