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원희룡 제주지사가 나란히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사회안전망 4.0과 기본소득제'라는 정책토론회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먼저 우리 실정에 맞는 기본소득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사회 기반을 놓고 봤을 때 불평등이 심화된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시정하지 않고서는 과연 한국이 경제성장으로 인해서 국민의 행복을 충족시키는 나라라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기본소득 검토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반면, 원 지사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기본소득론은 그 실행과 관련해 많은 생각할 문제들이 있다"고 주장한 겁니다. 토론회 뒤에도 기자들에게 "전면적 기본소득론은 현재로서 오히려 실현 가능성이나 효과 면에서 초점이 잘못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생각은 어긋났지만, 김 위원장과 원 지사는 나란히 앉아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원 지사는 김 위원장이 회의장에 입장하자 자신의 옆자리로 직접 안내했습니다. 또 "김 위원장님은 오래전부터 자주 뵈었다"면서 "최근에 제주에도 오시고, 제가 광화문에도 찾아뵈며 경제, 교육, 국가 전반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고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기본소득'에는 생각을 달리 하면서도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겁니다.
불과 보름 전엔 '진보의 아류' '용병' 공격
그럼 시계를 돌려 보름 전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6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원 지사가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분위기는 크게 달랐습니다. 이 자리에서 원 지사는 '보수'를 강조했습니다. "진보의 아류가 되어서는 영원히 2등이고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면서 "경제성장을 선택하고 주도했던 건 바로 대한민국 보수"라고 '보수'를 추켜세웠습니다. 이는 이른바 보수 색채 빼기에 나선 김 위원장을 저격하는 발언으로 읽혔습니다.
특히, 김 위원장을 '용병'에 비유하는 발언도 나와 화제가 됐습니다. 원 지사가 통합당이 밀리고 있는 현 상황을 역전시켜야한다면서 "'용병'에 의한 승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에 의한 승리, 대한민국의 역사적 담대한 변화를 주도해왔던 바로 그 보수의 위풍이 승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겁니다.
포럼을 마친 뒤 원 지사는 김 위원장을 겨냥한 건 아니었다고 기자들에게 설명을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마치 김 위원장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습니다. 현재 통합당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누가 봐도 김 위원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날 오후 기자들은 김 위원장에게 원 지사의 발언에 대한 생각을 물었는데요.
"그 사람이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 굳이 신경 쓸 게 뭐가 있겠나"라는 냉소적인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심지어 다음날에는 더 강하게 원 지사를 비판했는데요. '진보의 아류'라는 표현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서 원 지사가 제대로 공부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까지 얘기했습니다.'무주공산 통합당'에서 대선후보 꿈꾸는 원희룡
사실 원 지사는 지난 5월부터 야권 후보로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혀오고 있습니다. 21대 통합당 초선의원 4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야권 대선후보' 1위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서울을 자주 찾으며 중앙정치 행보에 나섰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원 지사는 2년 전, 무소속으로 제주지사 선거를 치뤘고, 민주당에는 연정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행보를 걸어온 게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원 지사가 확실한 '보수 대선 후보'로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보수'라는 가치를 강조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그리고 '보수'를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김 위원장과도 대립각을 세웠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어찌 됐든 현재 통합당은 김 위원장이 이끌고 있는 당입니다. 현재로서는 대선 후보 경선 등 대선 후보를 만드는 작업을 김 위원장이 주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통합당 후보로 대권을 꿈꾸는 원 지사에게는 김 위원장과 계속 대립각을 세워봐야 이득이 되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23일 토론회에서 김 위원장에게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김 위원장은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내 대선 주자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대선 후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 중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아는 사람' 중에는 당연히 원희룡 지사도 포함될 겁니다.
2주 사이 확 바뀐 모습을 보여준 원 지사가 과연 '보수 대선 후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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