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정조대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은 왜 창설되고 어떻게 운영됐을까.
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문화의전당 컨벤션센터에서는 정조가 개혁을 실천하기 위해 창설한 장용영의 실체를 밝히는 학술대회가 수원화성박물관 주최로 열렸다.
장필기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실장은 '정조대 장용영 창설과 운영'이란 논문을 통해 "어렵사리 왕위를 계승한 정조는 신변 보호와 숙위(宿衛)체제 정비를 위해 장용영을 만들었다"며 "정조는 장용영을 바탕으로 재정을 확보하고 나아가 화성 건설 계획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장 실장은 또 "장용영은 엄격한 군사 선발과 철저한 조련을 통해 정조왕권의 안정적 기조를 유지할 수 있게 뒷받침했고 친위군영으로 자리잡았다"며 "정조는 화성 건설의 계획 단계에서 장용영을 창설하고 화성 축조 단계에서 장용영 내외영제를 확립했으며 화성방위체제 구축 단계에서 장용영의 실질적 운용을 현실화했다"고 설명했다.
수원화성박물관 김태완 전문위원은 "화성유수 조심태가 만든 '화성부성조도(華城府城操圖)에 따르면 정조는 1793년 1월 화성유수부를 승격하고 장용외영(外營)을 설치했다"며 "당시 장용외영에는 기존 수원에 주둔했던 총융청 방어영 등의 군사를 합쳐 모두 4천811명이었다"고 밝혔다.
김 전문위원은 "장용외영의 주요 임무는 화성의 방어와 정조의 화성행차에 대한 호위였다"며 "이를 위해 장용영 군사들은 매월 한 차례 진법을 익히고 3일마다 대(隊) 단위로 활쏘기와 조총사격, 창검무예인 24기(技)를 연마했다"고 했다.
김영호 사단법인 무예24기보존회 중앙전수원장은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24기(二十四技)의 기원과 활용'이란 논문에서 "정조는 군영마다 무예의 자세와 동작에 약간씩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표준안을 만들도록 장용영에 임무를 줬다"며 "따라서 장용영을 통한 '무예도보통지' 편찬은 무예의 표준화와 더불어 부국강병책의 출발이었다"고 밝혔다.
사회
수원=연합뉴스
수원=연합뉴스
정조는 친위부대 장용영을 왜 창설했나
정조는 친위부대 장용영을 왜 창설했나
입력 2010-07-07 15:40 |
수정 2010-07-0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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