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으로 등단 31년 만에 첫 상인 지리산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했을 때도 상복 없던 시인이 이제야 제 평가를 받았다며 문단 안팎에서 제 일처럼 기뻐했다.

오랜 정신질환으로 몸도 마음도 약해져 경북 포항의 요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던 시인이 지난해부터 아예 경기도 이천의 정신과 병원에 입원해 써내려간 시들이다.
시인은 "이 시집의 시들 전부가 정신과 병동에서 씌어진 것들"이라는 '사전 경고'로 시집을 연다.
"독자들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神(신), 神할애비 등에 놀랄 수도 있겠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고, 노자와 장자를 계속 읽다가 마주치게 된 기이한 우연이라는 말만 더 보태자. (중략) 그렇게 쓸쓸할 때의 나는 始源病(시원병)에 걸린 나이다.
정신분열증 환자가 始源病이라는 또 다른 증세까지 겹쳐 앓고있는 셈이다.
"(시인의 말 중) 시인의 말대로 이번 시집의 수록작들은 神과 神할애비, 虛(허)와 道(도) 등으로가득 차 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못 씻을 손을 또 씻으면서 / 나 혼자 세월 세월 흘러가느니라 // 오늘 네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 가장 불쌍한 사람이 있었다면 / 그를 神이라 불러다오"('神할애비가 말하길' 중) "道司道(도사도) 非常道(비상도)를 노래했던 사나이는 / 저 초월의 虛에도 불구하고 / 질펀하게 쏟아지는 현실의 虛를 / 어떻게 바라보고만 있었을까 / 그것은 그가 虛를 道로 대체시켰기 때문이 아닐까"('58세 내 고독의 構圖(구도)' 중) 오랜 투병으로 수척해진 시인의 몸만큼이나 그의 시도 부피가 줄었다.
역설적이게도 정신질환 진단을 받기 전의 작품이 더 독기 서리고 파괴적이었다면 투병 이후 선보이는 시들은 한층 또렷하고 명료해졌다.
시인은 돌아왔지만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는 아닌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왔다 / 세상의 모든 나무 그림자들이 / 한없이 길어지는 오후 /나는 다시 돌아왔다 // 사프란으로 떠난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 나는 다시 돌아왔지만 / 사프란으로 떠난 그녀는 / 영영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나는 다시 돌아왔다' 중)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최승자는 가장 가벼운 육체로, 가장 잘 활용된 감각으로,인색하게 허락되는 언어로, 간명한 사상으로, 경제적으로 그러나 확실하게 사용되는시적 선회로, 우리 시대에 가장 투명한 말의 거울을 만들었다"며 "제 입김으로 거울을 흐려놓지 않으려면,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이 시집을 읽어야 한다"고 평했다.
88쪽. 8천원.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