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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이지수 기자

'학폭위' 믿을 수 있나요?

'학폭위' 믿을 수 있나요?
입력 2017-07-24 09:55 | 수정 2017-07-2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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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숭의초등학교 수련회에서 발생한 학생들 간의 폭력 사건.

    피해 학생 측은, 대기업 회장의 손자와 연예인 아들 등 4명을 폭행 가해자로 지목했습니다.

    학교 측은, 대기업 회장 손자는 당시 폭행 현장에 있지 않았다며 조사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이민종 감사관/서울시교육청]
    "피해 학생 어머니가 특정 학생을 가해 학생으로 지목했지만, 1차 자치심의위원회 심의 대상에서는 이 학생을 아예 누락시켰습니다."

    폭행 당시 목격자들의 진술도 엇갈렸습니다.

    그런데 일부 학생들의 진술서가 사라지고, 사건 조사 기록이 가해 학부모에게 전달됐던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학교 측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민종 감사관/서울시교육청]
    "담임교사가 최초 조사한 학생 진술서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렇게 각종 학교 폭력 사건들에서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는 배경엔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형태 대표/교육을 바꾸는 새 힘]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서 학폭위가 좌우되거나 유명무실화되는 경향이 있는 게 가장 문제고요."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이른바 학폭위는,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들을 직접 조사해, 그 결과에 따라 가해 학생을 처벌하고,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 조치 등을 마련하는 자치기구입니다.

    위원회 절반 이상을 학부모로 구성해 직접 아이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과 함께 도입됐습니다.

    하지만, 숭의초등학교 사례에서처럼, 학폭위 운영에 대한 공정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진영이 3년 전, 같은 학원에 다니던 동급생과의 사소한 말다툼이 싸움으로 번졌고, 폭행을 당하던 과정에서 길가로 넘어졌는데, 옆을 지나던 차량에 오른쪽 다리가 깔렸습니다.

    전치 4주의 상해 진단이 나왔지만, 지속적인 치료에도 다리 상태는 점점 나빠지더니 결국 올해 초 지체장애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현재 진영이는 당시의 폭행이 장애의 원인이 됐는지 등을 놓고 가해 학생 측과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OOO 김진영(가명) 어머니]
    "통증이 다시 반복되고 경직이 반복되는 게 4년째에요. 하지 지체장애는 이미 병원에서 진단이 나왔고."

    진영이는, 괴로웠던 사건 만큼이나 자신을 아프게 한 건, 가해자를 처벌하고 자신을 보호해 주리라 믿었던 '학폭위'였다고 말합니다.

    당시 폭행 사건이 다른 중학교에 다니던 두 학생 간에 발생한 것이어서, 2개 학교가 공동으로 학폭위를 구성해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가해 학생이 다니는 중학교에선 학폭위원 10명 전원이 모인 반면, 진영이 학교에선 6명의 위원만 참가했습니다.

    [김승혜 단장/푸른나무청소년폭력예방재단]
    "위원회 구성요소, 학교 측 입장이나 태도, 경험 등 이런 여러 변수들이 작용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유일한 증거는 폭행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

    그런데 가해 학교 소속 위원들은 초상권 등을 내세우며 블랙박스 영상 공개에 반대했습니다.

    [OOO 김진영(가명) 어머니]
    "(가해자 학교 위원) 한 분 일어나셔서 적극적으로 막으셨어요."

    당시 두 학교 학폭위원들이 참석했던 회의 기록입니다.

    한 위원이 "사고 당시 영상이 있냐"고 묻자 누군가 "사고 영상은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답합니다.

    이어 또 다른 위원도 "사고 영상과는 상관없고, 폭력사고와 연계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OO중학교 교감]
    "(회의에서 영상을)보여주진 않았지만 설명은 드렸습니다."

    결국, 이날 학폭위에선 진영이의 교통사고와 이로 인한 부상이 폭행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습니다.

    그런데 학교폭력 전문가들은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하지 않은, 당시 학폭위의 조치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탁경국/행정심판위원 서울시교육청 ]
    "이 영상 자체를? (이 영상 공개 자체를 막았어요.) 이걸 왜? 이건 막을 이유가 없는데 이거는 이건 정확한 증거잖아요. 실제로 이건 어떻게 폭행했느냐를 가장 정확하게 나타내는 증거인데."

    이후 진영이와 가족들은 재심과 행정심판을 통해 이의를 제기했고, 1년 반 만에 '폭력행위와 교통사고의 인과관계'를 인정받았습니다.

    [OOO 김진영(가명) 어머니]
    "지금 느끼는 거는 저희 아이 폭행 정도에 대해서 축소하고 싶었구나 하는 거에요. 도대체 뭐 때문에 학교에서, 공정 해야 할 학교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가해 학생 부모는 인터뷰를 대신한 의견서를 전달해 왔습니다.

    가해 학생 측도 다툼의 원인을 규명할 녹취 자료 일부를 학폭위에서 공개하지 못했고, 이후 반성과 뉘우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학폭위는 운영의 공정성뿐만 아니라 징계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기본적인 조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인데요.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미흡하다 보니 2차 폭력이 발생하곤 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현우.

    학교에 갈 시간이지만 오늘도 집을 나서지 못합니다.

    지난 4월, 현우는 같은 반 친구 몇 명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박현우(가명) 초등학교 3학년]
    "책장에 가뒀어. 자주 때리고 여자 화장실에 끌고 가서 때렸어."

    사건 당시 소집된 학폭위는 가해 학생들의 행위를 신체적 폭력으로 인정했지만, 결정된 징계는 서면사과와 접촉 금지, 교내 봉사 활동.

    9단계로 구분된 처벌 수위 중 1~3단계에 해당되는 낮은 수준의 징계였습니다.

    현우의 부모가 반발하자 학교 측은 아이를 잘 보살피겠다며,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자고 설득했습니다.

    [OOO 박현우(가명) 아버지]
    "재심을 청구하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학교에서 하는 말이 '(현우를) 내가 전담마크 하겠다', 담임도."

    하지만, 현우의 또 다른 고통이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한우 때문에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한 가해 학생들이 이번엔 현우를 집단적으로 따돌렸다고 합니다.

    [박현우(가명) 초등학교 3학년]
    "옆에 와서 재수 없어. 없는 XX라고 하면서 내 물건 툭툭 치고 갔어. 10번 정도. 팽이 놀이하면 00에게 왜 현우를 끼워 주냐고 하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현우하고 놀지 말라고 했어."

    학폭위 결정 이후 왕따를 겪는 과정에서 현우의 마음은 조금씩 병들어 갔고, 우울증과 적응장애 진단까지 받게 됐습니다.

    [A 같은 반 학생·박현우(가명) 아버지 녹취본]
    "현우랑 같은 반 학생입니다. OO가 끼워주지 말라고 쟤랑 놀면 안 된다고."

    [B 같은 반 학생·박현우(가명) 아버지 녹취본]
    "무시하고 욕도 했습니다."

    [A 같은 반 학생·박현우(가명) 아버지 녹취본]
    "현우랑 놀지 말라고 팽이도 안 끼워주고 그런 걸 봤습니다."

    현우 아버지는, 학폭위가 진심 어린 반성과 화해의 과정은 생략한 채, 처벌에 따른 보복만 유발했다며 울분을 토합니다.

    [OOO 박현우(가명) 아버지]
    "학교에서 담임, 교장, 교감 선생님이 중재역할을 제대로 했으면 분쟁이 일어날 일도 없는데, 손가락질만 받고 2차적으로 더 피해만 보고 있는 거에요."

    더이상 학교를 믿지 못하게 된 현우네는 관할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고 현재 해당 학교에 대한 감사가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관리 부실의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OO초등학교 교감]
    "어디선가 의도적이지 않은 그런 접촉들은 저희가 도저히 어떤 막을 수 있는 물리적인 방법이 사실 없습니다." 끔찍했던 당시 기억을 서서히 잊어가던 진영이는 최근, 또 한 번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3년 전 자신을 때렸던 가해 학생이 고등학생이 된 뒤, 모 기관의 학교폭력예방 캠페인 학생 모델로 선발됐기 때문입니다.

    [OOO 김진영(가명) 어머니]
    "죽겠다고 울고 나중에 진짜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꺽꺽거리고."

    학교 폭력 가해자가 어떻게 학교 폭력 예방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걸까?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학폭위 징계 조치는 전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됩니다.

    하지만, 경징계에 해당하는 1호와 2호, 3호와 7호의 경우 학교 졸업과 동시에 학생부 기록에서 삭제됩니다.

    나머지 징계는 심의를 거쳐 졸업 당시 삭제 여부가 결정되고, 가장 높은 단계 징계인 퇴학만 학생부 기록에 영구 보존됩니다.

    진영이를 폭행했던 가해 학생은 당시 4호와 5호에 해당하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본인과 보호자 외에는 졸업한 학교의 학생부를 열람할 수 없어, 진학한 고등학교에서도 폭행 전력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홍보 모델 선발 기관 관계자]
    "학교에서 선발을 해준 거에요. 범죄경력을 조회를 할 순 없잖아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좀 어려움이 있죠."

    학생부에 남은 학폭위 징계 기록 때문에, 대학 진학까지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3 수험생 정은이.

    4인방 단짝 친구들 간의 사소한 감정싸움이 따돌림으로 번졌고, 급기야 서로를 학폭위에 신고하게 됐습니다.

    [최정은 (가명) 고등학교 3학년]
    "처음에는 믿기 싫었어요. 교실에 있는 것도 답답하고 힘겹고 학교 가는 게 너무 힘든 거에요."

    결국, 정은이를 제외한 3명의 학생은 학폭위 심의를 거쳐 경미한 징계 처분을 받았습니다.

    징계 기록이 남게 된 친구들은 학생부가 반영되는 올해 대입 수시전형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정은이 역시 학폭위 과정에서 친구들과 공방을 벌이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 때문에 수능 준비도 거의 할 수 없었습니다.

    4명 모두, 정상적 대입 준비를 못 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정은 (가명) 고등학교 3학년]
    "준비했던 자격증 그거 시험 하나도 못하고 다 떨어지고. 수능이 다 날아가는 거에요. 올해 입시는 손도 못 대고 그냥 다 접는 거죠."

    징계 조치를 학생부에 기록하는 건, 입시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부모와 학생 모두에게 민감한 문제입니다.

    [김형태 대표/교육을 바꾸는 새 힘]
    "혹시 그것이 문제 될까 봐 부모들 입장에서는 그렇고, 특히 고등학교에서 심각한 거죠. 중학생도 이제 상급학교 갈 때 문제가 될 수 있고요."

    이 때문에 현행 학폭위 체계는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합니다.

    [전수민 변호사/전 서울시 지역학교폭력대책위원]
    "안 받으려고 학교에다가 문제도 제기하고 그러면서. 대응방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무조건 부인하는 거. 그리고 두 번째는 그럼 너도 가해 학생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결정된 징계 조치에 대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불만을 갖는 사례는 최근 급증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재심 청구는 2.3배 늘었고 재심에도 불복해 행점심판까지 청구하는 사례도 2.4배 증가했습니다.

    이 때문에 징벌적 형태의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형태 대표/교육을 바꾸는 새 힘]
    "무조건 주홍글씨 새기듯이 어린 아이들에게 빨간 줄을 긋는다는 거. 낙인을 찍었다고 해서 그게 학교폭력이 사라지거나 없어지냐 그건 아니잖아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경미한 징계인 1에서 3호까지의 조치에 대해선 학생부에 기록하지 않는 방안을 제시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조영상 과장/서울시교육청 학교생활교육과]
    "학폭법 자체가 징계위주로 조치하게 되지 않았나. 교육적 방법이 더 좋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다."

    다만, 아직은 이르다는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김승혜 단장/푸른나무청소년폭력예방재단]
    "기재 문재가 없어진다고 하면 정말 학폭위 결정을 잘 수용할까요. 1-3호로만 받으려고 사안이 축소되거나 제대로 처리 안 하려는 싸움들이 더 일어나지 않을까요."

    숭의초등학교 사건으로 세상에 한 번 더 알려졌을 뿐, 학교 폭력에 대처하는 현재의 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습니다.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제도에 대해, 위원 구성 방식이나, 조사 절차, 처벌 과정과 기록 관리 등에 대한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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