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방송에서, 무대에서, 강단에서 떠들었어요. 그러다 10년 전부터는 그림과 대화를 하지요. 너무 행복합니다."
20년을 정상의 패션모델로 활동하고 이후 10년은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전도사 역할을 하며 강단과 방송계를 누볐던 한국 패션모델 1세대 이희재(58). 그는 화가로서의 새로운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다음 달 2-17일 청담동 이따리아나빌딩에서 첫 개인전 '루이와 레이'를 열고 화가로 정식 데뷔하는 그를 지난 10일 청담동의 한 갤러리에서 만났다.
"그림을 그린 지는 10년 됐어요. 모델 쪽 일을 모두 접고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고요. 그 당시 쓸개 수술을 받았는데 회복이 잘 안됐어요. 몸이 아파서 강의도 할 수 없었죠. 그래서 차밍스쿨 등을 모두 그만두고 제 시간을 가졌죠. 혼자서 놀아보자 했는데 뭐하고 놀까 생각하니 그림이 딱이었어요."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하며 크로키나 스케치 등의 기본기를 다졌던 그는 처음에 크레용으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재미있고 심플한 그림을 좋아해요.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으니 하나씩 그리면 주변 사람들에게 다 선물해줬어요. 그러다 그림을 좀 알게되고 나서는 그 그림들을 다 회수했어요.(웃음) 개인교습으로 3년간 그림 지도를 받았고 2006년 그룹전에 두 작품 내는 것을 시작으로 이 길로 접어들었어요. 주변에서 '생각외로 잘한다'고 해줘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스무살 때 방직협회가 주최한 '목화 아가씨' 선발대회에서 1등으로 뽑히며 모델로 데뷔한 이희재는 1970~1990년대 김동수, 루비나 등과 함께 패션모델이라는 직업을 대중에게 알린 국내 1세대 모델이다.
20년간 런웨이에 섰던 그는 모델 은퇴 후에는 2002년까지 차밍스쿨을 13년간 운영하며 TV와 라디오에서 종횡무진했고 대학에서 교편도 잡았다.
1993년에는 책 '아름다운 여자 : 이희재 차밍스쿨'을 통해 '이희재 다이어트'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이 책은 80만부가 팔렸으며 이희재는 다이어트 광고 모델로도 주가를 날렸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저를 잘 모르지만 '이희재 다이어트'는 알더라고요.(웃음)그때 대단했어요. 책이 날개돋친 듯 팔렸고 남자들이 차밍스쿨에 줄을 섰어요. KBS '추적60분'에서도 그 신드롬을 취재해 방송했으니까요."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도 이희재는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매일 오전 7시에 기상해 1시간씩 에어로빅과 수영을 통해 몸매 관리를 한다.
식사시간도 정확하게 지킨다.
"제가 좀 완벽주의자예요. 뭐든지 철두철미하게 하려고 하니 나 자신이 피곤하죠. 몸이 너무 고달팠고 너무 말을 많이 해 목소리가 안 나와 필담으로 대화해야했던 시기도 있어 모델 일을 정리했던 것인데 지금은 미술에 푹 빠져 팔과 어깨가 저리도록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웃음) 그림을 그리는데 전율이 막 느껴져요."
이번 전시회의 주요 소재는 말이다.
그가 '루이(lui)'와 '레이(lei)'라 부르며 의인화한 말들이 환상적인 색감의 다채로운 모습으로 표현됐다.
그는 전복껍데기, 풍선, 목걸이, 포장지, 비닐, 두부곽 등 생활속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그림에 접목시켰다.
"나를 뭘로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제일 멋진 동물인 말을 선택했어요. 25살 때부터 승마를 했는데 제가 딴 것은 아무것도 못 만지는데 말은 잘 알고 잘 다뤄요. 어려운 그림이 아니라 감상하는 데도 편하실거에요." 평생 독신으로 산 그는 "38세까지는 시집갈 생각을 안하다 39세 때 남자를 찾아보려고 했더니 좋은 사람은 다 결혼하고 없더라"며 웃었다.
"후회하죠. 남들 다 시집갈 때 난 왜 못갔을까 싶죠. 하지만 혼자였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 하며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절 부러워하는 여성 분들이 많던데요?(웃음)" 한편, 이번 전시회에서 그가 선보이는 작품들은 디자이너 한혜자의 손을 거쳐 다양한 여름 의상으로 제작되며 그중 티셔츠의 판매 수익금 일부는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할 예정이다.
그는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모델 일도 멋지게 오래도록 했고 이렇게 그림도 그리게됐으니 참 감사하다"며 "앞으로는 남들 도우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문화연예
서울=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사람들> 화가 데뷔한 1세대 모델 이희재
<사람들> 화가 데뷔한 1세대 모델 이희재
입력 2010-06-11 11:50 |
수정 2010-06-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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