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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김정환 기자

'탈원전' 첨예한 쟁점들

'탈원전' 첨예한 쟁점들
입력 2017-07-24 10:35 | 수정 2017-07-2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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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 전,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앞.

    신고리 원전 5,6호기 주변 지역 주민 등이 모여 목소리를 높입니다.

    원전 공사를 일시 중단하려는 이사회의 결정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예정대로 건설하라(건설하라 건설하라 예정대로 건설하라)"

    본사 건물 안에선 한수원 노조원들이 이사회 개최를 막기 위해 출입문을 봉쇄했습니다.

    [김병기 노조위원장/한국수력원자력]
    "오늘 이사회는 전부 다 원천 봉쇄하는 걸로 방침을 정했고요. 그걸 그대로 시행을 하겠습니다."

    결국, 두 차례 회의 개최를 시도하던 이사들은 발길을 돌렸고, 공사 일시 중단 결정도 미뤄졌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경주의 한 호텔에서 이사회가 기습적으로 개최됐습니다. 소식을 들은 노조원들이 회의 장소를 찾아 나섰지만,

    "문 잠갔다고? (회의실이 안 보이네!)말 소리가 났어."

    이미 진행된 이사회에서 일시 중단 결론이 난 상태였습니다.

    [이관섭 사장/한국수력원자력]
    "공사 현장의 혼란과 지역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을 오늘 했습니다. 공론화 기간 석 달 동안 공사하는 작업을 일시 중단하게 됩니다."

    노동조합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김병기 노조위원장/한국수력원자력]
    "대한민국의 100년 에너지 정책을 절대 이럴 수는 없습니다."

    주민들도 법적 소송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상대 위원장/범울주군민대책위원회]
    "우리 주민들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돌아가서 법적 대응부터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건 다 할 겁니다."

    뒤에 보이는 곳이 신고리 5,6호기 공사 현장입니다.

    고리 1호기가 40년 만에 영구 정지된 데 이어 정부는 공정률이 30%에 육박하는 이곳 공사도 일단 멈추도록 했습니다.

    안전성과 전력 수급 문제, 그리고 매몰비용 등을 따져서 석 달 뒤에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는 건데요.

    탈원전 정책의 쟁점 사항들을 짚어 봤습니다.

    울산 앞바다를 끼고 나란히 자리 잡은 돔 모양의 신고리 3, 4호기.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5,6호기 공사 현장이 있습니다.

    한창 작업 중이어야 할 크레인들은 가동을 멈췄고, 공사장을 오가던 대형 중장비들도 인근 주차장에 늘어서 있습니다.

    [시공사 관계자]
    "극히 제한적인 유지관리를 한다든가 청소한다든가 그런 작업만 하고 있어요. 왜냐면 새로운 신규 작업은 못하기 때문에."

    최소 5년은 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융자를 받아 6억 원짜리 펌프차를 구입한 김병규 씨.

    갑작스런 공사 중단 소식에 눈앞이 깜깜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원금과 이자로 매달 천만 원씩 빠져나가는 통장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옵니다.

    [김병규/중장비업자]
    "캐피탈하고 직원들 월급하고, 저희 뭐 잘못하면 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까지 지금, 아주 심각합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에는 협력업체 1,700여 곳, 현장 근로자 1천 명을 포함해 모두 1만 2천여 명이 동원됐습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발표된 뒤 하루 아침에 일자리가 위태로워진 관련 종사자들은 울분을 터트립니다.

    [한상준/덤프차 기사]
    "지역 발전 위해서 자율유치를 하자 해서 자율유치를 했는데 이제는 또 짓지 말라 하는 거에요."

    [김광석/펌프카 기사]
    "마음이 참담합니다. 여기에 뭐 어디 철탑이라도 올라가고 싶은 그런 심정입니다."

    갑작스런 공사 중단으로 인근 상인들도 울상입니다.

    손님들로 정신없던 점심 시간, 지금은 테이블 대부분이 비어 있습니다.

    [이진희/식당 주인]
    "이렇게 보십시오. 5월달 선거 전에는 진짜 전화해서 예약 아니면 자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을 해버리니까 더 우리가 어렵죠."

    이달 오픈 예정이던 식당 건물은 공사가 중단됐고, 현장 근로자들을 염두에 두고 짓던 원룸 공사장엔 공사 자재만 쌓여 있습니다.

    [신혜순/건축업자]
    "건축주가 5-6호기 보고 공사 시작했는데 다시 정부에서 발표가 날 때까진 중단하자, 그래 가지고 진짜 저희 같은 건축업자들은 굉장히 손해를 많이 보고 있는 거고."

    이와는 달리 처음부터 원전 건설 반대했던 주민들은 공사 중단이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1년 전 인근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 이후 이 지역 주민들은 혹시 모를 공포에 떨었다고 합니다.

    돔 모양의 원전을, 공사장 크레인을 볼 때마다 불안했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이제는 조금 안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백승권/인근 주민]
    "경주 지진 사고 이후에는 제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왜 진동이 너무 심하다 보니까. 그리고 제가 실제 느꼈기 때문에."

    신규 공사 중단은 물론 현재 가동 중인 원전도 폐쇄할 것을 요구하는 1인 시위는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손종학]
    "고등학교 3학년인 내 아들이 있습니다. 내 아들이 자라고 태어나고 자란 이곳에서 다시 그 애들이 계속 살았으면 좋겠어요."

    환경단체들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일시 중단할 것이 아니라, 아예 백지화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김형근 사무국장/울산환경운동연합]
    "국민들이 값싸지만 불안한 전기 체제에서 안전하고 깨끗한 전기 체제로 전환을 해 내자."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원전 논란의 쟁점은 우선 안전성 문제입니다.

    강진으로 인한 원전 폭발 사고를 소재로 한 재난영화 '판도라'.

    누적 관객 수 4백50만 명을 돌파한 이 영화는 원전 폐지 주장에 힘을 보탰습니다.

    신고리 5.6호기가 추가로 건설되면 영화의 배경이 됐던 부산, 울산 지역에만 원전 9개가 밀집하게 됩니다.

    반경 30km 안에 38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어, 사고가 발생할 경우, 최악의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한병섭 소장/원자력안전연구소]
    "300 만에 달하는 인구가 거기에 밀집돼 있습니다. 이건 전세계에 뭐 미국이나 프랑스나 캐나다를 봤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도의 인구가 많이 밀집돼 있는 건 사실이거든요."

    이에 대해, 원전 존치를 주장하는 측에선, 최근 50여 년 동안 전세계에서 580여 기의 원전이 가동됐지만, 지진에 의한 치명적 피해는 없었다고 주장을 합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역시,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로 인한 침수가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당시 진앙에서 더 가까웠던 오나가와 원전에선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 점을 내세웁니다.

    [주한규 교수/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이 오나가와 원전은 쓰나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어서 침수가 안 됐어요. 후쿠시마 제1발전소만 침수가 돼서 더 이상 전력을 공급 못 하고 그래서 냉각 실패로 큰 사고로 확대된 거거든요."

    안전성 문제는, 건설 중단 여부를 떠나, 정확한 진단과 결론이 내려져야 할 부분으로 지적됩니다.

    원전 건설을 중단할 경우, 그동안 공사 진행 과정에 들어간 비용 등 수조원의 매몰 비용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이 대립합니다.

    야당 측은 신고리 5,6호기뿐만 아니라 이미 계획된 다른 원전들과 석탄 화력발전소도 매몰비용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채익 의원/자유한국당]
    "지금 현재 계획된 원전이라든지 계획된 석탄 화력 발전소, 이것을 총체적으로 다 합하면 엄청난 기하급수적 매몰비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정부 여당 측은 핵연료 사후 처리 비용 등을 생각하면 빨리 결정할수록 이득이라고 말합니다.

    [박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
    "사용 핵연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합니다. 이 건 사람이 음식을 먹고 배출을 못 하는데, 그걸 그럼 후세들에게 맡겨두겠습니까?"

    전기 요금은 어떻게 될까?

    국정기획위원회는 산업용 전기에 대해 바로 내년부터 요금을 단계적으로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전력을 많이 쓰는 산업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건데, 전기 사용량이 많은 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곳은 자동차 부품 등을 만드는 수도권의 한 열처리업체입니다.

    전기 사용이 많다 보니 한 달 전기료만 3천만 원에 달합니다.

    중소업체들은 앞으로 전기료가 최대 3배 이상 오를 수 있다는 소식에,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전기료가 오르면 비용 압박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손태영/열처리업체 대표]
    "전기나 가스 이런 부분이 30% 육박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기요금이 인상된다고 그러면 진짜 다른 방법을 또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또, 한국의 싼 전기료를 보고 한국에 공장을 지은 외국계 기업들이 있는데, 향후 이런 외국 투자가 발길을 돌릴 것이란 주장도 나옵니다.

    결국, 전기료가 얼마나 오를 것이냐가 문제인데, 기관마다, 전문가마다, 전망치가 엇갈립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30년까지 20% 정도 인상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학자들에 따라선, 3배 이상 증가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백운규 장관/산업통상자원부(7월 19일 인사청문회)]
    "일단 전기요금 인상분은 앞으로 5년 사이에 거의 없을 걸로 저희들이 파악하고 있습니다."

    다만,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들은, 현재로서는 전기료 인상 폭의 정확한 예측은 쉽지 않다면서, 향후 15년의 전력 수요와 어떤 에너지원을 얼마나 쓸지를 결정하는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이 올 연말에 확정되면, 그때 정확한 윤곽을 추산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8차 전력수급계획이 올 해 말까지 수립되는데, 그 때 되면 요금인상 부분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습니다."

    최근 공개된 8차 전력수급계획 초안에선, 2030년 최대 전력 사용량을 101.9 기가와트로 전망했습니다.

    이는 2년 전 발표된 7차 계획 당시 전망치와 비교해, 11.3기가와트, 10% 줄어든 사용량입니다.

    이에 따르면, 신고리 5.6호기는 물론 원전 11기를 더 짓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반론도 있습니다.

    원전 찬성 측에선, 인공지능, 전기차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 전반에서 지속적 전력 사용량 증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2년 만에 전력 전망치가 줄어든다는 이 초안은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국가 에너지 정책을 좌우하는 원전 존폐 문제를 비전문가들이 포함된 공론화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참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도로서 집단 지성이 발휘돼 긍정적 결론이 도출될 것이란 기대도 있습니다.

    [양이원영 사무처장/환경운동연합]
    "중요한 정책 결정에 소수의 전문가들이 밀실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열어놓고 국민들에게 그 정책 결정을 맡기는."

    반대로, 비전문가 배심원들이 3개월 만에 결론을 내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이상대 위원장/범울주군민 대책위원회]
    "독일은 탈원전 가는데 공론화만 26년이 걸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3개월 만에 그거 이해가 됩니까."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금요일, 신고리 5,6 호기 전면 중단은 공약대로 밀어붙이지 않고,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하는 합리적 선택을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 중인 독일의 경우, 메르켈 총리가 2022년까지 모든 원자로를 폐쇄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로 전력생산량 100%를 달성하겠다는 입장이고, 프랑스도 원전 비율을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보다 앞선 지난해부터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타이완은 최근 유례없는 전력난에 직면하면서,이달 들어 원전 2기를 재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43기를 모두 가동 중단했던 일본은 이후 3년간 가정용 25%, 산업용 38% 전기료가 급등하면서, 2015년 규슈 센다이 원전을 시작으로 현재 원전 5기를 재가동하고 있습니다.

    탈원전을 선택한 국가들이,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또 탈원전을 선언했던 국가들이 원전을 재가동시키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 땅 위의 원전들은 과연 안전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각종 관련 단체나 기관, 전문가 등이 내놓는 분석과 전망은 정확한 것인지, 분명한 검증과 심도깊은 고민이 모두의 과제로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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