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오지에서 약도 안 듣는 배탈로 고생하다가 라면 한 그릇을 먹고 배가 씻은 듯이 가라앉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라면은 단지 값싼 인스턴트 음식이 아니다.
음식 본연의 맛과 가치를 떠나서 말 그대로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을 만난 기억이 누구에게나 하나둘 쯤은 있을 것 같다.
성석제, 백영옥, 김어준 등 21명의 글쟁이들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맛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소울푸드'(청어람미디어 펴냄)가 출간됐다.
먹을 것 귀한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거문도 출신의 소설가 한창훈은 어린 시절 학교로 배달오던 잡지 '어깨동무' 속에 실린 광고 만화를 통해 처음 접한 '진주햄 소시지'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분홍빛의 동그란 막대'의 맛이 궁금해 소시지 사진에 혀를 대보기도 했던 그는 4학년 때 여수로 전학 가서 드디어 실물 진주햄 소시지의 맛을 보게 된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처음 접한 소시지의 맛은 "돼지비계의 반의 반의 반도 못하는 맛"이었단다.
물론 지금은 자주 소시지볶음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소설가 박상은 숙취와 편두통과 집필 난조에 시달릴 때 먹었던 홍대 라면집의 매운 라면이 그를 등단으로 이끈 사연을 코믹하게 들려준다.
"국물을 뜨는 과정에서 이미 매콤한 충격파가 퍼지며 위장이 통렬한 움직임을 재개하고, 숙취 따위는 매운 맛에 압도되어 버리기 때문에 면까지 섭렵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62쪽)
가수 겸 연기자인 김창완은 어느날 비틀즈 음악이 나오는 식당에서 들깨 수제비를 먹으며, 개구리를 잡아먹던 어린 시절과 들깨죽을 보며 눈물만 흘리던 아픈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린다.
"비틀즈를 들으며 먹은 오늘의 점심식사 수제비는 한 끼니의 식사이기도 하고 내 인생을 들여다보는 핀홀이기도 했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삶은 늘 한 끼의 식사일 뿐이다."(92쪽)
평범한 음식에 대한 저자들의 의미 있는 사연을 읽다보면 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224쪽. 1만2천800원.
문화연예
서울=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영혼을 살찌우는 나만의 음식
영혼을 살찌우는 나만의 음식
입력 2011-10-08 10:33 |
수정 2011-10-0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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