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이슬람 사원 주변의 낡고 허름한 동네, 터키인 '하산'이 정육점을 운영한다.
독실한 이슬람 교인인 그가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를 파는 '모순'은 전쟁이 남긴 정신적 상처 때문이다.
소설가 손홍규(35) 씨의 장편소설 '이슬람 정육점'(문학과지성사 펴냄)은 서울 속 이슬람 사원, 이슬람교도의 정육점이라는 낯선 공간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터키인은 한국인 고아를 입양해 또 다른 '부조화'를 만든다.
소설은 상처투성이 아이가 전쟁의 아픔을 안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들 속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진지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쓰라린 상처를 안고 있다.
전쟁은 멈췄어도 전쟁이 이들에게 남긴 고통은 멈추지 않았고, 그들에게는 삶이 곧 전쟁이다.
한국전쟁에서 가슴에 총상을 입은 하산 아저씨는 휴전 후에도 터키에 돌아가지 못했다.
전투 중 누군가의 살점을 씹은 트라우마가 아직도 그를 괴롭힌다.
"나는 그걸 조심스럽게 씹었다. 달콤했어. 그게 포탄에 맞아 찢겨진 사람의 살점이라는 건 한참 뒤에야 알았다. 전쟁이란 사람이 사람을 먹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213쪽)
역시 한국전에 참전한 야모스 아저씨는 그리스 내전에서 사촌 일가를 적으로 오인해 사살했다는 죄책감에 한국에서 비루한 인생을 살고 있다.
전쟁의 상처로 기억을 잃은 한국인 대머리 아저씨는 망상 속에 군가를 부르고 다니는 전쟁의 희생자다.
이들과 같은 삶을 살게 된 아이 역시 아픈 상처를 안고 있다.
몸에 원인 모를 깊은 흉터를 가진 아이는 이슬람 사원 골목 사람들의 상처 속에서 성장하고, 하산 아저씨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몸속으로 의붓아버지의 피가 흘러들어온" 것을 느낀다.
"나는 훗날 내 자식들에게 나의 피가 아닌 의붓아버지의 피를 물려주리라. (중략) 그날 나는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236쪽)
출간에 맞춰 만난 손홍규 작가는 "전쟁의 주체는 아니었지만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한국 사회에서 또 다른 타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하산의 행동은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하산이 정육점을하는 것은 종교적으로 일종의 타락이지만 인간 자체의 타락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쟁 역시 인류의 타락이지만 인간을 완벽히 타락시키지는 않는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그는 "한국전쟁은 알면 알수록 비참한 전쟁이고, 이 순간에도 살아있는 전쟁"이라며 "비참한 기억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아픔과 치부를 들여다볼 때 이를 치유하고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전쟁을 다룬 소설이 많았지만 아쉬움이 있었다"며 "지금 바로 우리의문제로,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 속으로 가져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40쪽. 9천원.
문화연예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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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인 의붓아버지와의 상처 치유기
터키인 의붓아버지와의 상처 치유기
입력 2010-06-29 18:05 |
수정 2010-06-2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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