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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정영훈 기자

스텔라데이지호, 또 놓친 골든타임

스텔라데이지호, 또 놓친 골든타임
입력 2017-05-15 10:06 | 수정 2017-05-1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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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31일 브라질에서 철광석 26만 톤을 싣고 남대서양을 지나던 스텔라데이지호가 "물이 샌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교신이 두절됐습니다.

    25년이 넘은 노후 선박을 중국에서 개조해 이전부터 안전성 논란이 있었던 스텔라데이지호.

    선사 측은 사고 발생 12시간 만에 국민안전 처에 사고 발생 사실을 알렸고, 뒤늦게 사고 발생 소식을 접한 정부는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보낼 문서와 보도자료를 만드느라 8시간의 골든타임을 허비했습니다.

    이러느라 사고 이후 신속한 대응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후에도 정부가 민간의 일은 민간끼리 해결하라면서 뒷짐을 지고 있다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선장 등 한국인 선원 8명과 필리핀인 14명의 생사는 끝내 확인돼지 않은 채 시간은 흘렀고 사고 발생 40일 만인 지난 10일, 실종자 수색은 중단됐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능력도, 의지도 없음을 다시 확인시킨 대한민국 정부.

    안 구한 것인가 못 구한 것인가.

    제 2의 세월호 사건이라 불리는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을 살펴봅니다.

    --------------------------------------

    세월호가 3년 만에 뭍으로 돌아왔던 지난 3월 31일.

    한국시각 밤 11시20분쯤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가 남대서양에서 침몰했습니다.

    한국 선원 8명과 필리핀 선원 16명 등 모두 24명이 브라질에서 철광석 26만 톤을 싣고 중국으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필리핀 구조 선원 A(실종선원 가족 화면제공)]
    "큰 소리와 함께 배에 진동을 느꼈고 배가 한 쪽으로 기울어졌어요."

    물어 들어와 배가 급격히 기울고 있다는 다급한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연락은 끊어졌습니다.

    [필리핀 구조 선원 B(실종선원 가족 화면제공)]
    "엔진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고 곧바로 선장이 퇴선 명령을 내리며 선교로 모이라고 방송했어요."

    사고 직후 가까스로 구명벌에 올라탄 필리핀 선원 2명만 이튿날 지나가던 선박이 구조했습니다.

    [필리핀 구조 선원 A(실종선원 가족 화면제공)]
    "물이 급하게 선교로 유입됐고 다른 사람을 볼 겨를 없이 전 물로 뛰어들었어요."

    사고 발생 40일 만인 지난 10일, 수색은 중단됐고, 한국인 선원 8명 등 22명 실종자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긴급 상황이 발생한 지 5분 만에 축구장 3개 길이의 초대형 화물선인 스텔라데이지 호는 바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문제는 정부가 사고 발생 12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점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사고 해역 인근 국가와의 공조가 지연되면서 실종자 수색을 위한 초기대응의 골든타임은 허비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경에 접수된 최초 상황보고서.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인 폴라리스쉬핑 측으로부터 사고 다음날인 4월1일 오전 11시 6분에 보고받았다고 돼 있습니다.

    [송민웅/해양경비안전본부 해양수색구조과]
    "선적국 마셜 제도라고 그 주위의 인근 국가들만 (조난신호를) 수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한국 선사가 운항하지만 스텔라데이지호의 국적은 마셜제도로 돼 있습니다.

    해외 국적의 선박이기 때문에 한국 선사가 보고하지 않으면 정부는 사고 사실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선사 측은 왜 사고 발생 12시간이 지나서야 보고를 했을까?

    [정원화 상무/(주)폴라리스쉬핑]
    "직원들하고 상황 파악하고 각 기구에 연락하고 수색선박 재요청하고 이러다 보니까 그러다 보니까, 저희는 보고한다고 했는데 다소 늦었다면 그건 뭐 저희들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고 발생 사실과, 이에 대한 조치를 함께 신고하도록 한 해사안전법 규정을 따랐을 뿐이라는 주장.

    먼저 조치를 취한 뒤 보고하는데 무려 12시간이나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사 측은 사고 직후 어떤 조치를 했을까.

    2580은 선사 측이 부산해양경비안전서에 보낸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12시간 동안 조치한 사항은 크게 3가지.

    소속 선박 3척과 구난 보트를 사고 해역에 파견했고 인근 국가의 해난구조센터에 긴급 구조 지원을 요청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구난 보트는 당시 사고 해역으로 출발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거짓 보고를 한 셈입니다.

    [정원화 상무/(주)폴라리스쉬핑]
    "우리가 (구난 보트를) 수배를 요청하면 (그럼 수배 요청했다고 쓰면 되는 거지) 파견 시도 중에 있다는 말이 (보고서에는) 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더 이상한 일도 있습니다.

    선원 가족들에게 사고 다음날인 오후 3시, 그러니까 15시간이 지난 뒤에야 사고 사실을 알려준 겁니다.

    [이영문/실종선원 허재용 씨 어머니]
    "뭐 배가 침수돼 가지고 연락이 안되고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언제 그랬냐 그랬더니 어젯밤 11시였대. 근데 지금 몇 시인데 지금 이제 연락을 주냐고 그랬더니 아니 이게 사실인가 아닌가 확인도 안 됐고 그러는 거야."

    정부의 사고대책반이 가동된 것은 사고 발생 14시간 뒤.

    외교부는 그제서야 사고 해역 인근 국가에 도움을 요청했고,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은 주변국의 군함과 군용기 등이 뒤늦게 수색에 나섰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메니니/우루과이 해군 사령관]
    "유감스럽게도 현재까지 이뤄진 22명의 선원에 대한 수색작업은 아무런 소득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사 측은 자신들의 자체 규정대로 조치했기 때문에 사고 초기 대응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정원화 상무/(주)폴라리스쉬핑]
    "실제적으로 (필리핀 선원) 두 사람을 구했지 않습니까? 12시간 만에. 해경에 보고가 늦었기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은 저는 좀 아니라고 생각이 들고요."

    뒤늦게 사고 사실을 알게 된 정부의 조치도 미숙했습니다.

    사고 인근해역 국가들에게 실종자 수색을 요청하면서도, 정작 배에 실려있던 구명정이 몇 개인지 등 수색을 위한 기본적인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실종자가족들이 항의하고 나서야 뒤늦게 선사 측에 이런 정보를 물어봤습니다.

    [외교부 관계자-선사와의 통화 녹취/사고 다음날(4월1일)/실종자가족 녹취]
    "구조정에 대한 정보를 우리 외교부에 좀 보내주세요. 그럼 우리가 공관에 보내서, 이런 구조정이 있는지 긴급 파악을 우선점으로 두고 수색해달라고 보내려고 하니까요."

    사고 해역의 해상 촬영이 가능한 국내 위성이 있다는 사실은 실종자 가족들이 알아냈습니다.

    [최해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가위성정보지원센터]
    "5미터짜리 보트를 찍으면 점이 한두 개 정도 찍힐 정도고요."

    가족들의 거듭된 요청에 국내 위성사진은 뒤늦게 수색에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발생 21일이 지난 뒤였습니다.

    2012년에도 남극해의 선박 수색에 투입된 적 있는 쇄빙선 아라온호가 사고해역 인근 칠레에 있다는 것도 가족들이 먼저 알아낸 사실입니다.

    정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도 지금은 연구 일정 때문에 투입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허경주/실종선원 허재용 씨 누나]
    "정부는 3년 동안 단 한 가지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하나하나 대안을 찾아서 요청하면 일주일 동안 검토하다가 결국 안 된다는 답변만 하는 정부."

    정부는 사고 발생 40일이 된 지난 9일, 가족들에게 문자를 보내 수색 중단을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배에 실려 있던 4개의 구명벌 중 아직 발견되지 않은 1개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무OO/실종선원 문원준 씨 아버지]
    "구명벌 안에는 생존할 수 있는 그 사관생들이기 때문에 훈련받은 사관생들이기 때문에 그 안에 35~36가지의 낚싯대 포함해가지고 많이 있거든요. 일반 실종자들하고 다릅니다."

    건조한지 25년이 된 노후 선박인 스텔라데이지호는 원래 유조선이던 것을 중국에서 광석운반선으로 개조한 것입니다.

    사고 초기부터 실종자 가족들은 노후 선박을 무리하게 개조하면서 배의 안전성이 구조적으로 취약해진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바닷물이 선체 내부로 들어옵니다.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바로 전날, 같은 선사 소속 비슷한 배에도 15cm가량의 균열이 생겼습니다.

    결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긴급 수리를 하면서 20여 일이나 발이 묶였습니다.

    지난달 16일에는 또 다른 광석운반선 상갑판에 균열이 발생해 선체 내부에 있던 평형수가 솟구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선사 측은 이미 수리를 마쳐 운항에는 지장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정원화 상무/(주)폴라리스쉬핑]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새 배도 데크에 크랙(균열)이 갑니다. 선장도 보고를 안 한 게 통상적으로 이런 것들은 선장이 수습해서 다녀도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과연 괜찮은 것일까.

    [이제명 교수/부산대 조선공학과]
    "저게 과연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저는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운항을 할 수가 있나요?) 못하죠. 못해요? 절대 못하죠."

    위험성을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곳곳에서 터져 나옵니다.

    [선박수리 전문가 C]
    "배 폐선해야 합니다. 그거 수리해가지고는 운항 못해요. 지금 이 상태에서 계속 운항한다면 대형사고가 또 나죠."

    [해운업계 대표 D]
    "상갑판 쪽이 배에서 가장 두꺼운 데입니다. 유조선 같은 경우에는 가장 두껍습니다. 철판 두께가. 그 정도가 크랙이 가서 올라온다고 하면 뭐 어느 선원을 태운다고 해도 아무도 안 탈 겁니다. 당장 찢어지고 갈라져 버리죠."

    선사 측은 정기 안전검사에서 모두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검사의 신뢰도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해운업계 대표 E]
    "2년 반마다 정기 도크(검사)가 있는데 그때 가서는 배를 빨리빨리 내보내라고 해요 수리를 제대로 안해주고.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돈 못 버는, 생돈 날리는 기간이니까."

    실종 선원들은 배에 고장이 잦았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합니다.

    [문OO/실종선원 문원준 씨 아버지]
    "50시간을 잠을 한잠도 못 자고 일을 했다 그래요. 냉각기를 고치는 거, 그다음에 매일 파이브를 교체하는 것."

    [김효빈/실종선원 전성웅 씨 아내]
    "계속 잠을 못 잤다 뭐가 고장 났다 이런 내용이 들리다 보니까. 이때까지 탔던 배 중에서는 제일 힘들구나! (생각했죠)"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처럼 유조선을 광석 운반선으로 개조한 선박은 국내에 모두 29척.

    비슷한 선박에 대한 특별 검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길수 교수/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일반적인 선박은 5년 내에 2번, 검사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 배(광석운반선) 같은 경우에는 동종선이 사고가 났으니까 좀 특별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죠."

    이런 배를 실종자들이 탔다고 생각하니 가족들은 분노를 참지 못합니다.

    [이영문/실종선원 허재용 씨 어머니]
    "누가 이렇게 똥배인 줄 알고 낡은 배인 줄 알고 이렇게 젊은 애들 갖다가 바닷물에 갖다가 버릴 그럴 인간인 줄 알았겠어요."

    [윤미자/실종선원 박성백 씨 어머니]
    "저런 시한폭탄 배들은 없애야죠.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거기 또다시 태워가지고 아니 애들 바다 속에다가 수장시킬 수는 없잖아요. 없애야죠 당연히."

    지난해 1월 한국해양대 졸업식.

    학생회장으로 졸업생을 대표해 연단에 오른 문원준 씨는 실종 한국인 선원 가운데 막내입니다.

    [문원준 실종선원/지난해 1월]
    "설령 (선박)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무책임하게 회피하거나 봐주기식 대응을 답습하지 않는 용기와 힘을 기르고 늘 약자의 편에 서서 생각하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문 씨는 3년간 승선근무로 병역을 대신하는 승선근무예비역으로 졸업 후 처음 배를 탔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OO/실종선원 문원준 씨 어머니]
    "엄마의 품으로 가족의 품으로 어서 돌아와다오. 내 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 아들 원준아. 내 사랑하는 아들 원준아 조금만 더 참아다오."

    [문OO/실종선원 문원준 씨 누나]
    "해수부, 해경, 해난심판원, 선사, 선급, 다 해양대 선후배 관계잖아요. 정말 이번만큼은. 이 이후로도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잘못된 것은 바로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수심 3천 미터 아래에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허경주/실종선원 허재용 씨 누나]
    "제2의 스텔라데이지, 제3의 세월호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선박 운항 관련해 모든 규정과 안전관리규정과 비상대응 매뉴얼을 총 정비해주십시오."

    안전이 의심되는 노후 선박의 침몰.

    사고 12시간이 지나서야 사실을 알리고는 할 일 다했다는 선사의 태도, 그리고 여전히 미숙한 정부의 대응.

    세월호 사건을 빼닮은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은, 우리 사회가 세월호 사건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을 겪은 뒤에도, 사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뼈아픈 현실을 직시하라고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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