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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왕종명 기자

내 아들의 목숨 값

내 아들의 목숨 값
입력 2017-04-17 09:39 | 수정 2017-04-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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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금희 씨는 지난 2008년 금쪽같은 아들을 잃었습니다.

    군대 간 아들이 전역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부대 안에서 수해 복구 작업을 하다 사고로 순직한 것입니다.

    김 씨의 마음을 또 한 번 무너뜨린 건 순직자와 유족에 대한 예우입니다.

    군대에서 목숨을 잃은 사망자 유족에 대한 보상은 월 131만 원으로 상이 6급 수준입니다.

    상이 6급은 손가락이 절단된 정도의 부상에 대한 보상 단계입니다.

    액수를 떠나 국방의 의무를 하다 순직한 아들의 명예가 그 정도라는 사실에 분노한 김 씨는 하던 장사를 접고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스스로 법을 공부하며 비슷한 처지의 유족들을 모아 국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고, 곧 1심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군대 간 아들의 죽음, 그 명예와 존엄을 되살려달라는 엄마의 처절한 투쟁기를 들어봅니다.

    -----------------------------

    2008년 7월, 어느 여름날 저녁.

    강원도 양구의 한 군부대 지역에 시간당 58mm의 장대비가 퍼부었습니다.

    빗줄기가 약해지자 막힌 배수로를 뚫기 위한 작업에 장병들이 투입됐고 전중일 병장도 이 작업조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뉴스데스크/2008년7월25일]
    "육군 모 부대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장지만 하사와 전중일 병장이 흙더미에 매몰돼 숨졌습니다. 빗물이 역류해 부대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다 정작 산사태 위험을 예측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시간, 어머니 김금희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던 중이었습니다.

    [김금희/故 전중일 병장 어머니]
    "(부대에서) 전화가 와서 실종되었다. 두 번째는 한 시간 후에 전화가 왔는데 이제 죽었다."

    군 조사 결과, 전 병장은 후임병을 대신해 거센 물줄기에 맨 먼저 뛰어들었습니다.

    "애들(후임병들)이 무서워서 못 들어간다고 위험하니까 그 후임병들은 손을 붙잡고 서 있으라고 했대요. 떠내려간다고. 작업하지 말고 바깥쪽으로. 그리고 얘가 (개울에) 들어간 거야 안으로."

    제대를 두 달 앞둔 아들은 차가운 주검으로 어머니를 만나야 했습니다.

    "우리 애 사고 나고 한 달을 산속에 있었어요. 텐트 쳐놓고 안 나오고. 겨울에도 보일러 안 틀어요. 집안에 창문 다 열어. 저요 1년을 안 씻고 살아봤어요."

    군은 전 병장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했고 이후 죽음에 대한 유족 보상금을 지급했습니다.

    2008년 기준 월 84만 원.

    나라에서 주는 돈이라 많다 적다 생각 없이 받아오던 중, 이 금액의 실체를 알게 됩니다.

    [김금희/故 전중일 병장 어머니]
    "(처음엔) 왜 받는지도 몰랐어요. 그 돈을. 내 아들이 죽었는데 돈을 어떻게 이 정도밖에 못 받느냐 이게 아니라 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컸기 때문에 돈에 대한 게 의미가 없었던 거죠. 이제 나중에서야 몇 년 뒤에 저도 안 거죠."

    군 복무 중 사망했을 때 그 죽음이 직무 수행과 관련이 있다면 순직이라 합니다.

    정부는 국가유공자 예우법에 따라 순직한 병사의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데 이 순직 병사의 부모들이내 자식의 죽음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해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법적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인적이 끊긴 시간만큼 두꺼운 먼지로 채워진 마트, 가족에겐 생계의 터였고 전 병장에겐 제대 후를 책임질 미래였습니다.

    "우리 아들 제대하면 하겠다고 했던 매장인데.. 이렇게 돼 버렸어요."

    김 씨는 아들의 죽음 이후, 국가를 상대로 싸워보겠다는 다짐에 아예 마트를 접고 서울로 왔습니다.

    소송 준비를 위해 변호사를 여러 명 만났지만 법과 보훈 행정의 높은 장벽을 절감하고는 나부터 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갔습니다.

    "(변호사한테) 시행령이 뭡니까 물어보면 웃죠. 그것도 모르는 등신이라는 거지 쉽게 말하면. 그러니까 어떻게 해 도대체 시행령이 뭔지 법이 뭔지 알아야 어디 가서 들어도 그게 그거구나."

    그리고 전국을 돌며 같은 처지의 유족을 설득해 원고로 참여시키고 직접 소장을 작성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규순/故 이종혁 상병 아버지]
    "남 앞에 서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자식 죽인 죄인이라고. 죽은 사람보다 산 자가 더 우대를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런 자식을 위해서라도 그 보상의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유족들이 문제삼는 건 국가유공자 예우법이 정해놓은 순직 보상금 월 지급액입니다.

    올해 기준으로 순직한 군인과 경찰의 부모는 한 달에 백31만 원을 받습니다.

    다친 사람, 즉 상이군경에 대한 보상금과 비교해봤습니다.

    최고 등급인 1급 1항의 보상금 2백69만 원의 49%,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비슷한 액수를 찾아보니 상이 6급 1항.

    상이 6급 1항은 두 손의 엄지손가락을 잃었거나 생식기 기능에 고도의 장애가 있는 경우 등으로 전체 상이등급 10단계 중 세 번째로 낮은 등급입니다.

    [김금희/故 전중일 병장 어머니]
    "(사망은) 상이 등급으로 해도 상이 1급 위잖아요. 100% 사망이니까 상이 등급으로 해도 사망자, 1급, 2급 이렇게 가잖아요. 근데 여기는 거꾸로 갔어. 죽었으니까 너는 저 밑에 가 있어."

    군 복무 중 목숨을 잃은 것을 엄지손가락을 잃은 것과 비슷하게 보는 것이 합당한지, 또 군 복무 중이 아니라 민간인 신분으로 사망했다면 과연 이렇게 처우했을지 유족들은 묻습니다.

    "많이 다치고 힘든 사람들한테는 간호 수당도 많이 주고 중상이수당도 많이 주라 이거예요. 우린 주지 말라는 말 안 해. 이분들하고 적어도 동등한 대우를 하라는 거죠."

    전 병장이 만약 군인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숨질 당시 나이인 22살 청년이 무직 상태에서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 자동차보험에서 월 보상금을 얼마나 받는지 알아봤습니다.

    [오중근 손해사정사/금융소비자연맹]
    "2,081,400원 (무직도 이만큼을 주는 이유는 뭡니까?) 무직자도 일용임금으로 보통 인부로 보는 겁니다. 하루 일당이 지금 10만 원, 12만 원이라고 하지만. 이 금액(2,081,400원)을 계산하면 5만 3천 원, 5만 5천 원 이렇게밖에 안 되잖아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사실 적은 거죠."

    부상자 또는 사고 이후 장애가 발생한 이들과도 비교해봤습니다.

    사고로 얼마나 노동력을 잃었는지 퍼센티지로 곱해 보상금을 결정하는데, 사망자의 경우 노동력 전부를 잃었기 때문에 부상자가 노동력을 얼마나 잃었는지 산정하는 기준 그 자체, 즉 100%에 해당합니다.

    "사망은 그 자체로 급이 필요 없는 거죠. 최고 상위가 되는 거니까. 당연히 사망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보험금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거죠. 다친 정도가 10% 다쳤다고 하면 사망 보험금의 한 10% 정도밖에 안 되는 거죠."

    이렇게 사망을 보상의 최상위 기준으로 삼는 건 민간 영역만이 아니라 5.18 보상법, 의사상자법, 국가배상법에도 적용됩니다.

    [정철호 교수/안동대학교 법학과]
    "5.18 광주 희생자 법 거기에서도 기준점이 생명을 잃은 사람이잖아요. 정당한 보상이 되기 위해서는 헌신의 정도라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거 아닙니까. 그럼 가장 중요한 상실이라고 본다면 생명일 것이고."

    왜 유독 국가유공자 예우법에선 사망자에 대한 보상이 최고 등급이 아닐까.

    상이군경은 보상금을 받는 본인이 국가에 공을 세운 당사자지만 사망한 순직 군경의 경우 보상금을 받는 사람이 당사자가 아닌 유족이라서 다르다는 게 국가보훈처의 입장입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
    "상이자 본인한테 100%라는 보상을 줬을 때 과연 유족한테는 얼마의 보상을 줘야 하는지 그 부분은 명쾌하게 나와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단순히 저희가 우열을 가려서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다는 거죠."

    하지만, 순직자에 대한 보상금은 유족을 위한 위로금이 아니라 순직 당사자에 대한 보상을 죽은 이를 대신해 유족이 수령하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반론이 나옵니다.

    [정철호 교수/안동대학교 법학과]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상속에 의해서 그 유족에게 넘어가야 되는 것이고 그 유족이 그거에 대해서 보상을 그 사람 대신 받는다는 것은 정당한 이유라고 보고."

    순직 장병의 유족들은 다른 보훈 대상자의 보상금을 빼앗아 자신들에게 더 달라는 게 아닙니다.

    헌법이 강제하고 있는 병역 의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었다면 최소한 군대를 가지 않은 것보다는 나은 처우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손상훈씨는 고등학생 때 신문과 잡지에 소개될 정도로 자동차 정비 유망주였습니다.

    [강순자/故 손상훈 일병 어머니]
    "얘가 학교에서 대표로 세워가지고 일종의 벤처기업, 자동차 정비를 벤처기업식으로 운영을 하면서 정비를 해주면서."

    손 씨는 10년 전 군에서 훈련 중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심근경색이 와 거동까지 불편해지면서 생업을 접었습니다.

    [손홍원/故 손상훈 일병 아버지]
    "많이 걸음을 못 걸어요. (원래는 건강하시다가?) 건강했어요. 나 원래 내가 건축업자를 했었어요. 업자 하다가 아들 그렇게 된 뒤로는 아주 망가졌어요."

    아들의 순직 보상금 월 131만 원이 노부부의 생계를 지탱하는 돈이지만 이 돈을 받을 때마다 만약 내 아들이 건강하게 제대해 정비 기술자가 됐다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 아이가 벌어주면 진짜 그 정도는 벌어요. 350만 원에서 400만 원은 벌어요. 능력이 좋은 아이니까. 한창 패기가 싱싱하고 배울 때 공짜로 끌려갔는데 의무적으로 가서 죽으면 그 대가는 해줘야 할 거 아니냐 이거죠."

    순직 보상금 때문에 다른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합니다.

    "이거 80만 원씩 처음(2007년)에 준다고 해서 노령연금도 안 나오고 영세민 신청을 하면 그거 받는다고 안 나오고."

    억울한 마음에 순직 보상금 올려달라는 거리 서명을 받으러 나갔다가 상처만 받고 돌아왔습니다.

    "당신네들 아들 죽어서 돈 많이 받는데 무슨 돈을 더 받으러 다니냐고. 내가 무슨 아들 잃고 돈 달라고 다니는 거 같이 시민들한테 국민한테 돈 달라고 다니는 건가 뭔가. 창피해서 그냥 술 한잔 먹고 울고 들어왔어요."

    그래서 순직자 유족들은 이런 상황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김금희/故 전중일 병장 어머니]
    "전쟁 터져도 목숨 걸고 나라 위해 목숨 바치지 마라. 땅굴 파서 숨어있더라도 전쟁 끝나면 손가락 하나 부러져도 기어 나와서 나가라 그래요. 사망하면 폐기 처분이야."

    군을 제대한 지 24년.

    권영복 교수는 아직도 군대 내 가혹 행위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권영복 교수/세한대학교 소방행정학과]
    "척추에다 기계 넣고 자극기 넣고 하는 거까지 해서 총 열 한번을 받았으니까요! (수술을요?) 네."

    10년간의 법적 싸움 끝에 군 복무에 따른 부상, 즉 공상을 인정받았고 소송을 준비하면서 발견한 보훈 제도의 문제점을 연구해 교수가 됐습니다.

    자신은 상이군경이지만 순직 유족들의 보상금이야말로 보훈급여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어떻게 건강 상실이나 신체적인 질병 이런 부분이 생명보다 더하겠는가 가치가 전도되지 않았나. 결국은 그 가치에 따라서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되는데 가치가 지금 역전돼있다라는 거죠."

    2580은 유족들의 소송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반론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보훈처는 응할 수 없다면서 '지속적으로 유족의 보상금 인상 수준을 높이겠다'는 뜻을 서면으로 밝혔습니다.

    하지만, 보훈처는 이미 유족과의 면담을 통해 현 보상금 체계에 대해 사과하고 결국 예산 문제라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2015년 2월 유족면담]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큰 희생을 바쳤는데 국가가 제대로 못 해주고 이런 거는 사실인 거 같고요.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거는 죄송하다는 말씀을...뜻 자체는 저희가 반대를 하는 건 아니고 다만 이게 예산이 너무."

    국회에는 5만 3천여 명인 전몰, 순직 군경 유족에 대한 보상금을 월 270만 원, 지금의 두 배로 인상하는 법률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유성엽 의원장/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정부로서는 좀 난색을 표할 수 있겠지만 우선순위 조정이라든지 또는 세출에 대한 구조조정을 통해서 이것은 얼마든지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문제다."

    미국의 경우, 전군을 보험에 가입시켜 순직 시 우리 돈 6억 원에 가까운 위로금과 함께 월 보상금을 별도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제안이 나옵니다.

    [권영복 교수/세한대학교 소방행정학과]
    "사병들한테 올려줄 급여의 일정 부분을 보험 제도를 마련해서 사병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그다음에 전역할 때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그 적립한 금액을 다시 돌려준다든가 이런 식으로."

    순직자에 대한 보상금은 유족에게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군 복무로 스러진 젊은 생명에 대해 국가가 갖춰야 할 예의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척도입니다.

    [양대인/故 박남기 병장 어머니]
    "이 세상에 돈하고 자식하고 바꾸라면 어느 거 하고 바꾸겠나요. 돈을 택하겠어요? 자식을 택하겠어요? 난 자식을 택하겠습니다."

    자식의 명예로운 죽음을 부모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있는지 말을 잃은 수많은 비석이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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