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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방통] 통일부 수난사…정권따라 롤러코스터

[외통방통] 통일부 수난사…정권따라 롤러코스터
입력 2020-06-27 07:27 | 수정 2020-06-2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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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통방통] 통일부 수난사…정권따라 롤러코스터
    [통일부 장관, 한때는 앞다퉈 "내가 하겠다"]

    2004년 6월,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에선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간에 자리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차기 대선후보군으로 분류되던 이들이 노린 자리는 바로 '통일부 장관'.

    고 노무현 대통령이 3대 국정목표의 하나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설정하고 DJ정부 부터 이어지던 북한 포용정책을 각별히 신경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부를 차지하는 인물이 대선후보 경쟁에서 유리할 거란 관측까지 있었습니다.

    결과는 정동영 의장의 승. 정 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의장도 맡았습니다.

    외교통일안보 정책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통일부 장관이 했던 겁니다.

    [통일부 폐지론…살아남았지만 굴욕 세월]

    2008년 1월 17일,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 이하, 팀장 이상 간부들이 긴급회의를 엽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 개편안을 마련했는데 여기에 '통일부 폐지안'이 들어 있었던 겁니다.

    졸지에 부처가 없어지게 된 통일부 직원들은 경악했고 정치권, 학계, 민간단체에서 줄줄이 반대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급기야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나서 "통일부를 없애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냐"며 강하게 비판했는데요.
    [외통방통] 통일부 수난사…정권따라 롤러코스터
    결국 통일부를 존치시키는 것으로 일단락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조직이 대폭 축소되고 인원은 550명에서 470명으로 80명이나 줄어들었습니다.

    심지어 사무실마저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본관 에서 외교부가 있는 별관으로 옮겼죠. 장관 역시 중국통이자 외교관 출신인 김하중 전 중국대사였고, 후임 장관도 '통일부 폐지론'에 동조했던 현인택 교수였습니다.

    30년 가까이 재직한 통일부 직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한마디로 치욕의 세월이었다. 남북관계의 중요성이나 전문성이 송두리째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굳이 외교부에 세살이까지 시키니 통일부의 존재감이 부정당하는 듯했다."

    [김연철 장관의 퇴진…대화론자는 어렵다?]

    지난 19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재임 14개월만에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킨지 사흘만입니다.

    이를 두고 참여정부에서 불명예 퇴진한 이종석 전 장관과 비슷하단 말도 나옵니다.

    이 전 장관은 참여정부 포용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지만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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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론자 통일부 장관들은 왜 불명예 퇴진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북한 비핵화를 둘러싸고 남·북, 북·미, 여기에 중국, 일본, 러시아까지 모두 얽힌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늘 변수를 낳기 때문입니다.

    <한국 전쟁의 기원> 저자 브루스 커밍스는 이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불행하게도 어떤 외국도 한국의 통일에 관심이 없다. 미국 지도자들이 진지한 관심을 보인 때는 1950년 가을 북한을 침공하기 전날 밤이 유일하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의 통일을 위해 중요한 어떤 것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2020. 6.26 <한겨레>와의 인터뷰)

    [외부요인에 좌지우지되는 남북 관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일관되게 대북 포용 정책을 펼쳤지만, 남북관계는 늘 요통을 쳤습니다.

    그 사이 미국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2000년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성사직전까지 갔다 중동문제로 무산됩니다.

    2001년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던 대북정책은 압박정책으로 180도 바뀌게 됩니다.

    네오콘이라 불리는 신 보수주의자들이 외교안보분야를 이끌면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부시 행정부에서도 네오콘의 핵심으로 대북 압박정책을 주도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공간은 좁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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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이종석 전 장관도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애썼지만 부시 행정부의 강경기류에 부딪쳐 성과가 없었고,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합니다.

    김연철 장관이 처한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북한은 경제 협력과 평화협정 체결을 담고 있는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거듭된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유엔 제재와 미국 독자제재의 벽이 높아져 '못 하나 북한으로 못 넘어가는' 상황이 됐습니다.

    특히 미국의 독자제재는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정부·기업·은행까지 금융제재를 가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담고 있습니다.

    남북미 정상간의 사이가 좋다해도 북한에 대한 제재가 해제될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여전히 아주 작다는 얘깁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소규모 개별관광 정도만 제안했던 것도 이런 촘촘한 제재 때문이었지만, 경제적 도약을 꿈꾸는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마뜩치 않았던 겁니다.

    [권한에 비해 짐이 무겁다]

    김 전 장관은 퇴임사에서 "통일부가 권한에 비해 짊어져야 하는 짐은 너무나 무거웠다."고 말했습니다.
    [외통방통] 통일부 수난사…정권따라 롤러코스터
    이를 두고 일부에선 '추진력과 돌파력이 부족했던 김 장관이 괜히 권한 핑계만 댄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여당을 중심으로 '신임 통일부 장관은 정무적 감각이 있는 중량급 정치인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박지원 전 의원은 '통일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키자'고도 했습니다.

    그럼 정말 통일부 장관의 권한이 커지면 남북 관계가 풀릴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한 통일부 당국자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90년대 통일원 시절, 원장은 부총리급 장관이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장관급으로 돌아온 국민의 정부에서 DJ의 복심으로 불렸던 임동원 전 장관이 햇볕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며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통일부 업무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읽어내 창의적인 방안을 고안하고 일관되게 추진하는게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국가안보실 개편이 필요하단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정부들에 비해 권한과 조직이 확대된 국가안보실이 부처간 정책 조율이 아닌 직접 정책을 입안하는 역할을 하다보니 부처들이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혜정 중앙대 교수는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남북 관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에 통상 전문가인 김현종을 국가안보실 2차장에 앉힌 것이 가장 이해되지 않는다"고 평했습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정권 초기 안보실이 강할 수밖에 없지만 시간이 지나도 부처들에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 지금도 너무 강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다음 통일부 장관은 누가?]

    북한이 대남 관계를 '대적 관계'로 규정하고 판문점 선언의 성과인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까지 폭파시킨 마당에, 누가 통일부 장관으로 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역시 정치권 인사 3명 정도가 검증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요. 지금 상황에서 통일부 장관은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일이라며 모두가 손사래를 치고 있다는 기사들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나빠지는 걸 상상할 수 없으니 돌파력 있는 인물이 상황 관리부터 시작하면 나쁘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지금은 선뜻 나서서 잘 해보겠다고 하기 어려운 자리인건 맞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시작할 신임 통일부 장관에게, 먼저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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