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문화연예
기자이미지 서울=연합뉴스

자살, 자기살해인가 자유죽음인가

자살, 자기살해인가 자유죽음인가
입력 2010-02-18 10:10 | 수정 2010-02-18 10:10
재생목록

    장 아메리(1912∼1978)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문학과 철학 박사학위를 따고 글을 쓰는 지식인이었다.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자 유대인으로 낙인 찍힌 아메리는 레지스탕스운동에 참여했다.

    활동 중 체포된 그는 게슈타포의 악명 높은 고문으로 죽음 문턱까지 갔고 아우슈비츠에 갇혔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망가진 몸을 이끌고 겨우 돌아온 그는 친구인 시인 헬무트 하이센뷔텔의 도움으로 조용히 작가 생활을 했지만, 대표작인 '자유죽음'을 내놓은 지 2년 만인 1978년 끝내 자살했다.

    국내에서는 처음 번역, 출간되는 아메리의 작품인 '자유죽음'(산책자 펴냄)은 삶과 죽음의 의미, 자살의 자유를 성찰한 철학 에세이다.

    죽음에 이미 한 발을 들여놓은 듯 위태롭고 처절한 작가의 사색은 예사롭지 않다.

    "우리더러 군홧발이나 불구덩이에 희생당하라고 하면서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사랑과 지혜'라며 그리스도의 신을 들먹이는 말이야말로 진짜 신성모독이다.

    " '자살'이라는 말이 품은 사회적 함의는 명백하다.

    생명은 하늘이 내리고 사회가지켜주는 소중한 것이므로 목숨을 스스로 끊은 자는 의무를 저버린 배신자다.

    생명을 예찬하는 말은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으나 자살을 예찬하는 것은 방종이며 비윤리다.

    그러나 아메리는 주저하지 않고 묵직한 발걸음으로 자살이라는 금기에 다가간다.

    '자기살해'라는 뜻의 자살(Suizid)이라는 말도 자유죽음(Freitod)이라는 말로 바꾼다.

    그는 진실로 자연스러운 죽음이란 무엇인지 물으며 자신은 물론 이웃의 존엄과 자유까지 짓밟으면서 치욕적으로 끌려가는 인생을 자발적으로 내려놓는 일은 자연사만큼이나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스로 손을 내려놓는 사람은 원칙적으로 타인의 의지에 자신을 맡겨버린 사람과 다르다.

    스스로 손을 내려놓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자유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 저자에게서 사회 통념을 깨부수려는 치기 어린 도전은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의 의지를 바닥까지 긁어내는 모진 고문을 당하고 반평생 망가진 몸으로 고통의 기억 속에서 산 노인의 치열한 성찰은 역설적으로 강렬한 실존의지에 대한 예찬이다.

    "어찌 됐든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아메리의 자살론은 여전히 위험하다.

    삶을 멸시하는 이들에 의해 오용될 가능성이 곳곳에 숨어 있다.

    다만, 이 책은 현실 도피로서 자살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인간다움'을 통째로 부정한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기를 부정하는 일은 나약한 자의 도피와는 다르다.

    해제를 쓴 김남시 박사는 "아메리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한다면, 그의 사유를 이끌고 있는 것이 삶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경외와 자기 삶에 대한 자기 결정 권리,그리고 자유에의 갈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풀이했다.

    김희상 옮김. 284쪽. 1만5천원.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