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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노경진 기자

미세먼지, '오늘도 나쁨'

미세먼지, '오늘도 나쁨'
입력 2017-04-10 10:38 | 수정 2017-04-1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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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옇게 흐려진 잿빛 하늘.

    서울은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공기가 나쁜 도시 중 하나로 꼽힙니다.

    마스크를 쓰고, 공기청정기를 켜고, 하루 종일 청소를 해도 몸속으로 스며드는 미세먼지. 견디다 못해 청정지역이라는 강릉으로 이주하는 가족들도 있지만, 더 이상 한반도에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목이 칼칼하고 숨쉬기 힘든 날에도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농도 기준은 '보통'인 경우가 대부분.

    WHO나 미국, 일본과 농도 기준이 다르기 때문인데...왜 우리만 다른 기준을 쓰는 걸까? 발암물질 입자인 미세먼지의 재앙, 대책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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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살배기 승건이 엄마 임현정 씨의 하루는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실내수치는 2 내지 3.

    거의 먼지가 없다시피 합니다.

    하지만,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질을 측정해보니 초미세먼지 수치가 빠르게 올라갑니다.

    최종 수치 76. 나쁨입니다.

    현정씨는 이날도 승건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내기로 했습니다.

    닷새째 결석입니다.

    [임현정/경기도 용인시]
    "저희 아이 같은 경우는 비염도 있는데 (어린이집) 갔다 오면 기침하고 콧물 흘리고 감기까지 같이 오니까 웬만하면 심한 날은 안 보내는 쪽으로 하고 있어요."

    지난 4일은 절기상 하늘이 맑아진다는 청명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엔 또다시 미세먼지가 덮쳤습니다.

    이날 낮 서울의 초미세먼지 수치는 세제곱미터당 60마이크로그램.

    '나쁨'을 나타내는 50마이크로그램을 가뿐히 넘겼습니다.

    남산에서 내려다보니 빌딩숲은 뿌연 먼지에 휩싸여 형체도 불분명하고 63빌딩조차 눈을 찌푸리고 봐야 아주 흐릿하게 보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올 1월부터 3월까지 초미세먼지 농도는 최근 3년간 가장 나빴습니다.

    서울의 경우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인 날이 14일로 작년 이틀의 7배로 늘었고, 전국 초미세먼지 주의보도 86회나 발령돼 작년보다 두 배 가까이 폭증했습니다.

    지난달엔 서울의 대기질이 인도 뉴델리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나쁜 것으로 조사된 날도 있었습니다.

    "미세먼지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촉구한다!!! "

    불안하고 걱정된 시민들은 아예 광장으로 나섰습니다.

    [서숙경/경기도 광명시]
    "파란 하늘을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 집이 고층인데 고층에서 밖을 내다보면 뿌옇습니다. 산이 사라졌습니다."

    뿌연 하늘, 칼칼한 목, 공기가 전보다 더 안 좋아졌다는 건 몸으로 우선 알 수 있습니다.

    아침에 스마트폰으로 미세먼지의 농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나들이는 해도 되는지, 빨래는 널어도 되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미세먼지 비상사태에 처했습니다.

    승건이네 집 안엔 미세먼지 관련 기기가 곳곳에 설치돼있습니다.

    공기청정기 두 대가 쉼 없이 가동되고 있고, 벽엔 공기를 정화해준다는 식물이 매달려 있습니다.

    청정기 필터도 수시로 갈아주는 건 물론, 공기구멍 수백 개를 일일이 면봉으로 닦아줍니다.

    창문 앞엔 미세먼지 필터를 붙인 선풍기를 켜놔 환기를 시킬 때 미세먼지를 걸러내도록 합니다.

    수시로 물걸레질까지 하루종일 미세먼지와 싸우며 지내는 셈입니다.

    [임현정/경기도 용인시]
    "엄마들 다 공감하실 거예요. 아이가 비염 있거나 아프면 하루종일 집에서 하는 게 아이 걱정뿐이니까."

    미세먼지를 피해 아예 사는 곳을 옮긴 이들도 있습니다.

    강릉시 외곽의 한 산골마을.

    김가영 씨 가족은 5개월 전 경기도 수원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습니다.

    [김가영/강원도 강릉시]
    "일단 눈이 따갑고 뻑뻑하고요. 이렇게 목 속이 찌걱찌걱 거린다고 하나요. 그리고 아이들이 콧물을 흘려요. 거의 우울증 가까이 올 정도로 제 생활을 집어삼키고 있더라고요. 미세먼지가."

    이날 강릉의 미세먼지는 서울의 절반 수준.

    아이들과 야외활동도 자유롭게 하고 미세먼지 스트레스에서 많이 벗어나면서 마음도 많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김가영/강원도 강릉시]
    "제가 이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온유해지니까 아이들에게도 더 다정하게 잘 대할 수 있고 말 그대로 그냥 삶을 조금이라도 내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이곳도 점점 공기가 탁해지는 날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규옥/강원도 강릉시]
    "대관령이 뿌옇게 보여요. 그리고 그 풍차가 여기서 선명하게 보이는데 그 풍차가 잘 안 보여요. (걱정되시겠어요. 기껏 이렇게 멀리 왔는데) 그렇죠, 멀리 왔는데, 여기까지 나빠지면 어떡하나, 그러면 이제는 어디 갈 데가 없는데..."

    마스크 차림이 일상이 된 이들도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일반 마스크 대신 식약처 인증을 받은 KF 80, KF 94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건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인증 마스크라도 얼굴이 꼭 맞게 착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마스크 착용 상태에 따라 미세먼지 차단 효과가 얼마나 다른지 실험해봤습니다.

    사람 얼굴모형에 왼쪽엔 마스크를 느슨하게, 오른쪽엔 코와 뺨 주변에 빈틈이 없도록 밀착시켜 착용시켰습니다.

    그리고 붉은 물감을 분사했습니다.

    마스크를 느슨하게 착용한 쪽은 목구멍에 부착한 종이가 붉게 물들 정도로 물감이 많이 통과됐지만,

    마스크를 밀착해 착용한 쪽엔 거의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이호선/수석연구원 위생용품제조사]
    "마스크를 착용할 때 항상 코 주변에서 많은 부분들이 누설되기 때문에 코편 주위를 항상 눌러주고 그다음에 볼과 마스크 사이에 이런 부분들에 어떤 밀착이 되는지 이런 것들을 체크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필사적으로 미세먼지에 대처하기 위해 개별적인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에 대해서는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별다른 정책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해선 왜 속 시원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건지 정부가 발표하는 수치와 내가 체감하는 미세먼지 수치는 왜 다른건지 불안하고 불만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뉴스데스크 2017년 1월3일]
    "어제 오전 잠시 맑았던 베이징 상업지구가 불과 15분 만에 스모그에 휩싸이는 모습입니다."

    중국에서 스모그가 심하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하루 이틀 뒤면 우리나라에서도 미세먼지 수치가 가파르게 치솟곤 합니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2000년부터 동북아 장거리이동 대기오염물질에 대해 중국, 일본과 함께 공동연구를 벌이고 있습니다.

    환경과학원은 올 1월부터 3월까지 국내 대기질을 분석한 결과 중국 등 국외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최고 80%라고 도출했습니다.

    [장임석 센터장/환경부 대기질통합예보센터장]
    "(미세먼지) 나쁨일 기준으로 국외 미세먼지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나쁨일 기준입니다. 76.3% 정도 수준입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 공기오염이 주변국에 미치는지에 대해선) 더 많은 과학 및 전문 분야의 연구결론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는 중국의 반응에 어떤 입장일까?

    [홍동권 과장/환경부 대기환경정책과]
    "이게 (한 중 양국) 정부 차원의 조사가 아니다 보니까 학계에서는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일부 영향을 주는 것을 인정하고 그런 학술논문을 발표했는데 정부 차원에서는 그게 상대편 국가에 대한 책임 소재 문제가 있기 때문에 쉽게 섣불리 정부 당국자가 결론을 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즉, 공동연구를 펼치고는 있지만, 연구결과는 한·중·일 3국이 모두 동의하지 않으면 정식보고서로 낼 수 없고, 우리 환경부나 과학자들이 별도로 연구한 자료는 중국에 받아들이라고도 요구할 수 없다는 겁니다.

    [홍동권 과장/환경부 대기환경정책과]
    "(그런 이걸 정부 공식자료라고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 측이 그 데이터를 공식적으로 인정 안 하지만."

    한 중 양국 정부 차원에서 추진될 공동연구는 지난 2014년 한 중 정상회의에서 합의됐지만, 지난해 베이징 대기질 연구가 시작됐을 뿐 중국 북부 주요 5개 도시에 대해서는 올해 착수단계여서 제대로 된 연구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국내 미세먼지 기준도 느슨합니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초미세먼지가 세제곱미터당 25 마이크로 그램을 넘으면 '나쁨'으로 보지만, 우리나라는 그 두 배인 50 이상을 '나쁨'으로 판정합니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상태만을 고려해 기준을 정한 게 아니라 현재 국내 상황으로는 WHO 권고기준을 도저히 맞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책적으로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 애초에 기준을 낮췄단 얘깁니다.

    [장임석 센터장/환경부 대기질통합예보센터]
    "우리나라 미세먼지 기준이 WHO 2단계면서, 좀 더 강화돼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올해 10월까지 용역을 거치면 미세먼지 환경 기준, 미국이나 일본,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할 계획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세먼지 농도는 제대로 측정되고 있을까.

    [이승영/서울시 강남구]
    "근데 웹에서 얘기하는 거나 실제 저희가 느끼고 저희가 측정하는 거랑 차이가 너무 많아요."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질 측정기는 지상 1.5미터에서 10미터, 도심 같은 경우 부득이할 때에만 지상 30미터 이내에 설치하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대기측정소 대부분은 시청, 주민센터 같은 관공서 건물 옥상에 설치돼있습니다.

    정작 우리가 다니거나 생활하는 지상, 도로, 실내공간 등은 모두 빠져있는 겁니다.

    측정소와 지상에서의 공기질 차이를 비교해봤습니다.

    대학생과 직장인들로 하루종일 번잡한 신촌사거리.

    버스정류장은 초미세먼지수치가 95.6까지 치솟고, 주택가, 시장 등이 섞여있는 이면도로로 들어가도 88 가까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근방 공식 측정소인 마포아트센터 옥상 옆에서 측정하니 56.3에 그칩니다.

    체감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도로변이나 학교, 사무실 등의 실내공간 등 다양한 위치와 높이에서 측정할 수는 없는 걸까?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
    "기기하고 뭐 운영하는 게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저희도 될 수 있으면 많은 곳에 설치를 해서 측정을 하고 모든 시민들을 만족시켜드리면 좋은데 항상 그게 경제성이 문제인 거잖아요."

    전문가들은 미세먼지 측정소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임영욱 교수/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각 구 동네 자기 집 근처에 먼지농도를 알고 싶은 거에요 국민들은.. 그게 턱없이 부족한데 춘천에서 측정한 걸 갖고 속초에서 먼지 농도를 이해를 해야 되는 일이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거에요."

    그나마 전국 측정소의 1/3은 미세먼지보다 위험한 초미세먼지는 측정할 수 없습니다.

    국내외 모두 관측자료에 허점이 많다 보니, 당장 다음날의 미세먼지 예보 적중률도 절반에 불과하고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정교한 미세먼지 대책을 세우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김순태 교수/아주대 환경안전공학과]
    "(미세먼지가) 한국산이냐 뭐 이런 것도 있지만, 어떤 배출원에서 나오는지가 상당히 중요하게 되고요. 이런 배출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세먼지에 대한 성분자료가 상당히 중요하게 됩니다. 그렇게 권역에 맞는 맞춤형 대책들이 만들어질 수가 있습니다."

    기껏 세운 대책도 부처 간 손발이 안 맞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국내 미세먼지의 주요 발생요인으로 꼽히는 화력발전소.

    산업통상자원부는 2011년 블랙아웃 이후 신규 화력발전소 20기를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그 뒤 전력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미세먼지 문제는 해마다 심각해졌습니다.

    환경부는 발전사들과 미세먼지 감축 협약을 맺었다면서도 화력발전소 신축계획엔 손댈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홍동권 과장/환경부 대기환경정책과]
    "신규 석탄 발전소 짓는 거는 벌써 인허가가 나간 그런 거에 대해서 인허가까지 취소문제가 있어서 이게 법적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규로 저희가 내주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미세먼지 수치가 나쁠 경우 공공부문 차량 2부제, 공사장 작업 중단 등도 대책으로 내놨지만, 이마저 지자체와 국토 부와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합니다.

    [김순태 교수/아주대 환경안전공학과]
    "문제가 되는 것은 오염원에 대한 규제는 결국은 산업활동에 대한 규제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문제가 될 수 있고요. (하지만) 소위 경제성 논리에만 하지 말고 국민들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 비용적인 고려를 십분해서..."

    미세먼지 정부 대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동안, 미세먼지의 유해성 대한 연구 결과는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최근엔 미세먼지가 호흡기 질환,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뿐 아니라.

    입자가 더 작은 초미세먼지가 몸속에 흡수돼 혈관을 타고 다니며 심혈관 질환을 일으키고, 파킨슨병 같은 뇌질환까지 악화시킨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 호 원장/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근에는 뇌질환과 관련해서 파킨슨이나 치매를 악화시킨다는 연구도 많이 발표가 되고 있고요. 그와 더불어 우울증 같은 정신건강에 문제를 일으켜서 자살과도 관계가 있다."

    미세먼지는 국내외 여러 요인이 겹쳐져 발생하는 만큼 대책을 세우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미세먼지의 농도를 정확히 측정하고, 제대로 된 기준을 정하는 것은 정부가 미세먼지를 관리하는 기본 중의 기본일 겁니다.

    국민들이 피해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은 물론 정부당국이 먼저 심각성을 확인하고, 문제를 인식해야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예산투입이나 주변국의 외교적 협조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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