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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최 훈 기자

시카고에 갇힌 2년, "나는 억울하다"

시카고에 갇힌 2년, "나는 억울하다"
입력 2017-04-17 10:08 | 수정 2017-04-1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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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째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외롭게 재판을 받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이 있습니다.

    특허 기술로 송풍기를 개발해 미국과 캐나다에 수출해오던 이헌석 씨.

    이 씨는 2년 전 미국으로의 납품 과정에서 미국의 국내경제부흥법인 ARRA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됐고, 한-미간 범죄인 인도 협정에 따라 미국으로 송환돼 법정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판과정에서 당초 기소됐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 미국 검찰은 기소사실을 다른 내용으로 바꿔가면서 재판을 끌어가고 있습니다.

    범죄인 인도 협정에 따르면 인도 요청 시 범죄 사실이 변경되면 심문이나, 처벌, 재판이 불가한 만큼 자신은 한국으로 돌려보내져야 한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지만, 법무부는 범죄인 인도조약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인데... 이 씨에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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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시카고 외곽의 한적한 마을.

    이헌석 씨는 방 하나 짜리 작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만 지냅니다.

    벌써 2년째.

    [이헌석]
    "굉장히 힘들죠. 근데 저는 워낙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을 오래하던 사람이라 사실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거예요."

    법원의 허가 없인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면 집안에 있는 센서에서 알람이 울리고, 경찰이 출동합니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정도만 가능합니다.

    홈 어레스트, 즉 집에 구속돼 있는 가택연금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헌석]
    "이거(창밖) 보는 게 유일한 낙이죠. 사실(답답하시겠어요.) 네."

    명문대 출신의 공학자이면서 미래가 창창했던 중소기업의 사장인 이헌석 씨는 미국에서 2년째 이런 감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나서 자라고 한국에서 사업을 하던 사람이 어쩌다 미국에서 이런 신세가 됐을까요?

    이 사장은 영문도 모른 채 이상한 사건에 휘말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충북 청주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이헌석 씨는 2년 전 어느 날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처음엔 이유도 몰랐습니다.

    [이헌석 K-Turbo 대표 2015년 가족 면담]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어디 있냐고. 한 번도 내가 길 가다가 침도 뱉어본 적도 없고 쓰레기 한 번을 버려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석 달 구속돼 있다가 별안간 미국으로 송환됐습니다.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고, 우리나라 법무부와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겁니다.

    [이헌석 K-Turbo 대표 2015년 가족 면담]
    "여기 3개월, 4개월, 미국 가서 재판하면 총 6개월 뭐 이렇게 지나갈 텐데, 그 사이 회사 다 망가져. 18년 동안 기술 개발해온 회사라고."

    당시 미국 검찰이 기소한 범죄 혐의는 사기와 밀수.

    이 씨가 운영하던 Kturbo라는 회사가 미국의 6개 도시 하수처리장에 '터보 송풍기'라는 기계를 납품하면서, 미국산이 아닌데 미국산이라고 속여 수출한 게 사기이며 밀수라는 겁니다.

    이 사기와 밀수라는 범죄는 ARRA법이라는 미국 법을 의도적으로 어겼다는 게 핵심입니다.

    ARRA법은 2009년에 새로 만들어진 법으로, 미국의 공공시설에는 미국산 제품만 써야 하고, 그렇게 미국산만 쓴 공사에는 ARRA 펀드라는 정부 기금을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씨의 회사도 부품은 한국에서 만들고, 조립은 미국 공장에서 하는 방식으로 '터보 송풍기'를 수출했습니다.

    조립을 미국에서 하면 미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납기일에 쫓겨 6차례에 걸쳐 한국에서 모두 조립한 뒤 미국으로 제품을 보냈다가 미국 검찰에 적발돼 제품 15억 원어치를 압류당했고, 5년 뒤 이것 때문에 뒤늦게 구속된 겁니다.

    [이헌석]
    "전혀 몰랐죠. 뭔 내용인지도 모르고 왔죠. 전 그냥 이렇게만 알고 왔어요. 야 이거 ARRA법이란 법이 있는데 그거 위반했나 보다."

    이 씨는 가택 연금되면서부터 두 달 동안 수사 기록 5만 6천 쪽을 혼자 분석했습니다.

    [이헌석]
    "하루에 16시간씩 봤죠. 진짜 화장실 갈 시간에도. 안 읽고 어떻게 알겠어요. 속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를."

    수사 기록을 볼수록 사건이 잘못됐고, 자신이 무죄라는 확신을 굳히게 됐습니다.

    먼저 Kturbo같은 납품업체는 ARRA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ARRA펀드를 받아야 ARRA법 적용 대상이 되는데, ARRA펀드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만 받을 수 있는 돈이라, KTurbo 같은 외국 회사는 애초에 ARRA 펀드를 받을 수 없고, 그래서 ARRA법을 어기고 싶어도 어길 수 없는 겁니다.

    즉 ARRA법 적용 대상도 아닌데, 검사가 ARRA법을 어겼다고 기소한 겁니다.

    [라이언 김/미국 변호사]
    "왜 이렇게 벌어졌냐면 연방 검사가 착각을 한 거예요. KTurbo가 받은 돈이 연방 정부에서 오는 돈(ARRA펀드)으로 착각을 한 거예요."

    밀수 혐의도 비슷합니다.

    미국 환경청 지침에 따르면, Kturbo 처럼 제품을 한국에서 조립했어도 미국 땅에서 제품에 실질적인 변화가 생긴다면 미국산으로 인정한다고 돼 있습니다.

    터보 송풍기는 전원만 꽂으면 쓸 수 있는 완제품이 아니고, 새로 파이프도 연결하고 센서도 설치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산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미국 환경청 EPA 지침인데, 검사는 이런 규정을 몰랐습니다.

    [라이언 김/미국변호사]
    "저도 처음에는 재판하기 전에는 혹시 설마 그래도 연방검사인데 그걸(EPA 지침) 안 읽어봤을까?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했는데 딱 재판 시작하고 보니까 그 검사가 그걸 전혀 읽지 않았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실수를 많이 했죠! 검사가."

    담당 검사도 이런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작년 10월, 총 8개 범죄사실 중 두 개만 인정하면 곧바로 집행유예로 석방하겠다는 제안을 이 씨에게 해왔습니다.

    검사도 큰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이 씨는 무죄를 확신하고 이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한국으로 곧 돌아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일반 시민 1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이헌석 사장에게 유죄를 평결했습니다.

    판사의 최종 선고를 앞두고 있지만 재판부의 분위기는 이 사장에게 절망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배심원단에서 유죄 평결이 나면 최종 선고에서도 유죄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지금 혐의대로라면 징역 20년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씨측은 자신이 검찰의 제안을 거부하면서부터 검찰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담당검사가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기소 내용을 바꿔 무리하게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

    당초 이 씨에 대한 기소내용의 핵심은 ARRA법 위반, 즉 KTurbo가 미국 지자체와 계약을 맺은 뒤, 미국산을 보내기로 하고 미국산 제품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라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이 씨 회사는 당초 지자체와 계약을 맺은 적이 없고, 민간 건설사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범죄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재판에 가선 이 핵심내용을 바꿨습니다.

    미국산 제품 사용 규정과는 무관한 사건이며, 이 씨의 회사가 미국 지자체와 계약한 사실도 없다고 한 겁니다.

    또, 명백히 무죄가 날 것 같은 대목, 이를테면 'ARRA 펀드를 편취하려 했다.'라는 내용 등도 기소장에서 아예 삭제했습니다.

    검사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바꾸거나 빼고,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배심원들에겐 유죄평결을 유도했다는 게 이 씨의 주장입니다.

    [이헌석]
    "그냥 억지를 쓰는 거예요. 무조건. 왜냐면 저를 그냥 풀어주면 큰일이 나거든요. 이건 국가 간의 문제잖아요. 미국에서도 사실은 외국에서 이렇게 사람을 데려오는 경우가 흔치 않거든요. 근데 그런 상황에서까지 연방검찰이 졌다. 이건 심각한 상황이거든요."

    만약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서 국민참여재판한다면 실제 유무죄와 상관없이 외국 업체들이 불리할 거라는 게 현지 변호인의 설명입니다.

    더구나 검사가 애국심을 강조하면 법적인 논리가 허술해도 배심원단은 흔들리기 쉽다는 겁니다.

    [라이언 김/미국 변호사]
    "일반 사람들은 전문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일단은 연방 검찰의 의견에 아무래도 힘이 가는 게 맞고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결과가 나오는 건데."

    재판 기록을 검토해 본 국내 전문가들도 미국 검찰의 기소 내용이 허점투성이라고 지적합니다.

    [차동언 변호사]
    "저도 미국법을 전공했고 미국법에 대해서 학위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진행됐을까? 처음엔 믿기 어려웠는데 관련 기록 검토해 보면서 점점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들어가서..."

    [김영민 교수/한림국제대학원 미국법학과]
    "실제로 보면 미국 검찰이 잘못 이해를 했고 재판 과정에서도 일정 부분 검찰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580은 담당 검사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시카고 연방 검찰 측은 어떤 말도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시카고 검찰 관계자]
    "이 사건은 아직 안 끝났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전혀 말을 못 한다고요?) 그렇죠. 이 사건의 결론이 나올 때까진 그렇습니다."

    이 씨측은 담당 검사가 기소장을 변경한 건 미국 헌법위반이고, 한미 범죄인 인도 조약 위반이기 때문에 재판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미 범죄인 인도 조약 15조에 보면, 인도가 허용된 범죄가 아니면 미국에서 구금되거나 재판, 처벌될 수 없다고 적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이라고 해서 미국으로 보냈는데 나중에 절도라고 기소 내용을 바꾸면 조약 위반이 돼서 바로 석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차동언 변호사]
    "아라 펀드(편취 행위)가 (기소장에서) 빠져버리면 연방 정부에 대한 사기라는 부분이 사실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게 되고. 그렇다면, 아마 범죄인 인도 조약에 대해서 핵심적인 부분이 위반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미국 검찰과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헌석]
    "이게 사실 저 혼자 힘으로는 굉장히 어려워요. 왜냐면 덮으려고 하는 힘이 너무 크거든요."

    현지 교민들이 이런 사정을 시카고 총영사관에 전달했고, 총영사관도 이 씨의 이런 주장을 한국 법무부에 전달하는 등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최성규 영사/미국 시카고 총영사관]
    "지금 가택 연금상태에서 낯설고 물 설은 데서 이렇게 법적 투쟁을 하시다 보니까 아무래도 외롭고 또 저희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더욱 힘들 거라 생각했습니다."

    미국 정부를 상대로 이씨의 송환을 요구할 수 있는 건 대한민국 법무부입니다.

    [김영석 교수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기소 내용을 변경하면) 특정성 원칙 위반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기소장 관련 내용이 특정성 원칙 위반인지는 우리 법무부라든지 정부가 나서서 확인을 해봐야 될 사항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범죄인 인도 조약 위반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미국 법무부가 기소장 내용이 변경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설령 변경됐다 하더라도 범죄인 인도 요청 당시 혐의였던 '사기'와 '밀수'라는 죄목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조약위반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렇게 구속되고 재판을 받는 2년 동안 이씨는 모든 걸 잃었습니다.

    핵심 기술 개발자이자 사장인 본인이 없다 보니 미국 공장은 거의 모든 작업이 중단됐고, 한국 Kturbo 본사는 법정 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유일하게 남았던 재산인 한국 집도 얼마 전에 경매에 넘어갔습니다.

    자식들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생활비는 친척들에게 받아 쓰고 있습니다.

    [박진명/ 이헌석 씨 부인]
    "저는 남편한테 당신만 괜찮으면 나는 괜찮다고. 당신이 견디면 나도 견딘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여기까지 오늘까지 온 거죠."

    미국에서 2년 동안 4억 원가량 썼는데 소송 비용이 너무 커서 언제까지 버틸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헌석]
    "여기는 돈 떨어지면 지는 거거든요. 아무리 죄가 없어도 돈 떨어지면 미국에서는 져요. 그게 가장 저희가 힘든 부분이에요."

    범죄인 인도법에는 '범죄인이 대한민국 국민일 경우 보내지 않을 수 있다'고 쓰여있습니다.

    국제법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자국민 불인도 원칙'에 따른 겁니다.

    다시 말해 상대국가가 그 나라 국적의 범죄자를 인도해달라고 요청할 때는 넘겨주는 게 맞지만 우리나라 국민을 인도해달라고 할 때는 보내지 않는 게 맞다는 겁니다.

    낯선 해외에선 개인이 방어권을 행사하기가 매우 불리하기 때문인데, 실제 독일과 폴란드 등은 아예 헌법으로 자국민 인도를 금지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김광자/ 이헌석 씨 어머니]
    "대한민국에서는 자식(국민)을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국민을 보호해주십시오. 저 지금 대한민국에 요청합니다."

    이 씨의 외로운 싸움은 오늘도 기약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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