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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능지처참에 얽힌 오리엔탈리즘

중국 능지처참에 얽힌 오리엔탈리즘
입력 2010-04-01 07:42 | 수정 2010-04-01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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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4년 가을, 중국 베이징에서 왕웨이친(王維勤)이라는 남자가 리지창(李際昌)의 재산을 빼앗으려 그에게 누명을 씌우고 그 일가 12명을 살해한 죄로 능지처사(陵遲處死)를 당했다.

    그는 당시 중국 법전인 대청율례(大淸律例)에서 '한 가문에서 3인 이상 살해한 범죄'를 다룬 조항에 따라 재판을 받아 처형됐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05년 봄, 청에서 능지처참형은 폐지됐으나 프랑스 군인이 왕웨이친 능지형 장면을 찍은 사진이 서양으로 퍼졌고 이 잔인한 장면은 서구인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티모시 브룩 영국 옥스퍼드대 중국학 교수와 제롬 부르곤 프랑스 리용대 아시아오리엔트연구소 연구원, 그레고리 블루 캐나다 빅토리아대 역사학 교수가 함께 쓴 책 '능지처참'(너머북스 펴냄)은 이 사진에서 중국 능지형에 대한 논의를 끌어낸다.

    저자들은 중국의 능지형 자체뿐 아니라 근대 서구사회가 이를 어떻게 바라봤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왕웨이친 처형 일화에서 눈여겨보는 부분 역시 서구인들이 이 사진을 동양적 야만성의 아이콘 정도로 여겼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명청시대 중국 법률은 영국을 비롯한 서양의 법률만큼 체계적이었으며 오히려 형식과 절차를 지나치게 밟는 면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능지형을 비롯한 혹형의 잔혹성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법학자들 역시 혹형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놓고 끊임없이 논쟁했음을 일깨운다.

    서구 역시 동양의 혹형을 항상 색안경 끼고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가령, 18세기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능지형을 언급할 때도 혐오스럽다고 개탄하는 관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근대 초기에는 중국의 형벌제도가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시각이 많았다.

    서구인들이 중국의 혹형을 야만적이라고 단정 지은 것은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20세기였다.

    이 시기 서구 학자와 작가들은 한창 인간성과 인권의 개념을 퍼뜨리고 있었고, 중국 형벌에 대한 이야기는 서양인들에게 공포와 혐오감이라는 '감성적, 미학적 반응'을 일으켰다.

    중국에서는 1905년 능지형이 폐지됐는데 서구인들은 오히려 잔혹한이미지를 떨쳐내지 못했다.

    게다가 동양의 혹형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동양을 '문명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식민지에서 서구인들의 치외법권을 확보하려 했던 제국주의자들의 뜻에 잘 들어맞았으므로 거침없이 울려 퍼졌다.

    결국,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한 지역의 형벌제도를 연구하려면 그제도의 역사적 맥락과 그에 대한 지역민들의 인식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점, 형벌제도에 대한 외부의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중국 능지형에 얽힌 '오리엔탈리즘'을 파헤치고 경계하는 저자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능지형의 한국적 맥락을 고민해 보라고 주문한다.

    박소현 옮김. 500쪽. 2만3천원.

    중국 능지처참에 얽힌 오리엔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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