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크 전쟁을 그린 영화는 지금까지 많이 나왔다.
최근 개봉한 '그린존'을 비롯해 많은 영화는 전장의 참상을 묘사하기 위해 현란한 카메라 기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허트 로커'는 별다른 기교 없이 우직하게 이야기에 집중하는 영화다.
하지만 캐슬린 비글로 감독의 이런 정공법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진한 감동을 불어 넣는다.
이 영화가 왜 아카데미상 사상 처음으로 여성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겼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폭발물 제거반(EOD)에 제임스 중사(제레미 레너)가 새로운 팀장으로 부임한다.
제임스 중사는 뛰어난 폭탄 제거 능력으로 상사에게 인정을 받지만, 팀원들에게는 배척당한다.
적의 총탄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팀원들의 목숨은 아랑곳없이 폭발물 제거에만 골몰하기 때문이다.
폭발물 제거작업에 나선 어느 날, 제임스 중사는 자신이 알던 꼬마의 주검에 폭탄 꾸러미가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분노에 휩싸인다.
비글로 감독이 집중한 대상은 바로 제임스다.
"폭탄이 터질 때의 저 아름다운 우산모양을 봐!"라고 말할 정도로 폭탄 제거에 중독돼 있는 제임스는 이미 이성이 마비된 상태다.
가족 품으로 한때 되돌아가지만 다시 전장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전쟁에 중독된 것. 비글로 감독은 이처럼 전쟁에 중독돼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냉정할만큼 차갑게 카메라에 담았다.
감독은 가치판단을 하지 않은 채 131분간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영화는 드라마의 고저가 분명하고, 클라이맥스인 '한방'까지 갖췄다.
감정을 꾹꾹 누른 레너의 절제 연기는 압권이다.
가끔 터져 나와 심장을 한번 꽉 움켜쥐고 나서 홀연히 사라지는 음악도 일품이다.
'허트 로커(The Hurt Locker)'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 혹은 심각한 부상을 의미하는 미군의 은어다.
'허트 로커'는 올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아바타'를 꺾고 6관왕에 오른 것을 비롯해 영국아카데미상, 전미비평가협회상, 밴쿠버비평가협회상 등 78개의 상을 받았다.
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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