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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세상으로 길을 터주는 남자의 일기

저세상으로 길을 터주는 남자의 일기
입력 2009-08-17 17:11 | 수정 2009-08-1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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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시(詩)에 빠진 30대 일본인 아오키 신몬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시인이나 화가들과 술을 마시며 어울리느라 가게를 돌보지 않다가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그는 단편소설로 등단했지만, 가게는 결국 문을 닫았고 갓 태어난 아들의 분유 값도 대지 못할 처지가 됐다.

    부부싸움 중에 아내가 집어던진 신문 구인난에서 상조회사 직원 모집 광고를 발견한 그는 그 회사에 입사했고, 사전에도 없는 '납관부(納棺夫)'라는 직업을 갖게 됐다.

    '납관부 일기'(문학세계사 펴냄)는 그가 염습(殮襲)과 입관(入棺) 일을 하던 시절 쓴 일기를 정리하고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을 엮어 쓴 에세이다.

    일본에서 1993년 출간돼 지난해 영화 '굿' 바이'로 각색되면서 화제가 됐으며 국내에서는 이번에 처음 번역, 출간됐다.

    '납관부' 시절 저자의 업무는 시신의 몸을 닦고 수의를 입히고 나서 염포로 묶고 관에 넣는 일이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누군가는 시신을 처리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멸시와 외면이었다.

    숙부는 집안의 장손이 '그따위' 일이나 하느냐며 일을 그만둘 때까지 연을 끊겠다고 꾸짖었고 아내는 '더럽다'며 잠자리를 피했다. 저자는 자신 역시 시신으로부터 눈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던 그가 변화한 계기는 옛 연인의 아버지를 염습한 일이다. 그는 땀을 흘리며 염을 하는 자기 옆에 조용히 다가와 땀을 닦아주던 옛 연인에게서 "경멸이나 서글픔, 동정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초월한 무언가"를 느꼈고, 마침내 자기 일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자 저자는 죽은이들을 바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이 책이 여러 형태의 죽음과 시신을 만난 일화를 단순히 전하기만 했다면 10년 이상 지나 일본 밖에서 읽힐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을 대하는 저자의 철학은 세월과 국경을 넘어 공감을 이끌어낸다.

    생명과 죽음의 교차점을 지키는 저자는 알 수 없는 '빛'을 발견한다.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빠진 옛 연인의 눈동자에서, 서먹한 관계를 참고 병문안을 간 자신에게 "고맙다"고 속삭인 숙부의 얼굴에서, 엄마의 죽음조차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철부지 소녀 앞에서 기묘하고 희미한 빛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 빛은 죽음의 의미에서 어둠과 두려움을 지워내는 순간에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선승처럼 모든 것을 초월하거나 삶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는 죽음이란 외면하거나 삶과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조용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마사오카 시키의 작품 '병상육척'에 나오는 '깨달음이라는 것을 태연하게 죽는것이라고 여긴 것은 잘못이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태연하게 사는것이었다'는 구절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한순간 한순간을 소중하게 살아가자고 다짐했다."

    조양욱 옮김. 252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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