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몽골의 강화가 이뤄진 1259년 이후 고려의 반원(反元) 운동이 성공한 1356년까지 약 100년의 시기를 학계에서는 '원 간섭기(元干涉期)'라고 부른다.
한국ㆍ중국ㆍ일본의 고려사와 원사(元史) 연구자들이 이 시기 고려-원 관계를 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가 동북아역사재단과 경북대 한중교류연구원 주최로 4일 경북대에서 열린다.
윤용혁 공주대 교수는 주최측이 2일 배포한 '대몽항쟁기 여ㆍ몽 관계의 추이'라는 논문에서 고려가 대몽항쟁시기에 전쟁과 외교를 병행한 것이 이후 정치적 독립성을 고수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우선 고려-몽골(원) 관계를 주로 대결과 저항을 기조로 하는 전반기(1218~1270)와 원제국의 범주 안에서 왕조의 전통을 유지한 후반기(1270~1356)로 나눴다.
그는 "1270년까지 50여 년 동안 여ㆍ몽 관계는 단속적인 전쟁이 큰 흐름을 이루지만, 그 배후에는 사태의 완화 혹은 해결을 위한 외교적 시도가 있었다"면서 "고려가 1232년 강화로 천도해 항전을 지속했지만, 적극적인 군사대결보다는 공물 증여나왕족의 파견 등 외교적 방식으로 몽골의 요구를 완화하려 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50년 이상 군사적 혹은 외교적 대응을 지속했던 것이 고려가 1270년 몽골에 복속했는데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킬 수 있었던 배경"이라면서 "무인정권이 주도한 장기항전이 많은 내부적 모순을 축적한 것은 사실이지만, 몽골에 대한 고려의 완전한 예속을 예방하는 기능으로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발표문에서 여몽 관계가 한반도 역대 왕조가 기존 중국 왕조들과 맺은 조공-책봉 관계와 기본적으로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려왕의 즉위 시 몽골은 책봉과 함께 인장(印章)을 수여했고 연호가 시행되는 등 당시 고려인들이 몽골과의 관계를 책봉-조공 관계로 생각할 만한 요소가 있었으며 '고려사' 등 사료에서도 고려인들의 책봉-조공 관계로 인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왕실 통혼, 정동행성의 설치 등 책봉-조공 관계 이외의 요소들도 있지만 책봉국과 피책봉국(조공국)이 상하관계를 인정하고 책봉과 조공을 교환하는 관계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모리히라 마사히코 일본 규슈대 교수는 "고려는 일본을 상대로 원제국의 동쪽 변경 방위를 담당했으며 이는 본래 고려가 원에 의해 떠맡게 된 책무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려가 원의 정치적 영향권 아래에서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쟁취한 입장이기도하다"는 요지를 담은 논문을 발표한다.
문화연예
서울=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원 간섭기' 고려-원 관계 실체는?
'원 간섭기' 고려-원 관계 실체는?
입력 2009-12-02 17:44 |
수정 2009-12-0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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