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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박진주 기자

대기업을 그만두다

대기업을 그만두다
입력 2017-06-12 10:27 | 수정 2017-06-1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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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졸 신입사원 10명 중 3명은 입사한 지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두고 있습니다.

    한 직장에서 근속 연수가 3년이 안 되는 직장인도 62%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역대 최악의 취업난에 직면한 청년 구직자들은 회사원을 목표로 입사 원서를 내고 있지만, 정작 회사원이 된 이후에는 퇴사를 고민하며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퇴사를 계획 중인 직장인들을 상대로 한 '퇴사학교'까지 생겼습니다.

    삼성 출신 대표와 창업전문가 등이 의기투합해 직장인들의 퇴사와 그 이후의 설계를 돕고 있습니다.

    퇴사학개론, 퇴사 후 세계일주, 좋아하는 일하며 먹고 살기 등 과목도 다양합니다.

    평생 직장이 사라진 시대, 안주머니에 사표를 넣고 다니며 퇴사를 꿈꾸는 이 시대 직장인들의 고민과 달라진 세태를 2580이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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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그룹 주요 계열사의 구매 파트에서 일했던 이혜강 씨는 3년 전 퇴사했습니다.

    [이혜강/퇴사 4년 차]
    "만약에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을 때 난 어떨까 생각했을 때 위에 계시는 차장님, 부장님과 큰 차이가 없을 거란 생각에 좀 슬프더라고요."

    사내커플 남편 국동원 씨도 부인과 함께 사업의 길을 걷기 위해 대기업을 그만뒀습니다.

    [국동원/퇴사 4년 차]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안정적이지 않잖아요. 정년까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정말 회사에 몸바쳐 몇 년 동안 하다가도 갑자기 나가라 그러면 나가야 되고."

    몇 년 전까지 승진, 월급, 보고서 이런 것에 매여 있었던 대기업 회계팀 사원 이선재 씨는, 이제 자신이 만드는 맥주의 맛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이선재/공동대표 수제 맥주 제조사]
    "승진도 많이 보장돼 있는 회사였고, 충분히 잘 지내고 있었는데 제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나이가 들고 계속 회사에 머물러 있기에는 제가 너무 발전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고."

    대형 금융사의 대졸 사원 최제이 씨는, 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격한 직업으로 인생의 진로를 바꿨습니다.

    [최제이/퇴사 4년 차]
    "회사를 다니면 아, 내가 내 상태로 남아있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 이대로 가면 그 포장은 화려해지고 더 예뻐지고 커지겠지만 그 안에 있는 나는 결국 더 삐뚤어지겠구나."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취업난과 청년실업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대기업 취업의 관문을 힘겹게 통과했으면서도, 자진 퇴사를 결단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세상 물정 모른다'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는 있지만, 나름대로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말합니다.

    2580은 대기업 초년생 시절 퇴사를 결정한 사람들을 만나 봤습니다.

    종합격투기 체육관의 오후.

    남자 선수들 사이에, 훈련에 집중하고 있는 여성 선수가 보입니다.

    아담한 체격에 앳된 얼굴이지만 당당한 포즈가 눈길을 끄는 이 선수는 올해 30살 최제이 씨입니다.

    매일 아침 산 능선을 따라 달리기 훈련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격투기 스파링 동작까지.

    기초체력과 종합격투기 기술을 병행 훈련하고 있는데, 이제는 좀 견딜 만하다고 합니다.

    [최제이/프로 격투기 선수]
    "아무래도 여기 남자들 기본 체력대로 운동을 따라가다 보니 처음에 스파링하다가 발목을 접질리기도 했지만."

    지난주 프로 데뷔전이 열렸습니다.

    최제이 선수의 첫 출전입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날렵한 발차기를 성공시킨 최 씨는 강한 펀치를 날리며 판정승을 거뒀습니다.

    최 씨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고 평가받던 회사원이었습니다.

    금융그룹에서 외환과 펀드 등을 담당했던 그녀는, 금융업계에서 크게 성장해 보겠다는 계획과 자부심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 틀에 박힌 생활이 싫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최제이/프로 격투기 선수]
    "일이 자리에서 항상 앉아있어야 했어요. 아침도 당연히 커피만 사가서 먹으면서 모니터링하고 점심도 배달시켜 컴퓨터 앞에서 먹고 저녁은 클라이언트하고 먹거나 회식 혹은 접대."

    세계 증시를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하는 업무와 잦은 야근, 고객과의 저녁 자리까지.

    [최제이/프로 격투기 선수]
    "졸리니까 커피 마시고 드링크제 마시고 그때 유행하던 '붕붕 드링크'라고 있어요. 비타민 C 해가지고. 그런 거 마시고 속 다 뒤집어지고 저녁때 (회식) 술 마시고."

    급성 신장염으로 체중이 39kg까지 빠진 것이 퇴사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하지만, 무직자가 된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최제이/프로 격투기 선수]
    "우울증이 회사 그만두고 생기더라고요. 커피 홀짝거리면서 뭔가 남들한테 내밀 수 있는 명함도 있고 사회적 지위가 생겼다는 우월감이 있었어요. 근데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게다 깨졌죠."

    그러다 체력 단련을 위해 시작한 운동에서 매력을 발견하게 됐고,

    [최제이/프로 격투기 선수]
    "(TV에서 본) '무아이타이'라는 종목이 굉장히 멋있어 보이는 거예요. 운동하게 된 계기는 심플해요, 그냥 멋있어 보이고 스트레스 풀고 시간을 좀 보내보자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품게 됐습니다."

    [최제이/프로 격투기 선수]
    "내가 회사까지 그만뒀는데 다 접고 넘겼는데 해서 안될 것이 뭐가 있느냐. 오기 같은 게 살짝 생기더라고요, 직장에 투자했던 것을 다른 데 투자하면 뭐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직장인 시절보다 수입은 적지만,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지금의 시간들이 비교할 수 없이 만족스럽다고 합니다.

    [최제이/프로 격투기 선수]
    "내가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 심플하게 얘기해서 근육이 이만큼 생겼다, 어제 달리기를 했더니 오늘은 숨이 차지 않다, 이런 자잘한 것에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내가 한 만큼 돌아온다. 돈은 아니지만 그 눈앞에 보이는 그 즐거움."

    서촌의 한 수제 맥줏집.

    사장 구 씨는 맥주 제조 장치에 원료를 넣고, 분쇄기로 원료를 가는 등, 맥주 제조의 전 과정을 관리합니다.

    별도의 맥주 숙성 시설에는 구 씨가 만든 맥주가 채워져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면 맥주는 완성됩니다.

    [구충섭 대표 (퇴사 4년 차)]
    "골라 먹는 재미가 있거든요, 수제 맥주는 다양성이 있어서 사람들이 잘 찾으시는 것 같아요."

    대기업에 다녔던 구 씨가, 맥주 전문가로의 일생일대 변화를 감행한 것은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구충섭 대표 (수제 맥주제조사)]
    "제 아들이 5살, 2살이어서 굉장히 어렸어요.아이들 모습을 예쁘니까 계속 보고 싶은데 계속 주말에 밤에 못 보니깐. 고민을 많이 했죠. 집에 가서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는데 지금 회식을 12시, 1시까지 하고 있으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휴가로 떠났던 벨기에 여행에서 소규모 맥주 제조창 '브루어리'들을 보면서, '저거다 싶었다'고 합니다.

    [구충섭 대표 (수제 맥주제조사)]
    "벨기에에 굉장히 많은 브루어리가 있어요. 500개 브루어리, 3,000가지 종류의 맥주 스타일이 있는데 계속 마셨어요. 내가 지금 마시러 왔는데 한국에 있는 내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외국과 달리 국내엔 맥주의 종류가 적고 특색 있는 양조장이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 지난해 11월 수제 맥주 양조장과 함께 펍을 오픈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의 안정된 미래는 포기했지만, 즐거운 일상을 얻은 것에 만족한다고 합니다.

    [구충섭 대표 (수제 맥주제조사)]
    "회사 다닐 때가 물론 벌이가 더 좋았고요. 지금은 제 생활에 만족이 되기 때문에 돈의 가치가 제 생활로 넘어온 거라서 많이 못 벌어도 저는 만족하고 있어요, 뭐 밥 먹고살면 되잖아요."

    조기 퇴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로 다가서기 시작하고, 그 결심이 강해져 갈수록, 주변의 만류보다는 '기왕 퇴사할 거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조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합니다.

    '예비 퇴사자'들에게 조언이 될만한 각종 프로그램이 강연 되고 있는 이곳은, '퇴사 학교'입니다.

    [장수한(퇴사 4년 차)]
    "이 중에서 지금 직장인 분들 계시나요? 굉장히 많이 계시네요. 혹시 퇴사하고 싶다, 한 번쯤 생각해본 분 계시나요. 다들 마음속으로 손을 들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삼성전자를 다니다 4년 만에 퇴사한 장수한 씨가 만든 '퇴사학교'.

    다양한 인생 설계 강의 가운데엔 기초 수업인 '퇴사학 개론'부터 퇴사 직후 할만한 세계 일주, 이직 설계 워크숍, 그리고 창업까지.

    20명 정도 수강하는 과목들 대부분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입니다.

    [장수한 (퇴사학교장)]
    "이미 먼저 퇴사를 하고 자신만의 행복한 일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같이 공유하고 케어하고 노하우들을 실습을 통해서 하려고 하니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장씨는 언젠가는 직면할 퇴사를 미리 준비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장수한(퇴사학교장)]
    "회사 스트레스나 홧김에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회사 없이도 자생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내 손으로 만 원이라도 벌 수 있을까. 그런 좀 체계적인 준비를 하고 어떤 게 싫어서 떠나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을 하고 싶어서 그걸 하려고 퇴사하는 게 좋다고 봐요."

    직장인들의 반응은 뜨겁다고 합니다.

    [장수한 (퇴사학교장)]
    "퇴사란 걸 아무도 다루지 않는데 여기서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행복한 일을 찾고 싶은 고민들이 다들 많이 있구나, 위안과 공감을 느끼시는 것 같다."

    [진주화 연구원(LG 경제연구원)]
    "전 세대들은 생존을 위해 일했다면 지금 젊은 세대 같은 경우 좀 더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 좀 더 내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다 보니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퇴사한다.)"

    퇴사를 결행한 사람들이 주는 조언도 새 직업에 대한 철저한 준비입니다.

    누구나 익히 아는 내용이지만 실천은 쉽지 않습니다.

    [국동원(유튜브 제작자)]
    "파도, 물결 치는 걸로 서버에 올려줘요. (산도 필요하지 않아요?)"

    동영상 조회 수 1억이 넘는 인기 키즈 콘텐츠 채널을 운영하는 이혜강, 국동원 씨 부부는, 3년 전까지 대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였습니다.

    대기업 입사 전부터 동영상 제작을 취미로 해왔기 때문에 준비는 충분하다는 자신감 덕분에 직업 전환의 적응 기간이 짧았다고 합니다.

    [이혜강(유튜브 제작자)]
    "회사 다니면서 3개월 동안 밤을 새우면서 유튜브 동영상을 제작했거든요. 뭐, 엄청 큰돈은 아니었는데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제 생각에 '이 정도쯤이면 나중에 전업(퇴사)하더라도 더 잘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기업 입사 때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구충섭 대표 (수제 맥주 제조사)]
    "아카데미도 다니고 배우면서 퇴근 이후에 준비를 많이 했어요. 준비기간으로 치면 한 3~4년 걸린 거 아닌가."

    퇴사를 결행한 뒤 만족감을 느낀다는 퇴사자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일에 진정으로 가슴이 떨리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긴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다만, 더 많은 땀과 노력을 각오해야 된다고 지적합니다.

    [국동원(유튜브 제작자)]
    "24시간 내내 일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매번 아이디어 맨날 내야 되고. 밤 12시까지 편집을 하거나 늦게까지 편집을 더 오래 하거나 욕심이 점점 생기니까."

    [이혜강(유튜브 제작자)]
    "회사일을 할 때는 더 잘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 덜한 거예요. '아, 내가 굳이 근무시간까지 넘어가면서 더 해야 되나. 그냥 집에 가서 쉬지! '그런 생각이 드는데 지금은 제일이잖아요."

    조기 퇴사에 대한 시각은, 안정이냐 모험이냐, 월급이냐 사업이냐, 사회적 지위냐 개인적 행복이냐에 대한 각자의 판단 문제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다만, 가족 부양의 책임감, 회사를 위한 희생정신, 그리고 생업과 행복 추구에 대한 관념 등이 변화되면서, 조기 퇴사자들이 계속 늘어날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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