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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노경진 기자

6070 재테크에 내몰리다

6070 재테크에 내몰리다
입력 2017-06-05 10:10 | 수정 2017-06-2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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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던 집을 팔고 좁은 집으로 옮기고, 그 과정에서 남는 돈으로 노후를 보내겠다‘ 요즘 실버 세대는 이런 단순한 재테크 관념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평균수명이 증가된 상황이여서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재테크가 필요하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실버세대에 불고 있는 재테크 열풍을 취재하며 그들의 생각과 계획, 그리고 기대를 물어봅니다.

    또 그 과정에서 잘못된 투자나 잘못된 판단으로 재테크에 실패 한 사례들도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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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전, 여의도의 한 증권사 본사에서 열린 증시 설명회.

    천 명 규모의 대강당이 가득 찼습니다.

    참가자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어르신들.

    '투자 고수'로 불린다는 강연자의 설명을 한 자라도 놓칠까? 빠짐없이 적는가 하면 중요해 보이는 자료는 거침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합니다.

    강연자의 설명에 맞춰 개별 주식 종목을 일일이 비교해 보는 이들까지.

    열기가 뜨겁습니다.

    한 금융사에서 운영하는 '백세시대연구소'의 소규모 강의에도 사전 신청자가 몰렸습니다.

    노후의 자산 배분과 운용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놓고, 현직 증권사 지점장이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일흔이 훌쩍 넘어 보이는 어르신부터 곧 은퇴를 맞게 될 50대 후반의 장년층까지.

    90분의 긴 강연에도 아쉬움이 달래지지 않은 듯, 참석자들은 질문을 이어갑니다.

    [고자경/은퇴자]
    "제가 연금저축 들은 게 들 때는 뭔지도 모르고 들었어요. 한 20년 전에 든 건데 그게 보니까 전부 채권에 투자된 연금이더라고요. 그래서 수익률이 제 친구에 비해서 절반밖에 안되더라고요."

    젊은 세대들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금융 설명회, 재테크 설명회에 장년, 노년층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최근 은퇴 세대들이 재테크에 적극 나서는 조짐은 분명합니다.

    부동산 거래에서도 주식 시장에서도 6,70 노년층의 거래는 부쩍 활발해졌습니다.

    은퇴하면 살던 집도 정리하고, 예금 이자나 연금을 통해 안전 지향적으로 노후를 꾸려 나간다는 통념에서 많이 벗어난 모습입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결단을 해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한창때보다도 더 과감한 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노년층들, 이들의 고민을 2580이 들어봤습니다.

    노년층이 재테크에 열중하게 된 이유는 초저금리 시대와 평균 수명 증가, 간단히 이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과거보다 오래 살게 됐는데, 이자 수입이나 연금 등 전통적 방식은 대책이 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살지 모르는데, 돈이 바닥난 인생은 비참할 것이란 공포감까지 더해집니다.

    [이윤학 소장/100세 시대연구소]
    "예전보다는 확실히 (노년층이 투자에) 적극적으로 바뀌신 게 분명합니다. 왜냐면 절대 저금리 시대에서 그냥 은행에 그냥 보통예금 또는 정기예금으로만 넣어 두어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이미 체감하고 계시기 때문에."

    [은퇴준비자]
    "안정적으로 이자나 월세 받고 이렇게 살 때 하고는 다르니까 당연한 시대가 된 거 같아요."

    최근 관심이 뜨거운 경기도의 한 재건축 단지.

    올해 61세의 이미남 씨가 구매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연구해 온 부동산 투자의 실전 단계입니다.

    [이미남 61세]
    "아 재건축이오? 우연히 신문으로 제가 오랫동안 봤다고 했잖아요. 보다 보니까 아 이런 것도 괜찮겠구나, 그런데 관심 가졌지 물질적인 것(가진 돈)이 적으니까 그냥 계속 공부만 했어요."

    단골 부동산을 정해 수시로 방문하며 매물을 알아보는가 하면,

    "뭐를 하나 하면 은행 금리를 받쳐줄 수 있는 게 혹시 있나요."

    [남성우/공인중개사]
    "상가 쪽에 은행에 넣어도 금리가 2% 미만이기 때문에 굉장히 적잖아요."

    신문 경제면과 정보지도 빠짐없이 읽고, 가끔 경제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부동산 투자설명회도 다녀왔습니다.

    청각장애를 지닌 남편을 대신해 노후를 담당해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 노후자금을 제법 모아놨다고 생각했지만 저금리 상황이고, 다른 금융상품은 어렵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부동산이었습니다.

    [이미남 61세]
    "금리가 낮고 또 나이도 많고 하는데 은행에서 오천만 원 정도의 금리(예금)만 보장해준다 하니 은행마다 쫓아다닐 수도 없고."

    부동산 중개업소들도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는 노년층이 예전보다 확실히 늘었다고 합니다.

    [남성우 공인중개사]
    "(부동산 찾는 손님 중) 절반 이상은 되죠. 나이 드신 분들이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가지고 계세요. 특히 요즘에 추세는 더 강해지고 있다는 거 아닌가."

    은퇴하면 집을 좁은 곳으로 옮기고, 남은 매각비용을 노후 자금으로 쓴다는 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은퇴세대의 자산운용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이제 안 통한다고, 경매 투자가 최봉환 씨는 잘라 말합니다.

    [최봉환 67세 경매 투자가]
    "저는 나이를 먹어서 은퇴를 했다고 해서 다운사이징으로 가면 안 된다, 자꾸 쪼그라들잖아요. 그런데 그게 옛날 같으면돼요. 은퇴하고 나서 10년 20년 살다가 죽는다. 그러면 뭐 그걸로 꾸려가다가 죽으면 되는데 30년 40년 살아야 되는데 그걸로 안돼요. 안됩니다."

    4년 전 공기업 전무로 직장생활을 마감한 최 씨.

    은퇴 뒤 식당을 열 마음으로 각종 조리사 자격증을 땄지만,

    여든, 아흔이 되면 식당을 운영할 수는 없을 거란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재작년 부동산 대학원에서 경매전문가 과정을 이수하고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섰고 대학원 동기들과의 경매 세미나도 이끌고 있습니다.

    [최봉환 67세 경매 투자가]
    "백 살 전에는 못 죽을 거다. 안 죽는 게 아니라 못 죽을 거다. 그러면 제가 앞으로 30~40년 더 살아야 하는데 내가 활발히 활동을 하면서 창조적인 또 안 그러면 그런 일감들을 내가 만들면서 경제활동을 해야 되잖아요."

    60세 이상 은퇴 세대들이 재테크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는 것은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이 2015년 연령별 아파트 매매 거래량을 살펴봤더니, 60세에서 64세는 인구 백 명당 거래량이 4년 동안 (0.9호에서 1.84호로) 두 배 넘게 늘어,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65세 이상도 가파르게 늘었습니다.

    월세와 임대료 목적의 부동산을 누가 샀는지를 보면 더욱 뚜렷합니다.

    전체 가구 중 투자 목적 부동산 보유 가구 비율은 2006년 9.7%에서 2014년 10.5%로 0.8% 포인트 늘어난 데 그쳤는데, 60세에서 64세 가구주의 경우 10.4%에서 19.7%로 무려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이준용 한국감정원 부연구위원]
    "거래에 대한 증가를 연령층으로 분석해 봤는데 60대 이상에서 증가하는 추세가 현재 상황입니다. 월세가 확대되고 거기에 대한 수익률이 저금리인 상태에서 높다 보니까..."

    주식시장에서도 노년층의 활약은 두드러집니다.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60세 이상 연령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1년 만에 11.8%에서 19.3%로 껑충 뛰었습니다.

    자산 시장계에선 이런 노년층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르며 주목하고 있습니다.

    [박원갑/KB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
    "지금 자산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 베이비부머의 은퇴 역설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은퇴를 하면 아무래도 현금을 늘리거나 좀 더 보수적으로 자산 관리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많이들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은퇴 세대가 자산 투자 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한 것은 20,30대들이 저성장 상황과 고용 불안으로 투자시장에 뛰어들 자본 자체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불안감 극복을 위한 은퇴세대의 안간힘 때문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박원갑/KB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
    "만약에 공공복지가 발달돼 있어서 내가 노후생활하는 데 아무런 걱정이 없다면 굳이 그렇게 무리하게 투자를 할 필요가 없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의 베이비부머들이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투자하는 것은 스스로 노후를 마련하려는 일종의 사적 안전망 찾기라든지."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 등에 전적으로 노후를 기대기엔 한참 부족한 수준인 것도 현실입니다.

    [정순둘/교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선진국에 비해서 실제로 보장하는 비율이 굉장히 얕아요. 그래서 실제로 연금이 예전에 받았던 임금에 비해 선진국 같은 경우에는 60% 이상을 이제 차지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40% 미만이거든요."

    하지만, 노후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이끌려 익숙하지 않은 투자 상품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엔 고정수입을 미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안정적 수익과는 거리가 먼 부동산 상품들이 은퇴 세대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70대 중반의 이 어르신들은 제주도의 한 분양형 호텔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분양형 호텔은 아파트처럼 개별 객실은 개인들이 분양받고, 전문 업체가 위탁받아 운영하며 수익을 나누는 방식입니다.

    제주도와 인천 송도 등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수익형 부동산의 한 형태입니다.

    '월 백만 원을 5년간 월급처럼 지급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고 강남역 등지에 화려한 홍보관을 열기도 했습니다.

    주로 은퇴자들의 마음을 끌어 투자자 6,70%가 이 같은 노인들입니다.

    [김진영/77세 분양형 호텔 피해자]
    "제가 왜냐면 다 나이가 먹고 보면 조금의 여유자금 가지고 힘이 없으니까 수익을 조금 보려고 이걸 했거든요. 근데 이걸 보시면 알겠지만 60% 잔금 대출해가지고 한 달에 13% 그러니까 대단한 거거든요."

    객실 하나당 분양가는 2억 원.

    하지만, 수익금은 세 차례 다 합쳐 수십만 원 들어온 게 전부였습니다.

    [김진영/77세 분양형 호텔 피해자]
    "3월 말에 3일치가 들어오더라고요. 11만 얼마가 들어오더라고요. 5월인가 가서 30만 얼마인가 그래가지고 8월에 조금 주고 해서 지금 분양받은 지가 14개월 됐는데, 한 달치가 안 들어온 거예요. 한 달치가 안 돼요. 다 합쳐서."

    대출까지 받아 객실 두 개를 4억 원에 분양받은 김 모 노인은, 수익은커녕 지금까지 이자로 1천5백만 원이 빠져나갔습니다.

    [김창수/77세 분양형 호텔 피해자]
    "3월에 (이자) 천백만 원을 넣었다고 이게 다 빠져나가고 이거 내가 생돈을 또 물어야 돼. 이게 매달 빠져나간 거야. 이렇게 되니까 말이야 환장을 하는 거야 환장을."

    운영업체 측은 호텔에 손님이 없어 수익 배분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답합니다.

    [분양형 호텔 운영업체 관계자]
    "작년이 세월호 이후에 메르스 터지고 사드 터지고 태풍이 제주도에 좀 심했고 이러다 보니까 (객실 가동률이) 30%~40%밖에 못 가는 상황에서."

    최근엔 소송이 오가는 등, 문제는 더 복잡해졌습니다.

    [김창수/77세 분양형 호텔 피해자]
    "퇴직금도 받고 그래가지고 쌈짓돈 놔둔 거 이게 해가지고 김 선생이 얘기했듯이 말이야. 이렇게 해가지고 노후를 좀 즐기려고 생각하다 보니까 노후를 즐기는 게 아니라 노후를 죽이는 거죠. 완전히 이거는."

    자녀들을 다 출가시키고 혼자 지내던 70대 후반의 남 모 할아버지는 재작년, 경북의 한 도시 인근이 신도시로 개발돼 땅값이 두 배로 오를 거라는 부동산 업체의 말을 믿고 1억 원을 내놨습니다.

    전 재산 1억 원을 건 과감한 투자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가 보니 개발 사업과는 상관없는 산기슭이었습니다.

    아들이 뒤늦게 알고 민사소송을 내 이겼지만 업체는 이미 폐업신고를 해버려 돈을 돌려받을 길은 사라졌습니다.

    [남익현/기획부동산 피해자 아들]
    "회사에 자본금도 없고 돈도 없고 부동산도 없고, 이 회사를 갖다가 민사로 이겼다고 한들 저희들이 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 사이 할아버지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돼 신경쇠약과 청각장애 등으로 매일 약을 한 움큼씩 복용하며 바깥출입도 거의 못하고 있습니다.

    [남성태/76세 기획부동산 피해자]
    "심정이 뭐 허망하지요. 내가 이렇게 돼버리니까 결과가 좋아야 되는데 (댁에서 어떻게 지내세요?) 근데 조금 안 들입니다."

    고도의 경제성장, 노후설계에 대한 개념도 분명치 않았던 시절을 살아온 지금의 노년층은 혼란스럽습니다.

    낯선 저금리 기조에 돈 둘 곳을 못 찾았고, 급작스레 수명이 늘어났다지만 가진 돈은 갈수록 부족해 보인다고 합니다.

    자금이 있어도 다시 과감하고 공격적인 결단을 고민해야 하는 노년 세대들.

    노후 고민에 치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단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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