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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노경진 기자

대법원 간 '사리원' 간판

대법원 간 '사리원' 간판
입력 2017-07-31 11:00 | 수정 2017-07-3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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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간 영업해온 가게 이름이 한순간에 불법이 돼 고발당하거나, 무효가 돼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1992년 서울 서초동에 개업한 유명 음식점 ‘사리원불고기’는 대전 지역 음식점인 ‘사리원면옥’이 상표등록을 하면서 더 이상 ‘사리원’이라는 상호를 사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20년 역사의 참치전문체인점 ‘독도참치’는 일부 가맹점주들의 소송으로 상표 자체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현저한 지명만으로 된 상표는 등록될 수 없다’는 상표법 조항 때문인데, ‘현저한’의 기준 자체가 매우 주관적이라 이같은 분쟁은 수시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브랜드 가치, 품질, 입소문 등 유무형의 가치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사례 역시 적지 않습니다.

    명확하지 않은 상표법 규정으로 인해 발생한 각종 분쟁 사례를 통해, 현행 상표법의 문제점과 개선 과제 등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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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 낮 점심 시간.

    찌는듯한 더위에 휴가철이지만 손님이 제법 많습니다.

    쌀밥과 된장찌개.

    불고기에 갖은 반찬.

    친숙하고 정감있는 상차림에 걸맞듯 식당 이름도 한정식로 유명한 도시 '전주'를 딴 '전주식당'입니다.

    [차동진]
    "(여기 이름이 전주식당이잖아요?)음식을 잘하니까 전주식당이죠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손님들도 음식과 식당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고 평가합니다.

    [이나영]
    "'전주'하면 한정식 느낌이 들죠. 그래서 반찬이 잘 나올 것 같은데 역시나 반찬은 잘 나와요."

    여러분은 식당을 고를 때 주로 무엇을 보고 고르시나요?

    아직 가보지 않은 식당이라면 음식의 종류나 간판을 보고 찾게 될 겁니다.


    이때 이렇게 '전주'처럼 음식으로 유명한 어떤 지역을 이름으로 내걸었다면 훨씬 발길이 닿기 쉽겠죠.

    최근 이처럼 인기있는 이름, 즉 지역명 상표를 놓고 이를 차지하려는 외식업체나 식품업계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대형 한식당.

    불고기와 냉면 등으로 유명해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식당 간판엔 마지막 글자를 떼어낸 흔적이 선명합니다.

    원래 식당 이름은 '서초 사리원'

    하지만, 석 달 전부터 '원'을 떼고 '사리' 두 글자만 남긴 채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기용 부장/구 서초 사리원]
    "(원 자 이거 떼버리신 거죠? 아예 원 자를)네. 원 자를 뗀 겁니다 (못 자국이 아주 선명하네요.) 외국인들도 와서 많이 찍어가거든요."

    간판뿐 아니라, 수저 놓는 종이에서도 사리원 표시를 잘라 냈고 직원들 명찰엔 스티커를 붙여 사리원을 가렸습니다.

    이 식당은 '사리원불고기'란 이름으로 서울에만 9개, 필리핀에도 몇 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모두 사리원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서초본점은 일단 '원' 자만 떼냈고, 다른 지점들은 '사리원'을 '사리현'으로 바꿔 영업 중입니다.

    [남무정 부장/구 서초 사리원]
    "저희가 수십 년 동안 써왔던 명칭을 다 내려라. 상표를 다 내려라. 간판 내려라 라고 한다면 과연 그러한 이익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그런 이익은 누가 가져가게 되는지. 그럼 고스란히 우리가 노력한 것을 상대방이 고스란히 이용해서 이익을 얻게 되는 건인지."

    황해도 사리원시 출신인 현 식당 대표의 외할머니가 1970년대 불고깃집을 연 이래 1992년부터 <사리원>이란 지명을 상호로 달고 영업해 왔다는 이 식당.

    이곳이 사용 못 하는 '사리원' 간판을 그렇다면 누가 사용하고 있을까?

    대전광역시청 옆 대형 냉면집.

    오후 2시가 다 되가는 시간이지만 여전히 북새통입니다.

    냉면뿐 아니라 불고기, 갈비탕 등의 메뉴도 인기입니다.

    서울 사리원과 메뉴도 유사한 이 식당의 이름도 '사리원'.

    서울의 '사리원'과는 전혀 관련없는 대전 지역 토종 업체로

    현재 '사리원'이란 단어의 법적 상표권자입니다.

    [김래현 대표/대전 사리원]
    "저희 아버지 3대 김형근 씨께서 1994년에 상표를 출원하셨어요. 그래서 1996년에 등록을 받았고 그때부터 지금 21년 동안 정당하게 상표를 유지하고 있고."

    1951년 황해도 사리원시에서 피난온 현 대표의 증조할머니가 냉면집을 연 이래 60년 넘게 영업해 온 역사가 한쪽 벽면에 빼곡히 기록돼 있습니다.

    서울과 대전 양쪽에서 각자 전통 있는 맛집으로 영업해 온 두 사리원.

    갈등은 2015년 시작됩니다.

    [김래현 대표/대전 사리원]
    "2015년경에 대전뿐 아니라 제가 전통에 대한 자긍심도 있고 애정이 있는 부모님이 정말 목숨처럼 생각하신 상표이기 때문에 그런 상표를 좀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래서 전국이나 해외까지도 한 번 열심히 해서 우리 상표를 알려보자."

    2년 전 전국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려 한 대전 사리원이 서울에 이미 또 다른 '사리원'이 활발히 영업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지난 1996년 '사리원' 상표권을 등록한 대전 사리원 측은, 자신들이 사리원의 법적 상표권을 가지고 있으니, '사리원'을 무단 사용하지 말라며 서울 사리원 측에 내용 증명을 보냈고, 이때부터 서울과 대전 두 대형 음식업체 간 법적 다툼이 시작됐습니다.

    법원은 2심까지 대전 사리원 측의 사리원 상표 등록이 유효하다며 대전 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에 따라 대전 사리원 측의 독점적 권한도 유효합니다.

    3심에서 결과가 바뀌지 않는 한, 서울 사리원은 앞으로 '사리원'이란 상표를 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서울 사리원 측은 눈물을 머금고 일단 '원' 자만 지워 놓았고, 그 사이 대전 사리원은 서울 종로 한복판에 대형 매장을 내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 중입니다.

    서울 사리원 측은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입니다.

    서울 사리원 측은 왜 진작 상표를 등록하지 않았을까?

    서울 사리원 측은, 엄연한 북한의 7대 도시인 '사리원'을 현행법상 특정 개인이 독점 가능한 상표로 인정해선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상표법은, '현저한 지명만으로 된 상표는 등록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사리원은, 현저한, 널리 잘 알려진 지명이니 당초 상표 등록이 되지 말았어야 했고, 따라서, 대전 사리원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명칭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남무정 부장/구 서초 사리원]
    "상업적으로 도시명을 독점하게 만들어주면서 그거를 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저희로서는 여태까지 쌓아왔던 그것도 한 해 두 해 한 것도 아니고 수십 년 동안 고객들이 저희를 알고 저희 역시 그렇게 노력해 왔는데, 그런 부분들이 어떤 한 사람한테 독점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거는 저희로서는 너무나 억울하고..."

    반면 대전 사리원 측은, 20년 전 상표를 등록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사리원'이란 단어가, 상표 등록이 안 될 만큼 널리 알려진 지명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양측이 소송 과정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선 북한에 사리원이란 도시가 있다는 걸 안다는 답변이 20% 내외에 그쳤습니다.

    그러니, 상표 등록을 먼저 한 대전측이 사리원의 독점적 사용 권한을 갖는다는 주장입니다.

    [김래현 대표/대전 사리원]
    "현저하냐 아니냐를 판단을 할 때 백이면 백 사람 다 답이 틀리더라고요. 사리원을 지명으로 알고 계시지 못한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현저한' 지명만으로 된 상표는 등록할 수 없다는 현행 상표법.

    널리 알려진 지역명을 특정인 또는 특정업체가 상표로 독점 사용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 법의 취지입니다.

    그래서 현저히 알려진 지명, 예를 들어 서울·부산 등은 상표 등록이 안 되고, 누구나 상호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주인이 각기 다른 서울식당, 전주식당, 제주횟집 등, 지역명을 내건 식당들이 전국에서 자유롭게 영업 중인 것입니다.

    [백인현 사무관/특허청 상표심사정책과]
    "현저한 지리적 명칭은 자기와 자타 상품을 식별하는 그러한 힘이 없고 그리고 공익상 특정인에게 독점권을 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취지에서 그 상표 등록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저한'이라는 표현이 주관적이고 모호하다 보니, 분쟁 소지가 다분합니다.

    게다가 유명한 지명이기 때문에 상표 등록이 안 되는 경우는 우리나라와 중국 등 몇 개 나라에 불과합니다.

    [최덕규 변리사]
    "외국에서는 그 상표법에 그런 지금 법리, 상품과 아니면 서비스업과의 관계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면 등록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법리하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등록이 된 겁니다."

    예컨대 금산의 특산물인 인삼에 대해 누군가 '금산인삼'이라고 상표를 내버리면 금산의 다른 인삼 농가들이 금산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하니, 개인 상표는 등록을 금지하는 게 타당합니다.

    하지만, 인삼과 큰 상관이 없는 서울이나 부산으로 이름을 붙여 서울인삼, 부산인삼을 상표등록 하는 건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덕규 변리사]
    "현저한 지명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상품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 예로서 뉴욕제과. 제과하고 뉴욕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부산 파이프. 부산하고 파이프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겁니다."

    우리나라 상표법의 애매모호함 때문에 해외에선 정식 등록돼 널리 사용되는 지역명 상표가, 국내에선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코카콜라에서 만드는 커피 브랜드 조지아.

    코카콜라 본사가 미국 조지아 주에 위치한 데서 기인한 브랜드로 영문 조지아 위에 커피 문양을 표시했습니다.

    1975년 일본에서 처음 출시된 뒤 2008년 국내에도 판매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상표 등록이 거절됐습니다.

    역시 미국의 조지아주가 널리 알려진 '현저한' 지명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결국, 7년간 무등록 상표로 제품만 출시되다가 2015년 가까스로 상표등록이 됐습니다.

    예외 규정을 적용받은 겁니다.

    현저한 지명으로 된 상표라도 오랜 기간 사용돼 사람들이 널리 알게 되면 등록할 수 있다는 것.

    서울우유도, 서울이란 다 아는 지명이 상표로 등록될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팔려온 제품이란 점이 고려된 것입니다.

    만약, 세계적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이 국내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상표를 심사하고 등록하는 특허청은 아마존 또한 브라질의 현저한 지명이기 때문에 상표 등록이 바로 된다고 답하기 어렵다면서, 예외 규정에 해당하는지 판단해 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백인현 사무관/특허청 상표심사정책과]
    "(아마존이 국내 상표 출원을 하면) 사용에 의한 식별력도 국내에서 사용된 실적을 가지고 국내에서 인식도를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아마존 사례가 지금 들어왔을 때 그것이 바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저한 지명'에 대한 해석의 애매함 때문에 예외 규정이 생겨났고, 이 예외 규정 때문에 또 다른 피해를 본 사례도 있습니다.

    붉은 참치 뱃살을 솜씨 좋게 잘라내 먹음직스럽게 접시에 펼쳐놓습니다.

    국내 참치전문 체인점 <독도참치> 입니다.

    1999년 처음 문을 열어 한때 가맹점 2백여 곳.

    연매출 1천억 원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현재 이 <독도참치>란 상표가 무효가 되면서 사업 운영에 적잖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경호 변리사]
    "가맹 본사는 20여 년간 사용하고 3년간 등록하고 유지해 오다가 그것이 사소한 문제 때문에 무효가 돼 가지고 가맹점들과의 사이에서 이제 계약 문제도 생기고 해 가지고 엄청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정신적물질적으로도 굉장한 피해를 많이 입고..."

    당초 독도 역시 현저한 지명이기 때문에 상표 등록이 안 되지만, 오랜 기간 사용되면 등록이 가능하다는 예외 규정을 적용받아 2013년 상표 등록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때 특허청이 조건을 하나 내걸었는데 '독도 근해에서 잡힌 참치를 사용한다'는 걸 상표 등록 서류에 적어내라는 것.

    <독도참치>측은, 참치는 원양어업에서 잡히는 거라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고 합니다.

    [이경호 변리사]
    "그런 것을 의견을 제출했는데 심사과정에서 무시가 되었고 또 통상 그렇게 통지가 나오게 되면 심사관이 요구한 대로 그냥 괄호 안에 그렇게 한정을 해서 등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상표 등록된 <독도참치> 그런데 이번엔 일부 가맹점주들이 <독도참치> 상표를 무효로 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독도참치>에서 독도 근해에서 잡힌 참치만 파는 게 아니니, 이를 근거로 한 상표 등록은 잘못됐다며
    일부 가맹점주들이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작년 8월 대법원까지 간 소송의 결과는 독도참치 패소.

    독도참치 측은 특허청이 제시한 비현실적 조건 때문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장동수 사장/독도참치 중동점]
    "참치가 어디에서 잡히는지 알거든요. 근해에서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다들 알고. 대양에서 인도양이나 남태평양 뭐 이렇게 참치가 잡히는데 어느 산, 어디에서 잡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손님들은 부위를 많이 궁금해 하세요."

    비록 '독도참치' 상표 자체는 무효화됐지만, 지난 5월에는 다른 이들이 이 '독도참치' 상표를 본사 허락 없이 사용하는 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도 나왔습니다.

    지역명 상표 기준의 모호성 때문에 법원도 일관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독도참치 측은 주장합니다.

    한 끼를 먹어도 미식가의 평론과 온갖 SNS를 벗 삼아 맛집과 원조 식당을 찾아다니는 요즘 이같은 지역명 상표권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업체는 안정적인 상표권으로 브랜드와 품질 개발에 매진하고 소비자는 상표를 통해 제대로 된 정보를 얻고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보다 정교한 상표법 손질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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