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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정성기 기자

저녁 급식 끊은 이유

저녁 급식 끊은 이유
입력 2017-04-17 10:00 | 수정 2017-04-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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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수업이 끝나면 토스트 가게나 분식집, 편의점 등에서 저녁을 때우고 학원이나 독서실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학생들.

    요즘 경기도 내 고등학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지난 2월부터 경기도 내 고등학교 대부분이 저녁 급식을 중단하면서부터입니다.

    야간자율학습 전면 폐지를 추진하는 경기도교육청이 저녁급식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교육청은 주입식 교육의 전형인 ‘야자’가 없어지면 학생들이 스스로 취미와 적성에 맞는 ‘진로 탐색’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급식 중단과 야자 전면 폐지 정책에 대한 우려도 큽니다.

    특히 급식을 끊고, 자율적인 야간학습마저 강제로 금지시키면 결국 사교육만 더 부추기는 결과만 나올 거라는 학부모들의 반발이 그것.

    이상과 현실의 틈에 놓인 저녁급식과 ‘야자’, 학교 현장을 찾아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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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화성의 한 고등학교 앞, 오후 5시 반,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이 길 건너 편의점으로 몰려갑니다.

    편의점 밖까지 길게 늘어선 줄.

    저녁을 때우기 위해섭니다.

    [한 OO/고등학생 경기도 화성]
    "(학교에서 급식을 안 줘요?) 네 석식이 금지, 없어졌어요."

    저녁을 해결하고 바로 야간자율학습이나 학원을 가야 하다 보니 불편하더라도 이렇게 저녁을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OO/고등학생 경기도 화성]
    "일단 밖에 나가서 먹으면 올 때도 뛰어 와야 해서 시간이 촉박하고, 여기서 먹으면 몸에도 안 좋고 배도 많이 안 부르니까. (먹고 다시 야간자율학습 해요?) 네, 들어가야죠."

    편의점 음식이 질린 학생들은 돈을 모아 떡볶이나 김밥을 배달시켜 먹기도 합니다.

    [하 OO/고등학생 경기도 화성]
    "일단 건강을 해쳐요. 맨날 편의점 음식 같은 거 먹으니까, (한 두 번이지)어쩌다 한 번 시켜먹는 거지 어떻게 한 끼에 7천 원씩."

    경기도 일산의 한 고등학교 앞도 비슷한 풍경.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의 발길이 먼저 닿는 곳은 근처 토스트 가게나 분식집입니다.

    [김형우/백마고 3학년 경기도 일산]
    "밖에 나와서 밥 먹고 야자 하려면 다시 들어가야 하는 거니까 좀 껄끄럽긴 해요."

    [김인애/풍동고 3학년 경기도 일산]
    "집이 먼 애들은 학교에서 밥 먹고 공부도 다 하고 가는 건데 학교에서 밥을 안 주니까, 저희는 주변에 먹을 곳도 많이 없어서 밥 먹기도 불편하고 그래요."

    길거리에서 끼니를 때우고 다시 야간자율학습이나 학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학생들.

    요즘 경기도에 있는 고등학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지난 1월, 경기도 교육청이 각 학교에 저녁급식을 주지 말라는 취지의 지침을 내린 게 발단이 됐습니다.

    경기도 화성의 한 고등학교 식당.

    작년까지만 해도 저녁급식 준비로 정신없을 오후 시간이지만, 올 들어선 점심시간 이후로 텅 비어 있습니다.

    [박선종/화성 예당고등학교장]
    "경기도 교육청 정책도 있었고 그거를 근거로 우리 학교의 교육 구성원들, 학생, 교사, 학부모 이렇게 (석식 중단) 협의를 했죠. 사실 저녁 급식에 대한 요구도 상당히 있었어요."

    경기도 교육청이 지난 1월 도내 470여 개 고등학교에 내려보낸 급식운영 관련 공문.

    하루 두 번 급식을 주는 학교는 위생관리 취약 학교로 분류해 '특별관리'를 하겠다는 지침이 담겨있습니다.

    잦은 급식으로 인한 식중독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취지.

    급식 조리 과정 중에 사고가 난 학교에 대해선 '전문 컨설팅'을 하겠다고도 쓰여 있습니다.

    [조대현 대변인/경기도교육청]
    "기본적으로 우리 급식이 수업 일에 중식을 제공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 원칙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거고요. 식중독과 산재를 예방하고자 통상적으로 이 시점에서 저희들이 그렇게 지도를 하고."

    일선 학교들은 사실상 저녁급식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박선종/화성 예당고등학교장]
    "상급기관의 어떤 강력한 의지 표명이 있었고요. 관련된 공문들을 보면 급식을 1일 2식 하는 학교 같은 경우엔 특별관리를 하겠다. 학교에서는 상당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인 거죠."

    그리고 그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게 많은 교사들의 생각입니다.

    단지 위생문제 때문이 아니라, 경기도 교육청이 추진하는 야간자율학습 전면 폐지를 위해서라는 겁니다.

    [조창완/교육연구위원장 좋은교사운동]
    "석식을 안 주는데 학교에 남아있을 수 있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당연히 야자가 폐지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최근 도교육청 관계자들이 각종 회의에서 각 학교 담당자들에게 야간자율학습 폐지 정책을 설명하며 저녁급식 중단을 요구한다는 말이 흘러나옵니다.

    [OO 고등학교 교감 경기도 성남]
    "교감 회의라든가 각 부장협의회 같은 회의가 있어요. 그때 담당자들이 나와서 전달합니다. '이런 것들은 교육감님 뜻으로 교육청에서 추진하는 거니까 신중하게 생각을 하셔가지고 협조를 해주길 바랍니다.'라고얘기를 하면서."

    실제로 교육청의 지침이 내려간 뒤 저녁 급식을 제공하는 고등학교의 수는 지난해 406개에서 올해 174개로 대폭 줄었습니다.

    저녁을 주도록 돼 있는 기숙형 고등학교가 경기도에 110개 정도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대부분 학교가 교육청의 지침을 받은 뒤 저녁 급식을 중단한 셈입니다.

    [조창완/교육연구위원장 좋은교사운동]
    "특히 공립학교 같은 경우 이것은 경기도 중점 사항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되는 것으로 압박감을 받게 돼 있거든요."

    저녁급식 중단으로 당장 불편해진 건 학생들.

    [김 OO/고등학생 경기도 화성]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거 같아요. 엄마는 맛있는 거 먹으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비싸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취약계층 학생들은 무료로 먹을 수 있던 저녁도 못 먹게 돼버렸습니다.

    [박선종/화성 예당고등학교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들인 경우엔 소정의 절차를 거쳐서 급식비 지원이라는 시스템이 있거든요. 있는데 지금 현재는 그런 친구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맞벌이 학부모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정 OO/고등학생 학부모 경기도 성남]
    "(경기도 교육청의) 취지는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식사를 하라는데 이게 현실에 맞는 소리인지. 혼자 차려 먹거나 컵라면이나 인스턴트 먹으면서 바로 학원을 가고."

    뜻밖의 호재를 만난 쪽은 학교 주변의 독서실.

    저녁 급식이 끊기자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학생들이 독서실로 몰리는 겁니다.

    [A독서실 관계자/경기도 안양]
    "지금 저희가 288석인데 빈자리가 3자리밖에 없어요. (학생들이) 확실히 많아지고 있고, 주변에 독서실이 많이 생겼잖아요."

    [B독서실 관계자/경기도 화성]
    "대부분 옛날에는 10시 넘어서 (학생들이) 많이 왔는데 요새는 5시에도 많이 와서. 10시 이후에 오는 애들은 그전에 학원을 먼저 하고 바로 오는 애들이고."

    아예 저녁밥을 배달시켜주는 독서실도 생겼습니다.

    [C독서실 관계자/경기도 성남]
    "배달시켜서 먹는 거예요. 수업 끝나자마자 와야 해요. 그래서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에는 도착해서 밥을 먹고 바로 공부 시작해야 하거든요."

    경기도 교육청이 이렇게 저녁급식을 제한하면서까지 야간자율학습 폐지를 추진하는 건, 학생들을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학교에만 묶어놓지 말고 스스로 진로 탐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는 뜻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분위깁니다.

    지난해 6월, 취임 2주년을 맞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야간자율학습 전면 폐지를 선언했습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2016년 6월]
    "명확하게 제가 2017년부터 경기도의 모든 학생들에게 야간자율학습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

    천편일률적인 교육 환경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찾도록 해야 창의적인 인재가 나온다는 겁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2016년 6월]
    "이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하나의 첫 단계가 저는 고등학교에 야자를 없애자는 것이고, 이걸 없애기 위해서 가능하면 몇 가지 절차를 밟을 생각입니다."

    여기엔 야간자율학습이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습니다.

    [조대현 대변인/경기도교육청]
    "야간자율학습인데 절대다수가 사실상 본인 의사랑 반해서 하고 있는 거거든요. 저희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도 교육청의 자체 조사에서도 도내 고교생들의 야간자율학습 비율은 20% 수준, 숫자도 많지 않거니와 강제적이지도 않은 편인데 굳이 야간자율학습 폐지를 강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임OO/고등학생 경기도 화성]
    "어차피 작년에도 다 애들이 자율이었는데 뭣 하러 이렇게 야자를 없앤다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작년에도 전혀 강제적인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정 OO/고등학생 학부모 경기도 성남]
    "야간자율학습을 5일 내내 이용하지 않아도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일주일에 3번. 학원 안 가는 날 이용할 수 있는데 이거는 주 5일을 학원 다니라는 건지. 더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한 교원단체가 지난달 478명의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7명꼴로 강제로 야간자율학습을 폐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10명 중 9명은 야간자율학습이 없어지면 사교육이 증가하거나 사교육 경쟁이 더 심해질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김진우 대표/좋은교사운동]
    "줄어든 시간들이 학원을 흘러가서 결국 학생들의 자유시간에는 별다른 긍정적인 효과가 없다. 결과적으로 사교육 양을 늘림으로 말미암아 빈부차에 의한 교육 격차를 늘리는 그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경기도 교육청이 내놓은 대책은 이른바 '꿈의 대학'.

    수도권에 있는 80여 개 대학에 고교생을 위한 강좌를 개설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맞춰 직접 대학에 가 수업을 듣는 방과 후 프로그램입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2016년 6월]
    "학원 안 가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 갈 필요가 없는, 학원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인식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저희들이 만들어 갈 계획입니다."

    지난 수요일, 경기도 군포의 한 대학교에서 열린 꿈의 대학 강좌.

    여자농구 국가대표를 지낸 교수로부터 실전 농구 강의를 듣기 위해 2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박지원/흥진고 2학년 경기도 군포]
    "(진로를) 체육 쪽으로 가고 싶은데 이런 강좌도 있으니까 경험해봄으로써 나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강의실에선 만화영화 음악 작곡 강의가 한창입니다.

    이 강의를 듣고 싶어서 멀리 2시간이나 걸려 찾아온 학생도 있습니다.

    [김승우/풍무고 2학년 경기도 김포]
    "이런 쪽에 체험할 계기가 좀 더 되는 거 같고 좀 더 전문적으로 이런 기회가 생기니까 앞으로 더 이쪽 계통 열심히 더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꿈의 대학' 강의를 들으면서도 입시에 대한 부담을 완전히 떨칠 수 없는 게 현실.

    [강수빈/수리고 1학년 경기도 군포]
    "주변 친구들은 학원 다니느라 바쁘고 내신 관리도 해야 해서 안 한다고 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고."

    아예 이 프로그램을 모르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유 OO/고등학생 경기도 화성]
    "(꿈의 대학 얘기 들어봤어요?) 꿈의 대학이요? (모르는구나) 네. (들어본 적 없어요 꿈의 대학이라고?) 네."

    꿈의 대학을 수강신청한 학생은 1만 9천여 명, 경기도 지역 고교생의 4.5%에 불과합니다.

    신청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열기로 했던 강좌 중 300여 개는 시작도 못 해보고 폐강됐습니다.

    [김재철 대변인/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소질이나 적성 개발하는 건 참 좋은데 그러려면 앞뒤가 바뀐 거죠. 과도하게 대학(입시)에 매몰되는 그 현상부터 해소를 하고 또 내신이라든지 수능 점수에 집중해 가는 그와 같은 교육적 현상을 완화시키든지 아니면 해소를 하고 난 뒤에 이런 걸 해야."

    아직 성패를 판단하기엔 이르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송재혁 대변인/전국교직원노동조합]
    "꿈의 대학이 야간자율학습을 대체하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죠. 그러나 어쨌든 학생들이 모두 다 컴컴한 야간에 모여서 밤늦게까지 대학입시 공부를 하는 너무나 획일적이지 않습니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진로 탐색을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할 것 같고."

    책상 앞에 앉아서 외우고 또 외우는 주입식 교육의 틀을 벗어나 보자는 시도를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는 과정과 방법이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면 애초의 선의만으로 정책이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조창완 교육연구위원장/좋은교사운동]
    "자신의 꿈과 끼를 흥미, 적성을 펼칠 수 있는 어떤 그런 공간들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라고 얘기했을 때 아이들이 갈 곳이 없는 거죠."

    입시와 사교육, 학생들의 권리까지.

    저녁 급식 한 끼가 우리 교육의 이상과 현실, 그 사이의 만만찮은 거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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