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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방통]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② 남북한 경제통합, 독일 능가할까?

[외통방통]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② 남북한 경제통합, 독일 능가할까?
입력 2019-07-21 09:07 | 수정 2019-07-2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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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통방통]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② 남북한 경제통합, 독일 능가할까?
    1989년 11월 9일 동독과 서독을 가로막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냉전의 유물이 해체됐고, 자유로운 왕래를 통해 독일은 통일됐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꼭 30년이 된 2019년. 한반도에서도 사상 유례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랜 적대관계였던 남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았습니다.
    평화로 가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는 독일에서 어떤 점들을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해봤습니다.


    1편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을 맞아 동독인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부작용을 살펴봤습니다. 우리는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까요?

    먼저 남북한과 독일은 많이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동서독은 전쟁하지 않았지만 남북한은 전쟁을 겪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동독인과 서독인은 정서적으로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서독이 유럽의 다른 나라, 혹은 월드컵에서 다른 나라와 격돌할 때 동독 사람들은 서독을 응원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요." - 위르겐 라이히 / 라이프치히 현대사포럼박물관장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통일시대를 열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재임했습니다. 그는 동방정책으로 동독과의 교류 협력을 열었습니다. 우선 가족간 연락이 자유로웠습니다. 독일도 이산가족이 많았지만 편지와 소포를 통해 연락했습니다. 동독 내 커피와 카카오 소비량의 20%가 서독에서 온 소포로 충당될 정도였습니다.
    [외통방통]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② 남북한 경제통합, 독일 능가할까?
    동방정책 이후 서독인들은 동독의 인권이 조금씩 개선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서독 정부의 통일 정책에는 일관성이 있었고, 조금씩 결실을 내면서 여론도 지지세로 돌아섰습니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일관된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남북한 경제통합, 한국이 통일 독일 능가?

    한스 모드로는 동독의 마지막 총리였습니다.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와 동서독의 미래를 놓고 담판을 벌였던 인물입니다.
    [외통방통]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② 남북한 경제통합, 독일 능가할까?
    모드로 전 총리는 먼저 작년 9월 리수용 노동당 국제부장과 만나 나눈 대화를 소개했습니다. 리수용 부장은 "북한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미국, 한국과 대화를 통해 투자를 이끌어내는 게 결과적으로 주민 삶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북한이 투자를 원한다는 겁니다.
    [외통방통]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② 남북한 경제통합, 독일 능가할까?
    사실 북한에 대한 투자는 이미 훌륭한 성공 사례가 있습니다. 지금은 막혀 있는 개성공단입니다. 개성공단은 규모는 작지만 입주 기업들은 예외 없이 큰 성공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모드로 전 총리 역시 개성공단은 남북한 경제 통합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독일이 통일을 통해 명실상부한 유럽의 정치, 경제 대국이 됐듯이, 한국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2013년 골드만삭스는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한의 경제 통합을 전제로, 2031년 대한민국이 독일이나 일본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모드로 전 총리는 "일단 남북한의 경제적인 격차를 줄이면서 꾸준한 교류를 통해 남북이 같이 갈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반드시 정부와 국민이 신뢰 구축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진보가 물꼬 트고 보수가 완성한 통일...일관성이 중요

    모드로 전 총리가 특히 강조한 건 정책의 일관성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널뛰듯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독일 통일 과정에서도 동독과의 화해의 깃발을 처음 든 것은 빌리 브란트를 중심으로 한 사민당이었습니다. 그러나 통일 독일의 마침표를 찍은 것은 보수 기민당의 콜 총리였습니다. 서독의 보수와 진보 세력이 인권 문제와 대 동독 지원 등에 있어 생각이 다르기는 했지만, 대립을 완화하고 교류를 확대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꾸준히 소통하며 합의했다는 겁니다.

    언론이 역할도 강조했습니다. 그는 “북한에 대한 거짓정보, 확인되지 않은 낭설 등을 기자들이 무비판적으로, 또는 정파적 이익 추구 차원에서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독일 통일 전 동서독 언론은 서로 특파원을 보내 교류했는데, 이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KPF 디플로마-평화저널리즘 연수 과정의 취재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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