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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조의명 기자

'기적의 암 치료기' 만든다더니...

'기적의 암 치료기' 만든다더니...
입력 2017-07-10 10:31 | 수정 2017-07-1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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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 암.

    최근 기존 요법으로는 완치가 힘든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신기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른바 '꿈의 암 치료법 '으로 불리는 중입자선 치료.

    부작용과 통증이 없고 기존 방사선 치료 의 3배 효과를 보이며 수술이 불가능한 암에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입니다.

    그런데 아직 국내에 도입되지 않아 중입자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은 억대의 비용을 들여 일본, 독일 등으로 원정 치료를 떠나야 하는 형편입니다.

    이미 2010년 우리 정부는 중입자선 치료센터 건립을 국책사업으로 지정했습니다.

    국비와 시비 등 1,950억 원을 들여 올해까지 부 산에 국내 유일의 중입자 암 치료센터를 세운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미 예산은 절반 넘게 썼는데 현재까지 완성된 건 빈 건물 뿐. 핵심인 중입자선 치료시설은 7년 동안 나사 하나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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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고양시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김 모 씨는 지난해 11월, 날벼락 같은 통보를 들었습니다.

    턱이 뻐근한 느낌에 병원에 갔는데 조직검사 결과, 악성 뼈암인 골육종이라는 진단이 나온 겁니다.

    [김 OO(가명)]
    "수술 설명을 들었죠. 귀 뒤로 해서 하악(턱) 쪽 절반을 들어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암세포가 빠르게 증식하면서 청력까지 잃어 버리고, 결국 턱뼈 절반을 잘라내는 대수술이 불가피해진 상황, 수술이 성공한다 해도, 예전 같은 일상생활로 돌아갈 순 없다는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김 OO(가명)]
    "앞이 정말 깜깜했죠... 죽는구나 밖에 생각을 안 했어요. 다 끝났다 이제 나이 50밖에 안 됐는데."

    그런데 수술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김 씨는 일본에서 새로운 암 치료법이 개발됐다는 이야기를 지인에게 전해 듣고는 수술 일정을 미루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일본에서 3주간 치료를 받고 귀국했다는 김 씨, 놀랍게도 김 씨 몸에서 자라던 암세포는 몇 달 만에 대부분 사멸했다고 합니다.

    [김 OO(가명)]
    "(의사가) '붓기도 줄어들었고 이 형태에서 이렇게 검은 부분이 나타나는 게 (암세포) 괴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눈에 도드라지게 나타나니까..."

    잃었던 청력도 돌아오고, 통증 때문에 먹던 진통제도 석 달 전부터 끊었습니다.

    왜 이런 치료법이 한국엔 들어오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김 씨는 말합니다.

    [김 OO(가명)]
    "저도 이걸 접하지 못했다면 수술밖에 없으니까 국내에서는, 하루빨리 도입이 돼서 저하고 비슷한 경우에 처한 분들이 치료를 받으면 (좋겠죠)"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로 꼽히는 암, 현대 의학의 가장 큰 과제는 결국 암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수술을 해도 경과를 장담할 수 없던 골육종 환자가 불과 반년 만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비결은 알 수 없는 기적이 아니라, 해외 선진국들이 최근 개발한 새로운 암 치료
    기술 덕분이었습니다.

    도쿄 인근, 한적한 교외에 위치한 일본 국립 방사선 의학연구소 부속 병원.

    이곳에선 지난 1990년대부터 '중입자선'이라는 새로운 방사선치료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병원 지하에 위치한 중입자 치료실.

    360도 회전하는 첨단 치료기가 환자의 몸속 암세포를 겨냥해, 탄소 입자를 방출합니다.

    광속의 70%에 달하는 초고속으로 방사된 미세한 탄소 입자는, 우리 몸의 정상적인 조직을 투과해, 암세포가 있는 위치만 타격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방사선암 치료에 사용되는 X선은 암세포에 도달하기 전 신체조직에 흡수돼 치료 효과도 줄어들고, 부작용의 가능성도 비교적 높은 반면, 중입자선 치료는 특정 지점에 에너지가 집중되는 입자선의 특성 덕분에, 일종의 '스마트 폭탄'처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치료 효과는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노다 코지 박사/일본 국립방사선 의학연구소]
    "수술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경과가 좋습니다. 또 개복 수술은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노인들에겐 맞지 않는 데 그런 의미에서 누구에게나 적합한 치료법입니다."

    실제 치료 효과를 비교해 보면, 초기 폐암의 경우 95%, 전이되지 않은 전립선암은 100% 치료가 가능하고, 수술이 불가능한 간암이나 골육종 암에도 기존 방사선 치료에 비해 두 배 이상의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임상 결과 확인됐습니다.

    물론 중입자 치료가 만병통치인 것은 아닙니다.

    모든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특정 지점의 암세포를 집중 공격하는 특성상 전이가 이뤄진 암엔 적용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수술이 불가능한 난치 암이나, 고령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긴 건 분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금기창 교수/연세 암 병원 방사선 종양학과]
    "어느 정도 진행이 돼서 수술하기 쉽지 않은 간암 같은 경우는 방사선 치료로 하면 기존의 방사선 치료기 갖고는 잘 안 듣는다고 했죠. 왜냐면 암 자체가 방사선에 저항이 강하니까
    그러니까 그런 경우 중입자 치료를 하게 되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될 거고... (암 치료에) 아주 강한 무기가 하나 더 생기는 거죠."

    올해 초 폐암 진단을 받았다는 유삼열 씨도 수술 대신 중입자 치료를 받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왔습니다.

    초기 폐암이라 수술을 하면 완치율이 높다곤 하지만, 폐의 1/3을 제거하고 나면 앞으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은 힘들 거란 말을 듣고, 의사 친구의 조언에 따라 수술 대신 중입자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유삼열]
    "정상인이 (폐 기능) 100이라고 봤을 때... 하나를 떼어내게 되면 50 이하를 가지고 살아야 된대요. 뒷동산도 못 올라간다는데 갑갑하잖아요."

    상담 결과, 단 한 번만 중입자 광선을 쬐면 간단히 치료할 수 있을 거란 의사의 설명을 듣고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야기를 듣고 사기가 아닌가?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한테 붙잡혀가서 잠자고 내려왔더니 자기 암이 다 나았다 하는 식으로..."

    하지만, 문제는 비용입니다.

    중입자 가속기를 이용한 치료비만 5천만 원, 여기에 진단과 검사비, 그리고 치료 준비를 위해 몇 주 동안 외국에 체류하는 비용 등을 합치면 환자 한 명이 감당해야 할 치료비는 평균 1억 원에 육박합니다.

    본격적인 중입자 치료 시스템을 갖춘 곳은 세계에서도 일본, 독일 등 5개국뿐인데, 중입차 치료 설비를 세우는 데 많게는 수천억 원의 돈이 들기 때문에 치료비 역시 거액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삼열]
    "아무래도 일본을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부담이고) 한국에서 만약에 이걸 중입자 치료를 하게 된다고 그러면 일본에서 하는 것보다 절반 이상 (비용이) 떨어진다고..."

    독일의 경우, 자국민에겐 의료보험을 적용해 치료비 90%를 감면해 주고 있지만, 우리나라 환자들은 외국인 신분이기 때문에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습니다.

    20년간의 임상 결과로 효능이 입증되면서 지금도 많은 환자들이 중입자 치료를 받기 위해 큰 부담을 감수해 가며 해외 원정 의료를 떠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시 이미 7년 전부터 이 꿈의 치료기를 도입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은 상태입니다.

    정부는 지난 2010년부터 중입자 치료시설 설립을 국책 사업으로 지정하고,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이미 올해부터 가동이 됐어야 합니다.

    부산 기장군, 널따란 부지에 지어진 신축 건물.

    지난해 초 완공된 국내 최초의 중입자 치료센터입니다.

    두께 1미터의 방호 격벽을 열고 시설 안으로 들어가 봤더니 건물 안엔 전기와 배관 설비뿐, 의료 기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국비와 지자체 예산 등 600억 원을 들여 치료센터 건물은 다 지어 놨습니다.

    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갈 중입자가속기 등 핵심 설비는 자체 연구 개발에 실패하면서 아무것도 설치되지 못했습니다.

    [시설 관계자]
    "건물만 잘 지어놓고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이 이건 뭐냐는 이런 얘기는 많이 듣고는 있는데..."

    세계 최초로 중입자 치료기를 상용화한 일본은 1980년대부터 급증한 암환자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돈 1조 원을 들여 이런 신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20년이 걸렸습니다.

    반면 우리 정부가 책정한 연구개발비는 일본의 1/50인 200억 원, 그마저도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3년 만에 연구를 중단시켰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 담당자]
    "더 이상 연구개발에 더 써서 연구 개발이 안 되었을 때는 계속 구축비용을... 아무래도 지금 구입을 결정하든지 아무튼 그런 부분이 필요한 시점이죠. 무작정 이제 연구비를 그냥 쓸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당초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국비 700억과 지자체 예산 500억, 그리고 외부자본 유치 750억 원을 합해 총 1,950억 원.

    그런데 이 중 건물을 짓는데 660억 원, 개발비 등 명목으로 300억 원이 이미 투입됐고 외부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계획한 750억 원도 조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현재 남은 예산은 불과 200억 원 남짓.

    이걸로는 더 이상 독자적 개발을 이어갈 여력도 없고, 1천억 원이 넘는 치료기를 해외에서 사오기도 어렵습니다.

    정부의 사업이 지지부진 하는 동안, 한 민간 대형병원에선 2020년까지 독자 예산으로 중입자 치료기를 해외로부터 도입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국내 최초의 중입자 치료센터라는 투자명분도 불투명해지게 됐습니다.

    지난 국감에서도 국책 사업을 주관한 미래부와 원자력의학원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문미옥 전 국회의원 /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2016년 10월)]
    "연구개발 사업이 구매사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사업 추진은 미미한데 성과급 잔치는 벌이고 있고... 건설 사업이 돼 버렸습니다."

    기술 개발과 투자 유치를 맡은 원자력의학원이 고도의 안전성을 요하는 첨단 치료기기를 독자 개발할 역량이 애초에 없었다는 내부의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중입자사업단 전 관계자]
    "일반 실험용 기자재를 만들어가지고 쓴다고 하면 실험이 약간 조금 잘 안 된다 하면 고쳐 쓸 수 있고 이런 부분이 있는데, 의료용으로 쓰는 거는 1년 내내 동일한 방사선이 나와야 하는 그런 문제점이 있고."

    국책사업 지정 전 실시된 예비타당성 조사에서도 기술 개발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독자 개발이라곤 하지만 결국 핵심 치료 시스템은 해외에서 도입할 수밖에 없어 원천기술 확보도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개발된 해외 기술을 도입만 할 경우 국비 지원 명분이 없다는 점 때문에, 일단 자체 개발 쪽으로 사업을 진행했다는 겁니다.

    [중입자사업단 전 관계자]
    "아마 만약에 (처음부터) 사온다고 하면 미래부 자체 내에서 그런 걸 허용하는 게 적절한 (국책사업)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아마 개발로 한다고 한 것 같고..."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6년 동안 몇 건의 특허를 획득하긴 했지만 정작 실제 핵심 설비인 중입자 가속기는 설계 도면조차 완성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털어 놨습니다.

    실현 가능한 계획인지, 어떤 방안이 가장 효율적일지는 제쳐 두고, 우선 예산을 따내는 일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한국원자력의학원 관계자]
    "이걸 개발을 하고 뭘 할 능력이 없어요. 애초에 처음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랬고요... (이건 사실 도덕적 해이 아닌가요?)...제가 차마 말씀은 못 드리겠는데..."

    결국, 당장 치료가 시급한 환자와 가족들은 안타까움 속에 해외 원정 치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것도 1억 원이란 거액을 치료비로 충당할 경제적 여건이 되는 환자들 상황이고, 그렇지 못한 환자들은 허탈감 속에 기다릴 뿐입니다.

    인터넷 암환자 커뮤니티에는 언제쯤 돼야 국내에서 중입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지, 성토의 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왕재 수석연구위원 / 나라살림연구소]
    "(연구 개발이) 100%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죠.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의 성과가 의미가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 경우가 다르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그런 실패 사례가 되고 있는 거죠."

    정부는 남아 있는 200억 정도의 예산에다, 외부 기관 투자 750억 원 정도를 받아, 중입자 치료기를 해외에서 수입해 오겠다는 계획입니다.

    현재 서울대병원과 투자유치 협상이 진행 중인데, 사업성을 맞추기 위해선 환자 부담이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문제 때문에 성사 여부가 불투명합니다.

    암환자를 위해서라면 애초에 '일단 개발해 보자'는 방식보단, 검증된 기술을 도입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어야 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보다 명분이 앞세워지고, 사업 키우기가 우선시되면서, 예산뿐만 아니라, 몇 년일지 모를 귀한 시간이 허비됐습니다.

    그 시간들은 어쩌면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겐 생명을 좌우하는 골든타임이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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