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인포데믹(거짓 정보가 전염병처럼 무섭게 번지는 현상)'으로 기록될 이번 헤프닝을 두고 북한 연구자들이 북한 관련 가짜뉴스의 병폐를 짚어보는 보고서 [북한 관련 허위정보 실태와 대응: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를 발간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포데믹의 발단은 김 위원장이 공식 집권 이후 처음으로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 15일)인 태양절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통일부도 '이례적인 일'이라 평한만큼 언론과 전문가들이 이유를 놓고 촉각을 기울이던 상황. 이런 가운데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가 4월 17일 신병이상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했고 4월 20일, 심혈관계 수술을 받은 것 같다는 북한전문매체 데일리 NK의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결정타는 4월 21일, 미국 CNN 방송의 보도였습니다.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에 대한 국내 언론 보도 건수는 20일까지 100건을 넘나드는 수준이었는데 CNN의 보도가 있었던 21일, 500건을 훌쩍 넘겼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이 건강에 큰 이상없이 지방에 체류하고 있다'며 정보사안까지 공개해 진화에 나섰습니다. 이에 따라 급격하게 줄어든 기사 건수는 4월 27일, 28일 다시 300여건으로 상승했습니다. 4월 27일은 판문점 선언 2주년이었던만큼 부재한 김 위원장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걸로 추정되고요, 4월 28일엔 탈북민 출신의 태영호 국회의원 당선자가 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때문으로 보입니다. 당시 태 당선자는 "김 위원장이 수술을 받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프가 한 번 더 튀는 건 김 위원장이 순천 인비료공장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하루 전인 5월 1일입니다. 이 날 또다른 탈북민 지성호 당선인이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심혈관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99% 확신한다. 주말에 사망사실이 발표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유구한 역사의 가짜 북한뉴스
북한이 워낙 폐쇄적이다보니 관련된 오보는 사실 하루이틀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1986년, 조선일보가 '김일성 주석 피격 사망설'을 보도한 건 지금까지도 언론계 최악의 오보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2013년에도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장의 총살설을, CNN은 2015년 김 위원장의 고모 '김경희' 독살설을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2018년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했던 현송월 단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김경희는 남편 장성택이 처형됐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올해 설맞이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을 무려 '주석단'에 앉아 관람했고요. 가깝게는 지난해, 하노이 2차 북미회담 결렬 이후 회담을 이끌었던 김영철 전 통일전선부 부장과 김혁철 실무협상 대표가 숙청됐다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영철 역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정치국 국무위원 자격으로 주요 행사마다 사진이 찍히고 있습니다. 언론이 가짜뉴스 전파…최근엔 SNS로 확대
이관세 극동문제연구소장은 가짜뉴스의 패턴을 분석한 결과 생성 → 전파 및 강화 → 재생산 및 증폭 → 검증의 4단계로 진행된다고 설명했습니다.
1) 특정 언론과 전문가, 탈북민이나 해외언론이 의혹을 제기하면 2) 기성 언론의 전파로 강화되고 3) 정치인과 전문가가 가세해 재생산된 뒤 4) 북한 매체의 공식 보도로 오보가 확인돼야 가짜뉴스가 잦아드는 식이란 겁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가짜뉴스 전파에 SNS, 개인방송 플랫폼까지 가세하면서 확산이 더욱 빠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검증은 어렵습니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최고위층이나 엘리트 집단의 생활은 더욱 폐쇄적이기 때문에 정보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고, 탈북민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정보를 가공하거나 만들어내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겁니다. 탈북한 지 30년이 넘은 탈북민이나 유아기에 탈북한 사람이 TV에 출연해 마치 최근까지 보고 들은 것처럼 북한 현실을 증언하는데 확인할 길이 없는 식입니다.
해법은?
전문가들은 결국 언론, 학계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국내에선 허위보도가 나오면 보도 대상이 바로 언론사와 기자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지만 북한 관련 오보엔 보도 대상이 없습니다. 북한 당국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한 오보에 제동걸 주체가 없어 "카더라"식의 보도가 반복되는만큼 언론인 스스로가 윤리의식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 때문에 1) 언론계가 북한 관련 보도 준칙의 만들어 지키고 2)언론중재위원회 등 언론 관련 기관에 북한 관련 허위 정보를 제3자가 제소하고 시정권고를 내릴 수 있도록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또 국민들이 양질의 북한 정보에 쉽게 접근해 가짜 뉴스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학계가 신뢰성 있는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는 자성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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