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문 영문 매체인 NK뉴스가 김정은 위원장의 사망을 주장했던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인에 대해 날선 비판이 담긴 외부 기고문을 게재했습니다.
"지 당선인은 탈북민으로서 발언한 만큼 다른 탈북민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는 겁니다.
NK뉴스는 4일 게재한 "죽음에서의 귀환 : 남한의 편파적 정치가 대북 정책을 해칠 때"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인은 그나마 "김정은의 삼촌(김평일)이 권력을 잡았다는 가능성을 '팩트'로 언급하진 않았다"며 지 당선인은 "그런 변명거리조차 없다"고 썼습니다.
기사를 쓴 표도르 째르치즈스키는 "일부 탈북자들의 '스토리'를 불신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라며, 특히 2010년대 들어 탈북민 사회에서 사기꾼과 기회주의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동혁 씨의 사례를 거론했습니다.
◇ 신동혁은 누구?
신동혁 씨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인 14호 수용소 출신의 생존자로 알려졌습니다. 국제 사회에 정치범 수용소의 열악한 인권 유린을 고발하면서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신 씨는 14호 수용소에서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모의하다 들켜, 자신이 보는 앞에서 처형당했다는 충격적인 진술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을 엿듣고 밀고한 것이 신 씨 자신이었다는 비극적인 서사가 북한 사회의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신 씨의 이야기는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던 블레인 하든이 엮어 책으로 출판했고 20여개국 언어로 번역되며 큰 파장을 낳았습니다. 유엔 인권보고서에도 담겼습니다.
하지만, 신 씨를 아는 탈북민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반전이 시작됩니다. 18호 수용소에서 20여 년을 생활하다 탈북한 김혜숙 씨는 신 씨가 정치범을 가두는 14호가 아닌 18호 수용소에서 생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14호나 18호나 큰 차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18호는 일반 범죄인 수용소이기 때문에 신씨 자신이 범죄를 저질러 수용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혜숙 씨는 또 신 씨의 어머니와 형이 처형된 이유가 '탈출 모의'가 아니라 '살인'이었다고 반박했습니다. 처형 현장인 18호 수용소에 본인도 있었다는 겁니다. 결국 신씨의 증언 곳곳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신 씨는 자서전의 내용 일부가 잘못됐다고 오류를 고백했습니다.
2004년에도 미국 하원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기독교인들에게 철물을 부어 화형한다고 증언한 탈북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증언을 한 탈북민 역시 정치범 수용소에 가본 적 없는 경미한 경제사범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물론 일부 오류가 있다고 해도 북한에서 '공개 처형'과 같은 인권 유린이 벌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실과 과장, 때로는 거짓 정보가 섞이면서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건이 반복되면서 다른 탈북민들의 정당한 증언까지도 의심을 받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다루면서 북한 출신인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북한 인권과 관련해 자극적인 거짓 증언은 진짜 증언까지 의심을 받게 하는 범죄"라며 "거짓으론 악을 이길 수 없다"고 적었습니다. (2015년 1월 27일 "신동혁의 증언 번복 어떻게 봐야 하나")
◇ 다시, 지성호
지성호 당선인의 과거 증언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은 지 당선인이 2016년 통일신문과 한 인터뷰와 작년에 출간한 '나의 목발이 희망이 될 수 있다면'에 담긴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인터뷰에선 자신의 아버지를 불법을 저지르지 못해 시장에서 장사도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으로 묘사했는데, 저서에선 함께 석탄 절도를 하다 젊은 군인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북에서의 생계가 곤궁했음을 강조하기 위한 내용으로 보입니다.
다만 NK뉴스는 "지 당선인이 단지 이틀동안 주목을 받고 나서 굉장히 문제가 될 말을 기꺼이 할 만큼 바보는 아니"라며 신동혁 씨처럼 거짓을 지어냈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보다는 '자기 기만'에 빠졌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지 당선인이 자기 기만에 빠지게 된 원인으로, 주류 우파가 '극단화'된 현재의 한국 정치 구도를 짚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를 주장하는 친박 세력은 '정보 고립'을 선택하고 스스로를 봉쇄하면서 '루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한을 북한에 바치려는 사악한 배신자"라는 식의 음모론이 성행합니다.
이들이 우파의 주류가 되면서, 지 당선인 역시 '김정은이 이미 숨졌고 섭정체제에 들어갔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내뱉었다는 해석입니다. 미래통합당 이준석 최고위원은 태영호와 지성호 두 당선인에 대해 "유튜브 식으로 말한 것"이라며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많이 유포하는 경우에는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 "한국 언론 보통 때도 신뢰 어려워"
NK뉴스의 지적처럼 지 당선인이 거짓말을 지어냈다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지 씨에게 내부 사정을 알려준 이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일부 매체의 관측처럼 일부러 거짓 정보를 유통시키려는 북한 당국의 공작에 말려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지 씨가 신뢰할 만한 소식통이라고 믿는 이가 한국 정부 관계자인지, 미국 정부 관계자인지, 아니면 외부와 통화가 되는 북한내 주요 인사인지, 어느 것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정보의 '순도'를 검증하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책임은 지 당선인의 근거가 빈약한 주장을 검증없이 보도한 언론에도 있습니다.
지 씨는 북한에서 석탄을 훔치다 팔과 다리에 장애를 입고, 한때 '꽃제비' 생활까지 했지만 배짱이 두둑해 석회장사로 돈도 벌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천신만고 끝에 북한의 ‘지성호 사장’은 남한에서 '지성호 의원'이 된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 지방도시에서 장사를 하던 지 당선인이 평양의 최고위층 신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을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탈북자 사회 뿐만 아니라 지 당선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 한국 언론도 신뢰를 잃게 된 셈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허위정보와 노골적 추측이 뒤죽박죽되었다"고 김정은 사망설을 둘러싼 언론 보도를 비판했습니다. AP 평양지국장이었던 윌슨 센터의 이진 디렉터는 워싱턴포스트에, 평소에도 한국 언론은 북한 문제에서 신뢰하기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매체는 부정확한 보도가 오래 패턴화돼 있다."는 것이 그의 따끔한 지적이었습니다.
NK뉴스 측은 11일 표도르 째르치즈스키의 해당 기사는 외부 기고문으로 NK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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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방통] "지성호, 다른 탈북민의 신뢰성까지 떨어뜨려" 날선 비판
[외통방통] "지성호, 다른 탈북민의 신뢰성까지 떨어뜨려" 날선 비판
입력
2020-05-07 12:59
|
수정 2020-05-1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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