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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조의명 기자

"남자도 수치심 느낍니다"

"남자도 수치심 느낍니다"
입력 2017-07-31 09:23 | 수정 2017-08-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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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경남 진주시청 홈페이지 민원게시판에 성희롱 가해자를 처벌해달라는 탄원서가 올라왔습니다.

    성희롱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주시 소속 환경미화원들.

    시청 청소과 담당 여성 공무원이 여러 차례샤워장을 훔쳐보거나 벗은 몸을 봤다는 등 부적절한 언행으로 자신들에게 수치심을 줬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하지만 시청에서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증거가 없다, 양측 이야기가 다르다며 가해자 공무원을 두둔하고,오히려 ‘무슨 수치심을 느꼈다는 거냐’며 피해자를 몰아붙였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조차 ‘남자가 유난을 떤다’며 이들을 조롱했다고 합니다.

    여성 피해자 못지않게 많다는 남성 직장 성희롱 피해자들입니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고, 세간의 시선도 곱지 않아 결국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사연을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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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낮의 찜통 같은 햇볕 아래, 비 오듯 구슬땀을 흘리며 버려진 가구를 실어 가는 사람들.

    경남 진주시에서 대형폐기물 수거 업무를 맡고 있는 환경미화원 정 모 씨는 이달 초 기분 나쁜 일을 겪었습니다.

    환경미화원 관리를 담당하는 시청의 여성 공무원이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정 씨에게 이상한 농담을 던졌다는 겁니다.

    [정 OO/환경미화원]
    "말끝에 자기가 "오늘 OO동 차고지의 환경미화원 아저씨들 거 다 봤다. "그렇게 자랑스럽게 나한테 얘기를 하는데."

    영문을 몰라 동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더니, 그날 오후 환경미화원들이 이용하는 샤워장에서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40대 여성인 이 담당 공무원이 다가와 창문 너머로 말을 걸어왔다고 합니다.

    [이 OO/환경미화원]
    "내가 바지를 갈아입고 올리려고 보니까 밖에서 말소리가 나는데, 그분이 오시면서 나한테 '오늘은 병원 안 갑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그때 내가 바지 잡고 있는 상태에서 앞으로 다가오더라고."

    옷을 반쯤 걸친 채 얼떨결에 대답은 했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는 환경미화원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은 다음날에도 똑같은 행동을 했고, 비로소 항의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샤워하고 나와서 팬티만 입은 상태로 앉아 있는데 창문으로 걸어와서 이야기한다는 거는."

    "만약에 여자가 지금 이렇게 했으니까 문제가 이상하게 되는데, 만약 남자가 그랬다면 이거 완전 쇠고랑 감 아닙니까?"

    정 씨 등 환경미화원들은 감독 부서인 진주시 청소과에 담당 공무원의 이런 행동은 성희롱이 아니냐며 하소연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불쾌하지만 대단찮은 해프닝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문제 제기 이후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많은 남자들이 무슨 성희롱을 당하냐며, 비아냥거리는 반응이 제일 먼저 돌아왔습니다.

    문제를 제기한 지 며칠이 지나 진주시청 감사관실이 진상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피해자 신분으로 출석한 환경미화원들, 하지만 오히려 매서운 추궁을 당했다고 합니다.

    [진주시청 감사 담당관]
    "(공무원이 다가오는데도) 팬티만 입고 TV를 계속 보고 있었다는데 수치심을 느꼈다면 옷을 입을 생각도 하고 이래야 하는데, 계속 TV를 그대로 보고 계셨다 했거든요? (저는 TV 볼 그런 기분 아니었습니다.) TV 안 봤다? (TV 앞에 있어도 TV가 눈에 들어옵니까?)"

    창문이 작아서 전신이 보일 정도도 아니고, 봤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심 OO/환경미화원]
    "'내가 만약 그런 경우였으면 좋았겠는데 당신은 왜 수치심을 느낄 정도였느냐. 네가 무슨 남자로서 젊은 여자한테 그런 행위를 당한 게 뭐가 부끄러운 일이냐?' 이렇게 역으로 막 만들어 가는 거예요."

    성희롱 진술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게 원칙이지만, 당시 조사실엔 직속 상급자인 청소과 간부들과 해당 여성 공무원이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오락가락한다는 질책을 받았다고 환경미화원들은 주장합니다.

    [정 OO/환경미화원]
    "사실관계 확인만 한다고 그랬는데 이건 경찰 조서 받는 것보다 더 협박하면서 '이게 잘못되면 무고죄로 해서 옷 벗고 나갈 수도 있다'..."

    [진주시청 감사관실 담당관]
    "저쪽(담당 공무원) 조사를 다 했어. 절대로 그런 적 없다 하거든? 물증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이야.법원에 가면 다 집니다. 우린 증거주의거든. 선생님이 성희롱이라고 고발했는데 증거가 없으면."

    시청 감사관실 측은 이번 사건은 성희롱이 아니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고, 가해자로 지목됐던 담당 공무원은 거꾸로 문제를 제기한 정 씨 등 환경미화원들을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청소과 담당 공무원]
    "제가 잠시 이야기만 하고 갔는데 그것을 수치심을 느끼셨어요? 보지도 못했는데, 저는 안에 계신 줄도 모르는데. 저는 너무 억울한 거예요 이게. 여성이 어떻게 남성을 성희롱을 해요?"

    예기치 않게 문제가 커지면서, 몇몇 동료 환경미화원들도 사소한 일로 분위기를 어지럽힌다며 정 씨 등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정 OO/환경미화원]
    "같은 동료인데 옆에서 말 한마디라도 같이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하고 더 비아냥대는 말투."

    [심 OO/환경미화원]
    "'문 단단히 닫아라. 성희롱 당할라' 이건 당사자 피해자들한테는 이게 엄청 수치스럽고."

    진주시청 감사관실 측은 성희롱 여부와는 별개로 조사 과정에서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진주시청 감사관실 담당관]
    "이런 것 갖고 성추행(희롱)이 아닌데 왜 이런 것 가지고 신고를 하냐 그게 뭐냐 한 적은 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런 부분이 있었다면 그 부분은 사과드립니다."

    직장 성희롱 문제를 조사해 본 게 처음이라 세부적인 규정은 잘 모른다고 털어놨습니다.

    "(만약에 성별이 반대였다면, 이렇게 조사를 하셨겠어요?) 우리가 처음 다룹니다. 처음 다뤄 보는데 (남녀 통틀어서?) 네."

    환경미화원들은 성희롱보다 신고 이후 벌어진 강압적인 조사 과정과 싸늘한 주변의 시선이 더 큰 상처가 됐다고 말합니다.

    궂은 일 하는 사람이고, 나이가 많고, 남성이라 해도, 최소한의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항변합니다.

    [심 OO/환경미화원]
    "남자 여자 떠나서 기본 해서는 안 될 일 이런 건 같은 사람으로서 같이 대접받고 싶고요. 그런 상황에서 이걸 어떻게 좀 고쳐주십사 하고 이런 부분을, 조사하면서 사람을 더 역으로 죄인을 만들어버리고..."

    성희롱, 성차별 문제 하면 자연스럽게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의 구도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이 피해자인 경우도 여성 못지않게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민하다 그냥 넘어가거나, 피해를 호소해 봤자 냉소적인 시선만 받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지난해 직장인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희롱 해당 사례를 제시한 뒤, 같은 경험을 겪어봤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한 사람은 29%, 여성이 34.4%로 더 높지만, 남성도 네 명 중 한 명이 예라고 응답했습니다.

    하지만 '성희롱을 당했느냐'고 질문을 바꾸자, 그렇다고 응답한 남성의 비율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수치심을 느껴도 성희롱으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서유정 연구위원/한국직업능력개발원]
    "남자 분들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 불쾌감을 느꼈더라도 그걸 성희롱까지 연결시키지 않으니까. 남자의 입장에서 내가 성적 약자의 입장에 처해지는 건 굉장히 우리나라 사회에선 특히나 부끄러운 일이 되잖아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직장 성희롱은 대부분 '여자라서 안 된다.' 식의 발언, 부적절한 신체적 접촉, 외모에 대한 불쾌한 지적 등에 집중돼 있는 반면 남성이 대상인 성희롱은 성적 농담의 대상이 되거나, 음란물을 보라고 하거나, 또 성매매 업소에 함께 가자고 강요하는 등의 형태가 제일 많이 이뤄지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은, 여성보다도 오히려 같은 남성에게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6배 이상 많습니다.

    [김혜정 부소장/한국성폭력상담소]
    "'남성들은 다 그런 거 아니야'라고 하는 문화가 있잖아요. 그런 속에서 내가 성(문제)에 대해서 나는 개인의 인권인데 이것이 침해당했어라고 하는 것을 호소하는 것이 그 문화적인 남성성 안에서는 어려운 일이 되고, 오히려 가해자가 되기를 부추겨진다거나."

    대구의 한 국책은행에서 청사 경비요원으로 일했다는 김모 씨(가명), 지난해 초 입사 두 달도 안 된 김 씨를 직속 상사인 남성 간부가 술자리로 불러냈습니다.

    이 간부는 김 씨를 노래방에 데려가 여성 접대원을 부르더니, 자신이 보는 앞에서 성적 행위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김 OO]
    "저는 괜찮다고 그냥 간단하게 앉아서 노래 부르다가 가시죠 이렇게 말씀드렸는데, 앞에 앉아서 지시를 하시더라고요. 뭐 좀 주물럭거려 보고 XX도 한번 해 보라고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남자 XX가 그런 것도 못 하냐고. "그래서 근무 어떻게 서겠니?"

    완곡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강요가 계속되자 김 씨는 결국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얼마 뒤, 다른 직원의 투서로 해당 간부에 대한 사내 감사가 진행되자, 김 씨는 이 사실을 회사에 알렸습니다.

    [OO 은행 감사 담당관 (지난해 5월)]
    "(가해자가)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해요. 술에 취해갖고 그래도 어쨌든 잘못한 것은 확실하고 (네) '남자끼리라서 별것 아니야' 이럴 수도 있지만 OO 씨는 안 그런 것 같네. 그런 것 갖고 굉장히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것 같네! 그렇죠?"

    가해자는 감봉 징계를 받고 다른 지점으로 전출됐고, 회사 측의 공식 사과도 받았지만 하청 계약직인 피해자 김씨는 동료들로부터 은연중 따돌림을 받았고 1년도 안 돼 회사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김 OO]
    "솔직히 예상은 했었어요. 이런 일이 터지면 분명히 용역인데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근무 태만, 회사 불만 이런 식으로 말 만들어서..."

    은행 측은 정상적인 계약 만료일 뿐, 일부러 내보낸 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김씨는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해 보려고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마땅히 도와줄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 OO]
    "어차피 비정규직이고 용역인데, 여기에선 소모품이라고밖에 생각 안 하는데. 그리고 남자인데 뭐 그런 것 갖고 그러냐고 그냥 소주 한잔 먹고 잊고 화해하고 하면 되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주로 계약직, 신입 사원 등 상대적 약자들을 표적 삼아 벌어집니다.

    남성의 경우 성차별적인 욕설이나, 폭행 등 명백한 피해에 대해서는 여성에 비해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대응하지만, 성희롱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여성 피해자보다 신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혜정 부소장/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제)에 대한 남성 피해자라는 어떤 자리가 사회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 여성들 같은 경우엔 '더 부끄러워해야지 이걸 말했냐'라고 하는 것이 더 많이 요구되는 거라면, 남성들은 '좋아하는 것 아니야?'라고."

    여성보다 피해 건수가 적고, 피해 정도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경우가 많다 해도, 소홀히 다룰 순 없는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서유정 연구위원/한국직업능력개발원]
    "남자 여자가 아니에요. 피해자와 가해자에요. 성희롱의 대상인 피해자는 보호를 해 줘야 되고 더 이상 이걸 겪지 않도록 안아줘야 되는 대상인 거고, 가해자는 저지해야 되고."

    [김혜정 부소장/한국성폭력상담소]
    "(남성들도) 나를 정말 공감하고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집단을 찾아서 도움받을 분명한 권리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도움을 받으셨으면, 문을 두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장 내 성희롱은 회사 내 권력관계에 따른 폭력입니다.

    남녀노소를 떠나 누구나 직장 생활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남성이니까 상관없지 않냐'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 고민하는 남성들의 피해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자리잡히고, 그들의 문제 제기에 우리 사회가 대응하는 방식이 보다 세심하게 정립돼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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