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지난 3일(현지시간) 숨진 장도영 전 국방부 장관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고인은 5.16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내 쿠데타 주도 세력이 아니면서도 격랑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를 빼고는 5.16을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5.16의 내용과 전후 사정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핵심 인물로 꼽힌다.
5ㆍ16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던 고인은 쿠데타 직후 혁명 세력에 의해 한때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계엄사령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국방부 장관과 내각 수반으로까지 추대됐다.
그러나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들 자리에서 해임됐다.
이어 몇 달 뒤에는 혁명세력에 의해 반혁명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되는 곡절을 겪었다.
1962년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형집행 면제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건너와 망명아닌 망명 생활을 해야만 했다.
5.16 당시 군 핵심 인사였던 그는 쿠데타 음모를 미리 알고도 묵인, 방조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사건 발생 40년이 지난 2001년 발간한 회고록 '망향'에서 고인은 이런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자신이 쿠데타를 지원, 방조했다고 보는 것은 '날조된 역사'라고 '결백'을강하게 주장했다.
다만 쿠데타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도 인정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쿠데타 세력의 음모를 사건 발생 하루 전에야 파악했을 정도로 박 소장과 쿠데타를 모의하지 않았다면서 자신이 쿠데타를 사전에 알고 지원 혹은 방조했다고 보는 것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날조된 역사에 따른 오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세력에 대해 방첩대를 동원해 조사를 실시했으나 방첩부대장의 허위 보고로 진상 파악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회고록에서 "육군을 지휘하는 책임자로서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쿠데타가 일어난 뒤에도 이유가 어찌 됐건 진압하지 않았다.
그뿐이랴. 사태를 수습해 조속히 원상으로 복귀시키려 했던 일마저 실패했다.
즉 나는 참모총장으로서 연달아 세 번이나 실패를 범한 것이다.
이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역사적 사실이 되고 말았다"고 참회했다.
그는 5.16에 대해서는 "소위 5.16정변 주체라는 사람들이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발전 과정에 중대한 장애가 됐고 우리 민주정체에 암적 요소를 이식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고인의 육군참모총장 시절 전속부관을 지냈다는 장정열(79)씨는 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민주주의를 잘 이해하는 정부가 들어서야 하는데..'라며 국내 걱정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숙청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혁명 주도세력에 대해 "서운한 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형집행 정지로 풀려난 1962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학에서 '월남공산주의 혁명의 본질과 특징'을 주제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까지 웨스턴 미시간대에서 교수를 지내다가 은퇴 후 부인과 함께 플로리다에 거주해 왔고 최근 몇 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앓아왔다.
한국을 떠나온 뒤 2001년 회고록을 낸 것 외에는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한국과는 연락을 거의 끊고 살아왔다.
정치
서울=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격동의 현대사 증인 장도영
격동의 현대사 증인 장도영
입력 2012-08-05 18:03 |
수정 2012-08-0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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