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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장인수 기자

기적의 병원, 1년 만에...

기적의 병원, 1년 만에...
입력 2017-04-03 11:55 | 수정 2017-04-0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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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는 200개 넘게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단 하나뿐인 병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를 받으려면 1년 6개월씩 마음 졸이며 대기해야 하는 병원이 있습니다.

    작년 3월 문을 연 국내 유일의 어린이재활 전문병원인 넥슨 어린이재활병원이 그곳.

    건립비 430억 원을 모두 민간 모금으로 마련해 문을 열었지만 1년 만에 30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어린이 재활치료는 환아 한 명당 1명 이상의 치료사가 붙어야 하고많은 항목이 건강보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운영할수록 적자만 늘어나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조기 치료가 가장 중요한 어린이 재활, 환아 부모들은 그나마 하나뿐인 이 병원이 문 닫지 않고 운영될 수 있도록 사회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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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상암동의 한 병원.

    5살 바울이가 오른손으로 조종간을 붙잡고 움직입니다.

    화면 속의 캐릭터가 바울이의 조종대로 움직여 과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게임.

    [이바울/5살]
    "(바울이 재밌어?) 네. (뭐가 제일 재밌어?) 이거 좋아요."

    뇌경색으로 신체 오른쪽 근육이 마비되고 있어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겁니다.

    바울이 같은 아이들이 매일 300명씩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지은 지 얼마 안 돼 깨끗하고, 최신 기술이 적용된 장비들을 갖추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어린이환자들에게 맞춤형 병원이라는 겁니다.

    [정다운/이바울 엄마]
    "쾌적하고 아이들이 머물기에 너무 여러 가지 환경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하나의 치료를 다 받을 수 있는 거 음악, 미술, 언어, 인지, 물리, 작업 (치료) 뭐 이렇게 (한꺼번에) 쭉 받을 수 있어요."

    아픈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병원.

    하지만, 우리나라엔 이런 어린이전문 재활병원이 이 병원 하나밖에 없습니다.

    430억 원을 들여 지은 이 어린이전문 재활병원은 지난해 3월 개원했습니다.

    병원 설립을 추진한 지 꼭 11년 만의 일입니다.

    국내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어린이 재활병원이 만들어진 과정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황혜경 씨 부부가 이 병원을 짓겠다고 마음먹은 건 12년 전인 2005년이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황씨는 우리나라에 재활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고, 어린이 재활병원을 만들기 위해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교통사고 보상금 10억 6천만 원도 재단에 기부했습니다.

    [황혜경(2006년 5월 뉴스데스크)]
    "외국에서 다쳤으니까, 많이 받는 거니까, 나의 뜻이 아니니까 제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먼저 동참한 건 장애아 부모들이었습니다.

    [고재춘 기획실장/넥슨어린이재활병원]
    "아이가 장애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서 재활치료를 받는 도중에 아이가 사망을 하게 됐는데 그 사망을 하게 된 보험금을 어린이 병원 건립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전액 기부하신 분도 계시고요."

    희귀병을 가진 아들과 함께 철인3종경기에 참가하며 장애아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린 박지훈 씨도 2억 5천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박지훈]
    "받는 거 보다는 주는 것이 더 훨씬 더 좋더라고요. 주고 돌아서니까 그냥 그게 좋았고요. 그리고 누군가는 (이 병원 설립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가수 션과 배우 정혜영 부부도 발벗고 나섰습니다.

    부부는 7억 원을 기부했고 션은 직접 '만원의 기적'이라는 모금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션/가수(지난해 3월 MBC 다큐스페셜]
    "'내가 이 10km를 열심히 뛰어서 완주하겠습니다. 혹시 그걸 응원해주실 365명이 1만 원씩만 함께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하면 그렇게 365명이 모여요. 그러면 365만 원을 푸르메재단으로 가게 하고."

    달린 거리만 3만km.

    그렇게 마련한 36억 원을 재단에 다시 기부했습니다.

    시민들도 힘을 보탰습니다.

    [백경학 상임이사/푸르메재단]
    "파독 간호사 한 분이셨어요. 천안에 사시는데 (기초생활)수급자셨고 이제 갑자기 불치병에 걸려서 잘 걷지 못하셨는데 푸르메재단에 후원을 하겠다는 겁니다. 32만 원을 수급자여서 국가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분이 (거기서) 1만 원씩을 매달 정기 기부를 하겠다는 거였어요. 지금도 기부하고 계세요."

    이렇게 9년에 걸쳐 230억 원을 모았지만 그래도 병원 건립에 필요한 430억 원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200억 원을 더 모으려면 몇 년을 또 기다려야 하는 상황.

    이 소식을 들은 게임 회사 넥슨이 200억 원을 쾌척했습니다.

    [박이선 홍보팀장 넥슨]
    "(병원 설립까지)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당길 수 있는데 넥슨이 그 기금에 큰 힘을 보탤 수 있을 거 같아서 흔쾌히 결정을 하게 됐습니다."

    1만 명의 시민들과 500여 개 기업의 도움으로 건립을 추진한 지 11년 만인 작년 3월, 문을 열었습니다.

    7살 채원 이는 이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채원 이는 근육이 점차 줄어드는 선천성 근병증을 앓고 있습니다.

    [남궁윤 작업치료사/넥슨어린이재활병원]
    "아이가 지금 근육병 환자여서 근력이 계속 빠지거든요. 그래 가지고 전체적으로 근력 유지랑 지구력 높이는 데 지금 그렇게 하고."

    채원 이의 집은 전북 군산.

    군산엔 이런 병원이 없습니다.

    [강지은/이채원 엄마]
    "(치료 시설이) 너무 열악해요. 솔직한 말로. 너무 열악하고 이렇게 대도시나 와야지 그나마 좀 이렇게 병원들이 있을까. 지방 쪽은 거의 없다고 봐야 돼요."

    뇌 병변을 앓고 있는 수희의 가족은 작년 1월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습니다.

    수희는 보름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고 수희 엄마도 허리 수술을 받았습니다.

    한 시간 넘게, 멀리 대전에 있는 재활치료센터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수희 가족이 사는 논산엔 재활병원은커녕 민간 치료시설도 변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정숙/박수희 엄마]
    "괜히 욕심부렸다는 생각도 들고 그날에 좀 하루만 (치료센터를) 안 갔으면 (사고가 안 났을 텐데) 오늘 하루만 갔다 오자 하는 마음으로 나왔다가 이제 사고가 크게 나서 많이 미안하죠. 수희한테."

    현실이 이렇다 보니 전국 각지의 장애아들이 이 병원을 찾고 있습니다.

    장애가 있는 어린이환자는 전국에 줄잡아 30만 명.

    대기가 꽉 차 지금 예약을 하면 1년 6개월 뒤에나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재춘 기획실장/넥슨어린이재활병원]
    "입원은 1년 6개월을 대기를 하셔야 되요. 외래는 사실은 (언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장담을 해드릴 수 없어요."

    또 치료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되면 병원을 나가야 합니다.

    다음 대기자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병원 6층의 병실을 돌아봤더니 텅 비어 있습니다.

    [고재춘 기획실장/넥슨어린이재활병원]
    "(병실이 비어 있네요?) 네. 저희도 어쩔 수 없이 일부러 비울 수 밖에 없는...(아, 일부러 비워놓으신 거에요?)네."

    일부 병실은 아예 어린이 환자의 부모들이 쉴 수 있는 대기실로 개조했습니다.

    이 병원은 총 91개의 병상 중 70여 개의 병상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재활병원이 극히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장애 어린이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유일한 병원이다 보니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병상 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서 비싼 돈을 들여 지은 병실을 이렇게 비워놓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채원 이는 이 병원에서 하루 5~6개의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건강보험료에서 지원되는 치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치료도 있는데, 한 달에 병원비가 총 150만 원 정도 듭니다.

    이런 환자들이 줄을 서 있으니까 병원 수입도 괜찮을 거 같은데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채원이가 받는 30분짜리 물리치료의 치료수가는 16,900원.

    채원이 부모가 치료비의 20%인 3,380원을 내고 건강보험공단에서 나머지 80%인 13,520원을 병원에 줍니다.

    그러나 치료사를 많이 고용해야 하는 어린이 재활치료의 특성상 이 비용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게 병원 측의 고민입니다.

    실제로 건강보험 없이 자유롭게 치료비를 정하는 민간 치료센터들은 같은 치료를 하는 데 4~5만 원씩 받고 있습니다.

    환자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거꾸로 적자가 더 쌓이는 구조.

    결국, 지난 1년간 30억 원의 적자를 봤습니다.

    대기자가 많은데도 병실을 비워놓고 환자를 절반만 받을 수밖에 없는 데는 이런 속사정이 있었습니다.

    [고재춘 기획실장/넥슨어린이재활병원]
    "(병원 시설을) 100% 다 열지를 못했습니다. 열지를 못했던 이유가 인건비가 늘어나다 보니까 환자를 계속 받다 보면 적자 규모가 점점 커지는 거거든요."

    이대로라면 몇 년 안에 문을 닫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병원이 재활병동을 운영할 생각이 없고, 그나마 있던 것도 규모를 줄이거나 없애는 이유입니다.

    [신종현 부원장/넥슨어린이재활병원]
    "(재활치료는) 결국 인건비 비중이 높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현재 건강보험 시스템으로써는 뒷받침이 잘 안 되고 있어서 수지 균형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와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어린이재활병원이 200개가 넘습니다.

    [백경학 상임이사/푸르메재단]
    "오사카 시만 하더라도 어린이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구마다 해서 스물다섯 개가 있습니다. 네 우리나라는 이제 하나가 생긴 거지요."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일본은 지자체가 어린이재활병원을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치료비도 대부분 의료보험에서 지원해 줍니다.

    그래서 일본의 장애아들은 병원에 갈 때마다 우리 돈 5,000원만 내면 청소년이 될 때까지 무제한으로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장애아 가족/일본 오사카]
    "(치료비는 얼마나 내세요?) 치료비는 아이 의료보험이 돼서요. 한 번에 500엔(5,000원)입니다. (500엔?) 네. 중학교 3학년까지는 몇 번을 받아도 회당 500엔입니다."

    독일 역시 140여 개의 어린이재활병원이 있습니다.

    선진국들이 많은 예산을 들여 어린이재활병원을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이에 대한 치료는 국가의 의무라는 인식 때문이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비용을 아끼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장애아를 방치해 중증 장애인이 되면 사회는 더 많은 복지 예산을 써서 그들을 부양해야 하지만, 조기에 집중 치료로 장애를 고치거나 완화시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주면 그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백경학 상임이사/푸르메재단]
    "독일의 어떤 그 재활병원 원장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우리 독일 사회에서 조사를 해봤더니 그 어린이를 조기에 발견해서 잘 조기에 치료해서 걔가 학교 갈 수 있고 나중에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비용하고 얘를 방치해 가지고 평생 동안 얘를 지원하고 보조기구라든가 생활비를 지원했을 때 비용을 (비교해 보면 재활치료를 하는 쪽이) 3분의 1밖에 안 되더라."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올해 48억 원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환자를 더 받을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망하지 않고 병원을 운영하려면 또다시 시민들의 기부에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

    [백경학 상임이사/푸르메재단]
    "'1만 명의 기부자들이 시민들이 기금을 모아서 병원을 잘 지었는데 재정적으로 너무 어렵습니다. 이제 국가에서 도와주십시오'라고 요청할 때마다 보건복지부에서 뭐라고 얘기하냐면 '선례가 없습니다. 형평성에 어긋납니다.'라고 얘기합니다."

    다행히 서울시가 매년 10억 원의 병원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병원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션은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션/가수]
    "뭐 저 혼자서 하는 건 아니고요. 마라톤 풀코스 도전해 갖고 제가 달린 1m 당 1천 원씩 해서 총 4,219만 5,000원 기부하기로 했고요. 그래서 이런 작은 마음들이 모이면 또 이렇게 기적처럼 병원이 지어진 것처럼 운영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여러 사람들의 기부로 만들어진 기적의 병원.

    그러나 병원을 꾸려나가는 것마저 기적을 바랄 순 없는 일입니다.

    아픈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손을 맞잡는 건 특혜가 아니라 공동체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고재춘 기획실장/넥슨어린이재활병원]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미래의 사람들, 우리 아이들인 이 사람들을 어떻게 저희가 잘 성장시키고 키워나가느냐가 되게 중요한 핵심이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하나 일본 200.

    이 초라한 성적표가 머지않은 미래에 보다 당당하게 바뀔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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