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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한수연 기자

철거 앞둔 홍등가

철거 앞둔 홍등가
입력 2017-06-05 10:42 | 수정 2017-06-0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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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자갈마당과 수원역 부근 집창촌 등 전국의 홍등가 지역에 대한 철거 계획이 지역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불법 성매매 근절과 도시 환경 정비 등의 차원에서 바람직한 움직임이지만, 이곳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여성들은 '갈 곳이 없다'며 절박한 상황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전국 집창촌들에 대한 철거 진행 과정을 취재하면서 이곳에서 일해 온 여성들이 철거의 취지에 맞게 집창촌 생활을 탈출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어떤 관심을 가져야 할지 모색해봅니다.

    또 집창촌 철거의 모범 사례를 찾아보고 바람직한 해법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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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색 모자에,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시위에 나선 여성들.

    "우리는 죽음으로 생활터전 지키겠다. (지키겠다 지키겠다)"

    성매매 집결지인 대구 자갈마당의 종사자들입니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 때에 이어 다시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비장합니다.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지난 3월, 대구의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 이곳 자갈마당의 종사자들이 13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자갈마당을 폐쇄하고 정비하겠다는 대구시의 방침에 맞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 겁니다.

    정비 사업이 본격화되자, 이번엔 노숙인 무료급식소를 설치해 폐쇄를 막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무엇인지, 2580이 들여다봤습니다.

    1908년, 일제강점기 대구에 온 일본인들이 설치한 일본식 유곽에서 출발해, 109년째 영업이 계속돼 온 자갈마당, 그 이름은 종사 여성들의 도망을 막기 위해 밟으면 소리가 나도록 자갈을 깔았던 것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100개가 넘는 업소들이 밀집했고, 전국 3대 성매매 집결지 중 하나로 꼽혔지만,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이후 그 수가 점점 감소해, 현재 30여 개 업소만 영업 중입니다.

    유리문 안에서 붉은색 조명을 받으며, 손님을 기다리는 여성들은, 현재 100여 명 정도입니다.

    한눈에 보아도 쇠락한 이곳을 그들은 "떠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김미선(가명) 대구 도원동 집결지]
    "부모 잘 만나가지고 내가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집이 또 재산이 많아서 물려받은 것도 없고 하다 보니까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어."

    스물아홉에 이곳으로 와 20년을 일한 마흔아홉의 미선 씨(가명)는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12시간 불법 성매매로 번 돈으로 가족들을 부양했습니다.

    "내가 여기서 살아오면서 (동생) 공부도 시키고 부모님도 봉양하고 그렇게 살았으니까 희망을 보고. 그때는 희망이 있었으니까."

    최근엔 동생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형편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김미선(가명) 대구 도원동 집결지]
    "내가 살아야지 동생도 사니까. 내가 힘을 내야지. 하루하루 힘을 내고 살아요. 눈 뜨면 아, 살 수 있는, 또 하루가 또 시작됐구나!"

    술집에서 일하다 22살 때 이곳에 와 서른일곱 살이 된 은주 씨(가명)는 두세 평 남짓한 이 방에서 지냅니다.

    [이은주(가명) 대구 도원동 집결지]
    "그냥 똑같이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시장 사람들한테 그 시장이 삶의 터전이듯이 여기 자갈마당에 있는 아가씨들도 여기 자갈마당 자체가 터전인 거예요. 삶의 터전."

    불법으로 번 돈을 매달 부모님께 생활비로 부치는 실질적 가장입니다.

    "자기 자식을 키우는 아가씨들도 있고 부모님을 봉양하는 아가씨들도 있고 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단 말이에요. 아무리 우리가 이렇게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있지만, 우리도 주민이잖아요."

    대구시의 철거 입장에 시위로만 맞설 수 없다고 판단한 이곳 여성들은 무료급식소를 설치해 매달 두 번 노숙인 급식 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정원철/회장 대구 도원동 무의탁여성보호협의회]
    "달성공원 앞에 가면 노숙자들 많아요. 그래서 그분들한테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대접을 한번 해 드리면서 우리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자."

    [이은주(가명) 대구 도원동 집결지]
    "철거한다고 우리 보고 그냥 무조건 나가라는 건 아무런 대안이 없잖아요, 그니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사람 사는 데라고 인식을 주기 위해서..."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호소해 폐쇄를 막아보자는 겁니다.

    [박지은(가명) 대구 도원동 집결지]
    "솔직히 갑자기 없애라고 하니까 솔직히 눈물도 나고 인제 와서 (다른 데) 가려고 하니까 솔직히 나이 들면서, 좀 두려워요. 이제."

    대구시의 폐쇄 입장엔 변함이 없습니다.

    오는 10월이면, 자갈마당 옆 대규모 주상복합 단지에 입주가 시작됩니다.

    이제 더 이상 불법 성매매 업소들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장일환/팀장 대구시 여성가족정책관실]
    "지금 민원이 폭주하고 있어요. 없애 달라는 민원이. 특히 더 문제가 되는 건 200m 내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습니다. 이 아파트에서 학교 가는 애들이 이쪽을 통해서 가야 됩니다."

    다만, 강제적 수단을 동원할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대신, CCTV를 곳곳에 설치할 방침입니다.

    업소 손님들이 CCTV를 의식해 자갈마당에 오는 것을 꺼리게 되면, 결국 업소들 스스로 영업을 포기하고 나갈 것이라는 계산입니다.

    [김형일 정책기획관 대구시 기획조정실]
    "6월까지 CCTV하고 LED 경고문을 설치한다는 게 큰 틀의 하나입니다. CCTV를 설치하면, 이용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한테 심리적인 압박이 되지 싶다 해서."

    내보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와, 끝까지 버티겠다는 업주와 종사자들, 성매매 집결지 정비를 둘러싼 갈등은 대구에서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폐쇄됐거나, 폐쇄 예정인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에서 비슷한 상황이 속출했거나, 진행 중입니다.

    지난달(5월) 30일, 경기도 수원역 앞 성매매 집결지, 내년부터 이 일대를 정비하겠다는 수원시의 방침에, 집결지 내 반발이 거셉니다.

    [윤수정(가명)수원역 집결지]
    "대책을 세워주고 나가라고 해야지 그냥 아무 대책 없이 나가라고 하면 이 사람들이 나가 가지고 어디 가서 뭐 해서 살아요."

    [정미연(가명)수원역 집결지]
    "오픈돼 있으니까 눈에 다 보이잖아요. 무조건 정부에서 뭘 한다, 한다 하면 집창촌 먼저 타깃이 된다는 거죠."

    한 곳이 없어지면, 또 다른 집결지로 옮겨 다니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저희는 그냥 탁구공 왔다 갔다 치듯이 여기 치면 저리로 가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없어지면 또 가요, 또 가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서울 '청량리 588'이 없어지면서 10여 개 업소가 수원역 집결지로 이주해 왔다고 합니다.

    [박정자(수원역 집결지 업주)]
    "어떻게 여기까지 또 왔습니다. 근데 또 여기도 오니까 시에서 이러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서울 영등포와 전북 전주 등에서도 집결지 폐쇄 방침에 맞서, 종사자들의 반대 시위가 잇따라 발생했고, 사실상 철거되고 황폐한 터만 남은 '청량리 588'에서도, 마지막 8개 업소가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정부는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면서 2007년까지 집결지도 정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성매매 종사자들의 반발과, 자치체들의 방임으로 사실상 답보상태였는데, 2015년, 여성가족부가 본격적으로 전국 단위 집결지 폐쇄에 박차를 가하면서 정비 방침은 급물살을 탔습니다.

    현재 전국에 남은 성매매 집결지 23곳 가운데, 8곳에 대해선 폐쇄 논의가 진행 중이고, 4곳에선 본격적 폐쇄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여가부는 무조건 폐쇄하되, 그 절차와 방식은 지자체별로 자율적으로 정하라고 밝혔습니다.

    [조신숙/과장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장]
    "성매매 집결지 폐쇄 추진방안을 마련해서 집결지의 상황이나 실정에 맞는 폐쇄 추진 계획을."

    [김형일/정책기획관 대구시 기획조정실]
    "자진 폐쇄를 우선 유도를 하고 안 되면 이제 강제 폐쇄로 가라. 이런 게 이제 여성가족부에서도 내려온 거고요."

    지자체별로 맞춤형 폐쇄 방법을 마련하라는 여가부의 의도는 좋았으나, 통일된 절차가 제시되지 않다 보니, 지자체마다 대책이 제각각이었습니다.

    일부 지자체의 경우, 폐쇄 방침을 사전 논의 없이 일방 통보해 반발을 키웠습니다.

    [강현준/대표 한터전국연합]
    "어떻게 하겠다고 현지에 있는 사람들하고 대화도 없고. 이런 개발이라면 협조하지 않겠다, 동조하지 않겠다."

    폐쇄 유인책도 지자체 별로 달라 갈등의 요인이 됐습니다.

    대구시의 경우 자체 조례를 만들어 성매매 여성 자활 지원책을 마련했습니다.

    [장일환/팀장 대구시 여성가족정책관실]
    "10개월에 약 2천만 원이 1인당 지급될 예정이에요. 개인 생활비로 1천만 원이 나가고 주거비로 700만 원, 그리고 이분들이 나가서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을..."

    조례안대로 대구시가 자갈마당 성매매 여성들에게 2천만 원씩의 자활 비용을 제공하려면, 20억 원이 넘는 예산이 소요됩니다.

    [장일환/팀장 대구시 여성가족정책관실]
    "시에서 다 지원하는데요. 그래도 대구시 의원님들이 적극 도와주셔서 올해는 2억을 확보했어요."

    그렇지만, 부족액은 약 18억 원.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은 현재로선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올해 자갈마당 폐쇄에 맞춰 종사 여성들에게 자활 비용을 주겠다는 대구시의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집결지 정비가 모두 시끄러웠던 것은 아닙니다.

    정비 계획을 사전 통지하고 종사 여성 지원책도 원활했던 춘천 난초촌은 모범 사례로 꼽힙니다.

    춘천시는 난초촌 부지를 매입해 공영주차장 등을 조성했고, 조례를 통해 성매매 여성 60여 명에게 3개월치 생계비 1천만 원을 각각 지원했습니다.

    [홍문숙 과장/춘천시 장수건강과]
    "우리는 30가구 정도, 굉장히 작은 집결지였기 때문에 지자체 예산으로 가능했지만, 큰 도시들에 있는 대단위 집결지는 지자체 예산으로 하기에는 부담이 굉장히 클 것 같습니다."

    [조배숙/의원 국민의당]
    "조금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좀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을 해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불법 성매매를 업으로 하는 여성들에게 왜 예산으로 지원을 하는가라는 반대 의견도 있지만, 성매매 집결지 정비라는 정책 실현 과정에서 종사 여성들에게 성매매업 탈출의 계기를 줘야 한다는 인권단체의 주장도 있습니다.

    [신박진영/대표 대구여성인권센터]
    "가난한 여성들이 그곳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삶을 살았던, 살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이 있다면 그 여성들에 대해서는 사회가 책임져야죠."

    2580이 만난 집결지 여성들의 꿈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윤수정(가명)/수원역 집결지]
    "너무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진짜. 근데 그게 평범하게 사는 게 안 되잖아요. 뜻대로 결혼도 해보고 싶었고, 직장도 다녀보고 싶었고, 다 해봐야 하는 데 그런 여건이 안 돼서."

    [정미연(가명)/수원역 집결지]
    "꿈은 소소해요. 그냥. 내 전셋집을 하나 두고, 앞으로 이거(성매매) 계속할 건 아니니까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하든 뭘 하든 내가 할 수 있는 거, 도전해보고 싶은 거죠."

    2016년 기준 성매매 집결지 종사 여성은 4천400여 명, 성매매 집결지를 없애 나가자는 취지에 맞게, 종사자들이 집결지를 벗어나 새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하는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방안들을 고민해 볼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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