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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조의명 기자

"국민연금에 속았어요"

"국민연금에 속았어요"
입력 2017-05-22 09:43 | 수정 2017-05-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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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을 28년간 성실히 납부해온 최 모 씨는 올해 3월부터 연금을 수령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습니다.

    연금 수령 전에 사망할 경우 그동안 낸 연금이 유족들에게 일시금으로 지급되지만, 공단 측은 한 달치 연금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소멸된다고 통보했습니다.

    알고 보니 최 씨가 받지도 않은 국민연금이 수령 예정이라는 이유로 이미 받은 것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

    5년~7년 취업비자를 받고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도 월급에서 국민연금을 원천징수하지만, 이들은 최소 납부기한인 10년을 채울 수 없기 때문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애초에 받을 수 없는 돈까지 철저히 걷어가는 국민연금, 전 국민 노후의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여전히 곳곳에 사각지대가 존재하는데...제도의 빈틈과 구멍을 살펴보고 개선방향을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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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헬스클럽, 이곳을 운영하는 김충영 씨는 매달 소득의 9%인 39만 원을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고 있습니다.

    법정 최고액 가까운 액수를 내고 있지만,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없습니다.

    [김충영]
    "이게 뭐 할 얘긴지는 모르겠는데 현실적으로 제가 앓고 있는 병 자체가 언제까지 제가 살 수 있다는 장담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김 씨는 말기 간암 판정을 받고 현재 투병 중입니다.

    지난 2008년 의사에게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는 판정을 들은 뒤, 지금까지 기적처럼 버텨왔지만 김씨는 40대 중반인 자신이 국민연금을 받을 나이까지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김 씨는 국민연금공단 측에 부모님도 없고 결혼도 안 해 유족연금도 받을 수 없으니 가입을 해지하고 더 이상 보험료를 안 낼 순 없겠냐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불가, 오히려 미납 독촉장이 병실에까지 날아왔습니다.

    [김충영]
    "이건 당연히 내야 되는 거고 선택사항이 아니고 의무이기 때문에 무조건 내야 된다 그러니까 자꾸 제가 법을 어기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추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체념하고 지금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렇게 내고 있는 거죠."

    소득이 있다면 누구나 가입해야 하는 국민연금, 앞으로의 노후를 위해, 만약의 경우 남겨질 가족을 위한 울타리가 되어주길 기대하며 연금을 냅니다.

    하지만, 김 씨처럼 미래를 기약하기 힘든 사람들에겐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때론 연금제도의 특성 때문에 허망하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회사원 최영신 씨 남매는 지난 3월 초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아버지 최 씨는 국민연금 제도가 시행된 1988년부터 가입해 28년 동안 한 번의 연체 없이 꼬박꼬박 연금보험료를 납부해왔습니다.

    [최영신/故 최 OO 씨 장녀]
    "아빠가 아무래도 이제 국민연금 1세대다 보니까 되게 자부심이 많으셨거든요. 그래서 노후는 걱정하지 말라고... 이게 생길 때부터 처음 가입하셨던 분이고 물가상승률 반영되고 그렇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연금 수령을 불과 몇 주 앞두고 6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국민연금공단에 전화로 통보하자, 직원은 연금 수령 전에 돌아가신 경우, 유족들에게 사망일시금이 지급될 수 있다고 안내했습니다.

    하지만, 연금 규정을 따져보더니 공단 측의 태도는 금세 바뀌었습니다.

    [국민연금공단 성남지사 관계자_최OO씨 유가족]
    "25세 미만 자녀 없으시죠? (네 없어요.) 배우자 분계세요? (아니요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같이 사시는 분계세요? (아니요 안 계십니다.) 한 달 수급하시고 그리고 수급권은 소멸됩니다."

    실제론 한 번도 연금을 받은 적이 없지만, 지난 2월 61세 생일이 지나며 아버지가 이미 행정상의 수급권자로 등록됐기 때문에, 더 이상 줄 수 있는 혜택이 없다는 것

    아버지가 28년 동안 낸 돈은 6천만 원이 넘지만 받을 수 있는 연금은 한 달치 110만 원이 전부라는 겁니다.

    [국민연금공단 성남지사 관계자]
    "3월에 사망하셨으면... (3월에 사망하셨어요.) 그러니까 2월에 만약 사망을 하셨으면 사망일시금이 있어요."

    [최영신/故 최 OO 씨 장녀]
    "수급권이라는 것 자체가 뭔지도 몰랐고 그리고 받지도 않았는데 그걸 받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도 이해가 안 되고요."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사망하게 되면 그동안 낸 보험금은 어떻게 될까.

    연금을 꾸준히 내고 있는 사람, 이른바 '가입자'가 숨지면, 부양가족 중 연령 등 조건에 맞는 유족이 연금 혜택을일부 받도록 돼 있습니다.

    연령 등 조건이 맍지 않을 경우 그동안 낸 돈에 법정이자를 붙여 돌려주게 됩니다.

    반면 연금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 즉 '수급권자'가 숨지면 유족연금 조건이 맞는 경우에만 연금을 지급하고, 해당자가 없으면 남은 연금은 그대로 소멸됩니다.

    실제 연금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받을 권리가 생겼는지를 따지는 게 현행 규정의 논리라는 설명.

    최씨 가족 입장에선 납득하기도 어려운 얘기였지만 따져봐도 소용은 없었습니다.

    [최영신/故 최 OO 씨 장녀]
    "저희 아빠가 한 번이라도 받고 그랬으면 덜 억울하겠는데 어떻게 한 번도 받지 않고 돌아가신 분한테 그 돈 자체가 쓰신 것 아닌데 쓰셨다고 하신 것 자체가 너무 억울해가지고."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예외적 사례라는 게 국민연금공단 측의 해명입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
    "국민연금은 아시겠지만 사망하실 때까지 평생 지급이 됩니다. 그래서 평균적으로 납부하신 보험료 이상을 연금으로 받으시게 되는데, 연금이 한 달만 발생하는 사례는 이렇게 평생 지급되는 국민연금 특성상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극단에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규정이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 최씨 같은 사례는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연금을 받을 나이가 됐지만 형편에 여유가 있는 경우 지급 연기를 신청하면, 책정된 연금액에 이자를 붙여 더 받을 수 있는데 만일 지급 연기 기간동안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하게 되면 최 씨 가족과 마찬가지로 연금은 한 푼도 받지 않았지만, 권리는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급 연기 신청자는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평생 지급을 보장합니다. 물가가 오른 만큼 함께 오릅니다..."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과는 달리, 공공 보험에 가깝기 때문에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

    시민단체 일각에선 국민연금 측이 긍정적인 점만을 강조할 뿐, 까다로운 지급 조건 등 불리한 부분은 제대로 국민들에게 안내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김선택 회장/한국납세자연맹]
    "지금처럼 솔직하게 국가가 약속한 연금이라도 못 줄 수 있습니다. 이게 사실이잖아요. 현재와 같은 연금제도를 유지하는 한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낸 것에 비해서 2배 이상 받도록 설계가 돼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공단에서는 주는 거를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뿐 아니라 국민연금은 애초에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연금을 걷도록 잘못 설계된 부분도 있습니다.

    또 가장 절실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서울 정릉에 사는 예순세 살 김 모 씨는 구청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으며 가족 없이 혼자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 씨가 받던 기초수급액은 60만 원 남짓.

    월세 20만 원과 은행빚 이자 20만 원을 빼면 끼니를 챙기기도 위태로운 살림이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장사를 하며 들어 뒀던 국민연금을 받을 나이가 된 겁니다.

    예상 연금액은 월 30만 원, 누군가에겐 용돈 정도일지 몰라도 김 씨에겐 거금이었습니다.

    [김 OO]
    "아이고 이제 숨 좀 틔겠구나... 이제 연금하고 그거(기초수급액) 하고 한 90만 원 되면 집세 내고 또 빚도 좀 갚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국민연금을 받은 뒤부터, 기초생활 수급 비가 정확히 연금 수령액만큼 삭감된 겁니다.

    [김 OO]
    "두 달은 그냥 줬어요. 근데 그다음에 삼십몇 만 원이 나오더라고요. 그걸 (연금액)딱 빼고 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구청으로 전화했어요. 수급 비가 왜 줄어들었느냐고 그랬더니... 두 달 (90만 원)나간 거 반납하라고 그럴 수도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지자체의 기초생활보장 급여는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큼을 삭감하게 돼 있습니다.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의 경우는 의욕을 잃지 않게끔 최대 절반까지 깎지 않고 인정해주지만, 국민연금으로 받는 돈은 은행 이자나 임대 수익과 마찬가지로 취급해 전액 삭감됩니다.

    [김 OO]
    "나 자신 스스로가 노후준비를 하겠다고 끝까지 (연금)든 거 아니에요. 그걸 깎고 준다고 하니까 이해가 안 가는 거죠. 모르는가 봐요. 우리는 없는 사람들은 진짜 1만 원 2만 원이 아쉽고 그러는데...."

    김 씨 같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입장에선 준 만큼 삭감되는 국민연금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주은선 교수/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어떻게 보면 국민연금 급여라는 것도 근로 시기에 꾸준히 일을 해서 보험료를 낸 산물이라고 본다면 국민연금 가입에 대한 혜택을 계속 유지해 줄 필요는 있다. 근로 소득과 마찬가지로 일부 공제를 해서."

    전문가들은 열심히 국민연금을 낸 저소득층이 상대적 불이익과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주은선 교수/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여러 사회보장 제도들이 추가돼서 뭔가 이중 삼중의 노인들에 대한 소득 보장 제도들이 들어오긴 했는데... 서로 어떤 역할을 어느 목표를 가지고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원칙이 정립이 안 된 거죠."

    뜨거운 기름 솥 앞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손길.

    중국 산둥성에서 한국에 일하러 온 요리사 팡린 씨는 자신도 국민연금 가입자였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팡린/요리사]
    "(국민연금이 들어가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한국 근방 와서 하나도 몰라요. 국민연금이 뭔지도 몰라요. 사장이 다 (신청)했어요. 나도 몰랐어."

    일하던 식당에서 임금이 체불돼 증빙 서류를 떼던 중에, 월급에서 국민연금이 원천 징수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겁니다.

    1년마다 갱신하는 취업비자 만기가 끝나면 중국으로 돌아갈 예정, 그동안 낸 보험료를 돌려받을 수 있냐고 국민연금공단에 물어봤지만 안 된다는 답만 들었습니다.

    [팡린/요리사]
    "어떻게 받지? 몰라요 나도. 외국인도 (연금 내는지.) 누가 알겠어요. 외국인이라 (환급은)안 됩니다."

    외국인 근로자도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소득에 따라 국민연금을 내는 게 원칙.

    다만, 국민연금은 10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몇 년만 일하고 귀국하는 외국인들은 혜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도적 차원에서 귀국할 때 일시금으로 돌려주는 제도가 마련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모든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국가 간 상호 협약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라 국적이나 직업에 따라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팡린 씨 같은 중국인 요리사는 환급 대상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같은 중국인이라도 공장노동자 등은 환급을 받을 수 있지만 요리사는 고소득 전문직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인도적인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
    "특정 활동이라고 해서 전문 인력이 상당수가 포함돼 있는 그런 체류 자격이거든요. 그래서 기업 고위 임원이라든가 생명과학 전문가라든가 주방장이나 요리사 이 부분도 준 전문 인력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휴일도 없이 하루 12시간 일하고, 월급 130만 원을 받아 온 팡린 씨 입장에선 이해하기 힘든 얘기였습니다.

    [팡린/요리사]
    "나는 이상해 이상해도 어떡해 외국사람이니 어떡해요. 나는 안 돼요. 기분이 나빴어. 나빴어도 어떡해."

    [김종서 간사/김해이주민인권센터]
    "사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계시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기서도 국민연금이 또 빠져나가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그냥 달라고 하니까 주고, 안 준다고 하니 그냥 가고 이런 식으로..."

    한 외국인 인권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팡린 씨 같이 돌려받지도 못할 국민연금을 내 온 외국인 근로자는 최소 4만 7천 명, 2천 억 원 넘는 돈이 고스란히 국민연금 기금에 흡수된 걸로 추정됩니다.

    [김종서 간사/김해이주민인권센터]
    "사실 이 문제는 굉장히 간단한 문제에요. 만약에 돌려주지 않을 거라면 처음부터 걷지를 말았어야 하고요. 그리고 혹시라도 그것을 행정상의 실수로 거뒀다고 한다면 그건 반드시 돌려줘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지난해 국민연금공단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 가며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거들었다는 의혹에 많은 국민들이 분개했습니다.

    가입자 개개인에 대한 수급관리는 소홀하면서 큰돈은 엉뚱하게 굴린다는 불신이 그 바탕에 있을 겁니다.

    지금 내가 낸 돈이 미래에 내 노후를 보장해줄 거라는 믿음은 국민연금 제도 자체를 지탱하는 뿌리입니다.

    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억울한 가입자가 나오지 않도록 보다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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