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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진'이 '신사의품격'보다 품격있는 이유

'닥터진'이 '신사의품격'보다 품격있는 이유
입력 2012-07-09 14:51 | 수정 2012-07-0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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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는 바보상자’라는 말은 이제 박물관에 소장되는 것이 어울릴 정도로 식상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SBS TV 주말극 ‘신사의 품격’을 보면, 그 말의 존재가치는 여전하다는 느낌이다. 이 드라마 속 꽃중년 4인의 러브스토리나 라이프스타일은 '저 사람들이 우리나라 40대 초반 남성들의 몇 퍼센트에 해당할까'하는 의문, 아니 한탄을 낳게 한다.

    직장에서 승진하지 못할까봐, 후배한테 밀려날까봐 고민, 아파트 대출이자 고민, 자녀양육이나 교육비 고민 등 세상사 고민은 전혀 없이 오직 ‘여자문제’만이 고민의 전부인 그들이다. ‘40대 초반 남성이 그런 고민 없이 세상을 살려면, 잘 생기고 키 크거나, 좋은 직업을 갖고 있거나, 부모를 잘 만나거나,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하거나, 미혼 또는 자녀 없이 사별이든, 이혼이든 해서 싱글이면 되는 것이구나’라는 아주 간단한 결론에 도달한다.

    압권은 6월10일 제6회에서 잘 나가는 건축사 ‘도진’(장동건)이 자신이 마음에 둔 고교교사 ‘서이수’(김하늘)가 고급차에 타고 있는 사람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에 격분해 1억5000만원짜리 메르세데스 벤츠의 ‘더 뉴 ML 63 AMG’로 기아차 ‘K7’을 들이받아 벌인 장면이다. 물론 ‘K7’의 가격도 3900만원대이고, 피해차와 가해차의 차량 수리비도 만만찮긴 하지만 사람이 타고 있는 차를 뒤에서 고의로 받은 것 자체는 살인 미수행위로도 볼 수 있다. 부동산 졸부 집안의 철없는 대학생 아들도 하지 않을 짓을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40대 건축사가 했다. ‘질투’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어이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시청률이 20%를 넘는 것을 보면, 속세와 괴리된 채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꽃중년 넷의 삶을 부러워 하거나 대리만족이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가 보다.

    반면,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MBC TV 주말극 ‘닥터 진’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닥터진'이 '신사의품격'보다 품격있는 이유
    이 드라마는 2012년 대한민국 서울의 천재의사 ‘진혁’(송승헌)이 1860년 조선 한양으로 타임슬립을 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2012년 대한민국 서울을 무대로 벌어지는 ‘신사의 품격’보다 당연히 더 황당무계한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뭔가를 ‘사고(思考)’하게 하고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이 드라마는 6월10일 제6회에서 매독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직효약인 항생제 페니실린을 실제 페니실린이 등장한 것보다 70년 가까이 빠른 1860년에 제조하는 것을 놓고 자칫 역사를 뒤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진혁이 갈등하는 것을 통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1일 제12회에서는 또 다른 화두를 던졌다. 고을 양민들을 상대로 가렴주구를 일삼는 것도 모자라 양민의 딸까지 겁탈하려다 반항한다고 살해해버릴 정도로 포악한 고을 원님의 수술을 통해서다. 이 원님은 진주민란(1862)의 와중에 반란군에 의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다. 수술을 한다면 살릴 수 있지만 그냥 두면 죽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진혁과 진혁을 돕는 ‘홍영래’(박민영)가 맞부딪힌다. 영래는 “인두겁을 썼을 뿐 짐승보다 못한 자다. 이 자를 살리면 또 무슨 끔찍한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열 명, 아니 백 명의 목숨을 잃을 수 있다”며 수술에 반대한다. 그러나 진혁은 “의원은 사람을 가려가며 살리지 않는다. 이 사람이 누구든, 무슨 짓을 했든 최선을 다해서 살려야 한다”며 수술을 강행해 원님의 목숨을 살려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방송 끝무렵 바로 그 원님에 의해 민란군을 이끌던 영래의 오빠 ‘홍영휘’(진이한)가 총상을 입은 채 벼랑 아래로 추락해버린다. 생명의 ‘귀천’을 넘어서 악인의 생명도 지켜줘야 하는가에 관한 ‘가치’의 문제가 부각된 셈이다.

    이쯤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 듯 이 드라마는 7일 13회에서는 더 큰 숙제를 안겼다. 1862년의 왕인 ‘철종’(김병세)의 급성 충수염(맹장염) 수술이다. 내의원에서 일하게 된 진혁은 철종이 발병하자 수술을 하려 하지만 벽에 부딪치게 된다. 그와 절친한 사이인 ‘이하응’(이범수)의 반대다.

    이하응은 철종이 후사가 없는 점을 노려 자신의 둘째아들 ‘명복’(훗날 고종)을 왕실 최고 어른인 ‘조 대비’(정혜선)의 양자로 삼아 철종의 사후를 도모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철종이 이번에 바로 승하하게 되면 후계 작업이 훨씬 수월해지지만 만일 수술이 성공해 죽지 않고 건강을 회복하면 시간을 번 안동김씨 세력이 또 다른 허수아비 왕족을 후사로 내세우게 돼 자신의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철종을 구할 것인가, 이하응을 도와 자신도 체험한 안동김씨 일족의 폭정을 끝낼 절호의 기회를 살릴 것인가. 8일 밤 9시50분 14회에서 진혁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진주민란 직후인 1862년이니 철종은 이번에는 진혁의 수술을 받아 죽지 않을 듯하다. 고종이 즉위한 해는 1년 뒤인 1863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보상자 안에서 펼쳐지는 이런 고민의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시청자들 그야말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청률 10%대로 ‘신사의 품격’의 반토막에 그치고 있는 ‘닥터진’이지만, 품격마저 잃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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