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아버지의 곡을 리메이크했지만 아직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곡이 많아요. 숨겨진 보석 같은 곡들이죠. 우리만 알기엔 너무 아까워서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만큼 원작자의 의도를 잘 아는 사람들도 없으니까요.(신윤철)"
'한국 록의 대부'인 기타리스트 신중현(74)의 명곡들이 두 아들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세 아들 중 둘째인 기타리스트 윤철(43), 셋째인 드러머 석철(41)이 베이시스트송홍섭(58) 등과 프로젝트 밴드 '카도(CADDO)'를 결성, 아버지가 만든 곡들을 재해석한 앨범 '뮤직 오브 신중현' 시리즈를 선보이는 것. 지난 9일 반포동 연습실에서 만난 멤버들은 "과거엔 아주 좋았는데 요즘에 해보면 별로인 곡이 있는 반면, 과거엔 주목받지 못하고 묻혔지만 요즘에 해보면 기가 막힌 곡이 있다"면서 "신중현의 곡은 후자"라고 운을 뗐다.
"다시 해보면 잘 나올 것 같은 곡이 많았어요. 김추자, 김정미, 펄시스터즈, 엽전들(신중현과 엽전들) 등…. 지금 불러도 전혀 옛날 노래 같지 않은 곡들이죠.(신윤철)"
"예전에 즐겨 연주했던 곡을 지금 다시 연주하면 '아 이게 아닌데' 싶어 허무할때가 있어요. 지금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곡도 있고. 근데 선생님의 곡은 안 그렇지. 발표 당시엔 대중의 주목을 못 받고 묻혔던 곡이 많은데 지금 연주해보니 아주 재밌어요.(송홍섭)"
이달 중순 발매되는 첫 앨범에는 '소문났네' '님은 먼곳에' '하필이면 그사람' '그대는 바보' '후회' '거짓말이야' 등 1970년대를 풍미한 가수 김추자의 노래 여섯곡이 담겼다.
보컬은 지난 5월 오디션으로 선발한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재학생 황유림(20) 씨가 맡았고, 삐삐밴드 출신 드러머 김책(34)도 드럼 주자로 참여했다.
'제2의 김추자'로 발탁된 황씨에 대해 멤버들은 "사실 우리가 뽑았다기보다 모셔온 분"이라며 치켜세웠다.
"오디션 때 불러야 할 곡이 총 9곡이었는데 황유림 양은 그 중 세 곡만 준비해왔더군요. 원래 그런 상황이면 다신 안 만날 텐데 목소리가 워낙 좋았어요. 바로 오디션을 끝내버렸죠.(웃음, 송홍섭)" 신윤철은 "올 초 동덕여대 신입생 환영 공연에 갔다 황양이 노래하는 걸 보고 감탄했다"면서 "그때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을 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와달라고 사정한 셈"이라며 웃었다.
황씨의 합류로 팀 구성을 마무리한 카도는 8월에 녹음을 시작했다.
원곡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디지털 장비 대신 릴테이프를 썼고 녹음 방식도 '원 테이크 레코딩(곡 전체를 한 번에 녹음하는 것)'을 고수했다.
"요즘은 음악 만드는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해서 대충 틀만 잡아놓으면 모든 게 해결돼요. 음정이 틀리면 오토튠으로 맞추면 되고 박자가 틀리면 맞게 잘라서 옮겨 붙이면 되죠. 이렇게 하다 보면 짧은 시간 안에 음악을 만들 수 있지만 잃는 것도 많아요.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고유성)가 사라지는 거죠. 그래서 우린 원 테이크로 갔어요. 원 테이크로 가면 같은 음악이 나올 수가 없거든요.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이 테이크마다 그 순간의 고유한 감성이 담기는 거죠.(송홍섭)"
송홍섭은 "이번 앨범에 담긴 곡은 편곡도 따로 안했다. 각자의 파트를 알아서 디자인한 것"이라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식이긴 하지만 디지털 세대가 잃어버린 '자연스러움'은 되찾았다. 음악가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도는 이번 앨범을 위해 총 64번 녹음해 이 중 9곡을 추렸다.
'소문났네' 등 여섯 곡은 이달 중순 CD로 먼저 출시되며 '꽃잎' '나뭇잎이 떨어져서' '늦기 전에' 등 세 곡은 다음 달 출시 예정인 LP에 추가된다.
"'꽃잎'은 큰형(기타리스트 신대철)도 같이 녹음했어요. 요즘 워낙 바빠서 녹음날 기타만 쳐주고 갔죠. 예전에 (신대철이 이끄는 그룹) 시나위에서도 '꽃잎'을 녹음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같이 녹음하니 느낌이 또 다르더군요.(신석철)"
카도는 앞으로 '뮤직 오브 신중현' 시리즈를 차례로 발표하는 한편, 공연과 TV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팬들과도 꾸준히 만날 예정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980-90년대 노래들을 꾸준히 리메이크하면서 그 시대 노래가 한국 대중음악의 '고전'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에요. 하지만 진정한 고전은 나온지 50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옛날 노래 같지가 않은 신중현 선생님의 곡들이 아닐까요. '카도 프로젝트'를 계기로 선생님의 노래가 젊은 세대에게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김책)"
북미 인디언 부족의 이름에서 따온 팀명 '카도'는 '진정한 추장'이란 뜻. 한국 대중음악계의 '진정한 추장'인 신중현에게 바치는 헌사다.
"인터뷰할 때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는데요.(웃음) 돌이켜보면 저희 삼형제는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이자, 제자이자, 팬인 셈이죠. 아버지가 어렸을 때 만주에 사셨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음악에선 광활한 대륙의 기상 같은 게 느껴져서 좋아요. 스타일리시하면서도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신윤철)"
신석철은 "아버지는 가요계에 전례가 없던 음악을 하셨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보탰다.
"개인적으론 아버지가 1970년대 중반 활동 금지를 당하면서 한국 가요의 퀄리티(질)도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1980년대 초 활동을 재개하시기 전까지 일절 새 음악을 내놓지 못했으니까요. 그 사이 뮤지션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바뀌었죠. 예전에는뮤지션도 대중의 존경을 받았는데 요즘엔 반주나 하는 '딴따라' 취급을 하기 일쑤니…' 이젠 그런 인식을 바꿔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카도 프로젝트'가 도움이 됐으면 해요.(신윤철)"
'카도 프로젝트'에 대한 신중현의 반응은 어떨까. "아직 들려드리지 못했는데…. 글쎄, 별로 좋아하실 것 같진 않네요. 워낙 까다로우신 분이라.(신윤철)"
"그래서 쉽게 안 들려드리는 거에요. 하하.(송홍섭)"
문화연예
서울=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신중현의 아들이자 제자이자 팬으로서 만들었죠"
"신중현의 아들이자 제자이자 팬으로서 만들었죠"
입력 2012-11-11 08:19 |
수정 2012-11-11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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