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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이지수 기자

목숨 걸린 약값 갈등

목숨 걸린 약값 갈등
입력 2017-05-22 10:47 | 수정 2017-05-2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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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몬 양성 유방암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입랜스'.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한 이 약은 한 알에 21만 원으로 한 달이면 약값이 5백만 원이 넘습니다.

    유방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급여 적용을 신청했지만, 처리가 늦어지면서 고통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처리가 늦어지는 이유는 급여 신청하는 신약은 계속 늘어나지만 건강보험 재정은 한정돼 있기 때문.

    박근혜 정부가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을 펴면서 암, 심혈관,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의 보장률이 올라간 반면, 치매는 보장률이 떨어지는 등 누군가 혜택을 받으면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약값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환자들과 의료계, 제약업계의 갈등. 건강보험 급여화 문제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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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사는 이영원 씨 부부.

    두 딸이 초등학교에서 돌아오자 하루 일과를 물어보며 단란한 시간을 보냅니다.

    "일 없었어 학교에서? (네) 시험하고 볼 거 없지 아직? 준비해야 될 거는? (있어요.) 뭐? (수학) 몇 단원이지? (4단원이요.)"

    어린 딸들을 볼 때마다 영원 씨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이영원 (가명) 유방암 4기 환자)]
    "맘 한구석 아이들이 암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깜짝 놀라고 우리 엄마 암 걸렸는데 우리 엄마 잘못되는 거 아닌가. 이런 마음을 항상 갖고 있어서."

    영원 씨의 암세포는 척추와 골반까지 퍼졌습니다.

    항암제의 독성을 견디지 못한 몸은 하루하루 야위어 갑니다.

    그런데 지난해 암세포만 찾아 전이를 멈추는 표적 항암제가 국내에도 출시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다국적제약사 화이자가 개발한 약 입랜스입니다.

    [이영원 (가명) 유방암 4기 환자)]
    "그거 나왔단 얘기 들었을 때 너무 좋았죠. 말할 수 없죠. 저같이 전이성 환자들한테는 희망적인 거죠.”

    문제는 약값입니다. 하루치인 약 한 알이 21만 원.

    한 달 약값 6백만 원을 감당할 형편이 안됐습니다.

    [이영원 (가명) 유방암 4기 환자)]
    "그걸 감당할 수 있는 가정들이 그렇게 많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돈 때문에 좋은 약이 있는데, 돈 때문에 돈 없어서 못 먹고 죽어간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슬프죠."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막내딸은 엄마의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영원 (가명) 유방암 4기 환자)]
    "아이들은 엄마 좋은 약 있으면 아픈 사람들 도와주는 거 아니야? 정부에서 싸게 해줘서 많은 사람들 생명 살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정부에서 안 도와주고 있는 거예요. 나라에서?"

    첨단 의료 연구가 진행되면서 말기 암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속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달 약값이 500만 원이 넘는다면, 치료받을 수 있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요.

    이런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가 건강보험입니다.

    보건당국이 건강보험 급여대상으로 지정한 약은 원래 약값의 5%만 내면 되지만, 문제는 언제 급여대상이 될지알 수 없다는 겁니다.

    유방암 말기 환자인 윤 모 씨.

    가입해뒀던 생명보험사에서 받은 암 진단 금으로 지난 석 달 동안은 입랜스를 사먹었지만, 이젠 모아둔 돈도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윤 OO (유방암 4기 환자)]
    "(진단 금으로)저는 이제 한 3개월 정도, 3개월 정도밖에 못 버티죠. 솔직히 진단 금도 다 떨어지면 대출받아서 먹을 상황이고."

    홀로 키워온 아들을 막 결혼시킨 터라 아직 경제적 기반이 없는 아들 부부에게 짐이 될까 두렵습니다.

    [윤 OO(유방암 4기 환자)]
    "제가 능력이 없으면 자식이니까 분명히 쟤네들은 대출받든지 퇴직금 받아서 약을 또 먹일 거예요. 내가 그러지 말라고. 결국, 너희 빚밖에 안 지게 되니까 놔두라고. 엄마는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까 그냥 엄마 이렇게 하다가 약값 떨어지면 말겠다."

    특정 약제가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되려면 우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내 약제급여평가위원회로부터 급여적정성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의 약값 협상을 거쳐 보건복지부가 최종 결정을 내리면 비로소 건보 급여 대상에 등재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항암 신약이 건강보험 급여 대상으로 등재되는 데 걸리는 기간이 평균 320일.

    형편이 넉넉지 않은 환자들은 1년 가까운 기간 신약의 혜택을 보지 못한 채 생명을 놓고 경제적 갈등을 겪게 됩니다.

    [안기종 대표/백혈병환우회]
    "환자부터 살려놓고 그리고 그다음 약값 협상을 해야 되는 거죠. 환자가 중심이 아니에요. 이윤, 돈. 건강보험 재정. 이게 중심이에요. 그것 때문에 수없이 많은 환자들이 지금도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하고 있거든요."

    [이영원(유방암 4기 환자)]
    "돈 때문에 손 놓고 있어야 된다는 거. 멍하니 있어야 된다는 거. 그 고통은 뭐 이루 말할 수 없죠. 사는 게 좀 그렇다. 슬프다 서글프다 이런 생각 많이 하게 되죠."

    심지어 신약이 보건당국 허가를 받는 시점부터 따지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급여 등재 소요 기간은 601일로 OECD 평균 245일의 2배가 넘게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김봉석/보험정책위원장 함국임상암학회]
    "평균 우리가 허가부터 보험 등재될 때까지가 약 2년이라고 치면, 그 2년 동안 보험 되지 않는 약을 갖다 쓴 경제적 부담, 심지어 그 경제적 부담 때문에 쓰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분도 저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강보험 등재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 왜일까? 약값을 낮춰 제약사에 주는 건강보험수가를 줄이려는 보건당국과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제약사가 줄다리기 협상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제약사 측은 정부가 가격을 낮추는데만 집중해 신약의 효과와 개발비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주장합니다.

    [황성혜 전무/한국화이자제약 대외협력부]
    "이 약제가 삶의 질을 엄마만큼 높이는지 그리고 또 수명을 얼마나 연장하는지 그런 부분들이 다 포함돼 있는 부분인데, 정부의 입장에서는 재정의 안정성을 보다 보니 거기에 있어서 약간의 이걸 바라보는 시각이나 의견의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다국적제약사의 경우 다른 나라와의 형평성 때문에 한국에서만 약값을 무턱대고 낮추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상석 부회장/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최종 결론이 뭐냐면 혁신적 신약이라 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가격. 낮은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 적어도 그렇게 협상이 돼야만이 쉽게 협상이 끝납니다."

    이에 맞서 정부는 한정된 재원상 까다롭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곽명섭 과장/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제약사) 그분들이 우려하시는 부분들은 경제성 평가를 통해서 약값이 내려가는 부분이 걱정이 되시겠죠. 하지만, 저희들 같은 경우는 객관적으로 우리 사회가 지불할 수 있는 그 가치에 대해서 지금 거의 유일한 수단이거든요."

    제약사가 처음부터 높은 가격을 제시하기 때문에 협상이 더 어렵다고도 합니다.

    [이병일 실장/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
    "기본적으로 처음에 (제약사) 신청가에 비해 나중에 최종적으로 저희 심사평가원의 평가를 받았을 때 가격을 보면 차이가 꽤 크게 나죠. 사실 그러다 보면 앞에 제시된 가격이 과연 적정하게 제시된 가격인지 어떤 형태로 제시한 건지."

    [글리벡 보험적용 촉구집회/2001년 9월 11일]
    "보험적용 한다더니, 보험 취소 웬 말이냐. 각성하라 각성하라."

    세계 최초의 표적항암제 글리벡이 출시된 2001년.

    정부와 제약사의 기나긴 약값 협상에 보다 못한 환자들이 시위를 벌였고, 글리벡은 출시 후 20개월 지난 2003년 2월 보험 적용 약제가 됐습니다.

    [안기종 대표/백혈병환우회]
    "2001년도에 글리벡이라고 하는 이 항암제의 건강보험에 둘러싼 1년 6개월간의 그 싸움이 있었잖아요. 그 이후로 환자들이 목소리를 냈을 때 정부나 제약사가 움직였어요. 그전까진 전혀 움직이지 않았어요."

    최근 급여화 문턱을 겨우 넘은 항암치료제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유방암치료제인 퍼제타나 캐싸일라, 면역함암제인 옵디보 등이 모두 식약처 허가에서 보험급여등재까지 30개월에 길게는 48개월까지 걸렸습니다.

    환자들은 이제 1년치 7000만 원에서 1억 원에 이르는 이 약들을 350-500만 원이면 먹을 수 있습니다.

    약값 산정 줄다리기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환자들의 시위는 고가의 신약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호 교수/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2000년대 중반하고, 2010년대 초반부터 이런 문제들이 갈수록 악화되는 거고, 더 문제는 앞으로 5년, 앞으로 10년 뒤에는 더 많은 약제들이 나올 겁니다."

    약값 협상이 지체되는 사이 약을 쓰지 못하는 환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이런 환자들이 정부와 제약사에 민원을 제기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요?

    유방암 1기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인 강지선 씨.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보험 급여심사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강지선(가명) 암환자 커뮤니티 운영자]
    "언제부터 언제까지 평가위원회가 열리고 모두 투명하게 공개가 되고. 우리의 급여화를 위해서 공무원들이 열심히 뛰고 계시구나 이걸 알게 되면 저희가 그렇게 전화를 안 하게 되지 않을까요."

    제약사가 책정한 약값의 근거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주장합니다.

    [강지선(가명) 암환자 커뮤니티 운영자]
    "너무나 천문학적인 숫자로 가격이 책정돼있기 때문에 대체 이걸 누가 먹으라고 만든 건지. 많은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책정을 하시는 건지 아니면 그에 맞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건지."

    심평원은 다음 달부터 평가 결과 등을 일부 공개한다는 방침이지만, 전문가들은 평가위원 명단과 회의록 등 세부적인 내용도 함께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김윤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과]
    "지금 약과 관련된 보험 급여를 결정하는 위원회의 위원 명단도 공개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발언이 오갔는지에 대한 회의록도 공개하고, 최종적으로 그 위원회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근거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그런 모든 게 투명하게 공개가 되어야 정부기구를 신뢰하는 거지요."

    근본적으로는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김흥태 교수/국립암센터 폐암센터]
    "지금까지는 조금 내고 보장을 적게 받는 그런 프레임이었는데 그걸 좀 더 많이 내고 그 혜택을 많이 받는 쪽으로 이렇게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보험료를 1퍼센트 더 내게 되면 약 한 6조 7조 원이 걷히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보장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건보료 인상은 만만치 않은 문제인 만큼 제약사들로부터 별도 기금을 조성해 약값을 지원하는 방법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대호 교수/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Cancer Drug Fund(항암치료제 기금)라는 게 2010년도 이후에 영국도 만들어졌거든요. 우리도 한번 그런 거 고민해볼 시기가 되지 않았냐는 거죠. 일정 기금 만들어서 약제가 아직은 데이터가 충분치 않고 급여로 가긴 어렵지만 환자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지원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죠."

    현재 5%로 고정돼 있는 항암 치료제 본인부담률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법도 제시됩니다.

    약값을 환자가 조금 더 내더라도 급여대상이 안되는 것보다는 훨씬 싼 값에 약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급한 환자에겐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김봉석/보험정책위원장 함국임상암학회]
    "모든 암환자한테 건강보험을 5%만 적용하는 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올려도 상관없겠다, 약을 빨리 쓸 수만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낫겠다.'라고 설문조사가 됩니다. 그만큼 약 쓰는 게 시급한 거죠."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신약의 건강보험 급여대상을 늘리고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차등 적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건강보험급여 심사과정을 빠르고 투명하게 하는 일은 그 첫 번째 조치가 돼야 할 겁니다.

    약 살 돈이 없어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보건당국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가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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