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는 2008년을 한 프로 복서의 죽음과 함께 시작했다.
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최요삼(崔堯森). 1999년 10월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이 됐지만 경제난 속에 경기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비운의 챔피언'이었던 그는 2002년 타이틀을 잃고 나서도 도전을 계속해 지난해 9월 세계복싱기구(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차지했다.
세계챔피언보다는 한 단계 낮은 타이틀이었다. 최요삼은 1차 방어전을 치르고 나서 2008년 초 정상에 재도전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투혼을 불태웠다.
하지만 운명은 끝까지 챔피언을 괴롭혔다.
최요삼은 지난해 12월25일 광진구 자양동 광진구민 체육센터에서 열린 경기에서 도전자 헤리 아몰(25.인도네시아)을 압도한 끝에 판정승을 거뒀지만 종료 직전에 허용한 오른손 스트레이트 충격으로 경기 후 쓰러졌다. 뇌출혈을 일으킨 최요삼은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고, 뇌사 판정을 거쳐 2008년 1월3일 오전 0시1분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향년 35세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최요삼의 투병과 사망을 계기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프로 복싱 안전대책이 새삼 이목을 끌었다.
30대 중반의 노장 복서 최요삼은 경기 전 불면증과 감기.몸살에 시달리는 등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지만 혈압과 맥박만 재는 형식적인 건강검진을 거쳐 링 위로 올라간 사실이 사고 후 드러났다.
경기장에는 뇌출혈 사고에 대비한 신경외과 의사 대신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나와있었고, 경기장 밖 앰뷸런스 뒤에는 관중의 차가 빼곡히 주차돼있어 응급 수송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경기장에 있던 응급의는 5분 거리의 종합병원을 놔두고 굳이 30∼40분이나 걸리는 자신이 속한 병원으로 최요삼을 옮겨 사고를 키운 게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유족들은 이 문제로 응급의가 속한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복싱계는 병원 측을 성토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도 심한 몸살을 앓았다.
홍수환, 장정구 등 전 챔피언들은 "복서들이 대전료 중 1%씩을 떼서 적립한 건강보험금 3억원은 최요삼처럼 뜻하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쓰려고 모은 돈"이라며 "이 돈이 1천만원 밖에 남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한국권투위원회(KBC)를 성토했고, 2008년 내내 대립을 거듭했다.
국민은 이런 복싱계 내분보다는 일기장을 통해 전해진 최요삼의 인간적인 고민에 눈물을 흘렸고, 그가 마지막 순간 전국의 말기 환자 6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소식을 듣고 감동했다.
최요삼은 떠났지만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복싱팬들이 최요삼의 병원비를 대라고 모아준 성금은 `고 최요삼 추모 복싱대회'를 여는 밑천이 됐고, 프로복싱계는 안전대책을 점검했다. 또 올해 뇌사자 장기이식이 사상 최대치를 돌파하는 등 한 프로 복서의 쓸쓸한 죽음은 체육계 안팎에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스포츠
서울=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⑩ '비운의 복서' 최요삼, 경기 후 사망
⑩ '비운의 복서' 최요삼, 경기 후 사망
입력 2008-12-15 08:02 |
수정 2008-12-1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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