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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움직이는 9인의 연방대법관

미국을 움직이는 9인의 연방대법관
입력 2010-03-12 11:50 | 수정 2010-03-1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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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제 존폐, 존엄사 허용 여부 등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날 때마다 사회가 들썩거리듯, 미국에서도 낙태, 정교(政敎) 분리 등을 둘러싼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날 때마다 미국, 나아가 세계의 시선이 쏠린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헌법을 다루거나 최종 판결을 내리는 최고 법원은 단순히 최종적인 법적 효력을 정한다는 의미를 넘어 정치적, 사회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이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 소속 작가 제프리 투빈의 '더 나인 - 미국을 움직이는 아홉법신(法神)의 이야기'(라이프맵 펴냄)는 1980년대 이후 미 연방대법원과 대법관들의 판결 성향을 파고든 묵직한 교양서다.

    저자는 대법관들과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종신 임기를 보장받는 대법관 각각의 성격과 사법 철학, 다른 대법관과의 관계가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판결이 사회에 어떤 파문을 불러일으켰는지 생생하게 그렸다.

    최근 국내에서도 뜨거운 감자인 낙태 문제는 특히 미국에서 선거는 물론, 고위 공직자 지명에서 후보의 자질과 성향을 검증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항목이자 끊임없이 이슈가 되는 논란거리다.

    "연방대법원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건이 있다. 낙태 사건과 그 외의 모든 사건"이라고 말하는 저자 역시 낙태 문제에 상당 지면을 할애한다.

    "프라이버시권은 임신을 종료할지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을 포괄할 정도로 충분히 폭넓은 것"이라는 결론으로 여성의 낙태 권리를 인정한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은 1980년대 이후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출범과 미 정계 보수화 경향과 함께 여러 차례 폐기 위기를 겪었다.

    1992년 대법관 9명에게 '로 판결'을 뒤집을 새로운 기회인 '케이시 사건'이 주어졌다.

    낙태 허용을 기필코 막으려는 보수주의자들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했고, 보수 성향의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을 필두로 하는 대법원의 초반 분위기도 파기 쪽으로 기운 듯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에서 결정적 한 표를 손에 쥔 온건 보수주의자와 중도파 대법관들이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뜻과는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거나 적어도 반대를 받지 않고 임명된 데이비드 수터,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 성실하고도 야망 있는 가톨릭신자인 앤서니 케네디는 조용히 손을 잡았고, 이들의 특이한 연합으로 '로 판결'은 살아남았다.

    각 법관이 이민자 가정 출신인지 백인인지, 개신교도인지 가톨릭교도인지 유대인인지, 여성주의자인지 남성우월주의자인지, 결정적으로 진보주의자인지 보수주의자인지에 따라 개인적 가치관이 분명히 달랐고, 이런 성향은 정부의 대법관 지명에도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그러나 법관들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헌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법관으로서사법 철학과 '대법관이란 정치가라는 족속 이상의 존재임을 알려야 한다'는 신조를 버리지 못했다.

    책의 주인공인 전ㆍ현직 대법관들은 주위의 입김에 흔들리고 갈등에 고뇌하는 인간이자, 법조인으로서 분명한 신념을 가졌으며 거꾸로 사회를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손에 쥔 '법신'들로 그려진다.

    2000년 대선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당선을 결정지은 플로리다주 재개표 중단결정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판결뿐 아니라, 빌 클린턴과 부시 전 대통령이 공석이 날 때마다 얼마나, 무엇을 고심해 새로운 대법관을 지명했는지 하는 과정이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앞서 미국 대선이나 O.J 심슨 등 유명 사건을 추적한 책을 쓴 작가는 이 '미국을 움직이는 법신 9명'이 어떤 생각과 심리로 자신의 생각을 지키거나 바꿔 나갔는지 과정을 힘 있는 문체로 써내려갔다.

    그 덕에 책에서는 잘 짜인 법정 스릴러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강건우 옮김. 640쪽. 3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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