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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정영훈 기자

누출, 부식...그래도 안전하다?

누출, 부식...그래도 안전하다?
입력 2017-04-10 11:56 | 수정 2017-04-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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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부산 기장의 고리 원전 4호기가 냉각수 누출로 정지됐습니다.

    냉각수 누출은 원전 관련 재난 영화 '판도라'의 소재가 된 중대사고.

    고리 3호기는 방사능 차폐용 내부 철판 1백여 곳에 부식이 발견됐고, 월성 4호기에서는 핵연료를 옮기던 중 연료 한 다발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고가 잇따르면서 원전에 대한 전면 재점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최근 한반도에 지진이 잇따르면서 불안을 느끼는 원전 지역 주민들은 대형사고의 전조가 아닐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가동 30년이 넘어가는 노후 원전들, 과연 안전한가? 원전과 원전 폐기물을 둘러싼 방사능 공포, 그 실태를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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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모 6.1의 지진으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합니다.

    방사능 피폭에 대한 극도의 공포 속에 국가 시스템은 한순간 마비되고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집니다.

    원전 폭발로 인한 대참사를 소재로 지난해 개봉된 재난영화 판도라.

    그런데 최근 원전주변에서는 이런 재앙이 영화 속 설정으로만 머물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고리 3호기 격납건물 부식 관련 기자회견 (지난달 22일)]
    "(고리 원전) 가동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고리 원전 3호기 격납건물 내벽 철판에서 장기간 부식이 진행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부식현상이 초음파 장비를 이용한 검사에서 120여 군데나 확인됐고, 심지어 원자로를 감싸고 있는 철판 두께가 안전 기준보다 3분의 1 가까이 얇아져 구멍이 뚫릴 뻔한 곳도 있었습니다.

    [엄미옥/탈핵부산시민연대]
    "핵발전소의 안전이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구멍이 나버렸는데도 그전까지는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고리원전 측의 안전 불감증이 도를 넘었다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김대군 의장/기장군의회]
    "지역주민들에게 안전하다고 얘기를 하시면서 내부나 격납고의 철판은 썩어가고 있었다는 얘기죠."

    고리 원전 측은 원자로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노기경/고리원자력본부장]
    "완벽하게 정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안전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더 이상 원전 자체 조사결과를 믿지 못합니다.

    [오규석/부산 기장군]
    "국제 전문가집단을 한 번 모셔 와 가지고 우리 주민들 대표하고 주민단체하고 총체적 안전점검을 할 필요성이 있지 않나."

    제 뒤로 보이는 고리 원자력발전소는 모두 7기의 원자로가 밀집해 들어서 있습니다.

    돔 형태의 원자로 건물 외벽은 1미터 20cm의 철근 콘크리트를, 그리고 건물 내벽은 6mm 이상의 철판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습니다.

    모두 방사성 물질이 혹시나 외부로 새는 걸 막기 위한 최후 방어막인데, 특히 원자로와 가까운 건물 내벽 철판에서 여러 부식현상이 처음 확인되면서 원전 안전에도 경고등이 켜진 셈입니다.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의 격납건물에 전투기가 떨어져도 끄떡없다고 홍보하며 원전 내구성을 자신해왔습니다.

    [임대현 차장/고리원자력본부 홍보팀]
    "(원전) 격납건물의 모형도입니다. 1.2미터의 콘크리트벽, 그 안쪽에 6mm의 내부 철판이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의 방호체계는 5단계 핵연료 펠렛과 핵연료 피복관, 원자로 압력 용기와 격납용기,격납건물까지 층층이 방사능 누출을 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4번째 방호막인 격납용기에서 부식이 발견된 겁니다.

    [최수영 사무처장/부산환경운동연합]
    "최후의 방어선이라고 하잖아요, 격납철판이. 만약에 원자로에 문제가 생겨서 이것이 구멍이 난다든지 이런 경우로까지 이어지면 이게 이제 결국 방사능이 발전소 밖으로 빠져나온다는 거잖아요."

    한수원은 바다와 맞닿아 있는 원전의 특성상, 건설과정에서 수분과 염분이 침투해 부식이 생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리 3호기가 시공된 건 1985년 부식이 진행된 33년 동안 단 한 차례 정밀조사 없이 육안으로만 점검해왔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조성득 소장/고리원자력본부 제2발전소장]
    "지금 규정은 육안 점검을 하도록 돼 있습니다. 혹시 부식이 되면 녹물이라든지 이런 게 나올 거 아닙니까. 지금까지는 육안점검에서 그것(부식)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부식이 심해 육안으로 확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 전남 영광의 한빛 2호기 격납건물 철판은 철판에 구멍까지 난 채 발견됐습니다.

    한수원은 부랴부랴 같은 방식으로 건설된 19기 중 9기를 순차적으로 조사했는데 4기에서 부식현상이 확인됐습니다.

    [이돈국 팀장/한국수력원자력 기계설비팀장]
    "격납건물 전체 면적이 너무나 넓고 접근이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비파괴적인 방법으로 점검하기가 매우 힘들고."

    조사 중이거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나머지 10기에서 추가 부식이 발견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선수 센터장/고리원전 민간환경감시기구]
    "(고리)3호기하고 4호기하가 구조가 똑같기 때문에 3호기가 부식이 됐다면 4호기도 당연히 부식이 된 곳이 발견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사는 계속 지체되고 있습니다.

    [조성득 소장/고리원자력본부 제2발전소]
    "모든 발전소를 다 바로 정지해서 점검하면 어려움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각 발전소별로 정해진 계획예방정비 기간이 있습니다. 그 기간에 따라서..."

    전문가들은 그러나 원전가동을 중단하지 않고도 충분히 조사할 수 있다며, 지금은 조사를 미룰 때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박종운 교수/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두께 측정하는 스케너가 있어요. 초음파라든가 여러 가지 방식. 그걸로 스캔하면서 보면 돼요. 발전소 안 죽이고, 충분히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인데 그렇게 변명하는 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거든요."

    이미 같은 원자로 형태를 가진 미국 원전 등에서 99년부터 여러 차례 같은 부식 현상이 발생한 사례가 있었다는 겁니다.

    [박종운 교수/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철판 부식 보면 이제 이것도 이미 해외에서 다 미국에서 예전부터 났던 거라, 99년에 났죠. 미국에서 2000년에 발생했죠, 2006년. 2009년. 그거는 업무태만이고 알고도 자료대로 안 했다고 하면 직무 유기다."

    격납용기 부식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라고 경고합니다.

    [김해창 교수/경성대 환경공학과]
    "격납용기의 차폐는 네 번째, 마지막에서 두 번째의 어떤 보루라는 거죠. 그런 것이 실제로 천공이 생겨가지고 구멍이 날 정도라고 하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원전 공포에 기름을 붓는 사고가 났습니다.

    이번에 부식현상이 확인된 고리 3호기 바로 옆에 있는 4호기에서 냉각재가 누출된 겁니다.

    원자로의 핵분열반응으로 생기는 열을 식히는 냉각재는 원자로 안전과 직결되지만, 원전 측은 이틀 뒤에야 원자로를 수동 정지했습니다.

    [김유창 교수/동의대 산업안전공학과]
    "냉각재는 원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입니다. 거의 중대사고가 났다 하면 냉각기능이 상실돼서 사고가 나는 겁니다. 쓰리마일섬 사고 체르노빌사고, 후쿠시마사고가 다 냉각기능 손실에 의한 사고예요."

    고리 원전과 불과 7백 미터, 부산시 기장군 길천마을 주민들은 잇따르는 원전 사고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길천마을 주민/부산시 기장군]
    "미역도 그렇지만 멸치도 솔직히 기장 멸치 하면 전국에서 진짜 유명한데, 우리 동네는 횟집이 하나도 없어졌어요. 왜? 안 온단 말입니다."

    특히 이번 냉각재 누출 사고는 예전 고리 3호기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안전관리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박갑용/전 이장 부산시 기장군 길천마을]
    "2008년도에 고리3호기에서 똑같은 문제가 생겼던 부분이에요. 그러면 그 문제가 두 번 다시는 발생이 안 돼야 되는데 다시 똑같은 문제가 4호기에서 발생됐다, 안전에 대한 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큰 잣대라고 생각하거든요."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모두 25기입니다.

    이 가운데 10기가 앞으로 10년 내에 설계수명을 다합니다.

    최근 빚어진 원전의 크고 작은 문제는 대부분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노후 원전에서 발생했습니다.

    여기에 지난해 경주 지진을 계기로 노후 원전에 대한 안전성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은 경주 월성1호기의 수명을 10년 연장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결정을 무효화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월성 1호기는 1983년부터 가동에 나서 2012년 설계수명 30년이 다 됐지만, 운영허가가 10년 연장된 바 있습니다.

    올해 6월 40년 만에 폐로에 들어가는 고리 1호기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원전이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이 판결에 항소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배수환 팀장/한국수력원자력 개선계획팀]
    "이번 판결의 의미가 어떤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법적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생각할 때 아마 1심에서 설명이 부족하지 않았나."

    [함원신 의장/경주환경운동연합]
    "월성 1호기 즉각 폐쇄 조치에 돌입해야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노후 원전 폐쇄를 염원하는 국민을 상대로 더는 싸우지 말고 핵 산업계를 상대하는 규제 기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월성 원전과 가장 인접한 경주 양남면 나아리 마을, 칠순을 바라보는 황분희 씨는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취소 소송에 참여했습니다.

    이번 판결로 한시름 놨지만 지난해 경주 지진이 발생하고, 이후에도 여진이 계속 일어나면서 불안감은 가시지 않습니다.

    [황분희/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뭐 나날이 (여진이) 나는데 규모가 적어서 그렇지 거의 600회째 나고 있어요. 그러니까 더 불안하죠."

    황 씨는 2년 넘게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황 씨는 8년 전 발생했던 핵연료 다발 낙하 사고가 지난달 월성 원전에서 또 발생했다며 반복되는 사고에 원전을 더는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황분희/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위험하니까 수명이 다 된 거는 세워 달라. 만약에 그리고 저게 또 70년대에서 우리가 원자력으로 기술력이 열악할 때 캐나다에서 들여왔잖아요. 그러니까 불안한 거예요."

    최근 5년간 원전이 고장으로 정지한 경우는 모두 36차례.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7, 80년대 지어진 노후 원전에서 발생했습니다.

    [김유창 교수/동의대 산업안전공학과]
    "노후원전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어떤 대형시스템이든지요. 우리가 70세 되가지고 장기를 한두 개 바꾼다고 젊은 사람처럼 되지 않는 게 너무 많은 요소들이 구성되어 있다 보니까. 시스템의 수명은 거의 같다고 보면 됩니다."

    한 군데 노후원전에서 중대 사고가 생기면 원전이 밀집된 우리나라의 경우 곧바로 대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홍 사무국장/경주환경운동연합]
    "이곳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하면 월성 1호기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2호기, 3호기, 4호기도 연이어서 후쿠시마처럼 연쇄 중대사고 이럴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노후 원전의 안전은 각별하게 신경 써야 하고."

    그런데도 설계수명 30년이 지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김유창 교수/동의대 산업안전공학과]
    "정부 입장에서는 이걸 폐쇄를 하면 돈이 실제로 많이 들고요. 신규건설하는데 많이 들기 때문에 연장해서 사용하려는 유혹이 아주 강해요. 점검해서 안전하면 계속 허가를 해요. 그러나 한두 개를 수리해가지고 그런 시스템들을 회복할 수 없어요."

    경제성만 따지는 바람에 노후 원전에 대한 안전 대책은 뒷전이라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박종운 교수/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프랑스 같은 경우 계속 운전(수명 연장) 한번 하는 데 2조 원이 들어가요. 고리1호기나 월성1호기 2조 원 들어갔단 말 들어보셨어요? 그거 안 들어가죠."

    노후 원전에서 잦은 사고가 나는 걸 근본적으로 막아보자는 법안도 국회에 발의됐습니다.

    현재 한 번 사용허가가 나면 3,40년 보장되는 체계를 바꿔 프랑스, 캐나다와 같은 원전 선진국처럼 5년이나 10년 단위로 재허가를 받도록 하자는 겁니다.

    [윤종오 의원/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그 설계수명이 다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 없이 계속적으로 원전을 가동함으로 인해가지고 최신 기술이 개발되어도 적용하지 않고 가동할 수 있는 그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한수원이 셀프 검증의 관행을 버리고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켜 보다 투명하게 사고 원인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한순간 놓친 조그만 틈이 되돌릴 수 없는 참사로 이어지는 게 원전이고, 그 위험의 가능성은 오래된 원전일수록 높아집니다.

    그리고 경고의 징후들은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꼼꼼한 점검과 선제적인 관리가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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