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의미로 제작진에게 그렇게 묻고 싶은 시청자들도 꽤 많았을 듯하다.
지난 10회와 11회는 백제에게 점령당한 속함성 탈환을 위한 전쟁 이야기로 채워졌다.
드라마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알천랑 역을 맡은 이승효가 크게 주목받는 등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지루했다는 비판도 일었다.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긴박한 상황으로 시청자들을 마음 졸이게 만들어야 할 전쟁 에피소드가 지루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공의 레벨 업을 위한 전쟁
이 전쟁의 목적은 ‘속함성 탈환’, 빼앗긴 신라의 성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적군인 백제군은 그냥 움직이는 사물 같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신라군의 예상대로 움직인다.
대적하기 어려운 장수나 영웅도 없다.
백제군이 머리 나쁜 악당 패거리도 아닐 텐데, 적장은 한두 장면에서 어리석게 행동하고 비열하게 웃어보일 뿐이며 어떤 장수는 심지어 신라 최고의 겁쟁이의 화살에 맞아 죽는다.
그런데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드라마에서 전쟁은 덕만파와 미실파의 정치 싸움, 그리고 아직 미숙한 주인공들의 성장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전쟁에서 시청자들에게 아군은 왕과 천명, 김유신과 김서현, 덕만과 용화향도이며 적군은 미실과 그의 사람들이다.
덕만파는 강한 백제군이 아니라 미실과 설원랑의 계책 때문에 위기에 처한다.
그래서 신라의 승리나 백성을 지킨다는 대의명분보다는 ‘살아 돌아오는 것’ ‘강해지는 것’이 중요해진다.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사람들, 오합지졸이거나 겁쟁이인 사람들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펙터클한 싸움 장면보다 그들이 어떤 일을 겪고 무엇을 계기로 성장하는가를 구체적으로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전쟁을 구경했는가, 경험했는가
그렇다면 시청자 역시 전쟁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전쟁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전쟁 후 인물들이 성장한 모습이나 달라진 생각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덕만과 유신이 살아남을 것을 시청자들이 모두 당연하게 예측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극중에서 이들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은 설원랑이 보종에게 하는 말, 덕만이 시열에게 하는 말, 유신이 용화향도에게 하는 말, 천명의 걱정 등을 통해 여러 번 반복된다.
그러나 그 말이 정말로 시청자들에게 와 닿으려면 엄청난 위기와 긴박한 사건 전개가 필요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화랑들 간의 알력다툼이나 죽방-고도 커플의 코믹 신, 궁전에서의 암투가 느린 호흡으로 끼어들면서 몰입도가 상당히 약해졌다.
용화향도의 겁쟁이 시열은 주요 캐릭터가 아니어서 죽을 수도 있으므로, 그의 공포를 통해 시청자들의 진한 공감을 살 수 있었지만 실수가 세 번이나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면서 오히려 극 전개에 방해가 되니 죽었으면 좋겠다는 반응마저 나왔다.
차라리 알천랑에게 호소해 부상당한 동료들을 살리는 덕만의 에피소드 등 주요한 감동적인 사건과 앞으로의 줄거리 전개에 도움이 되는 내용만을 집중해서 보여주었더라면 훨씬 더 긴장감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전투가 벌어지는데 불안에 떨거나 위험에 처한 성의 주민들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고, 샛길이나 성벽, 강가와 같은 좁은 공간에서 병사들끼리만 싸우는 전쟁 신 역시 덕만이 전쟁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백성들을 이해해서 여왕으로서의 자질을 쌓기에는 부족하다.
그렇기에 전쟁이 끝난 후 유신에게 백성들의 처지를 묻는 덕만의 이야기는 다소 생뚱맞고 공허하게 들리는 것이다.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시키는 법
“강력한 적이 있어야 내가 강력해진다”는 말이 있다.
덕만은 미실을 넘어서야 비로소 여왕이 될 수 있고 속함성 전투에서는 강력한 위기 상황을 극복함으로써 인물들이 더 강해져 전쟁 후에 미실과 맞설 수 있을 것이다.
아막성에서 백제군에 포위된 김서현의 부대는 포위를 뚫고 어떻게든 살아 서라벌로 돌아가야 한다.
김유신은 홀로 적진을 뚫고 김서현의 부대에게 퇴각 명령을 전해야 한다.
덕만과 용화향도는 “시체를 수습할 수조차” 없는, 죽음으로 백제군을 막아야 하는 조이군이 되어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유신과 용화향도는 다른 화랑들이 돌아갈 때까지 백제군과 싸우고도 살아남아야 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 미션들을 그들은 실제로 성공시켰다.
강력한 적이나 위기상황에 맞섰을 때 내가 강해진다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쉽게 묘사되거나 생략되어 버리면 시청자들은 결과를 납득하기 힘들다.
김서현은 조이군을 보낸 이후 내내 보이지 않다가 용화향도보다 늦게 돌아와 누군가가 말에 태워 보내 살려줬다고 말한다.
유신은 곳곳에 대군이 있는 적진을 뚫는 것이 아니라 열 명 정도가 지키고 있는 검문소 한 곳을 기세 좋게 통과하고는 무사히 아버지에게 당도한다.
유신과 용화향도가 이기고 돌아오는 과정은 아예 생략되었다.
그들은 더 치열하게 싸우고, 구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초인적인 용기를 보여주거나 뛰어난 전략을 보여주었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천운’으로 뭉뚱그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사 일부 시청자들의 추측처럼 생략된 부분이 앞으로의 복선으로 기능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예 감추는 것이 아니라 궁금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생략되었어야 마땅하다.
전개가 느리거나 에둘러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략된 장면들이 오히려 전쟁을 지루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
이제 전쟁은 끝났다.
김서현은 잃었던 지위를 되찾았고, 유신과 용화향도는 서라벌의 화랑으로 인정받았으며, 왕과 천명은 더욱 강한 지지자들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김서현을 키우려는 미실로 인해 미실의 사람들은 동요하고, 누명을 쓰는 사건으로 덕만과 천명의 관계도 변화할 듯하다.
50회 이상이 남은 긴 여정에서 이 전쟁은 어쩌면 ‘진짜’ 전쟁, 미실과 덕만의 싸움을 본격화하기 위한 동력이었을 것이다.
더 치열하고 풍성하고 강렬한 싸움을 기대한다.
김지현 기자 ㅣ 사진및 영상제공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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