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는 자기보다 몸집도 작고 다리도 느린 북방족제비를 무시한다.
족제비가 저쪽에서 공격해 온다 싶으면 가볍게 깡충깡충 뛰어 금세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방족제비는 들판 저쪽에 토끼가 보이면 '미친 척' 이리저리 뜀뛰기와 회전, 구르기, 공중제비를 연거푸 선보이며 춤을 춘다.
토끼들이 "저 조그만 게 헛수고하면서 우리를 쫓더니 드디어 미쳤나" 하는 눈빛으로 넋을 놓고 족제비의 정신없는 춤을 지켜보는 사이 멀리 있던 족제비는 어느샌가 가까워지더니 토끼의 목덜미를 덥석 문다.
허점을 보여 사냥감을 방심하게 한 다음 잽싸게 낚아채는 것이다.
독일의 기자 출신 전문 작가 마르쿠스 베네만의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동물들의 생존 게임'(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는 단순한 본능이라고 넘겨보기에는 재치와 지능이 번뜩이는 동물들의 생존 전략들이 들어 있다.
동물들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거나 굶어 죽는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영리하고 치밀한 작전을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동물들의 생존 게임은 형사 범죄의 세계와 놀랍도록 닮았다"며 온갖 동물이 생존 다툼을 벌이는 자연에서 인간 사회와 비슷한 잔혹한 풍경을 발견한다.
조류인 해오라기는 관상용으로 '오냐오냐' 하며 길러지다가 미모 부족으로 일반 연못으로 쫓겨난 잉어를 노려 연못에 빵 조각을 던진다.
사육사가 알아서 먹이를 주던 풍족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잉어는 의심 없이 빵조각으로 몰려들고, 해오라기는 이때를 잡아 잉어를 낚아챈다.
상대의 '나약한 욕망'을 노리는 전략이다.
솔개는 산불이 난 현장을 발견하면 불길이 남은 나뭇조각을 집어들어 마른 풀 위에 떨어뜨린다.
풀밭에서 불길이 솟으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주머니쥐나 도마뱀을 기다렸다가 낚아챈다.
'호모 파베르(도구를 만드는 동물로서의 인간)' 뺨치는 기술이다.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듯한 동물들의 '살육' 전략에 섬뜩한 순간도 있지만, 긴장감을 풀지 않으면서도 유머와 재치 역시 잊지 않은 저자의 문체가 동물의 왕국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놓는다.
유영미 옮김. 334쪽. 1만4천800원.
문화연예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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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펼쳐지는 지능적인 생존전략
자연에서 펼쳐지는 지능적인 생존전략
입력 2010-03-30 11:02 |
수정 2010-03-3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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