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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10회] 추적, 사모님의 특명... 밀수에서 위장 채용까지

[스트레이트 10회] 추적, 사모님의 특명... 밀수에서 위장 채용까지
입력 2018-05-14 07:55 | 수정 2018-05-14 07:55
스트레이트 10회 추적 사모님의 특명 밀수에서 위장 채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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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기자]
    양윤경 imagine0402@gmail.com
    이정신 geist1@imbc.com






    ◀김의성▶
    안녕하십니까. 스트레이트의 김의성입니다.

    ◀주진우▶
    안녕하십니까 주진우입니다.

    ◀김의성▶
    물컵 하나가 불러온 나비효과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막말, 폭행, 대학 부정 편입학, 일감 몰아주기, 업무 방해, 밀수, 탈세, 임직원들의 블랙리스트 작성까지 모든 것들이 다 대한항공 조양호 일가에서만 나온 이야기입니다.

    ◀주진우 ▶
    조씨 일가는 치외법권 지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대한항공은 조씨의 왕국이었고 그 가족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요.

    ◀김의성▶
    네 정말 양파 같은 가족입니다.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의혹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스트레이트의 추격자 양윤경 기자 그리고 이정신 기자가 어디에서도 다룬 적 없는 조씨 일가의 불법행위에 취재를 해왔다고요?

    ◀양윤경▶
    오늘 방송의 주인공은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입니다. 제가 이번 취재를 해보니까 이분은 진정으로 법 위에 사신 불법 왕국의 여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김의성▶
    이명희 씨는 공사장 갑질 동영상으로 아주 유명해지셨잖아요. 호텔 증축 공사장에서 막 조경회사 직원들 폭행하고, 서류를 집어 던지고, 장풍을 쏘고

    ◀주진우▶
    샤우팅

    ◀김의성▶
    네, 그야말로 난동을 부리는 그런 영상이었는데요.

    ◀주진우▶
    둘째 딸 조현민 씨도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폭행과 업무방해. 이명희 씨는 경찰 소환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양윤경▶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보실 내용은 폭행, 불법행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명희 씨는 대한항공 회장 사모님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세계 곳곳에 파견 나간 지점장들 그리고 본사 직원들을 온갖 불법행위에 동원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국적항공사 대한항공 안에서 비밀스럽게 벌어지고 있었던 회장 사모님의 불법지시와 갑질을 낱낱이 공개하겠습니다.




    [VCR]

    1. 특명: 제철과일을 찾아라!


    2014년 4월부터 7월 사이, 대한항공 비서실과 터키 이스탄불 지점장 사이에 긴박한 이메일이 오갑니다.

    4월 28일 새벽 2시15분 비서실:
    "6월-7월이 최적기겠지만 다시 한 번 확인 부탁드립니다."

    같은 날 현지 시각 아침8시40분 이스탄불 지점장:
    "이상 기온으로 상황이 변하고 있으니 이번 건 관련 지속적으로 확인해 최적의 시기를 맞추겠습니다."

    "업무 인수인계시 전달하여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문제일까.. 최적의 타이밍에 대한 고민은 계속됩니다.

    6월 5일 새벽 6시10분 비서실:
    "지난 4월 문의 드린 바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적기가 언제쯤일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현지 시각 새벽3시47분 이스탄불 지점장:
    "요즘 이상 기후인지 이스탄불에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늦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디데이를 언제로 할지 치열한 논의 끝에 마침내 작전은 성공합니다.

    7월 1일 낮 12시17분 비서실:
    "내일 오전 중으로 조사하여 보내주시면 보고 드리겠습니다.“

    7월 7일 새벽 3시53분(6일 밤 9시53분) 이스탄불 지점장:
    "KE956편으로 7일 오후 1시 20분 도착하는 비행편에 송부했습니다. 가방 번호는 KE 676538입니다."

    지점장이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며 최적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현지 상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후임자에게 차질 없이 인수인계해주며, 비서실과 지점 사이 007작전이 무색할 석달 간의 긴밀한 공조 끝에 대한항공 국제선을 이용해 들여온 이 물건.

    바로 살구입니다.

    이메일 제목은 모두 "사모님 지시사항 : 살구".

    "사모님께서 터키 살구가 언제가 철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가장 맛이 좋을 시기를 확인 부탁드립니다",
    "살구 당도가 아주 좋다고 하니 내일 청과물 시장 방문하겠습니다",
    "지난주 날씨가 좋아 살구 당도가 아주 좋다고 합니다."
    "최고 상품이 없으면 (시장에) 재방문하겠습니다."

    해외 지점장이 본사에 보고하는 내용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지만, 회장 부인에게 보낼 살구를 사러 시장에 다니는 건 이스탄불 지점장의 중요 업무였습니다.




    [Studio]

    ◀김의성▶
    아 정말 한 사람의 영화인으로서 위기감을 느낍니다. 영화인들 밥줄이 위험합니다. 영화라는 게 현실을 반영하는 건데 현실이 이렇게 앞서 나가버리면 영화는 뭘 만들어야겠습니까.

    ◀양윤경 ▶
    스트레이트는 이메일과 관련 자료를 관계기관을 통해서 대거 입수할 수 있었는데요. 대한항공 이스탄불 지점장과 회장 비서실이 나눈 대화를 그 자료를 처음 봤을 때 살구를 둘러싼 그 진지함.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주진우▶
    사실 해외 지점 직원들이 명품이나 가구를 밀반입했다. 이런 기사는 있었어요. 그런데 살구까지 이렇게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면서 들여왔을까. 진짜 말이 안 됩니다. 몇 개월간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작전을 벌였어요. 살구를 들여오기 위해서요.

    ◀김의성▶
    조선시대에 지방의 특산품들을 왕에게 올려보냈던 걸 진상이라고 불렀지 않습니까. 메일을 보면 대한항공 사모님은 세계 각국에 있는 지점장들로부터 진상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받아오신 것 같습니다.

    ◀주진우▶
    진상 맞습니다, 진상.

    ◀양윤경▶
    해외지점장들은 이명희 씨가 회장 부인 아닙니까. 회장 부인의 지시를 차마 거스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 같은 불법행위에 동원된 겁니다.

    ◀주진우▶
    사실 직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임무가 살구 수송 작전이었을 것입니다. 회장님 지시사항, 사모님 지시사항은 모든 업무의 우선합니다. 이것은 인사에 직결되고 무엇보다도 업무가 미뤄졌을 경우 면전에서 욕설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의성▶
    그런데 해외지점장들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렇다면 이스탄불지점장뿐 아니라 다른 해외지점에서도 이런 일이 빈번하게 있었다는 얘기인가요?

    ◀양윤경 ▶
    네 그렇죠. 북경, 광저우, 시애틀, 인도, 우즈베키스탄. 세계 곳곳의 대한항공 해외 지점장들이 때가 되면 이명희 씨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제철과일을 찾아 그 나라 시장을 헤맸다고 합니다.




    [VCR]

    2. 왕비를 위한 진상품

    대한항공 중국 북경 지점에서 이명희 씨에게 대추를 보내기 직전 찍어둔 사진. 어림잡아 가로 약 2-30cm, 세로 10cm 상자 12개에 대추가 빼곡히 차 있습니다. 중국 지점장들에게 떨어졌던 미션은 '대추는 먹어보고 사 보내라'. 인천과 북경 사이 또 다시 대추를 둘러싼 심각한 이메일들이 오갑니다.

    비서실:
    "사모님께서 아래와 같이 대추 관련 지침 주셨습니다. -보낸 것 먹어 봤는데 작년 것보다 질기니, 시장에 가서 먹어보고 좋은 것으로 골라 보내라."

    북경 지점장의 답장엔 애환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추 살 때마다 일일이 먹어보고 가장 맛있는 것을 골라 사고 있습니다. 10여 개 상점을 돌아다니며 맛을 본 후 좋은 것을 일일이 선별해 담았습니다."

    비서실:
    "사모님께서 대추 15상자를 3일 뒤 전량 도착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북경:
    "아침부터 난리쳐서 가까스로 15상자 만들어서 포장해 보냈습니다. 빨리 댁에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 바랍니다."

    상자는 깨끗해야 했고, 대추는 커야 했습니다.

    비서실:
    "사모님께서 잘 받아보셨고 다음과 같은 지시사항이 있으셨습니다.
    - 대추 상자가 너무 조악하니 내년엔 좀 더 크고 깨끗한 상자를 찾도록 하라.
    - 알이 너무 작으니 다시 보낼 것.
    - 청도 지점장에게 3시간 떨어진 산지에 가서 샘플 사서 보내라고 할 것"

    굵은 대추를 찾으라는 미션을 완수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은 예술적인 사진들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사모님께 대추 크기를 알려드리기 위해 자, 만년필, 도장까지 동원한 이 사진 파일의 제목은 <너무 작다고 하심>.

    이 사진은 사과가 아니라 대추입니다. 대추 옆에 살포시 놓인 휴대폰이 대추가 분명 크다는 사실을 몸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대한항공 지점 덕분에 대한항공 회장 부인은 온 세상 제철과일을 안방에서 쇼핑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직구도 이런 직구가 없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다달이 마치 조선시대 왕의 진상품처럼 제철식품이 도착했습니다. 4월 중순부터 5월 초엔 광저우 비파, 5, 6월엔 인도 망고, 6월 중순엔 우즈베키스탄/시애틀 체리, 6월 말엔 우즈베키스탄 견과류, 7월 초엔 이스탄불 살구, 9월 말, 10월 초엔 중국 대추,

    그리고 매달 8일엔 일본에서 매달 8일에만 파는 후쿠오카 떡이, 차질 없이 배달돼 식탁에 놓였습니다. 떡으로 말하자면 1월엔 "미소된장 맛", 3월은 "쑥 맛", 6월 "수국"을 받은 걸로 기록돼 있습니다.

    미션의 최대 관건은 도착할 때 완벽하게 숙성되도록 최적기에 구입해 보내야 한다는 것.

    "사모님께서 시애틀 체리가 현재 제철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올해는 8월 중순까지가 당도가 높고 제대로 된 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파가 지금은 끝물이라는 건가요?"
    "4월 중순 이후 5월 초가 제일 맛있습니다."

    이메일마다 언제가 제철인지, 제일 맛좋은 시점은 언제인지, 지금 당도가 가장 좋은 게 확실한지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해외 지점들에 사모님의 쇼핑리스트를 전달하는 창구는 대한항공 비서실이었습니다. 국적항공사의 회장 비서실이 회장 부인의 제철과일 해외 직구에 동원된 겁니다.

    우즈베키스탄 체리를 둘러싼 비서실 내부용 정보보고엔 이들의 고달픔이 녹아 있습니다.

    -임원들끼리 나눠먹고 회장님 댁에 겨우 1상자 보냈냐며 격노하심.
    - 예전에 맛없는 걸 왜 많이 보냈냐고 화내신 적 있어서 일단 1상자만 보낸 건데 이번엔 맛있어서 문제 발생.
    -5상자를 댁으로 송부함.
    -내가 언제 5상자 주문했냐며 15kg 보내라 했다고 주장하심. 더 보내라고 지시하심.
    -알아보니 내일까지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보고 드렸으나 필요 없다고 하심.




    [Studio]

    ◀김의성▶
    네, 임직원들의 자괴감도 정말 대단 했을 것 같습니다. 대한항공은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은 기업 설문조사에서 매년 상당히 높은 순위에 꼽히는 기업 아닙니까?

    ◀주진우▶
    그렇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취업하고 싶은 회사 하면 대한항공이 손꼽힙니다.

    ◀김의성▶
    어렵게 취업을 해서 또 힘들게 승진을 해서 결국 한다는 일이 사모님 입맛에 맞는 제철과일을 찾아서 진상하는 일이라니 참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까?

    ◀양윤경▶
    어 그런데 자괴감이 더 심했을 직원도 있습니다. 저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해외본부팀장은 이명희씨의 반려견을 위해 강아지용 소세지 10개를 사서 보냈다고 합니다.

    ◀김의성▶
    도대체 이명희씨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길래 직원들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거죠?

    ◀주진우▶
    제가 재벌 사모님들 취재를 많이 했는데요 사모님들의 공통된 의견이 겸손하고 예의바른 사람으로 이명희씨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아는 척을 한다 이런 얘기도 하셨어요. 음, 그런데 아랫사람들한테 이명희씨는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하대하고 막말을 막 하시기도 합니다.

    ◀주진우▶
    제가 평창동 제가 평창동 이명희씨 집 주변에 그 지인 집에 간적이 있어요. 그런데 고성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게 이명희씨 목소리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분, 지인 집은 이명희씨 옆집이 아니었습니다. 옆 옆집이었어요.

    ◀주진우▶
    자주 그 이명희씨 목소리 때문에 잠을 깨기도 했다는 게 그분의 증언이었습니다. 이명희씨는 교통부 차관, 항공정책을 총괄하는 교통부 차관의 따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항공정책 책임자와 항공사 회장간의 만남으로 유명했던 결혼이었죠.

    ◀김의성▶
    정말 대단합니다. 과연 이 갑질의 끝이 존재하기는 하는 겁니까?

    ◀이정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명희씨 사건이 더 심각한 이유는 단순한 갑질이 아니라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해외여행을 갔다 돌아올 때 과일 한 두 개, 이런 것도 함부로 못 가져옵니다. 기내에서 받은 사과를 가지고 내렸다 벌금 500달러를 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농산물의 통관은 다른 어떤 물건보다도 엄격합니다. 이명희씨가 안방에서 받은 과일들은 모두 검역대상입니다. 그중 한국으로 들여와서는 안 되는 그런 과일들도 있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어떻게 검역대상이 이명희씨만 비켜갔는지 취재했습니다.




    [VCR]

    3. 진상품은 무법 통과

    대한항공 계열사인 인천 하얏트 호텔 2층. 아름답게 손질된 정원이 돋보입니다. 꽃을 사랑하기로 유명한 이명희 씨는 호텔 정원에 각별히 공을 들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디서 온 꽃들일까. 2011년 영국 히드로 공항을 출발하는 대한항공 여객기에 실린 수하물 9상자입니다. 상자 안에 있는 건 튤립과 수선화, 히아신스 구근들. 이름표에 Tulip이라는 영문 이름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스트레이트>가 입수한 이명희 씨의 구근 해외 구입 내역입니다.

    튤립 구근 2775개, 히아신스 구근 240개, 수선화 구근 1360개 등 2011년 한해에만 모두 4399개, 우리 돈으로 약 170만 원 어치를 주문했습니다.

    영국 화훼업체에 주문한 이 구근들은 일단 대한항공 런던 지점으로 배송 됐습니다. 구근이 도착하면 런던 지점 직원들은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상자들을 실어 나른 뒤 대한항공 여객기에 태워 인천공항으로 보냈습니다.

    인천에 도착한 구근 일부는 하얏트 호텔로, 나머지는 이명희 씨 자택으로 보내졌습니다. 이런 구근 신청은 <스트레이트>가 확인한 것만 2005년부터 2015년까지 해마다 가을에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구근은 우리나라에 반입되기 전 필수 검역 대상.

    <스트레이트>가 확보한 이명희 씨의 수입 구근 가운데 검역 신고 여부를 알 수 있는 지난 2013년 5월 이후 수입 구근들은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검역 신고 내역이 없었습니다. 사모님 지시사항에 따라 중국 광저우 지점장이 구입한 과일 '비파'입니다.

    상자에 가지런히 담은 뒤 1차로 종이 포장을 하고, 2차로는 보자기로 감쌌습니다. 이 비파를 담당한 지점장이 대한항공 본사 비서실에 보낸 이메일입니다. "수량은 2상자로, 외부 노출 불요로 사과 상자에 담아 겉면을 종이 및 보자기 포장을 했다", 즉 외부에 보이지 않게 두 번에 걸쳐 잘 포장했다고 보고합니다.

    대추를 담당했던 북경 지점장과 비서실이 주고받은 이메일은 더 은밀합니다.

    "반드시 내용품이 안 보이도록 포장을 잘 하셔야 합니다. 기내 탑재물품 보고서에는 반드시 사무장 품목으로 전송하셔야 합니다."
    "아이템은 4개 상자로 재포장하여 외관으로 표시가 나지 않게 했습니다. 오늘 KE880 편 1등석 주방에 실어서 사무장에게 잘 인계하였습니다."

    뭐가 들어 있는지 밖으로 보이지 않게 꽁꽁 감싸고, 1등석 주방에 보관해서, 일반 물품이 아닌 사무장 품목으로 기록하는 2중, 3중의 보안 장치. 직원들은 왜 이렇게 멀쩡한 과일들을 남의 눈을 피해 들여와야 했을까.

    달을 바꿔가며 착착 배달된 진상품들. 이 식품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수시로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인지 농림축산식품부에 문의했습니다.

    4월의 과일 중국 비파, 7월을 책임진 터키 살구, 9월의 선택 중국 대추는 아예 수입 금지 품목이었습니다. 인도 망고와 우즈베키스탄 체리는 등록된 과수원 출신만, 그것도 소독을 거친다는 조건으로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식품들은 무조건 검역신고 대상입니다.

    ◀김길하 교수 / 충북대 농업생활환경대학▶
    "검역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일단 외국에서 병해충이 유입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만약에 그것을 관리를 제대로 안 했을 때는 자연환경과 농업환경에 막대한 그, 이제 피해를 주기 때문에 결국은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사업이 되겠고"

    그럼 검역은 거쳤을까. <스트레이트>가 입수한 사모님의 주문 내역들 가운데 현재 확인 가능한 검역 신고 기록이 있는지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질의했습니다. 이스탄불산 살구도, 광저우산 비파도, 북경산 대추도 검역 신고 기록은 없었습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
    "휴대의 경우는 신고를 하셔야 돼요. 만약에 신고 안하고 있다 적발되면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휴대품 신고서 있죠? 비행기에서. 거기에 검역물품에 체크하게 돼 있잖아요. 체크하시고 검역을 받으시면 됩니다. 계속 반복됐으면 누계가 이게 중과가 되죠. 금지품 가져오면 다 압수고, 미신고는 폐기가 될 수 있죠. 압수돼서."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농수산물을 검역 없이 들여온 사람은 최고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Studio]


    ◀김의성▶
    네, 등록된 과수원에서 그리고 엄격히 소독을 거친 후에만 수입될 수 있는 과일을 무단으로 들여왔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수입금지 과일까지 몰래 들여왔단 얘기군요. 정말 이명희씨에게는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공항, 검역센터, 세관 모든 곳이 다 무법지대였던 거네요.

    ◀주진우▶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삐뚤어진 재벌들의 특권의식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뉴욕타임즈에서는 대한민국의 갑질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봉건영주처럼 행동하는 기업 임원이 부하나 하청업자를 학대하는 행위라고요. 그런데 이명희씨의 행위는 이런 갑질을 넘어섭니다. 불법행위입니다. 회장 사모님이라는 이유로 대한항공직원을 불법에 그것도 밀수에 내 몬 겁니다.

    ◀이정신▶
    대한항공 해외지점장들은 이명희씨의 불법지시 때문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이명희씨가 조금이라도 더 싼 과일을 보내라고 이렇게 지시를 했기 때문에 해마다 과일 가격을 체크하는 게 아주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외 지점장들은 맛도 좋으면서 가격까지 싼 과일들을 찾아 온 시장을 돌아다니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김의성▶
    저는 이 사안을 직원들의 고통 이것만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항공업무라고 하는 것이 승객들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자신이 먹고싶은 과일을 사서 보내게 하는데 임직원들의 시간과 노력을 쓰게 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엄연한 배임이자 해사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양윤경▶
    아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보신 내용은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김의성▶
    예?? 이게 예고편이면 본편은 더한 게 있는 겁니까?

    ◀양윤경▶
    이명희씨가 불법으로 들여온 것은 과일만이 아니였습니다. 지점장들의 미션 리스트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얘기 많이 들으셨죠. 필리핀 가사 도우미입니다.

    ◀김의성▶
    필리핀 가사 도우미에 대한 뉴스는 저도 한 번 본 것 같습니다. 가사도우미의 월급을 회사 돈으로 줬다.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했다 뭐 이런 얘기들을 들은 것 같은데요.

    ◀양윤경▶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을 둘러싼 풍문도 많습니다. 스트레이트는 이 풍문이 정말인지 팩트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또 이들은 조씨 일가의 갑질과 불법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고 들었을 사람들 아닙니까. 조씨 일가들을 향한 여러 의혹을 풀어줄 증언을 듣기 위해 필리핀으로 날아갔습니다.




    [VCR]

    4. A를 찾아서

    <스트레이트>는 이명희 씨의 집에서 가정부로 가장 오래 근무한 필리핀 여성의 인적사항과 연락처를 가까스로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 - 필리핀 가사도우미 A씨▶
    "안녕하세요, 혹시 **씨세요?"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에 있는 기자입니다."
    "맙소사..서울에 있는 기자라고요? 맙소사"

    놀라던 그녀는 그러나 기자가 왜 자신에게 전화를 했는지 바로 짐작했습니다.

    ◀기자 - 필리핀 가사도우미 A씨▶
    "제가 전화를 건 이유는.."
    "조양호 회장 일가 때문인가요?"

    매일 대한항공 뉴스를 보고 있다는 겁니다.

    ◀기자 - 필리핀 가사도우미 A씨▶
    "요즘 한국 뉴스 보세요?"
    "네, 날마다요."
    "날마다요?"
    "심지어는 한밤중에 자다 깨서 뉴스를 읽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명희 씨 집에서 있었던 경험에 대해 묻기 시작하자 그녀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내뱉었습니다.

    ◀기자 - 필리핀 가사도우미 A씨▶
    "이명희 씨 댁에서 한 10년 일하셨던 거죠?"
    "거의 12년 일했어요."
    "12년이요..혹시 폭력이나 심한 말들 경험하신 적 있으신가요?"
    "맙소사.. 전화로 그런 질문에 대해 이야기 못해요. 실은 2주 전에 그 사람들과 나와의 문제를 이미 마무리했어요."
    "문제가 있었다고요"

    문제가 있었고 해결을 봤다. 그게 무슨 뜻인지 묻자, 대답 대신 강한 두려움을 드러냈습니다.

    ◀기자 - 필리핀 가사도우미 A씨▶
    "그분들과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큰 문제요.. 근데 나중에 다시 전화해도 될까요? 지금 굉장히 불안해서요. 난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요. 굉장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요."
    "무례하다면 죄송하지만 혹시 문제를 해결하려고 돈을 받았나요?"
    "하아...나중에 다시 걸게요"

    결국 그녀는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다는 건지, 커다란 의문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습니다. 의문을 풀기 위해선 그녀를 직접 만나야만 하는 상황. 취재진은 곧바로 필리핀 마닐라로 출발했습니다. 필리핀에서 풀어야 할 의문은 A씨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명희 씨는 필리핀 가정부를 <스트레이트> 취재진이 파악한 것만 최소 8명을 고용했습니다.

    필리핀의 대규모 인력 송출 업체 몇 곳을 수소문한 끝에, 몇 년간 대한항공에 필리핀 여성을 소개해줬다는 브로커 업체를 겨우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양윤경 기자▶
    "찾아보니까 노래하는 사람, 아니면 춤추는 사람, 이런 분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업체인데, 가정부로 일한 후보자도 거기서 골라서 보낸 걸로... 아 여기 어딘가 보다"
    "어, 여기다"

    회사 안 이곳저곳엔 구직 원서를 내러 온 필리핀 여성 수십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일단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대한항공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책상 위 문구에 적힌 이름을 보고 어림짐작으로 이름을 불러봤습니다.

    ◀기자 - 필리핀 현지 송출업체 직원▶
    "안녕하세요, 00 씨네요? 저는 한국에서 온 기자입니다"
    "오"
    "뭐 좀 여쭤 봐도 될까요? 대한항공에 관한 건데요"
    "대한항공요, 잠깐만요"

    대한항공이라는 이름이 전혀 낯설지 않은 듯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이 여성은 취재진을 갑자기 빈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대한항공에 인력을 보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짧지만 구체적으로 대답했습니다.

    ◀기자 - 필리핀 현지 송출업체 직원▶
    "혹시 대한항공에 구직자들을 보내준 적이 있으신가요?"
    "아 근데 그건 20**년도였는데"

    2천 몇 년도쯤에 대한항공에 필리핀 구직자를 보낸 걸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직후
    매니저라는 남성이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기자 - 필리핀 현지 송출업체 직원▶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기자입니다"
    "죄송하지만 여기 왜 오셨죠?"
    "대한항공과 여기서 보낸 필리핀 취업자들에 대해 보도할 계획이라서요"

    이 말을 듣자마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록을 뒤져보지도 않고 매니저는 대한항공에 사람을 보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필리핀 현지 송출업체 직원▶
    "우리는 안 보냈어요. 대한항공과 거래도 없었고 한국에 누굴 보낸 적도 없어요. 예전에 한번 삼성과 거래한 적은 있어도.."

    2천 몇 년도 일이라던 여직원 역시 말을 바꿨습니다.

    ◀필리핀 현지 송출업체 직원▶
    "아 맞아요. (대한항공에) 취업 후보생들 보낸 적 없어요"

    그러더니 이들은 오히려 이곳을 어떻게 알았으며 여직원 이름은 어떻게 알았냐고 따져 묻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 현지 송출업체 직원▶
    남자: "**를 어떻게 알죠?"
    여자: "우리 이름을 누가 줬어요?"
    남자: "우리 이름 누가 줬어요?"
    여자: "이름 누구한테 받았냐고요"
    기자: "그게 왜 중요한가요?"

    여직원의 책상에서 우연히 본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과민한 반응들. 대한항공 직원으로부터 들었다고 슬쩍 떠보자 그게 누구냐고 신경질적으로 다그칩니다.

    ◀기자-필리핀 현지 송출업체 직원▶
    "대한항공 내부 사람이 알려줬어요."
    "그 사람이 누구예요? 누가 준 거냐고요"

    그러나 이들은 대한항공과의 관계를 끝까지 부인했고, 미심쩍은 반응을 뒤로하고 취재진은 쫓겨나다시피 건물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취재진은 이번엔 대한항공 마닐라 지점을 찾았습니다. 마닐라 지점은 회장 부인인 이명희 씨를 위해 필리핀 가정부 선발을 강요받았다고 알려진 곳. 명함을 주고 면담을 요청한 지 한참 뒤, 직원이 나와 지점장이 바쁘다며 용건을 물었습니다.

    ◀기자-대한항공 마닐라 지점 직원▶
    "지점장께서 전화 회의를 기다리고 계셔서요. 무슨 일이세요?"
    "지점장께 제가 온 이유를 아실 것 같은데요, 필리핀 가정부에 대해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네, 지점장께 말씀드릴게요."

    그런데 몇 분 뒤, 분명 사무실에서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던 지점장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기자-대한항공 마닐라 지점 직원▶
    "사무실에 안 계세요 "
    "근데 아까 사무실에 계신다고 하셨잖아요, 전화 회의 기다리신다고?"

    뒷문을 통해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가버린 지점장. 지점장 방으로 통하는 문은 어느새 안에서 잠근 상태였습니다.

    ◀기자▶
    "아예 잠가버렸구나. 휴.."

    브로커 업체에 이어 대한항공 마닐라 지점에서도 역시 찝찝함을 안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Studio]

    ◀김의성▶
    네, 좀 무섭지만 흥미진진해지네요. 왜 모두 다 입을 닫은 거죠? 대한항공의 필리핀 마닐라 지점장은 왜 갑자기 사라진 겁니까? 뭘 감추려고 하는 거고 도대체 뭐가 더 있는 걸까요?

    ◀양윤경 ▶
    저희는 해외 지점장들은 어쩔 수 없이 갑을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이런 불법에 동원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잘못을 추궁하기 위해 간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저희를 피하는 모습을 보고 좀 안쓰럽고 죄송한 감정도 들었습니다.

    ◀주진우▶
    대한항공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 대한항공에서는 조씨 일가에 관한 직원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게 보입니다. 언론에 나선 제보자를 색출하고 있기도 하고요. 지점장의 행동이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닙니다.

    ◀김의성 ▶
    아 그런데 양윤경 기자. 스트레이트의 대표 추격자답지 않게 이번 필리핀까지 출장 가서 모든 인터뷰를 다 실패했네요.

    ◀주진우 ▶
    달리지도 않았어요.

    ◀양윤경 ▶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저도 사실 제가 국제적으론 안 통하나, 국내용인가 했는데 시차 적응이 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조씨 일가 내부를 가장 잘 알고 있을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기에 끝까지 수소문했고 결국 찾아서 만났습니다.

    ◀주진우▶
    오 만났습니다.

    ◀김의성 ▶
    필리핀 가사도우미, 이분들이 언론에 나오는 건 처음 아닙니까?

    ◀양윤경▶
    예, 처음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왜 그분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언론에 나오지 않았는지 그 이유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VCR]

    5. 마침내 A를 만나다

    필리핀의 마지막 행선지는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1시간 10분 떨어진 어느 섬. 이명희 씨의 가정부였던 A씨가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물어물어 마침내 A씨의 집을 찾아냈습니다.

    처음엔 A씨가 집을 비웠다던 가족들, 그러나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곧 집 2층에서 A씨가 내려왔습니다. 기자를 본 그녀는 당장 집 아닌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길 요구했습니다.

    ◀기자 - 필리핀 전 가사도우미 A씨▶
    "나랑 얘기하고 싶으면 여기 우리 집에서는 안 돼요"
    "아 좋아요, 실은 밖에 우리 차가 있어요. 차타고 어디로 좀 이동하면 어때요?"
    "밖에 있는 차를 일단 옮겨야 될 것 같아요. 여기 사람들 많이 다니거든요."
    "그럼 제가 차로 가서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피하도록 하면 저랑 같이 가실래요?"
    "좋아요"

    잠시 후, 집에서 떨어진 길가에 차를 댄 뒤 A씨는 차차 말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통화에서 그녀가 말한 큰 문제가 뭘까. 조심스럽게 그녀가 남겨준 의문에 대해 물었습니다.

    ◀기자 - 필리핀 전 가사도우미 A씨▶
    "그때 저한테 이명희 씨 쪽과 큰 문제가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무슨 문제인가요?"

    말을 돌리기만 하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몇 번.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망설이는 덴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자 - 필리핀 전 가사도우미 A씨▶
    "기자가 여기 너무 늦게 왔네요. 대한항공 쪽에서 저를 찾아오기 전에 먼저 왔더라면 모든 걸 다 말해줬을 수도 있는데. 이미 지금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버렸어요."

    회장일가 스캔들이 터진 뒤 이곳까지 대한항공 관계자가 찾아와 회장 집에서 대한 무엇도 말하지 않기로 비밀유지 각서를 받아갔다는 얘기였습니다.

    ◀기자 - 필리핀 전 가사도우미 A씨▶
    "이미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했어요. 서명을.
    "서명했다고요. 언제요?"
    "지난달에요. 지난 ****에 대한항공 사람들이 여기 왔었어요."
    "대한항공이 보낸 사람들요?"
    "네. 이미 말하지 않겠다고 서명을 해버렸어요. 정말 기밀이라서 나는.."

    대체 뭐가 기밀인 걸까.

    ◀기자 - 필리핀 전 가사도우미 A씨▶
    "기밀이라는 게 무슨 얘기인가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직 모르는 어떤 게 있다는 말인가요?"
    "네. 많은 사람들이 절 찾고 있다는 거 알아요. 제가 모든 걸 다 아니까"

    계약을 깨면 소송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는 A씨.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 전 가사도우미 A씨▶
    "대한항공 측 변호사예요. 맙소사. 대한항공 변호사예요..."

    A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한항공 변호사가 왜 하필 이때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온 걸까.

    ◀필리핀 전 가사도우미 A씨▶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아뇨, 아뇨. 아무 말도 안 해요, 아무 말도 안 해요. 네네, 네네. 아뇨, 걱정 마세요. 네, 네. 안녕히 계세요"

    통화를 마친 그녀의 얘기에 기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자 - 필리핀 전 가사도우미 A씨▶
    "대한항공 사람들이 이 변호사한테 알려줬대요. 한국 기자가 여기로 오고 있다고. 대한항공 사람들이 기자가 지금 이 섬에 있다는 걸 안대요."
    "제가 여기 있는 걸 안다고요? 그러니까, 대한항공 변호사가 대한항공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한국 기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했대요."
    "근데 어떻게 제가 여기 있다는 걸 알죠?"
    "저도 정말 모르겠네요."

    A씨 말에 따르면 대한항공 측 변호사가, 한국 기자가 찾아와 물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당부했다는 겁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말문이 막힌 기자에게 차 안에 함께 있던 필리핀 운전사가 한 말은 더 놀라웠습니다.

    ◀기자 - 필리핀 현지 운전사▶
    "조금 전 우리 차 바로 앞에 차가 10분 정도 서 있었어요. 아까 그 차가 떠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우리 차 앞에 10분쯤 주차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차가 떠나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어요."
    "차가 여기 주차해 있었다고요? 10분 동안? 바로 우리 차 앞에?"
    "네. 전화벨이 울리면서 차가 떠나더라고요"

    취재진 차량 근처에서 몇 번을 목격했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바로 그 차였습니다.

    ◀기자 - 필리핀 전 가사도우미 A씨▶
    "(제가 몇 번을 본 차는) 오렌지색 차였어요."
    "(서 있던 차 색깔도) 오렌지 맞아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말만으로도 그녀의 고된 한국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 전 가사도우미 A씨▶
    "내 아이들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아이들 때문에 그 상황을 견뎌야 했어요. 제 기분이 어땠냐는 것보다 필리핀에 가족들을 두고 왔기 때문이에요. 제가 가장이거든요. 그래서 버텼어요."



    [Studio]

    ◀김의성▶
    네, 영화인으로서의 밥줄이 점점 더 걱정됩니다. 마치 잘 만들어진 한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은데요

    ◀주진우
    시나리오가 탄탄합니다.

    ◀김의성▶
    그렇습니다. 그런데 대한항공 측은 양윤경 기자가 필리핀 가사도우미 이분들을 만나려고 시도했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됐을까요?

    ◀주진우 ▶
    미행당한 건 아닌가요?

    ◀양윤경▶
    근데 제가 그 부분은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뭐라고 말씀드리긴 어려운데요. 그 날짜에 그 시간에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만날 섬에 들어가는 건 사실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브로커 업체는 물론이고, 대한항공 마닐라 지점에도 제가 그리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한 적이 없습니다.

    ◀김의성▶
    저분들이 왜 두려워하는지 이해할만한 상황이네요. 왜 지금까지 언론에 나오지 않았는지 알 것도 같구요. 그런데 조씨 일가는 필리핀 가사 도우미 이분들의 입막음하는데 까지 대한항공의 현지 변호사를 동원했던 거군요

    ◀주진우▶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해야하는데 이런 행위는 없고 자꾸 비리 행위만 덮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조씨 일가의 행태입니다. 무엇보다도 대한항공의 오너 조양호 회장의 책임이 크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조양호 회장은 사실 이 사태가 터지고 나서 언론을 앞세워서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경영을 잘 하고 있는데 가족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정신 ▶
    네, 조현민씨가 물 컵을 던졌다는 그런 용기 있는 제보가 없었다면 조씨 일가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불법적인 일들은 영원히 공개되지 않은 채 완전범죄로 묻혔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완전범죄가 실패로 돌아가자 조씨 일가는 자신들로 향하는 여러 의혹들을 감추기 위해서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약자까지 괴롭히고 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조씨 일가의 불법사슬을 끊기 위해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VCR]

    이명희 씨와 딸 조현아 씨 집에서 일할 필리핀 가정부 후보자 보고서입니다. 사진과 함께 특이사항으로 여권보유 여부와 만료일이 기록돼 있습니다. 개인별로 더 자세한 이력서도 작성됐습니다. 이 여성은 영어 실력 '보통'과 함께, 어떻게 측정했는지 과일손질 '우수', 야채손질은 '양호', 다림질 '보통'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착하고 순해 보이는 인상이며 비교적 큰 체구에 체력이 우수해 보인다는 인상평도 적혀 있습니다.

    주로 필리핀 여성을 가정부로 고용한 이명희 씨를 위해 대한항공 필리핀 마닐라 지점은 가정부 공급 전담부서가 되어야 했습니다.

    ◀대한항공 전 직원▶
    "면접은 보통 지점장이 보고 보통 2배수나 3배수로 사모님께 올려요. 될 사람 1명, 안 될 사람 1,2명. 그러면 사모님이 이 사람으로 하라고 뽑아요."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필리핀 현지인을 우리나라 가정부로 데려오는 건 원천 봉쇄돼 있습니다. 비자 발급 자체가 안 되는 겁니다.

    ◀외교부 관계자▶
    "중국동포들 같은 경우 국민의 배우자는 가능합니다. 필리핀인들은 가사도우미로 채용이 안 되죠. 가사도우미라는 그런 비자는 없습니다. 없지만"

    그럼 이명희 씨의 가정부들은 발급이 불가능한 비자를 어떻게 받아내 한국에 들어왔을까. 대한항공의 인사부가 그 뒤에 있었습니다. 가정부로 일할 필리핀 여성들을 아예 마닐라 지점의 현지인 직원으로 채용해, 비자를 발급받을 자격을 만들어 준 겁니다.

    ◀대한항공 전 직원▶
    "비자를 받을 수가 없는데 비자를 받게 하려고 대한항공 직원으로 만드는 거죠. 이 사람을 채용해 버린 거예요. 당연히 인사부가 그 과정에 들어가죠."

    <스트레이트>가 입수한 필리핀 가정부 비자 발급 순서입니다. 먼저 대한항공 필리핀 마닐라 지점 직원으로 입사시킨 뒤, 한국 본사에서 파견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 다음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본사 연수 명목으로 비자발급 확인서를 받고, 이를 근거로 주 필리핀 한국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즉 법무부와, 한국 대사관 즉 외교부를 모두 속인 겁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무사히 입국했던 한 필리핀 여성은 출입국관리소에서 대답할 말까지 대한항공 측에서 모두 정해줬다고 밝혔습니다.

    ◀이명희 자택 전 필리핀 가사도우미▶
    "출입국관리소에서 질문을 하잖아요. 한국에서 뭐 할 거냐고. 그럼 한국어를 공부한다, 한국 가서 연수 받는다라고 대답해요. 지점 직원으로 채용된 거니까 한국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 돼서 한국 가는 거라고."

    와서는 월 450달러, 우리 돈으로 45만원을 받고 가정부로 일했습니다.

    ◀이명희 자택 전 필리핀 가사도우미▶
    "한국 회사 스태프. 그런 자격으로 채용이 돼요. 근데 한국에 오면 음식 만들기 같은 집안일을 하는 거죠."

    연수생 비자와 아무 상관이 없는 취업, 불법입니다.

    ◀외교부 관계자▶
    "그거 완전히 불법입니다. 연수생이 주목적 외 다른 비자에 해당하는 활동, 특히 비자(종류)가 없는 가사도우미 같은 활동을 하는 건 엄연한 불법 취업이라고 봐야죠."

    회장 집에서 일할 가정부를 고용하기 위해 인사부 등 대한항공 본사 조직과 해외 지점까지 불법행위에 총동원한 겁니다.

    ◀대한항공 전 직원▶
    "마닐라 지점장이 필리핀 가서 하는 일은 그거다. 가정부 공급해 주는 일을 마닐라 지점장이 하고 있다는 건 직원들이 다 알아요. 내가 왜 여기 와서 이걸 하고 있나 자괴감 느끼고 그러고 온다고요."

    익명의 대한항공 핵심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이 이런 불법 행위들을 모르는 건 불가능하다, 회사 인사부가 회장의 허가 없이 불법으로 직원을 채용을 할 수는 없다"며 이 모든 일들은 회장의 묵인이나 지시 하에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Studio]

    ◀김의성▶
    네 한번 정리해 볼까요? 필리핀 가사 도우미를 회장님 댁에 고용시키기 위해서 대한항공 마닐라지점에 취업을 시키고 한국 본사에 파견 명령을 내리고 그리고 출입국관리소에서 본사연수 명목으로 비자확인서를 비자발급확인서를 받고, 그렇게 해서 한국으로 데려온다는 거잖아요. 도대체 가사도우미 한명을 고용하기 위해서 대한항공은 왜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걸까요?

    ◀이정신 ▶
    뭐 일종의 위장 취업 인거죠. 가사 도우미로는 비자가 않나오니까 지점 직원으로 채용해서 비자를 받는 방법을 썼던 것 같습니다. 굳이 또 필리핀인을 고용한건 비용인 것 같습니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은 하루 14시간에서 16시간 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받은 월급은 450달러 우리 돈으로 45만원 정도였습니다. 5년이 지난 후에야 월급을 올려줬다는데, 올려준 돈이 50달러 우리 돈 5만원 정도였습니다.

    ◀주진우 ▶
    대한항공은 태극마크를 달고 전 세계를 날아다니는 국적 항공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국적 항공사에서 불법으로 필리핀 가사 도우미를 고용했고 그 고용한 도우미에게는 최저임금도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불법 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 국적 항공사의 맨 얼굴. 우리 재벌의 현 주소입니다.

    ◀김의성▶
    이와 관련해서 대한항공 측은 뭐라고 합니까? 뭐 입장을 밝혔습니까?

    ◀양윤경▶
    스트레이트는 대한항공 측에 공식 해명과 반론을 요청했습니다. 해외 지점장들에게 각 지역의 특산물들을 보내라고 한 것이 사실인지, 검역을 거치지 않고 반입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필리핀 여성들을 직원으로 채용해 가사도우미로 데려온 것이 사실인지. 그리고 가사도우미에게 비밀 유지 각서를 쓰게 한 것이 맞는지 물었구요. 대한항공은 수사 중인 사항들이기 때문에 대답하기 어렵다.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주진우 ▶
    아무 답변도 할 수 없다는 게 대한항공의 답변인데요. 회장 일가에서 무슨 일만 나오면 대한항공에서는 이렇게 공식 답변을 내놓습니다. 사실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을 겨를이 없었을 거예요. 지난 금요일에 대한항공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었습니다. 이 압수수색은 대한한공의 4번째 압수수색입니다. 이번 압수수색은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데 대한항공이 직접 관여했다는 정황 때문에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양윤경▶
    네 스트레이트는 조씨 일가의 불법고용에 혹시 누가 공모하지는 않았는지, 공모했다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후속 취재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막 수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지켜보고 더 추가 할 내용이 있으면 취재해서 방송해 드리겠습니다.

    ◀김의성▶
    네. 이정신, 양윤경 기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에도 두 기자의 취재 기대하겠습니다.

    ◀김의성▶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조양호 일가 및 경영진 퇴진 갑질 스톱 촛불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직원은 라디오에 출연해서 조양호 일가가 퇴진한다고 하더라도 감옥에 가더라도 형기를 채우고 나면 다시 일선에 복귀할 것이다. 조양호 일가를 퇴진 시키는 일은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주진우▶
    사실 대한항공 사측에서는 촛불집회 참석자들을 색출하기 위해서 혈안이 돼있다고 합니다. 임원들이 촛불집회 참여장소에 나가서 감시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저항의 상징인 마스크, 가이포크스 가면이라고 하는데 가면을 쓰고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의성 ▶
    대한항공은 조씨 일가 개인의 회사가 아닙니다. 대한항공은 태극 마크를 단 국적 항공사이고 또 국민들의 돈,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의 2대 주주로 있습니다.

    ◀주진우▶
    맞습니다. 대한항공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은 국민들의 성원이 매우 컸습니다. 사실 조금 비싸더라도 국적기이기 때문에 타주자 이런 성원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사실 조금 비싼 게 아니라 많이 비쌉니다. 그리고 만 팔천여 직원들에 공이 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직원들이 지금 대한항공의 정상화를 위해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습니다. 스트레이트는 그 직원들을 응원하고 끝까지 함께할 것을 약속합니다.

    ◀김의성 ▶
    끈질긴 추적 저널리즘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저희는 다음 주에 인사드리겠습니다.




    [취재기자]
    양윤경 imagine0402@gmail.com
    이정신 geist1@i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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