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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M부스] 한국당의 선택은 '필리버스터'…민주당의 카드는?

[국회M부스] 한국당의 선택은 '필리버스터'…민주당의 카드는?
입력 2019-12-03 09:42 | 수정 2019-12-03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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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M부스] 한국당의 선택은 '필리버스터'…민주당의 카드는?
    자유한국당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필리버스터를 꺼내들면서 패스트트랙 정국이 일찍 시작됐습니다. 이날 본회의에는 대부분 이견이 없는 '비쟁점 법안'이 상정돼 있었기 때문에, 극소수 한국당 지도부를 제외하고는 이런 사태를 예상치 못했습니다. 당초 패스트트랙 정국은 빨라야 공수처 설치법이 본회의로 넘어가는 12월 3일 이후에나 시작될 거란 관측이 유력했습니다.

    하지만 한국당은 예상보다 이른 11월 말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필리버스터 대상도 본회의 상정 법안 199건 전부였습니다. 여야 양측에서 "생각지도 못한 초식"(민주당 관계자), "허를 찌른 한 수"(한국당 관계자)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야는 왜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을까요? 이를 설명하기에 앞서, 복잡한 필리버스터 제도의 규칙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국회M부스] 한국당의 선택은 '필리버스터'…민주당의 카드는?
    필리버스터 규칙 : 반대 토론은 보장, 법안은 표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소수 정당에 보장된 의사진행방해 절차입니다. 본회의장 점거 같은 물리적 회의진행 방해 행위에 대한 처벌수준을 '당선 무효형'으로 높인 대신, 반대 토론 절차를 법으로 보장한 겁니다.

    규칙은 단순합니다. 재적의원의 3분의 1이 요구가 있으면, 특정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가 시작됩니다. 1인당 1회에 한하여 시간제한 없이 발언할 수 있습니다. 성경책을 읽어도 되고, 요리책을 읽어도 됩니다. 화장실 가고 싶은 생리적 욕구를 참고, 발언석만 지키면 됩니다. 발언이 자정 넘어 이어져도 회의를 끝내지 않습니다. 소수 의견을 가진 의원들에게 반대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충분히 주겠다는 취지입니다.

    필리버스터는 세 가지 방식으로 끝납니다. 일단 더 이상 토론할 의원이 없으면 종결됩니다. 또 국회 회기가 종결되면 끝납니다. 이번 정기국회는 12월 10일까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종결 표결’로 끝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재적의원 3분의 1이 '무제한 토론 종결'을 요구하고, 5분의 3이 찬성하면 토론이 끝납니다. 이 경우에도 반대 의사 표현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법은 24시간 토론 후 표결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필리버스터가 끝나면 해당 법안은 바로 표결에 부쳐집니다. 회기가 끝나서 종결된 경우, 다음 회기 첫 번째 안건으로 표결이 시작됩니다.

    이상의 필리버스터 규칙을 종합하면, 국회선진화법이 정한 뜻은 명확합니다. "예전처럼 법안 통과를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 다만 반대를 하려면 말로 하라. 반대 토론 기회는 충분히 24시간 이상 보장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를 자신들이 반대하는 공수처 설치법과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 개정안이 아닌, 비쟁점 법안 196개(199개에서 유치원 3법 제외)에 신청했습니다. 정치권에서 "필리버스터 제도의 취지와 어긋난 창의적인 변주"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국회M부스] 한국당의 선택은 '필리버스터'…민주당의 카드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한국당의 '변주' : 다른 안건 필리버스터로 패스트트랙 상정 봉쇄?

    한국당의 노림수는 무엇이었을까요?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한국당은 공수처 설치법과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되면 연내 통과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설령 12월 10일까지 열흘 넘게 필리버스터를 끌고 가도, 다시 소집되는 임시국회 첫 안건으로 표결에 부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의 상정을 원천봉쇄하는 도구로 필리버스터 제도를 '변주'했습니다. 지난달 29일 필리버스터 신청 직후 한국당 관계자는 "10일까지 199개 법안 필리버스터를 해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아예 상정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다음 임시국회가 소집되면 그때 상정되는 법안으로 또 필리버스터를 해서 막을 것"이라는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이 말을 좀 더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이날 1번 안건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양정숙) 선출안'이었습니다. 이 안건에 한국당이 12월 10일 정기국회 종료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갈 경우, 그다음 소집되는 12월 임시국회에서는 1번 안건에 대한 표결이 시작됩니다. 대신 2번 안건('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필리버스터가 시작됩니다. 한국당 국회의원 숫자는 모두 108명입니다. 한 명당 8시간씩 번갈아가면 36일, 임시국회 기간인 30일 넘게 반대토론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 필리버스터를 반복하면 한 달에 처리되는 안건은 1개 꼴입니다. 내년 4월 총선까지 기껏해야 안건 5개가 통과되는 게 전부, 당연히 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 개정안은 상정조차 할 수 없습니다.

    실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실질적으로 우리가 전부 필리버스터를 할 필요는 없었고, 5개 정도만 있으면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자들이 5개 법안이 무엇인지 묻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권한을 보장해달라는 그런 의미에서 5개를 얘기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유치원 3법'에 대해서도 "꼭 유치원법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리고 필리버스터에 돌입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나 원내대표가 주목한 '5개'라는 법안 개수는, 공교롭게도 내년 4월 총선까지 필리버스터 전술로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상정을 막기 위해 필요한 법안 숫자와 일치합니다.
    [국회M부스] 한국당의 선택은 '필리버스터'…민주당의 카드는?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급한 불 끈 민주당…'4+1 연대'는 성공할까?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지난달 29일 무제한 토론 신청이 접수되기 전까지 한국당의 '조기 필리버스터' 전술을 예상치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 참석한 한 의원은 "지도부가 조금은 우왕좌왕했고, 당황한 느낌까지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은 일단 급박한 상황에서 국회 본회의를 무산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법안을 인질로 잡고 흥정하는 정치 행태에 굴복할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민식이법'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한국당의 '조기 필리버스터'는 시작도 못해보고 실패했습니다. 게다가 민주당은 다음 본회의까지 전략·전술을 정비할 시간도 벌었습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우리당은 정확히 대응했고 자유한국당의 민생볼모 국회 봉쇄작전은 완벽히 실패했다"고 자평했습니다.

    민주당은 이제 반격을 준비하는 모양새입니다. 일단 어제(2일) 오후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에 창당을 추진 중인 대안신당(가칭)까지 포괄하는 이른바 '4+1 연대'를 복원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는 한국당이 염려하는 최악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민주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의원들을 규합해 패스트트랙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 148명을 규합해야 하는 숙제도 떠안았습니다. '4+1 연대'는 정당의 숫자도 많지만, 선거제를 둘러싼 이해관계도 복잡합니다. 우선 호남이 주축인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 의원들은 호남 지역구의 축소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은 "선거제 협상은 가능하다"면서도 "지역구 225석, 비례의석 75석의 원안 취지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대표가 오신환 원내대표를 징계하는 등 격렬한 내분을 겪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런 이해관계를 다 아우르는 선거제 단일안을 도출할 수 있을까요? 또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안은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법안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놓여진 숙제는 많지만 민주당에 주어진 시간은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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