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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정성기 기자

어느날 유포된 동영상...

어느날 유포된 동영상...
입력 2017-06-26 10:37 | 수정 2017-06-2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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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에 대한 복수심으로 헤어진 연인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는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은밀한 사생활이 만천하에 공개된 피해자들은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유포된 영상을 삭제할 수 있는 법적인 대책도 없어, 피해자가 직접 사설업체에 의뢰해 더 이상의 확산을 막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번 유포된 영상을 인터넷 상에서 완전히 삭제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많게는 한달 수백만 원에 달하는 삭제 비용도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입니다.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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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두 눈을 의심했고,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평범했던 일상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김 OO]
    "저는 되게 그냥 평범하게 착실하게 살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완전 나락으로 떨어진 거죠. 누가 나를 민 것 같이."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사람들.

    [박 OO]
    "'너는 그냥 나가서 죽어라' 라는 그런 고통이 너무 심했거든요. 계속 울렸거든요."

    [최 OO]
    "그냥 '아, 내가 죽어야 되나?' 엄마한테 말도 못 하겠는 거예요. 차라리 엄마한테 말하느니."

    사랑도, 연애도 남들과 다를 것 없었던 평범한 여성들.

    하지만,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이 담긴 영상이 인터넷에 퍼져버린, 이른바 '디지털 성폭력'의 피해자들입니다.

    2580이 만난 그들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낙인이 찍힌 채 하루하루 고통을 숨기며 살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33살 김 모 씨.

    지난해 초, 자신과 전 남자친구의 성관계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고 있다는 얘기를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김 OO]
    "저 정말 사람이 이렇게까지 울 수 있나 할 정도로 울다가 쓰러지고. 그러고 이제 뭐 약 먹고 또 그냥 자 버리고. 생각 자체를 하기 싫으니까 깨어 있는 자체가 고통이에요."

    해당 영상은 결혼을 전제로 3년간 사귀었던 남자 친구가 몰래 찍어 두었던 것으로,

    지난해 초, 이별을 선언한 지 얼마 안 돼 인터넷에 유포됐습니다.

    [김 OO]
    "계속 영상이 올라오는 게 제 눈에도 보여요. 그 사이트에 계속 올라와요. 근데 손은 쓸 수 없고 아무것도 못 하고."

    소문이 퍼지면서 다니던 회사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 OO]
    "회사 내에서 (유출 동영상을) 보신 분이 계셨어요. 그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는 얼굴을 볼 자신이 없더라고요."

    급한 마음에 동영상 삭제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찾았습니다.

    삭제 비용으로 한 달에 수백만 원씩 들었지만, 문제의 동영상이 하루라도 빨리 없어지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김 OO]
    "(한 업체는) 월 150만 원에. 타 업체 같은 경우에는 몇십만 원, 한 40만 원 정도 했었던 것 같아요. 이제 또 치료받아야 되니까 병원 치료, 정신과 치료 안 받으면 살 수가 없거든요."

    악몽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최근, 또다시 그 동영상이 인터넷에 나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합니다.

    [김 OO]
    "(영상을) 못 없애고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하고 싶지가 않아요. 할 수도 없고 내가 지금 이거 다시 한다고 해도 어차피 마찬가지니까. 그냥 내가 정상적으로 지금 행동은 하고 살지만 남들 삶처럼은 못 살 거라고."

    얼마 전까지 대기업을 다니던 34살 박 모 씨.

    작년 여름, 사귀던 남자친구와 심하게 다툰 뒤, 남자친구가 협박을 해 왔습니다.

    그녀의 나체 영상을 유포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박 OO]
    "자기가 뭘 갖고 있는지 몰라서 그러냐고. '몰라서 그래?' 그렇게 협박을 하고. '나는 쓰레기 돼도 되지만 너는 어떻게 살려고 그래?' 그렇게 협박을 계속 하고."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일까지 그만뒀습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찍힌 지도 모르는 동영상이 무려 20개 넘게 있다는 사실을, 재판 과정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박 OO]
    "정말 알지도 못하는 동영상으로 협박을 받았으니까 이게 언제 유포가 됐는지, 어디에 다운(저장)을 시켰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모르니까 너무 불안한 상태여서."

    대학 신입생이었던 최 모 씨는 행복할 줄만 알았던 대학 생활이 한순간 악몽으로 변했습니다.

    중학교 때 낯선 남자와의 스마트폰 화상 채팅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몸을 보여줬던 영상이, 인터넷에 돈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최 OO]
    "엄청 많더라고요. 외국 해외 사이트도 많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행여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봐, 무엇보다 가족들이 받게 될 충격 때문에 하루하루가 두려웠다고 말합니다.

    [최 OO]
    "별 생각 다 했어요. 내가 이것 때문에 죽으면, 이것 때문에 죽었다고 이것도 좀 그렇잖아요. 엄마한테 평생 그거 우리 엄마 욕먹는 일인데 그냥 엄마한테는 아직 말 못해요."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란 불안감에 대학교를 그만두고 사는 곳도 옮겼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그 영상을 보면 어쩌나, 고통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최 OO]
    "만약에 사람들이 다 알면, 그러면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해외에 나가서 살아야 되나? 저는 얼굴도, 얼굴이 다 나왔거 든요. 얼굴을 다 갈아엎고 싶은 거예요. 아무도 못 알아보게."

    영화나 드라마 등 각종 동영상을 다운받을 수 있는 국내 한 웹 하드에 접속해 봤습니다.

    '몰카', '여친' 등의 검색어를 넣자마자, 자극적인 제목이 달린 영상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영상 한 개를 다운 받는 데 드는 돈은 50원에서 100원에 불과합니다.

    이런 동영상들이 해외 사이트로 퍼지게 되면, 해당 사이트를 일시 차단시킬 순 있어도, 유포자를 잡거나 해당 영상을 완전히 지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김호진 대표/데이터 삭제 전문 업체]
    "(해외) IP 주소를 우리나라에서, 사법기관에서 요청할 수도 없고, 요청한다고 해도 줄 권리가 없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이제 범인을 잡을 수 없는 거죠."

    해외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도 한국에서 유포된 몰카 영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동연 / 데이터 삭제 전문 업체 직원]
    "해외 사이트에 있는 것들은 국내 웹 하드에 키워드가 바뀌어서 다른 제목으로, 같은 영상인데 다른 제목으로 올라올 수도 있는 거죠."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몰래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범죄 신고는 최근 5년 새 5배나 늘었습니다.

    전체 성폭력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5%로, 다른 성범죄에 비해 10년 새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피해자 중 상당수는 자신이 범죄에 노출된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실제 피해자는 신고 건수보다 10배 이상 많은, 1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옵니다.

    [김호진 대표/데이터 삭제 전문 업체]
    "실제 자기 자신도 모르게 유포가 된 동영상들이 돌아다닌 걸 국내 사이트, 해외 사이트 분석해 보면 한 10만 건 이상 정도가 있는 걸로 지금 알고 있어요."

    정확한 통계치는 없지만 정신적인 충격으로 극단적인 선택하는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는 게, 동영상 삭제 업체 측의 설명입니다.

    [김호진 대표/데이터 삭제 전문 업체]
    "연락이 안 되는 케이스들이 있어서 저희들이 계속 연락을 해 보면 그 부모가 받고. 아니면 지인들이 받아서 죽었다고 얘기하는 케이스들이 많이 있죠. 그런 케이스들이 보통 한 100건 중 1건 정도는 될 거예요."

    이처럼 디지털 성범죄의 폐해가 심각해지자 지난해 4월, 경찰은 회원 수 100만 명의 불법 음란사이트 '소라넷'을 폐쇄하며,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강력 대응 방침을 천명했습니다.

    [최재호 팀장/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2016년 4월 7일)]
    "몰카라든지 변태적인 거라든지 이런 리벤지 포르노를 올리면 너희들은 처벌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는 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자 유사 음란 사이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김호진 대표/데이터 삭제 전문 업체]
    "소라넷이 폐쇄되면서 소형화되고 전문적인, 각자 관심사 있는 쪽으로 여러 군데로 분배가 된 거예요. 그래서 그거 하나 터지면서 수백 개 사이트들이 퍼지게 된 거죠."

    결국, 피해 예방을 위해선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담는 동영상을 몰래 찍거나, 인터넷 상에 유포시키는 행위를 강력히 단속하고 처벌해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하지만, 피해 신고나 단속의 과정이 피해자가 바라는 만큼 원활하게 진행되는 건 아닙니다.

    술 취한 여성을 성폭행하는 듯한 동영상이 올라온 한 인터넷 사이트를 한 시민이 경찰에 신고하는 통화 내용입니다.

    "제가 지금 '골뱅이'라고 여성이 술 취해서 이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성폭행당하는 영상을 제가 인터넷에서 발견을 했는데 (아 그건 일단 당사자가 우선 (신고)하셔야 되거든요 성폭력 관련해서는)아 당사자만 가능한 건가요? (네네!)"

    성범죄는 피해 당사자가 직접 신고하지 않아도 수사할 수 있도록 지난 2012년 법이 개정됐기 때문에 통화 속 경찰의 답변은 잘못된 겁니다.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초등학생 딸에게 노출 사진을 요구했던 남성을 잡아달라며 최근 경찰서를 찾았던 오 모 씨는 경찰관의 어이없는 답변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오OO/사진 유출 피해아동 아버지]
    "이 사람이 자기 사진을 보낸 게 아닌데 처벌 대상이냐. 오히려 딸이 보냈으니까 딸이 처벌될 수도 있다. 그건 뭐 거의 반협박이죠."

    피해자가 직접 신고를 할 경우엔, 증거수집 절차 등에서 적지 않은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합니다.

    [김 OO]
    "그냥 한 장면만 (캡처)하면 되는 게 아니고. 저와 이제 그런 영상의 내용이 디테일하게 나와야 되는 장면이어야 되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단속에 이어 형사재판이 이뤄지더라도, 가해자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처벌 규정에 몇 가지 허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행 성폭력법상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하고 유포했을 경우에만 벌하도록 돼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 찍은 촬영 물일 경우 제3자가 동의 없이 퍼뜨려도, 상대적으로 처벌이 가벼운 명예훼손죄 정도만 적용됩니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해 1월, 헤어진 내연녀의 나체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한 남성에 대해 해당 사진은 피해 여성 자신이 직접 촬영한 것이란 이유로, 성폭력처벌법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김영미/변호사]
    "영상 수위가 음란물에 해당이 되면 정보통신망 법에 의해서 음란물로 인한, 음란물 유포로 인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있는데 음란물에 미치지 못하는 영상 같은 경우는 사실 입법에 흠결이 있는 겁입니다."

    현행법상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는 징역 5년 이하, 천만 원 이하 벌금형.

    그런데 최근 5년간 서울 지역 각급 법원에서 선고한 1천500여 건의 1심 결과를 분석해 봤더니, 가해자 10명 중 7명은 벌금형을 받았고, 실형을 받은 경우는 5%에 불과했습니다.

    [김보화 연구원/한국성폭력상담소]
    "다른 강력 범죄나 성폭력 범죄하고는 되게 다른 우발적인 요소를 굉장히 보고 있잖아요. 디지털 성폭력은 사실 그것 자체로 상당히 계획적인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고려가 오히려 이 부분에 빠져있다고 하는 점이 문제입니다."

    국회엔 현재 피해자 본인이 촬영했더라도 동의 없이 유포한 가해자를 성폭력 법으로 처벌하고, 스마트폰 등 범행에 사용된 촬영기기를 몰수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개정 법률안 등이 제출돼 있습니다.

    몰래카메라의 판매를 적극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큽니다.

    [전선미 팀장/디지털 성범죄 아웃(DSO)]
    "첫째, 일정한 자격이 있는 사람만 몰카를 취급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둘째, 몰카 구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 역시 만들어 주십시오."

    피해자들에겐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고통으로 다가오는 디지털 성폭력.

    [박 OO]
    "하나의 심한 성폭력뿐만이 아니라 저는 살인 도구라고 느꼈거든요. 저는. 살인 도구예요 이건."

    남의 사생활이 담긴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 역시 '시청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법 제도적 안전장치만큼, 디지털 성폭력의 심각성과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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