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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권희진 기자

어느 해외주재관의 석연찮은 소환

어느 해외주재관의 석연찮은 소환
입력 2017-04-10 11:18 | 수정 2017-04-1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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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콘테스트에서 독도 표기를 하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소환되는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의 이대원 원장.

    지금까지 해외 파견된 주재관이 중도 소환되는 경우는 성범죄 등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외엔 거의 없어 매우 이례적인 중징계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 원장의 누나는 청와대 비선진료에 연루된 김영재 의원 관련 해외진출을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와대 눈밖에 난 것으로 알려진 컨설팅사 이 모 대표.

    때문에 인사보복을 당한 것이라고 이 원장 측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5일 김영재 의원 관련 공판에서 특검은 안종범 전 수석의 휴대폰에서 "특정인 연좌해 인사발령하라"는 문서가 발견됐다고 밝혔는데... 이 원장이 소환되는 이유는 정말 독도 표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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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 전문 컨설팅업체 대표 이현주 씨는 2015년 4월 갑자기 세무조사를 받았습니다.

    세무조사는 아버지와 조부의 회사까지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공무원인 가족들은 줄줄이 인사조치를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획 재정부 소속이던 이 씨의 남편은 작년 봄 다른 부처로 이동했고, 둘째 남동생은 대기발령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현주 대표/중동 전문 컨설팅업체]
    "참 이상했던 게 국세청 직원들이 세무조사를 나오는 건 탈세한 게 있는지 보려고 나오는 건데 그 국세청 직원들이 저희 가족 중에 공무원들이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더라는 거죠. 그 가족이 어디서 무슨 근무를 하고 그건 제 비즈니스와 상관없는 거잖아요."

    이 모든 게 2014년 초에 최순실 씨의 단골 성형외과 김영재 의원의 중동 진출을 돕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란 건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이현주 대표/중동 전문 컨설팅업체]
    "그때 기재부에서 했던 얘기가 VIP가 노하셔서 그랬다. 제가 VIP를 노하게 해서 우리 가족들이 기재부에서 근무할 수 없고 다 나가야 한다. 나가 있는 게 너희한테도 좋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세무조사 직전에 국정원 직원들이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본 일도 새삼 떠올랐습니다.

    [이현주 대표/중동 전문 컨설팅업체]
    "제가 무슨 대기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굉장히 작은 회사를 하는 민간인인데요. 왜 이렇게 기재부(기획재정부)를 출입하는 국정원,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하는 국정원, 심지어는 중동대사관에서 근무하는 국정원, 이 다양한 국정원이 왜 저같은 민간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리고 이 대표 가족에게 일어난 인사 보복은 지난 5일 법정에서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안종범 전 수석이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이 대표의 남편을 다른 곳으로 발령해야 한다며 작성한 문건이 휴대폰에서 나온 겁니다.

    특검팀은 "수사 과정에서 검사들이 확인한 것 중 가장 놀랍고도 경악할 내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현주 대표/중동 전문 컨설팅업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서 도대체 그럼 무슨 보복이 더 있을까, 더 할 보복이 뭐가 있지? 왜냐하면, 다 했잖아요."

    최순실 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 모두 구속됐지만 이 대표의 남편과 동생에게 내려진 보복 인사발령은 되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청와대의 지시에 따랐던 인사권자들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인사보복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씨의 가족이 또 있습니다.

    2580이 만나봤습니다.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의 이대원 원장.

    이현주 대표의 또 다른 동생인 이 원장은 지난달 감사원의 15개 해외공관 감사결과 직무수행이 더이상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아 조기 소환될 예정입니다.

    감사원이 지적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원장이 독도를 표기하지 못하게 했다는 겁니다.

    문제가 된 2015년 당시 카자흐스탄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주최한 독도 홍보 동영상 공모전.

    독도가 한국땅임을 명시하는 동영상들이 출품됐습니다.

    그런데 이 동영상 공모전 포스터에 독도의 사진은 있지만 '독도'라는 지명은 빠져 있습니다.

    [이대원 원장/주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독도를 여기다가 집어넣었어야 된다는 거예요. 독도 한국의 아름다운 섬 한다든지 우리의 땅 독도 그러니까 뭐 어떤 식으로든지 독도를 구체적으로 여기다가 제목에다가 넣어야 되지 않냐."

    이 원장이 독도라는 말을 넣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대원 원장/주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저는 지금 소속이 외교부이기 때문에 본부 지침에 따라 사업을 할 수밖에 없었고요. 담당자들한테도 이 지침을 보여주면서 계속 설명을 했습니다."

    외교부 영토 해양과의 독도 동영상 홍보와 관련된 지침을 확인해봤습니다.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인식하지 않게 하고 일본의 대응을 유발할 수 있는 홍보를 지양하라고 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감사원은 이를 중대한 징계 사유로 지적했습니다.

    [강춘대/부감사관 감사원]
    "지침 어디에도 독도를 표기하지 말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이 원장이 지침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소극적으로 독도홍보를 했다는 겁니다.

    [이윤재 과장/감사원]
    "독도라는 표현을 빼도록 지시한 것은 저희가 외교관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감사원에서 판단했습니다."

    카자흐스탄 현지인들이 치르는 한국어능력시험에 이 원장이 인력을 지원하지 않은 것도 징계 사유가 됐습니다.

    [김종일 원장/카자흐스탄 알마티 한국종합교육원]
    "문화원장님께서 직원에 문제가 있어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방법이 없으니까 대사관에서 영사님들이 시험감독을 모집하고 시험을 보게 하고 그래서 원만하게 마무리가 다 된 거죠."

    감사원은 이 때문에 현지 응시생들의 시험접수에 불편을 끼쳤다고 했습니다.

    [이윤재 과장/감사원]
    "기자님이 잘 모르실지도 모르겠는데 카자흐스탄에 한글을 배우는 열기가 굉장히 뜨겁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능력시험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요. 문화원장이 해야 될 일 중의 하나입니다."

    감사과정에서 문화원 직원들이 대부분 이대원 원장과의 갈등으로 괴로워했다는 점도 불거졌습니다.

    이 원장이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거나 독선적인 운영을 해 여러 직원들이 문화원을 떠나는 등 고통을 호소했다는 겁니다.

    [OOO 전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직원]
    "사이가 좋았을 때는 저한테 회의도 참석하게 했는데 그 (사이가 나빠진) 뒤부터는 회의도 참석 뭐 말도 하지 않으세요. 그냥 회의에서도 제외됐어요."

    [OOO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직원]
    "직원들이 누군가는 원장 때문에 항상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돼 있고 힘들어하고 이런 모습을 계속 봐야 하는 거죠."

    감사원은 이 원장이 규정을 어겨 직원을 해고한 사례도 있다며, 직원들의 진술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소환과 중징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현지 감사가 끝난 뒤 이 원장에게 사실을 확인하는 소명절차는 없었습니다.

    [이대원 원장/주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어떤 부분에 대해 문제점이 있는지 저한테 말씀해 주셨으면 소명이라도 했을 텐데 저한테 그런 소명의 기회도 안주셨고..."

    이 씨를 국내로 소환한다는 결정은 이례적으로 매우 신속하게 내려졌지만, 문체부와 외교부 등 관련 부처의 어느 누구도 그런 결정이 왜 내렸졌는지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 씨는 누군가가 위에서 자신의 소환을 결정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감사가 시작된 작년 9월.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감사반은 곧바로 현지 국정원 직원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대원 원장이 문제가 많다고 귀띔했습니다.

    [이윤재 과장/감사원]
    "(오시자마자 문화원장이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다는 걸 대사관에서 들으신 거죠?) 거기 그 국정원에서 나온 공사가 한 분 있습니다. 그분한테서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얘기를 국정원의 OOO, 이 얘기해줬군요?)뭐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재외 공관의 감사대상은 수도 아스타나의 대사관과 문화원 그리고 알마티의 5개 공공기관.

    문화원과 이 원장에 대한 감사가 집중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막바지에는 이틀에 걸친 강도 높은 밤샘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대원 원장/주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저같이 조사받아봤다고 얘기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틀 동안 새벽까지 12시간 넘어서 조사를 받아본 사람이 하나도 없고요. 다른 문화원들한테 전화했을 때 뭐 그런 감사가 다 있냐 보통 감사오면 회계 문서 보지 사업내용은 쳐다보지도 않는데"

    감사 과정에서 이 원장의 해명이나 반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윤재 과장/감사원]
    "본인의 해명이 반드시 반영돼야 하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거짓된 진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국정원 직원이 카자흐스탄 한국대사관의 조 모 대사에게 이 원장의 소환을 건의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대사관 관계자 음성 대독]
    "OOO(국정원 직원)가 와서 그만두시면 안 됩니다. 뭔가 조치 취하셔야 됩니다. 대사님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뭐 그렇게 했다고 하더래요. OOO가 대사한테. 작년 감사 기간 중에..."

    감사 직후인 작년 10월 10일, 조 대사는 이 원장의 국내 소환을 외교부에 요청합니다.

    [조 OOO 대사/주 카자흐스탄 대한민국 대사관]
    "(이분은 직을 맡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신 거예요. 그래서 본부에다가 소환 건의를 하신 거군요 대사님이?) 직무를 수행하기가 현재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판단을 한 겁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에 대해서 본부에서 얘길 해달라고 한 겁니다."

    최종 감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다섯 달이나 앞선 시점이었지만 즉시 소환 절차에 착수한 겁니다.

    당사자인 문화원장에겐 소환요청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조 OOO 대사/주 카자흐스탄 대한민국 대사관]
    "얼마만큼 문화원장과 상의를 했느냐 이거에 관해서는 문화원장은 서운할 부분이 있겠죠. 하지만, 대사가 상황을 판단하는데 있어서는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지금 감사원의 감사가 이 정도 됐으면 내가 보기에는 문제로 보인다."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조 대사는 감사원이 보낸 질문지에 답하면서 절차에 따라 이 원장의 소명을 들었다고 회신했지만 이 원장에겐 질문지가 왔다는 사실도, 절차에 따라 소명해야 한다는 사실도 비밀로 했습니다.

    [이대원 원장/주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조기 복귀하면 어떠냐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설명 안 해 주셨습니다. 그게 10월6일 목요일 제가 면담을 했는데 10월10일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소환 요청을 하셨고요 본부에다..."

    해명을 듣기 위해 주 카자흐스탄 대사관을 찾아갔지만 조 대사는 면담을 거부했고 해당 국정원 직원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주 카자흐스탄 한국대사관 관계자]
    "일반적인 취재 관행에 어긋난다. 맞지 않다. 그리고 정 필요하면 외교부 취재의향 요청하시고..."

    소환절차는 급속히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해외문화홍보원은 곧바로 대사관에 연락해 이대원 원장의 후임 문제를 문의했고, 당시 문화원 주관의 대규모 한국문화 행사가 연말까지 매주 끊임없이 예정돼 있었지만, 대사관이나 문체부는 문화원장의 소환을 서둘렀습니다.

    [이대원 원장/주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제가 조기 복귀를 하든 소환을 당하든 최소한 2,3개월의 공백이 있는데 그런 것도 생각 안 하시고 그런 걸(조기복귀) 말씀하셨다는 게 되게 좀 의아스러웠습니다."

    이처럼 급박하게 진행되던 소환 절차가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가 크게 불거진 다음이었습니다.

    [외교부 관계자]
    "정치화되어 있는 상황 자체에 대해서 아무리 저희가 내부적으로 법령상의 절차에 따라서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왜곡되게 해석될 여지가 많거든요."

    이 원장은 작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이삿짐을 싸둔 채로 일해왔습니다.

    [이대원 원장/주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이 상자에서 꺼내서 입으시고 그러는 거에요?) 네 한두 개 지금 양복하고 와이셔츠만 있고요. 다른 거는 다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감사보고서가 나오면서 결국 소환이 확정됐습니다.

    해외 주재관들에게 임기 중 소환은 중징계를 위한 극히 이례적인 절차로 받아들여집니다.

    지난 5년 동안, 해외 공관에서 주재관이 문제를 일으켜 국내로 소환된 사례는 모두 5건.

    성추행이나 성폭력, 음주운전 사고와 같은 명확하고 심각한 범죄가 확인된 이후 국내 소환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이 원장은 억울하다며 감사원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이대원 원장/주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감사과정에 연관돼 있는 기관들에 의혹들이 너무 많아서 그 부분에 대해서 꼭 제3의 기관에서 조사를 해주셨으면 하는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걸로 마음을 결정했습니다. 더이상 이런 사례가 발생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제바람이고요. 아마 이게 제 공무원 생활의 마지막 부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사보복을 위해 부당하게 추진됐던 소환조치를 감사원 감사 결과로 매듭지으려 한다는 이 원장 측의 주장.

    [이현주 대표/중동 전문 컨설팅업체]
    "장관이 움직이고 차관이 움직이고 국장이 움직이고 그렇게 해서 국정농단이 여러 부서들이 관여하면서 진행됐는데 그 부서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다 징계받거나 감옥에 가거나 그런 게 아니죠."

    그리고 집중 감사를 통해 이 원장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밝혀낸 것일 뿐이라는 감사원 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이윤재 과장/감사원]
    "행정직원 불법 해고나 아니면 의사소통 없이 독단적으로 운영하는 부분이나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판단을 했습니다."

    이 유례없는 진실공방이 부적절한 처신을 한 해외주재관에 대한 정당한 감사의 결과인지, '국정농단에 따른 인사 보복을 관료사회가 충실히 관철한 결과인지, 법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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