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의 흉측한 몰골과 귀를 찢는 효과음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게 대부분이었던 근래 한국 공포영화의 흐름 속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 한 편이 나왔다.
옴니버스 공포영화 '무서운 이야기'는 공포영화에서 수없이 우려진 클리셰를 살짝 비켜가면서 인간이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고립과 폐쇄에 대한 공포를 자극한다.
영화는 4편의 이야기를 엮는 액자식 구성에서부터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몸을 결박당한 채 정체불명의 한 남자(유연석 분)에게 끌려온 여고생(김지원)은칼을 들이대는 남자 앞에서 두려움에 떤다.
남자는 종이에 빨간 글씨로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쓰고 여고생은 살아남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네 편의 독립된 영화 '해와 달' '공포 비행기' '콩쥐, 팥쥐' '앰뷸런스'는 여고생이 남자로부터 위협을 느낄 때마다 하나씩 펼쳐진다.
액자식 구성에서 액자라 할 수 있는 바깥 이야기의 연출은 최근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흥행에 성공한 민규동 감독이 맡았다.
민 감독은 처녀작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에서 보여준 섬세한 공포영화 연출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범죄에 쓰였을 법한 도구와 연장들로 가득한 그로테스크한 집안은 공간의 분위기만으로도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액자 속 이야기인 '해와 달'(정범식 감독)은 아파트에서 단둘이 밤을 보내는 오누이의 공포를, '공포 비행기'(임대웅 감독)는 살인범을 이송하는 비행기 안에서 살인범과 승무원이 벌이는 사투를 그렸다.
'콩쥐, 팥쥐'(홍지영 감독)는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찬 자매와 잔혹한취미를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를, '앰뷸런스'(김곡·김선 감독)는 좀비들 사이에서 고립된 앰뷸런스 안에서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사투를 그렸다.
이들 중 특히 흥미로운 작품은 '해와 달'과 '콩쥐, 팥쥐'다.
'해와 달'을 연출한 정범식 감독은 2007년 이색적인 공포영화 '기담'으로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으며 그 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에서도 감독은 고립된 공간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막막하고 불안한 심리를 시각적으로 예리하게 펼쳐보인다.
'해와 달'이란 제목부터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던 전래동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어른이 없는 집을 밤새 혼자 지켜야 했던 유년 시절의 경험,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자각할 때 느끼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자극한다.
현실의 이야기와 연결하는 이음매는 다소 어색한 감이 있지만, '해와 달'의 인물들이 느끼는 위협과 공포가 현실의 비극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비롯된 원한과 맞닿아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섬뜩하다.
'콩쥐, 팥쥐'는 인간의 탐욕과 욕망, 질투가 끔찍한 결말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콩쥐와 팥쥐의 이름을 '공지'(정은채)와 '박지'(남보라)로 바꾸고 공지 역시 박지 못지않게 욕망으로 가득찬 인물로 변주한 설정도 흥미롭지만, 이들이 동시에 차지하려고 애쓰는 60대 재력가 민회장(배수빈)이란 인물도 독특하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 덕에 30대의 외모인 데다 돈까지 많은 민회장에게 여자들은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강렬한 이야기 네 편이 한데 묶이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관객의 피로도가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올여름 블록버스터들의 틈바구니에서 색다른 맛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즐길 만한 영화다.
이 영화는 19일 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뒤 오는 26일 개봉한다.
상영시간 108분. 청소년 관람불가.
문화연예
서울=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새영화] 원초적 공포‥'무서운 이야기'
[새영화] 원초적 공포‥'무서운 이야기'
입력 2012-07-19 11:51 |
수정 2012-07-1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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